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유랑기 - 7. 빡세-플레이껀-콘툼-플레이쿠-부온마투옷-달랏 2023.2.23~3.12
거의 한 달을 빡세와 그 주변을 맴돈다. 강제된 시간이 다가왔으니 볼라벤 고원을 넘고 안남산맥을 건너 베트남 방향으로 움직여야겠다.
북쪽만큼은 아니지만 라오스 남쪽에도 산과 들을 태우는 불 때문에 연무가 세상을 가리고 탄내가 모든 공간에 스며든다. 우기의 비구름이 몰려오기 전 까지는 견뎌야 할 고난 같지 않은 고난이다.
빡세에서 300여 km를 달려서 해 질 무렵에 베트남의 국경 도시 플레이껀에 도착한다.
익숙한 식당에 들러 저녁을 먹고 익숙한 숙소에서 잠을 자고 익숙한 시간에 일어나 시동을 걸고 남쪽 방향으로 떠난다.
플레이껀에서 시작한 베트남 중부 고원은 베트남 중서부의 다섯 개 성에 걸쳐있는 높고 평평한 땅이다.
고원은 지역별, 지방별의 명칭으로 분리되고 고도의 차이도 확연하다. 가령 콘툼 고원의 평균 고도는 500m인데 반해 람비엔 고원의 고도는 1500m이다.
그 첫 고원도시인 콘툼성의 성도인 콘툼에 들러 늦은 점심을 먹고 1850년대에 나무로 만든 성당에서 놀러 온 베트남 여성들과 '국제 여성의 날'을 함께 축하한다.
지아라이성의 성도인 플레이쿠에서 하룻밤을 보내고
유쾌한 이들과 함께 아침을 먹은 후 180km 떨어진 닥락성의 성도인 부온마투옷으로 향한다.
고원의 남쪽으로 내려갈수록 고도는 높아지고 바람은 강해진다.
아무래도 높은 구릉지이다 보니 플레이껀에서 부온마투옷에 이르는 300여 km의 호찌민 도로는 상하의 경사나 좌우의 굴곡이 완만하고 바람마저 선선해서 라이딩하기에 적격인 구간이다. 게다가 노면마저 깨끗하다.
부온마투옷은 닥락성의 성도이다. 중부 고원에서 가장 큰 도시이기도 하다.
내일부터 이곳에서 국제 커피 엑스포가 열린다.
며칠을 머물까 싶었지만 숙소 구하는 것이 힘들어서 하룻밤만 보낸다.
고원길은 달랏에 가까워질수록 노면이 거칠고 경사가 심해지며 굴곡이 더해진다.
울퉁불퉁한 노면의 진동 때문에 달리는 시간보다 쉬는 시간이 많다.
그 탓에 고원의 남쪽 끝인 람동성의 성도인 달랏에 저녁 가까이 도착한다.
수년 전의 달랏을 기억했다가 길을 잃기도 한다. 그때의 달랏은 '감기에 걸린 달랏'이었고 그래서 '춥고 외로운 달랏'이었다.
그래도 달랏의 야시장 광장만큼은 또렷하게 찾을 수 있고 기억할 수 있다.
그때에 하지 못한 '비닐하우스의 바다'를 항행하며 꽃농장의 섬들을 찾아본다.
그때에 하지 못한 계곡을 찾아가고
그때에 하지 못한 도시 산책을 하며
그때에 가지 못한 바오다이 황제의 별장을 찾고
그때에 만나지 못한 사람들을 만나고
그때에 맡지 못한 꽃향기를 맡고
그때에 듣지 못한 소수민족의 말을 듣는다.
달랏은 고원의 다른 도시와는 다르게 촘촘하다. 다른 도시들은 대게 넓은 구릉지위에서 태어난 반면 달랏은 능선과 능선사이, 계곡과 계곡사이에서 태어났기 때문 일 것이다.
그 촘촘함이 객을 부르고 다시 객이 촘촘함을 더욱 밀도 있게 확장시켜 간다.
내일은 고원의 서늘한 기운을 벗어나 해안의 끈적한 기운을 맞아볼 작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