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콕 3박 5일] 배낭여행의 고생은 사서도 한다! - 070227 3일차
방콕에서의 세번째 아침이 밝았다.
어제는 아무것도 없었던 끄라이씨 거리의 아침시장이 사람과 노점상인들로 가득했다. 아마도 월요일은 휴무였나보다^^
노점에서 아침을 해결할까 하다가 10밧 라면집을 찾아가보기로 했다.
나의 여행내내 동반자였던 'Hi~ 방콕'에는 나같은 길치도 쉽게 길을 찾을 수 있도록 위치 안내가 자세히 나와있었기 때문에 금새 10밧 라면집을 발견할 수 있었다.
10밧라면집에서는 일본인 아주머니 한분이 라면을 먹고 계셨다.
나는 책에서 본 대로 '바미 끼여우 남' 이라고 말했더니 주인 아저씨가 바로 알아들으신다. '어디서 굶어죽진 않겠군' 나름 뿌듯하다^^
라면은 금새 나온다. 10밧이면 음료수 하나 값이라서 큰 기대하지 않고 아침이나 간단히 때우자 하는 생각으로 먹기 시작했는데 시원한 국물, 완탕의 쫄깃쫄깃함, 그리고 노란 면발의 환상적인 조화로 10밧은 100밧짜리 음식보다 맛있었다. 그리고 또 다시 어제 저녁에 쏨분시푸드에서 먹었던 푸팟퐁가리가 생각나서 속으로 피눈물을 흘렸다T.T (10밧 * 24그릇 = 푸팟퐁가리 1끼)
국물 한 방울 남기지 않고 다 마신 후 계산을 하는데 15밧이란다.
?? 책에는 분명 10밧이라고 나와있는데...
'씹밧'
이라고 했더니 아니란다.
에이 모르겠다. 그냥 15밧 내고 나왔다. 하긴... 바미와 끼여우가 다 들어있으니 10밧보다는 좀 비쌀지 모르겠지... 책에 잘못나온걸꺼야... 라고 위로했다.
나오는 길에 아침시장에 들러서 1kg에 35밧하는 망고를 30밧에 샀다.
내가 방콕에서 꼭 하고 싶었던 일 중에 하나가 과일 실컷먹기였다. 과일에는 나름대로 가슴아픈 사연이 있다.
몇 달전 홍콩 여행을 갔을때 칼이 없어서 과일을 많이 못먹고 오렌지만 사 먹다가 귀국하는날 과일시장 들러서 망고랑 용과, 이름모를 과일등을 잔뜩사서 들고오다가 인천에서 모조리 압수당했었다.
그래서 이번에는 방콕에 있을때 칼을 하나 사서 한국에서 많이 못먹는 과일들 실컷 먹어보자 생각했던거다.
그런데 어찌어찌 하다보니 생각보다 과일을 많이 못먹었다. 물론 길거리에서 파는 10밧짜리 과일은 자주 먹었지만 평소에도 밥보다 과일을 더 많이 먹는 나로서는 그건 간에 기별도 가지 않는 양이었다.
시장에서 망고를 보고 덮석 사긴했는데 도대체 바나나처럼 까먹을수도 없는 망고를 1kg 이나 사서 어떻게 들고 나닐지 사고나니 막막했다.
그래도 일단 들고다니다가 칼을 사서 공원에서 까먹자 하는 생각으로 다녔다.
오늘은 민주기념탑으로 시작하는 도보코스 루트 2를 다니기로 했다.
민주기념탑은 어제 cafe democ을 찾다가 발견했는데 야경도 예뻤지만 맑은 아침햇살 아래 서있는 민주기념탑도 위용있고 멋있었다. 또한 민주기념탑과 10월 14일 기념관을 보면서 우리의 5 18 민주화 항쟁을 떠올리게 되어 태국이라는 나라도 우리와 같은 아픔을 겪었구나 하는 동지애가 느껴졌다.
민주기념탑을 지나 로하쁘라삿으로 가는데 랏차낫다 사원에서 한 여자가 인사를 하며 다가왔다. 사실은 내가 책에 있는 지도를 보며 두리번거리고 있을때 도중에 멀리서 몇 명의 사람들과 무리를 지어 있다가 나를 보고 부리나케 달려오던 그 여자를 의식하고 있던 참이었다.
그 여자는 친절하게 어디서왔냐, 어딜가냐 등의 질문을 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나는 이미 알고있었다. 단순한 호의가 아닌것을.
그래서 그런건 왜 물어보냐고 했다. 난 별로 대답하고 싶지 않다고.
그랬더니 이 여자, 태도가 돌변하는거다.
'나는 태국사람이고 너는 현지인이 아니다. 나는 태국사람이기 때문에 너에게 이런걸 물어볼 수 있다. 넌 아웃사이더다. 넌 너네 나라로 가라'
막 이러는데 그냥 쌩깠다.
그 여자를 무시하고 지나가는데 사기에 설려들지 않은게 다행이긴 하지만 기분이 매우 좋지 않았다.
