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 후에 쓰는 여행기 - 쇼너와 레커의 태국 배낭여행(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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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 후에 쓰는 여행기 - 쇼너와 레커의 태국 배낭여행(22)

쇼너 11 937
1999년 3월 10일(수) 푸켓 1차, 2차대전

어젯밤에 꾸려놓은 배낭을 메고(에어 메트리스가 내 짐쪽에 늘어났다 T.T), 체크아웃을 하고, 아쉬운 마음에 바다 한번 쳐다보고, 선착장으로 나섰다.
선착장 가는길 양옆에 있는 기념품 가게에서 찡쪽이 그려진 티셔츠 2장을 기념으로 사고, 푸켓행 배표를 사고, 선착장에서 엄청나게 커서 놀라운 고기들이 선착장 밑을 왔다갔다 하는 것을 보면서 배를 기다렸다.

여기 사람들은 저런 고기들을 보면 잡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을까? 왜 안잡는 것일까?를 궁금해하다가 아직 세속(?)의 때를 벗지 못한 나 자신을 깨닫고 실소를 지었다.

끄라비에서 들어오는 배보다 좀 더 큰 배를 타고 푸켓으로 향했다. 뱃멀미를 약간 걱정했으나 기름냄새에 약간 머리가 아팠을 뿐 괜찮았다.
안다만의 햇볕은 여전히 따사로왔고(?) 갑판에서 웃통벗고 썬탠을 즐기는 서양인은 여전히 많았고, 우리는 역시 햇볕기피증을 보이며 선실에서 뒹굴거렸다. 심지어 레커는 그 짧은 시간에 잠까지 잤다.

푸켓까지는 끄라비에서 피피들어가는 시간보다 약 30분 정도 더 걸린 것 같았다. 약 2시간 정도 걸렸으려나? 푸켓항에 도착했다.
푸켓 선착장은 피피의 놀라운 선착장과는 전혀 딴판이었다. 푸켓항은 그냥 우리가 생각하는 전형적인 지저분한 부두의 모습이었다.
지금와 생각하면 이 선착장의 모습은 푸켓에서의 우리의 험난한 일정을 예언한 것이 아니었을까하는 생각이 든다. 우리는 미니버스를 타고 푸켓타운으로 향했다.

우리가 탄 미니버스는 시내를 꼬불꼬불 돌아 몇몇 호텔을 경유하여 여행객들을 내려놓고 푸켓타운에 우리를 내려주었다.
내리자마자 미리 숙소를 잡고 움직이려고 생각했는데, 갑자기 가슴 벌렁거리는 일이 생각났다. 13일날 귀국하는 항공권이기 때문에 리컨펌을 오늘쯤 해야한다는 사실이 생각난 것이다.

쇼너 : 으악!!! 큰일났다.
레커 : 왜?
쇼너 : 항공권 리컨펌 해야되는데…
레커 : 그거 뭔데?
쇼너 : 아~ 그건 내가 비행기는 사실 출발시간이 정해져 있기는 하지만 변경이 가능하거든, 그래서 내가 이 날짜 이 시간에 확실히 타겠다고 항공사에 연락해주는거야. 재수 없는 경우는 비행기를 못탈 수도 있대.
레커 : 우쒸~ 그렇게 중요한 거를 잊어 먹고 있었단 말이야?
쇼너 : 그거 전화 한통만 하면 되는거야. 걱정마.

그리하여 공중전화에 들어가서 항공권 리컨펌을 시도했다. 가이드 북에 나와있는 타이항공 전화번호로 전화를 걸었더니, 알아 들을 수 없는 태국말이 한참 나온후 번호가 바뀌었대나 어쨌대나 영어로 안내가 나왔다.
동전을 2~3개 허비한 후에 포기해버렸다. 더운 날씨에 덥고 시끄러운 공중전화박스에서 잘 알아 들을 수도 없는 소리에 짜증이 날대로 난 나는 상황을 자꾸자꾸 물어보면서 왜 이렇게 동전을 많이 소비하냐고 잔소리를 해대는 레커에게 그 짜증을 쏟아부어 버렸다.

그래서, 우리는 싸웠다. 이른바 푸켓 1차대전.

