지금 만나러 갑니다~ (1. reservation)
5년 전, 배낭여행 중이던 언니한테서 이국적인 야자수 엽서가 한 장 왔습니다. 여행하면서 자매가 함께 다니는 백팩커들을 볼 때마다 동생이 더욱 그.립.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제가 한창 공부 중일 때라 눈물이 핑 돌았었지요^^; 그 때부터 언니랑 둘이서 꼭 장기 배낭여행을 떠나보고 싶었습니다. 그만큼 오래 된 숙원 사업이라는 말씀(쑥쓰~)
그 사이 저는 대학원도 모자라 노량진 고시원까지 풀코스를 거쳤고, 서럽게도 삼십대가 되어버렸습니다. 제가 느끼는 삼.십.대.를 정의해 보자면, 더 이상 새로운 것이 없는 나이입니다. 여행을 가기로 계획은 세웠으나, 설레임이 없고, 준비를 하자니 피.로.만 몰려옵니다. 언제나처럼 언니가 준비를 하고 저는 디카만 달랑 들고 따라나서는 여행이면 좋겠는데, 이번엔 어째 언니 반응이 까칠합니다.
“이번에도 나 혼자 준비 다 하는 그런 여행이면 난 안 갈래” 에구에구, 그동안 힘들었나 봅니다. 지난 겨울여행 때는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멀미까지 한 언니입니다. 미안한 마음에 급선회하여 패키지를 제안합니다. 시큰둥한 언니, “너 쇼핑센타 끌려 다니고 싶어?” 절레절레~ “너 코끼리쇼 보구 싶어?” 절레절레^^; 아닙니다. 역시 우리는 패키지 보다는 자유여행을 지향합니다.
엄두를 못 내고 늦장을 부리느라 촉박해졌지만 어찌어찌 스케줄을 맞추고 태국여행 준비를 시작합니다. 근무 시간 빼고, 하루 십여 시간을 ‘태사랑’과 함께 합니다.(태사랑 감사~) 일단 태국과 주변국 지도부터 한 장 칼라풀하게 출력해서 책상에 붙여놓고, 지리부터 익힙니다. 제가 아직 세계를 이해 못하는 관계로다가^^; 가이드 북도 한 권 준비합니다. ‘헬로우 태국’ 04년판(아쉬운대로 04년판도 아주 쓸만합니다)
항공권 예약은 언니가, 게스트 하우스 예약은 제가 하기로 합니다. 처음엔 호텔 숙박을 계획했지만, 사이사이 언니와의 통화로 카오산 로드 부근의 게스트 하우스를 찾아봅니다. 언니왈 이번여행의 컨셉은 ‘백팩커’랍니다. 케리어 끌고 가는 우아한 여행이 아니란 말씀(씁쓸~)
계획대로 되었다면 여행기간은 15일입니다만 항공권을 구매하는 과정에서 최적시기를 놓쳐버린 언니가 5일을 까먹습니다. 잦은 회식자리로 인하여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다는데 어쩌겠습니까? 어려울 때 도와야하는 우리는, 자매입니다^^; 발권을 받았다며 전화하는 언니, 자세히 들어보니 비행시간이 더욱 가관입니다. 할인항공권을 구매하다 보면 경유하는 항공편은 기본입니다. 그쯤은 이해하지요. 근데 방콕 가는데, 대만에서 8시간 대기랍니다. 그것도 새벽 두 시에(헉스~) 우리는 건강보험을 슬슬 준비해야하는 삼십대입니다^^;
여행일정이 줄어든 이상, 우리는 태국 북부든 남부든 어느 한 쪽을 아쉽지만 버려야 합니다. 안 그래도 짧은 일정에 이동시간이 너무 길어지면 여행이 고생스러워집니다. 눈물을 머금고 북부 치양마이를 버립니다.{훌쩍~) 대신 남부 해변에서 낭만적인 리조트를 찾아봅니다. 해변에서 무엇에도 구애받지 않고 나른하게 자유를 누려 볼랍니다. 졸다가 지치면 ‘밀란쿤데라’와 함께 하겠습니다. 석양이 질 때쯤엔 카약을 타고 바다로 나가 보겠습니다. 아, 리조트엔 수영장도 꼭 있어야겠습니다. 우리 자매는 수영을 즐기니까요. 이제야 좀 행복해집니다^^* 방콕 4일, 남부해변 5일, 환상입니다. 물론, 요기에 치양마이 3일이 더해진다면 아주 기절이겠습니다만 아쉬운 것은 아쉬운 대로 남겨둘 줄 아는 우리는, 삼십대입니다.
