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시간이 찾아와서
또 공간을 연다.
그래서
수천 년 동안 빠짐없이 피었던
그 꽃이 어김없이 올해에도 핀다.
세상이 잊은 이름으로,
세상으로부터 내몰린 자리에서,
세상으로 향하는 당당함으로,
세상의 모든 색을 머금고,
세상의 모든 향을 담은,
동짓달 그믐날의 꽃이 핀다.
이 시간동안의 이 공간에서 만큼은
세상의 중심이고
무대의 주인공이고
역사의 서술자인
치우천황이 뿌린 씨앗의 꽃이 핀다.
수천 년의 시간 동안 흩어지지 않았고
수천리의 길위에서 쓰러지지 않았고
수천번의 총칼에도 꺾이지 않았고
수천번의 조롱에도 떨리지 않았고
수천번의 멸시에도 기죽지 않았고
수천번의 위협에도 무릎 꿇지 않았다.
앞으로의 시간이 사라지지 않고
앞으로의 공간이 무너지지 않는다면
이 때의 이 자리에서 끝까지 꽃을 피울 것이다.
함부로 짓밟지도
가볍게 다루지도
우습게 여기지도
못 할 꽃을 피울 것이다.
세상에서 가장 강한 꽃을 피울 것이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꽃을 피울 것이다.
세상에서 가장 향기나는 꽃을 피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