아무것도 모르고 당했다면 더 기분이 나빴겠지만 다 알고 피했어도 그런 얘기를 들은건 너무 서러웠다. 넌 너네 나라로 가라니...
로하쁘라삿에 갔다가 푸카오텅에 갈때까지도 내내 기분이 풀리지 않았다. 태국에는 좋은 사람도 너무 많지만 절대로 긴장을 늦출 수 없게 만드는 좋지 않은 태국사람들도 적지 않았다.
푸카오텅에 있는 탑 꼭대기에서 방콕 시내를 바라보면서 마음을 가다듬었다.
멀리 사원도 보이고, 방금 다녀 온 로하쁘라삿도 보였다. 타이항공 건물도 보였고 판파도 보였다. 판파에 가서 배를 타고 보베에서 내려서 보베시장에 들렀다가 싸판카오 시장에 가서 과일을 사야겠다... 라고 이후 일정도 세워보았다.
방콕전경을 한참동안 바라보다가 마음을 가다듬고 다시 내려왔다. 판파에서 보베로 가는 배를 탔다. 일정대로라면 바로 왓벤짜마버핏을 거쳐 두씻 정원에 가야했지만 오늘 싸판카오시장을 못가면 따로 시간을 낼 수 없을것 같았다.
보베에 내려서 보베시장을 갔다. 원피스를 하나 넣어가느라 T셔츠는 한장만 있어도 될 것 같았는데 역시나 원피스는 첫날 오전에 잠깐 입고 한번도 입지 않았다. T셔츠 한장으로 버티려니 좀 버거워서 보베시장에서 민소매 T를 한장 샀다. 보베시장에는 기본이 3장단위로 파는 것 같았다. 민소매 T 를 한장에는 150밧, 3장살때에만 한장에 90밧을 달라는데 한장에 100밧으로 흥정을 했다. 너무 순순히 100밧에 주길래 90밧에도 살 수 있었을것 같은 아쉬움이 들었다^^;;
반팔 치고는 좀 두툼한 옷을 입고 다녔던 터라 완전 실크감촉의 민소매 T로 갈아입으니 시원하고 가볍고 날아갈것 같았다.
계속 기분이 별로였는데 90밧짜리 T셔츠 하나로 완전 UP UP 이었다^^
보베시장에서 싸판카오 시장까지 약간 헤매긴 했지만 친절한 시민분들의 덕분에 잘 찾아갈 수 있었다.
싸판카오 시장은 정말 과일 시장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빡콩시장이 과일소매시장이라면 싸판카오 시장은 도매시장 같은 분위기였다.
과일의 종류는 많지 않았고 주로 파인애플과 구아바(맞나? 맛이없는 떫은 사과같은것)가 대량으로 거래되고 있었다.
암튼, 이것저것 과일을 많이 사리라고 마음먹었던 계획과는 약간 어긋나버렸다. 그래도 돌아다니다보니 소규모로 노점을 벌여놓은 과일가게 몇군데에서 망고스틴, 람부탄, 커스터드 애플을 샀다.
사고 싶은 과일은 한도 끝도 없었지만 무겁기도 하고, 또 욕심만 나지 내가 다 먹을 수도 없을것 같아서 일단 거기서 멈추기로 했다.
4kg가까이 되는 과일을 들고 더 여행을 하기에는 무리이다 싶어 일단 숙소로 돌아가기로 했다. 아침의 일은 까맣게 잊어버리고 나는 풍성한 과일 때문에 마냥 행복으로 가득차서 콧노래까지 불렀다.
아... 역시 나는 쇼핑같은건 취미 없지만 먹는거 하나면 만사 OK 가 되는 단순녀인것 같다.
숙소로 돌아와 나의 과일들을 진열해놓고 흐뭇하게 사진을 찍었다.
일단 커스터드 애플만 깨끗이 씻어 봉지에 넣고 숙소를 나섰다. 두씻정원은 3시 30분 전에는 가야하기 때문에 시간이 많지 않았다.
책에는 두씻 정원으로 가는 교통편이 좋지 않기 때문에 택시를 타길 권하고 있지만 왠지 버스가 있을것 같았다.
어제 완전히 기염을 토한 일이 있었다.
여행을 시작하기 전, 어딘가에서 TAT 지도가 좋다는 얘기를 들었던 터라 TAT를 그렇게 찾았으나 공항에서 결국 못찾고 시내로 들어왔었다. 대신 AOT 인가? 아쉬운대로 그곳에서 지도를 두개 들고 왔는데 그 지도보다 책에 있는 지도를 보는게 더 쉬웠기 때문에 그동안 지도는 몇 번 보지도 않았다.
그런데 어제 가방에 들고다니던 그 지도를 버리려고 하다 보니
헉...
지도 2개중에 하나에는 버스노선이 너무나 자세히 그려져있는것 아닌가.