출발일이 결정되고 대강의 여행일정이 잡혔으니 방콕에서 묵을 게스트하우스를 예약합니다. 태사랑 게스트 하우스 게시판과 여행후기를 꼼꼼히 정독한 결과 카오산 로드에서 약간 벗어난 쌈쎈 쏘이1 ‘바라부리B&B'로 결정합니다.(요술왕자님 감사~) 일단 깔끔해야겠고. 너무 시끄러워도 안 되겠고, 벌레도 안 됩니다. 여기에 웨스턴식 불랙퍼스트가 포함되야 그야말로 닥상입니다. 울언니는 아침에 일어나면 커피부터 한 잔 마셔야 깨성을 합니다. 우리 자매가 술 담배는 안합니다만 커피는 좀 하는 관계로다가 에어컨 더블룸 핫샤워 블랙퍼스트 포함 790baht을 3박 예약합니다.
남부 해변은 푸켓이 좋을까, 사무이가 좋을까, 맘에 드는 리조트를 찾아봅니다. 그런데 문득 해변의 나른함을 즐기며 책을 읽고, 수영을 하고, 스노클링을 하고, 카약을 타고... 요것만으로 과연, 5일이 다 채워질까? 혹시, 지루해지진 않을까? 하는 고민이 몰려옵니다. 그렇다면 수사는 다시 원점으로! 뭔가 더 다이나믹하고 익스트림한 놀 거리가 있어야겠습니다. 다시 태사랑에 접속하여 여행후기들을 뒤집니다. 그리고 찾아낸 것이 마구술님의 스쿠버다이빙.(마구술님 감사~)
계획을 급수정하여 남부해변은 ‘꼬 따오’로 결정합니다. 마구술님의 여행후기와 가이드북을 종합해 본 결과 따오가 스쿠버 다이빙의 최적지랍니다. 그리고 나흘이면 스쿠버 다이빙 오픈워터 과정의 라이센스도 취득할 수 있답니다. 그렇다면 고고~ 리조트 기숙사도 함께 예약하고 10%예약금 입금합니다. 갑자기 계획에 없던 거금(9000baht가량)이 들어간 관계로다가 숙소는 리조트에 허름한 기숙사 팬룸 트윈배드 300baht. 이제 모든 예약이 끝났습니다(뿌듯~)
우리는 백팩커를 지향하는 관계로 편한 신발을 준비해야합니다. 출국 임박해서 한동안 뜸했던 헬스클럽으로 뛰어갑니다. 운동화를 챙기기 위해섭니다. 근데 참~ 인간적으로 너무 꼬질꼬질합니다. 빨아 말릴 힘도 없고 해서 운동화 사러갑니다. 언니는 등산화 신고 가잡니다. 진짜 카오산이 산인 줄 아시는쥐^^; 언니 당부대로 헐한 운동화 하나 사고 돌아서려는데, 바로 옆 매장이 수영복 매장입니다. 비키니가 보입니다. 운동화 하나 사는데 백화점 괜히 갔습니다. ‘견물생심’이라 그냥 돌아 설 수가 없습니다. 언니한테 전화를 합니다. “언니, 언니 것도 하나 살까?” 언니왈 카오산에서 만오천원짜리 사 입으면 되는데, 왜 사냡니다. 그래도 삽니다. 제가 원래 수영복이 잘 어울리는 체형이라서 수영복은 좀 비싼 걸 입습니다. 물론 제가 올봄에 맞선 스트레스를 이기지 못하고 폭식으로 일관한 결과 한 4kg 불었습니다만 언젠가는 빠지지 않겠습니까^^; 미리 사두는 셈 칩니다. 대신 더 이상의 지출은 NO! 결국, 변변한 비치웨어 한 벌 엄씨 떠났단 말씀(민망~)
드뎌 07. 7. 15. p.m.11:45 에바항공 편으로 출국합니다. 일찌감치 인천공항에 도착해서 티켓팅하고, 배낭은 들고 타기로 합니다. 경유하는 대만에서 8시간을 버티려면 필요한 게 많습니다. 아직 시간이 많이 남은 관계로다가 인터넷 존을 찾습니다. 에바항공은 첨이라 마일리지를 적립 받으려고 에버그린 회원 가입도 합니다. 글구두 시간이 남아 햄버거 사먹고 슬슬 검색대에 섭니다. 요 때가 11시.
