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국 소회
8년 만에 태국에 다녀왔다. 22년 전 신혼여행으로 처음 갔었고, 2011년, 15년, 23년까지 모두 네 차례 방문했다.
외국인들에게 태국은 매력이 넘치는 곳이라고 생각한다.
가만히 그 이유가 뭘까 따져보았다.
삶에 지칠 때 마다, 어딘가로 떠나고 싶을 때는 항상 먼저 태국이 떠오르는 걸 보니 아마 이 나라를 좋아하나보다.
정체성
'Identity'를 말하려는 것이 아니고, 정체성(停滯性)을 얘기하고 싶다.
태국에 대한 나의 첫 기억은 실비아 크리스텔 주연의 1974년작 영화 [엠마뉴엘]이다.
영화에 나오는 50년 전의 태국의 모습과 비교해보면, 22년 전 내가 신혼여행을 갔을 때의 태국이나, 현재의 태국의 모습에서 별 차이를 느낄 수 없다.
교통수단이 조금 발달한 것과 도로가 약간 포장된 정도를 제외하면 바뀐 것이 없다.
태국인들 스스로는 자신의 나라에 대해서 대단한 자부심을 갖고있다고 하는데, 제삼자의 눈으로 보았을 때는 안타깝기 그지없다.
나는 그들이 정체된 원인을 군부독재와 시대에 뒤떨어진 왕정에서 찾고싶다.
혹자는 개발독재에 대한 향수가 있어서 군부독재자가 경제는 잘한다고 착각에 빠져있다.
그러나 어떤 군부독재도 지속적인 경제발전을 담보하지 못한다. 지상의 어떤 나라가 군부독재로 선진국이 된 적이 있는가?
독재는 필연적으로 부패를 낳고, 빈부격차를 만들어낸다.
왕정과 군부는 서로 기생하는 공생관계일 뿐이다.
따라서 국가발전의 전제조건은 더디더라도 정치의 민주화를 이루는 것이라고 믿는다.
포용성
태국에서 '레이디보이'는 차별받지 않는다고 한다. 태국의 거리, 식당, 마사지업소, 시장 어디에서나 이들이 보인다. 사람들이 이들에 대해서 특별한 관심을 가지지 않고 있고, 차별하지 않는다고 한다.
어떤 이들은 태국인들이 불교를 믿기 때문에 이들을 포용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태국의 이슬람교도나 미얀마, 라오스, 캄보디아 출신의 노동자들은 차별을 받는다.
건설현장의 5,6층 되는 비계 위에서 아무런 안전장치도 없이 일을 하고있는 노동자를 보았다. 그들은 아마 십중팔구 외국인 노동자일 것이다.
편협한 포용성이 아닌 보편적 포용성을 갖출 때 비로서 존중받는 국가가 될 것이다.
환경
태국의 거리 어디에서나 하수구 냄새를 맡을 수 있다.
푸켓이 세계적인 관광지가 된지 오래되었지만, 여전히 길가에 더러운 하수가 흐르고 있다.
하수도를 덮고있는 덮개는 깨져있기 일쑤고, 바닷가 모래밭에 쓰레기가 널려있다.
관광객들이 쓰레기를 버리지 못하도록 계도하고 벌금을 물리는 등 강력한 조치가 필요하다고 본다. 또한 오폐수 정화시설을 정비하고 개선해야만 지속적인 관광객 유치도 가능할 것이라고 본다.
중국과 러시아
푸켓 공항에서 중국어만 할 수 있으면 수속을 하는데 아무 불편이 없다. 방송도 중국어, 러시아어 순으로 계속 나오고 직원들도 대다수가 중국어를 구사한다.
거리에서 식당에서 동아시아인을 보면 무조건 '니 하오'라고 말을 건다. 상인들이 대부분 간단한 중국어를 구사한다.
또한 국제유치원에서 '태국어, 중국어, 영어'를 교육한다고 광고를 한다.
내가 묵었던 호텔에서 서양인의 모습을 한 사람은 러시아인이 다수였다. 호텔의 위치가 까론해변 지역이라서 그런지 아이를 동반한 가족여행객이 대다수였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때문에 러시아가 망해가고 있다고 착각하고 있는 사람도 있겠지만, 그러기엔 너무도 많은 러시아인이 느긋하게 가족동반으로 휴양을 즐기고 있다.
중국이라는 거대한 힘과 만만치 않은 러시아라는 거인을 제쳐두고 과연 국가의 발전과 안위를 생각할 수 있을까?
푸켓 공항에서 수시로 출발하는 북경과 상해행 여객기, 모스크바행 여객기를 보면서 씁쓸한 감정을 숨길 수 없었다.
이 정도가 이번 태국여행의 감회가 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