한참을 찌그덕거리며 싸운 후에, 우리는 다시 늘상 그렇듯이 다시 친하게 지내자는 말로 화해를 하고 버스 터미널까지 걸어가서 내일 저녁 방콕에 올라가는 VIP버스표를 끊었다. 푸켓 터미널은 방콕과는 달리 퍽이나 한산했다. 물론 영어도 꽤 잘하는 사람이 앉아있어서 표도 쉽게 끊을 수 있었다. 비싼 VIP 버스를 끊고 나니, 지갑이 얄팍해졌다. 예산에 신경을 써야 될 것 같았다.
버스터미널에서 천천히 걸어서 펄호텔 앞까지 와서 펄호텔에서 묵기로 했다. 가이드북에 나온 가격보다는 좀 비싸기는 했지만, 둘이 싸우느라 힘을 다 소비한 탓에 만사가 귀찮아져서 괜찮겠다 싶어서 그냥 들어갔다.
호텔은 보기보다 괜찮았다. 환영과일도 있고…
화해는 했다고 하나 아직 앙금이 남아있어서, 과일을 먹으면서 앙금을 씻어냈다.
역시 꼬인걸 풀거나 친해지려면 뭐든지 같이 먹어야 한다. 같이 음식을 먹는 것은 묘한 힘이 있어서 그런 문제를 해결해준다.

터미널까지 왔다갔다 하고 길거리에서 싸운 후라, 피곤하기도 하고 해서 에어컨 켜놓고 잠시 쉬면서 일정에 대해서 얘기를 했다. 푸켓에서는 해변을 나다니지 말고 그냥 푸켓의 볼거리를 보는 것을 중심으로 다니자는데에 합의했다. 사실 피피의 바다가 훨씬 보기 좋기때문이다. 그런 피피의 바다를 원없이 보다가 푸켓의 바다가 눈에 차겠는가?
이상한 것은 피피에서는 한번도 싸운 적이 없는데 푸켓에 나오자마자 싸우게 되었다. 천국탈출 후유증 같았다.

오늘의 일정은 푸켓타운 구경, 환락가로 유명하다는 빠똥 해변 구경, 저녁에 사이몬 쇼 관람이었다. 일정을 따르려고 호텔을 나서는 길에 호텔 로비 옆에 타이항공 마크가 붙어있는 여행사를 발견했다. 자존심 조금 상했지만 들어가서 리컨펌을 부탁했다. 앉아있는 친철한 아주머니가 웃으면서 해주었다. 물론 수수료를 몇푼 물기는 했지만 싸우지말고 진작 이렇게 할걸 하는 생각이 들었다.
스타일도 구기고, 돈은 돈대로 나가고, 싸움은 싸움대로하고 후회막급이다.

펄호텔에서 나와 빠똥해변가는 썽테우 타는 곳으로 걸어가면서 푸켓타운 구경을 하기로 했다. 푸켓타운은 분위기가 좀 묘한 곳이었다. 묘한 곳이라는 것이 이상하다는 뜻이 아니라 어떻게보면 참 촌동네라는 생각이 들다가도, 좀있다보면 촌스럽지만은 않고 한적하고 세련된 그런 느낌이 있는 것도 같았다.
아시아의 도시라기보다는 스페인이나 서부유럽의 어떤 도시(한 번도 가본적은 없지만 느낌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천천히 걸어가면서 옛날 시골 극장같이 간판이 무지하게 큰 극장(아마도 펄극장일 듯 싶다)도 보고, 시계탑과 분수도 구경하고, 과일가게에 형형색색으로 늘어선 과일도 구경하며 슬슬 돌아다녔다.

가이드북을 들고 얼마나 돌아다녔을까… 로빈슨 백화점 앞이었을 거다. 레커가 배가 고프다고 밥을 먹자고 그랬다.

레커 : 나 배고프다. 밥먹자.(문제제기)
쇼너 : 그래 여기 아무데나 들어가서 밥먹자. 수끼는 어때?(대안제시)
레커 : 아니야… 난 피피에서 너무나 굶주렸어. 오늘은 꼭 한식을 먹어야해(반론시작)
쇼너 : 근데 여기 한식당이 어디있는지도 모르고 그러니까 방콕가서 먹고 여기서는 그냥 먹자(자신의 의견에 합리성을 부여)
레커 : 안돼.(강경한 어조로 거부)
쇼너 : 여기서 언제 한식당을 찾아서 먹냐? 시간도 없는데…(설득을 시작)
레커 : 너는 밥을 잘 먹었으니까 그렇잖아. 나는 지금 꼭 한식을 먹어야 겠다니까. 그리고 가이드북에 전화번호도 나오잖아. 전화걸어서 물어봐.(자신 의견을 관철하기 위한 방법제시)
쇼너 : (설득이 안되고 더 강경하게 나오자 당황해서) 그럴거면 니가 전화 걸어서 물어봐.(책임회피)
레커 : 난 몰라. 아무튼 난 꼭 오늘 한식을 먹어야해(배째라 전법)
쇼너 : 거봐 넌 니 생각만하잖아. 그럴거면 내가 하자는대로 해(책임전가 및 고집피우기)
쇼너&레커 : 왁자지껄~ 으르릉~ 씩씩~ 우쒸~(계속 싸우기)

또 싸웠다. 푸켓 2차대전
결국 내가 동맹군이었다. 내가 졌다는 얘기다.
그래서, 전화를 걸어서 위치를 확인하고(위치 확인이라기 보다는 택시기사에게 뭐라고 얘기를 해야하는지 물어보고), 택시를 탔다. 20분쯤 가서 도착했는데 별로 크지 않은 식당이었다. 그토록 승주가 원하는 한식을 기어이 먹어주었다.