삑~ 제 배낭이 제지를 당합니다. 검색대에 잘생긴 공항 청년, 제 가방을 열어보랍니다. 액체가 반입용량을 초과했답니다. 그럴리가요. 제가 배낭여행에 1리터가 넘는 액체를 지고 갈 일이 뭐가 있겠습니까, 당치않습니다. 그러나 공항 청년왈 실제 액체양이 아니라 용기의 크기가 문제가 된답니다. 손바닥 길이만한 플라스틱 용기에 각각 샴푸, 린스, 렌즈 클리너, 심지어 가글까지 헬스에 들고 다니는 가방 그대로 들고 온 것이 그만 애물단지가 되었습니다. 공항청년 아직 시간 여유가 있으니, 나가서 배낭을 부치고 들어오랍니다. 그러지요 머^^;
근데, 나가보니 어랍쎠, 에바항공 직원들이 모두 퇴근을 했습니다그려. 이를 어째? 쫌 초조해집니다. 다시 들어와 사정 설명을 하니, 공항직원 어디다 전화를 합니다. 출국 심사대에 줄은 어느새 점점 길어지고, 그제서야 배낭을 돌려받습니다. 비행기 타기 전 마지막 검사대에서 부칠 수 있다는군요. 그럼 이제 줄을 섭니다. 그 때쯤 어디선가 RI손님 RI손님 하면서 애타게 제 이름을 부릅니다. ’알아이 뭔 뜻인지 아직도 모릅니다만 머 대충 ‘불량손님’^^; “전데요~” 제가 손을 흔들어 대답하자, 공항 여직원 한손에 무전기 들고 거의 초죽음이 됐습니다. 우리 때문에 비행기가 출발을 못한답니다.(허걱~) 뒤를 이어 또 한 명의 남자직원 달려옵니다. 역시 RI손님을 찾습니다. 대체 이시간이 되도록 출국심사도 안 끝내고 있으면 어쩌냐며 기막혀 합니다. 우리를 바라보는 두 사람의 표정은 대략 원망, 짜증, 비난, 한심함, 어의없음~
출국심사대를 지나 에바항공 탑승구역까지는 눈썹이 휘날리게 달려야 했습니다. 멀기는 씨~ 숨이 차고 다리가 후달립니다. 기내에 탑승하기 전 배낭을 부칩니다. 분실할 경우 아무런 책임도 지지 않는다는 조항에 서명 하랍니다. 참 수영복만 아니면 거침없이 서명하겠습니다만 새로 산 수영복이 눈에 밟힙니다. “언니, 샴푸 버리고 가자~” 단호하게 안된답니다. 어서 서명 하랍니다. 그래서 합니다^^;
겨우 좌석을 찾아 앉은 시각 p.m.11:20, 뭔가 좀 이상합니다. 그제서야 비행기 티켓에 출발시간을 재확인 합니다. 에구에구, 출발시간은 p.m.11:45이 아니라 p.m.11:25이었던 것입니다.^^; 저 졸지에 불량손님 되어 아주 ‘에어시티’를 찍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