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 인도네팔여행 (3) 콜카타, City of Joy
함피 시골을 떠나
콜카타로 향하기 위해
기차를 탈 수 있는
하이데라바드 시로 나왔다.
역시 큰 도시는 복잡했다.
기차는,
땅을 딛고
바다를 지나고
메마른 강을 건너
저녁 어스름에 콜카타에 도착했다.
기차에서 만난 현지인의 소개로
당일 숙소로 우리 일행들은 어느 기숙학교의 기숙사 룸을 소개받았다.
영화에서 보던 영국 식민지 시대의 전형적인 영국인의 기숙학교였다.
소공녀 세라가 아마도 이런 곳에 머물지 않았을까 싶은 생각도 들었으나,
으스스하고 기분이 좋진 않았다.
일행들 중에 가위에 눌리고 누군가 자기를 빤히 쳐다보는 꿈을 꾼 이도 있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첫 여행지에서 나의 일상은
동행들보다 먼저 일어나서 그 곳을 홀로 돌아보는 것으로 시작한다.
기숙사 앞엔 이런 급수시설이 설치되어 있었다.
또한 펌프가 있는 다른 곳에선 남자들이 샤워를 하고 있었고,
그 옆에선, 또 세차를 하고 있었다.
나무를 잘근잘근 씹으면 양치가 된다.
좀 더 큰 길로 나갔다.
패트릭 스웨이지가 주연했던
인도에서 아이들을 착취하는 빈민가의 마피아로부터 아이를 구해낸 영화의 배경이
여기 콜카타다.
그 영화로 인해 이런 간판이 여기저기 서 있었다.
영화의 내용으로는 콜카타시가 나서서 자랑할 만한 내용이 아닌데,
그냥 유명하면 일단 쓰고 보는 게 아닐까...
도시엔 택시와 트램이 다니고,
인력거도 차로를 이용하고,
교통 경찰은 이들 교통수단들의 질서를 지킨다.
100년 세월의 교통수단을 한 장소에서 함께 볼 수 있는 곳.
골목 한 쪽 국수가게에선 면을 만들고 삶고 있었고,
길거리 이발소는
손님의 수염을 정리해 준다.
에이, 수염이 지저분해 보이는데
그냥 깎고 말지.
짜이티를 파는 노점상엔,
남자들이 자기 차례를 기다린다.
짜이티는 질낮은 녹차잎을 말려서 끓여 우유와 섞어서 설탕을 왕창 넣고 마시는 밀크티다.
대략 한 잔에 100원이 안되는데,
찻잔으로 일회용 토기잔을 쓴다.
나는 저 잔 만드는 도공의 인건비가 100원을 더 넘지 않을까 싶은데,
인도인들은 차를 마시고 나면
저 잔을 쓰레기통에 버려 버린다.
사람이 넘쳐나는 나라에선 계산 방식이 다르다는 걸,
길거리 차 한 잔으로 배운다.
숙소로 돌아오는 길엔,
역시나 인도에선 빠지지 않는
가난한 이들의 살아가는 충격적인 모습을 볼 수 있었다.
필요한 물건을 찾는다.
맨손과 맨발로.
정말로 City of Joy, 즐거움의 도시가 맞는 건가?
길거리 담벼락 한 켠에
천막도 없고 테이블도 없이 의자 몇 개만 가져다 놓고
한국인을 상대로 가지덮밥을 파는 식당에서 밥을 먹었다.
세상에 가지 볶음이 이렇게 맛있었는 줄 몰랐다.
그리고 너무나 싼 가격까지.
후에, 인도에 갔던 이에게
이 아저씨 가게가 한국인들에게 엄청 유명해졌으나
경찰들이 너무나도 삥을 많이 뜯어서
자기는 그냥 죽기를 기다린다고 하는 얘길 들었다.
어딜 가나...
식사를 하고 본격적으로 도시를 돌아본다.
미안한 마음을 안고
늙은 인력거꾼의 노동을 사서,
택시 옆을 지나간다.
바가지 가격을 달라는 인력거꾼의 욕심과 적당히 타협을 하고,
콜카타는
신성한 갠지스강이 바다로 빠져나가는 마지막 관문이고
강을 다니는 셔틀 보트를 아무 이유없이 타보기도 하고,
기찻길옆 시장엔
들어설 엄두가 나질 않아
먼발치에서 보고 지나쳤다.
쓰레기 가득 찬 공원 호수에서
아기를 안고 낚시를 하는 여인을 지나치고,
염소다 다니며,
택시와 인력거도 함께 다니는
번잡한 골목에서
장사꾼의 알록달록한 인형을 지나서
골목에서 노는 아이들의 미소도 지나서
쉬고 있는 인력거꾼의 미소도 지나쳐서
길거리 초우면(볶음면)으로 저녁 식사를 하고
숙소로 돌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