쇼너 : 맛있냐?
레커 : 우걱우걱~쩝쩝~ 응.

뭐 입맛은 사람 마음대로 되는 것이 아니니 마음 넓은 내가 이해하는 수 밖에.
밥을 2공기나 먹어치운 후 식당 사장님과 잠시 얘기를 나누었다.
사장님이 푸켓에서 권하는 것은 ‘판타지’라는 쇼였는데 가격도 좀 비싸고(식사포함 1인당 1500B) 시간도 어중간하고 그래서 다음에 하기로 했고, ‘뿌덩’이라는 게장(?)이 상당히 맛있다는 얘기를 들었다. 사장님은 꼭 먹어보라고 당부를 했지만 결국 먹어보지 못했다.

글로는 그냥 대충 토닥거리다가 밥먹고 화해한 것 같지만, 실제로는 엄청 싸웠다. 하지만 시련은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이어지는 푸켓 3차대전이 있을 줄 누가 알았으랴? 반전반핵 양키고홈~

다시 택시를 타고 푸켓타운으로 진입했다. 푸켓타운 구경하다가 싸우고 밥먹고 하느라고 시간을 소비한터라 해변 구경도 하고 사이몬 쇼를 보려면 슬슬 비치쪽으로 나가야 할 시간이었다. 푸켓타운에서 시장한복판에 있는 썽테우 터미널(?)에는 각각의 해변으로 가는 썽태우들이 있었다. 그중 빠통으로 가는 썽테우를 타고 빠통비치로 나갔다. 말로 듣던대로 심한 오르막과 구불거리는 길을 따라 썽태우가 산속으로 들어간다. 커다란 고갯마루를 넘어가니 드디어 바다가 보였다.
11 Comments
이연주 1970.01.01 09:00  
레커님 말솜씨도 참 조으셔. 유쾌상쾌통쾌... 결혼하셔서 이쁘고 행복하게 사세요.
서니 1970.01.01 09:00  
맞다! 레커도 쇼너에게 무지 잘한다...!귀여운 레커만세!
자꾸 레커 1970.01.01 09:00  
쇼너는 유쾌상쾌통쾌 메가패스가 아닙니다 :-)<br>다 받아주긴요~ 다 제가 잘하니까 잘해주는 거랍니다 <br>정말이라니깐요~ 치~
또 레커 1970.01.01 09:00  
쇼너가 요새는 또 제 속눈썹이 짧다고 타박하면서 <br>"닳아빠진 몽당비" 같다고 마구마구 놀려댔답니다 -_-
레커 1970.01.01 09:00  
아무 식당에나 갈려고 하는거예요~ 제가 화가 납니까? 안납니까? 그래서 그런것이었는데...쩝<br>중요한 사실은 모두 빼먹었네요<br>주최측의 농간이라고 봅니다 -_-
레커 1970.01.01 09:00  
"좀만 기다려!! 푸켓가면 한식당이 있다니까 거기가서 밥먹자" 그랬던 거였어요 잔뜩 기대하게 해놓고 막상 푸켓에 도착하고, 길을 잘 모르겠으니까 아무거나 먹자며
레커 1970.01.01 09:00  
헉~ 쇼너는 항상 중요한 사실을 빼먹고 저를 무대뽀의 악한으로 그려놓는다니까요 -_- 그때도 제가 피피에서 나갈때 너무 배가 고파서 우울해 하고 있으니까 (쇼너가저를 달래느라고 한소리겠지만)
이연주 1970.01.01 09:00  
레커님, 그 성격 다 받아 주는 쇼너님 같은 남자친구가 있어서 참 부럽네요. 쇼너님, 레커님의 매력은 무엇인가요? 저도 한수 배우고 싶네요. 알려 주세요 시집좀 가게. 히히
이연주 1970.01.01 09:00  
푸켓이 포르투갈인가 스페인의 점령지 였던 적이 있어서 그런 묘한 분위기가 나나 봅니다. 화려하고 번잡한 빠똥비치 보다는 그 묘하고 조용한 푸켓타운의 분위기가 더 아련하고 그립네요.
백도사 1970.01.01 09:00  
푸켓하니 썬라이즈가 생각나는군요<br>그곳에서의 연변의 주방장 아주머니가 해주신 김치찌개...
흐....... 1970.01.01 09:00  
재밌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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