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 인도네팔여행 (6) 네팔 포카라.
바라나시에서 네팔 국경인 룸비니에 도착했다.
룸비니, 부처가 태어난 고향.
여기도 한국절이 있다.
갔으나 사진은 없다.
무장 빨짓산과 정부군과의 대립이 심했고
사회주의 무장 투쟁의 여파로 파업이 잦았다.
이른 아침 국경을 넘어 포카라로 가는 버스는
곳곳의 파업으로 인해 좀처럼 나아가질 못했다.
오후 늦게 도착한 포카라
터미널 주변의 시내는 활기가 넘쳤다.
페와 호수 주변의 숙소 지역은
호반의 아늑함 그 자체였다.
ex여친과 다른 한국분들과 함께 포카라에 왔고,
그들과 함께 트래킹까지 했으나,
글과 사진에선 생략을 합니다.)
한식당도 여러곳 있어서 충분히 체력 보충을 하고
안나푸르나 베이스 캠프 등반을 준비했다.
등반 전,
동네 앞산인 사랑곶에 올라서 연습도 하고,
본격적으로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로 등반을 떠났다.
나를 포함 네 명이 함께 였고,
포터겸 가이드로 이 분을 고용했다.
세르파족인데 등반 내내 쪼리로 다녔다.
역시 현지인에겐 히말라야도 동네 뒷산이더라.
나는 평소에도
동네 뒷산을 자주 다녔기 때문에
등산 자체가 가뿐했다.
포터는 나에게 스트롱맨이라고 하면서도
계속 천천히 하라고 했다.
고산증세가 나타나니 레몬티를 많이 마시면서 천천히 올라가야 한다고 했다.
첫 날 머물렀던 숙소의 주인과 아들,
사진을 찍어 준다고 하니,
장농속의 새옷을 꺼내 입고 나왔다.
이 사진을 꼭 보내달라고 했는데,
내가 약속을 못 지켰다.
이메일 주소가 없어져 버려서.
지금도 두고두고 미안한 마음이다.
어제의 당나귀들을 다시 만났다.
이 산속의 짐들은 모두 이 당나귀들이 운반한다.
녀석들의 노력 덕분에,
산이 높아질수록 음식값이 비싸진다.
물값도 비싸진다.
경치는 좋았다.
그리고 3일 째 부터,
고산 증상이 나타났다.
와, 머리가 깨질 듯 아팠다.
평소에 안좋은 위염증상도 나타났다.
만년설이 있는 구간부터는
머리가 깨질 듯한 고통으로
밤이고 낮이고 마구 아팠다.
숙소에 그냥 있고 싶었으나,
올라와서 안가보면 우짜냬서
억지로 올랐다.
누울 수 있는 곳만 보이면 누웠다.
하산을 할 수록
고산 증세는 나아졌다.
초입의 마을에선
행사를 하고 있었는데,
뭐지 물어보진 않았다.
7일간 9kg나 빠진 몸무게를 빨리 회복하는게 우선이라.
내려가자 마자 기쁜 마음에
맥주 3병을 마셨고,
약해진 위장은 받쳐주질 못하고
밤새 다 게워냈다.
결론,
고산병을
우습게 보면 안된다.
그리고, 안타깝게도
내려오면서 맞은 비로 인해,
나의 카메라가 사망해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