껀터 - 달랏 - 나짱 - 호이안 - 다낭 - 훼
(2007년 5월의 기록입니다.)
베트남은 15일 무비자 체류여서
15일 안에 북부까지 둘러보기가 힘들다.
선택을 해야 했다.
시간상 훼에서 라오스로 빠져야 했다.
쩌우독에서 껀터로 넘어가기로 했다.
동네 여행사에 들러서 보니,
껀터 홈스테이 여행상품이 있네.
집밥도 주고 껀터 여행도 시켜준단다.
잘됐다.
아침 7시 쩌우독을 떠난다.
배를 갈아타는 중간 기착지엔
공산주의 국가인데도
이슬람 모스크가 있도
티없는 동네 꼬마들도 있었다.
세상 해맑은 미소에
절로 셔터를 누르긴 했으나
갈아탄 배를 모는 선장도
무척 어렸다.
홈스테이 하우스는
제법 괜찮았다.
젊고 후덕한 주인이 환영해 준다.
도착하자마자
진짜 월남쌈 정식으로
한상 제대로 차려줬다.
정말 맛있게 먹었다.
근데, 홈스테이 하우스에 도착한 이는
나 하나였다.
장사 안되는 여행상품을 선택한게 아닌가
슬쩍 걱정이 되었는데,
저녁에
호치민에서 넘어오는 관광객들이 들어올 거란다.
아,
쩌우독에서 껀터로 넘어오는 이들이
거의 없긴 하구나.
내가 희귀한 길로 다니는 건
맞는 것 같다.
숙소 주변도 구경하고
호스트와 주위 전경도 둘러본다.
해가 넘어가는 시간이 되니
십여명의 서양인 관광객들이 들어왔다.
근데, 나는 집에서 호스트 가족과 함께 잔다고 들었는데
호치민에서 온 이들은 방갈로를 배정받는게 아닌가.
어, 뭐지?
물어보니
홈스테이는 집에서 함께 머무는 거고,
호치민에서 온 이들은 개별 여행상품으로 온 이들이라서
방갈로에 머문단다.
뜨악!
나도 방갈로에 자고 싶다고 하니,
2달러 더 내면 된단다.
제법 아늑했고 깔끔했다.
저녁에 함께 식사를 하고,
배를 타고 수로를 다니며 반딧불 투어를 했다.
호스트 주도로 베트남 문화 언어 등에 대해 설명을 들었다.
이래저래 얘길하다 호스트가 사라지니,
나에게 베트남에 대해 묻는다.
낸들 아냐.
아시안이라고 다 아는 건 아니지.
나도 관광객일 뿐인데.
내 눈으론
너희들 국적을 구분할 수 없고,
너희들도 마찬가지겠지.
아침 일찍
껀터 수상시장으로 갔다.
두 척의 보트에 나눠타고
굽이굽이
수로를 헤쳐서
메콩강 큰 줄기로 나아갔다.
상당한 규모의 수상시장이었다.
손바닥만한 보트타고
월세 비싼 상점들 돌아다니는
태국식과는 달랐다.
대단한 물동량을 옮기는 큰 배들이 즐비했다.
관광객을 상대로 장사하는
어린 아이도 있다.
서글픔과 안쓰러움.
베트남 여행의 기억으로 남을 듯 했다.
월남쌈은 이렇게 만들어서,
말린다.
베틀로 직물을 짜는 마을 투어를 끝으로
껀터를 떠났다.
호치민을 거쳐서
물과
폭포와
밥벌이 하는 동물과
공짜밥 먹는 동물도 있는
달랏으로 갔다.
숙소 주인아저씨가
내 여권을 보고
자기 조카와 결혼해서
함께 한국가면 어떻냐고 물어본다.
귀염귀염 하긴 했는데,
나는 이 친구가,
'미스달랏'이 되길 염원했다.
호이안에서
바닷가 보트 투어를 했는데,
예상보다 재밌어서 놀랬다.
다낭에선 오토바이를 빌렸다.
해안가 도로를 따라 길을 다가
아이 셋이 길을 따라 걸어가길래,
"야, 타!" 했다.
노랑머리 아이는 돌무더기 사이를 뒤지더니
담배를 꺼내 피더라.
하~ 녀석
그리고 모자쓴 아이는
바위에 붙어있는 조그만 전복을 한참을 모아서 까더니
나 먹으라고 준다.
제법 큰 놈 하나를 잡았는데,
근처의 고급 식당에 판단다.
추억 한컷 남기고 아이들과 헤어졌다.
다음날엔 바닷가를 벗어나
어린 목동인가?
밭일하는 엄마 옆에서
염소 지키며 놀고 있는 아이를 지나 내륙 더 깊이 들어갔다.
다낭도 물이 많았다.
어설픈 낚시꾼을 지나쳐 더 들어가니,
동네 구멍가게에 앉아
낮술로 거나하게 취한 아저씨들을 만났다.
'당신들이닷!'
국경에서 산 코브라 담금주를
위궤양이 심해져서 도저히 먹을 엄두가 나질 않아 그대들에게 기부한다.
"오오오"
더 깊숙히 들어갔다가
거기서도 자기 딸이랑 결혼해서
한국에 같이 가는게 어떻냐는 제안을 받았으나,
해가 지기전에
다낭으로 돌아갔다.
베트남 마지막 목적지 훼는
음식도 유명하고 유적도 유명하단다.
쇠고기도 먹지 않고
생선도 거의 먹지 않는 나에겐
샌드위치에도 고수 가득 들어가는
베트남 음식이 입에 맞지 않아서,
이미 다낭에서 부턴 한식당을 찾아다니고 있던 차라
별 관심이 없었고
뭔가 줄여놓은 듯한 크기의 유적지도 흥미가 없었으나,
숙소에만 있을 순 없지 않나.
캐나다인, 한국인, (라오스계)프랑스인 그리고 영국인.
다국적 자유 여행단을 꾸렸다.
근데, 자전거는 힘들더라.
10여일이 넘어가자
베트남에 대한 인상이 생겼다.
여행자를 위한 나라는 아니었고,
여행의 재미도 크지 않았다.
힘들고 고단해 보였고
일하는 아이들이 안타까웠다.
깔끔하지도 않았으며,
여행객을 상대하는 베트남인들의,
백인들에겐 나긋하고
아시아인에겐 각박하고 무례한 행동이 불쾌했다.
지금은 어떻게 변했을지는 모르겠으나,
15일간의 여행 이후로
다시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진 않았다.
베트남도 공자를 모시던
유교국가라고 하던데,
친숙함을
찾긴 힘들었다.
계속 되길 바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