그동안 버스를 탈 줄 몰라서 고생했던 것들이 스쳐지나가며 역시 머리가 나쁘면 손발이 고생하다는 옛말 틀릴것 하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암튼,
그 지도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왠지 두씻정원도 버스로 갈 수 있을것같았다.
그래서 지도에 있는대로 민주기념탑쪽으로 걸어와서 버스를 탔다. 19번버스. 그 버스를 타고 올라가다가 느낌상 두씻정원으로 예상되는 곳에서 내렸다. 바로 두씻정원의 입구였다.
아... 버스로도 올 수 있구나... 책에도 없는 새로운 사실을 알아냈다는 뿌듯함에 기분이 좋았다.
두씻정원에 들어가 위만멕 궁전에서 영어 투어를 듣고 국회의사당까지 갔다가 다시 들어갔던 입구로 나왔다.
이번에는 56번 버스를 탔는데 아까보다 카오산에 더 가까운 곳에서 내릴 수 있었다. 바로 매일아침 갔던 끄라이시 거리의 끝자락에 있는 왓보원니웻에있는 버스정류장이 두씻정원으로 가는 버스정류장이었던 것이다.
차비도 왕복 12밧밖에 들지 않았다.
여기 저기 돌아다니고 장 보느라 끼니를 챙기지 못해 허기가 졌다.
이미 너덜너덜해진 'Hi~ 방콕' 책을 꺼내들었다. 카오산의 먹거리가...
이번에는 쌈쎈 쏘이에 있는 팟타이 꿍쏫 집에 가보기로 했다. 쌈쎈 거리에 한번쯤 가보고 싶던 참이었다.
분명 지도로 느끼는것보다 가까이있을거라고 생각했는데, 아니라다를까 몇 분 걷지 않았는데 금새 쌈쎈 거리에 들어섰다.
팟타이 꿍쏫집도 책에 있는 설명대로 찾아갔더니 바로 찾을 수 있었다.
워낙 맛있는 집인데다가 '시장이 반찬' 이라 팟타이가 정말 입안에 착 감기면서 온 미각을 다 자극했다. 더구나 집에서는 입에도 대지 않는 생 숙주나물도 사각사각하고 신선것이 그렇게 맛있을 수 없었다.
'팟타이 꿍쏫'에서 팟타이 한그릇을 다 먹고 나왔다. 카오산까지 얼마 되진 않지만 밥까지 먹어서 그런지 걸어가기가 귀찮아서 버스를 타고 카오산으로 돌아왔다.
숙소로 돌아와 침대에 누웠다.
오늘도 하루가 참 길었다.
끝나지 않을 것 같았던, 아니 끝나지 않았으면 했던 여행이 벌써 마지막 밤이다. 내일이면 숙소를 나설때 돌아올때처럼 다시 이 배낭을 메고 떠나야겠지...
기분이 이상했다.
방콕 여행에서 꼭 해보고 싶었던 것 중에 또 하나가 '색소폰' 에 가는 것이었고 오늘 가려고 계획했었는데 왠지 오늘은 그냥 이렇게 숙소에서 마지막 밤을 보내고 싶었다.
그냥 나와 함께 말이다...
그래서 기내에서 받은 하이네켄과 아침에 싸판카오 시장에서 산 과일을 작은 테이블에 세팅해놓았다.
생각해보니 여행에서 또 하고 싶은 것 중 하나가 숙소에서 맥주마시는 거였는데... 하나는 이루지 못했지만 대신 하나는 이루게 됐다.
냉장고가 없어 실온에서 따뜻하게 데워진 하이네켄 맥주를 마시며 두 손에 가득 과즙을 묻혀가며 망고스틴과 람부탄을 벗겨먹었다.
알딸딸한 술기운이 몰려들면서 한 없이 행복하고 재밌었다.
남들은 도대체 혼자 무슨 재미로 여행을 가냐고, 말상대도 없이 혼자 다니면 외롭고 쓸쓸하지 않냐고 하지만 그들은 알지 못한다. 혼자일때 온전히 나 한사람에게 집중하게 되고, 나 자신을 온 몸 가득히 사랑하게 될때의 그 기분을 말이다.
비어있던 휴지통이 과일껍질로 가득 쌓이고 나는 과일을 먹다가 지칠정도로 먹었다. 바로 내가 원하던 그 충만함이었다^^
산띠차이 쁘라깐 공원과 뚝뚝타고 야경사진을 찍으려던 계획은 꿈속으로 사라져버렸다.
꿈속에서 나는 방콕의 못다한 여행을 하고 있겠지
------------------------------------------------------------------------------------------------------
벌써 여행을 다녀온지 일주일이 지나고 있어요.
여행은 여행일뿐.. 역시나 돌아온 일상은 평소대로 바쁘고 고되네요.
계속되는 야간 근무에 후기도 못올렸습니다.
후기를 올리다보면... 잊고있었던 그 날을 기억들이 떠오릅니다.
오늘같이 기분이 우울한 날에는... 브릭바에서의 열정적인 연주를 들으면서 마시던 싱아맥주가 그립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