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느 평범한 저녁,

어느 익숙한 골목에서

무심하게 들춰보는 '나'.

길고도 오랜 길을 밟으며

남아 있는 것은

바람에 쓸린 해어진 옷가지 몇 벌과

길 위에서 생겨난 아물 수 없는 흉터와

경계를 넘지 못하는 옹색한 변명 덩어리와

어설픈 다짐이 만든 서글픈 갈등뿐.

언어는 4년전에 이미 말라비틀어졌고

기억은 맞출 수 없을 만큼 헝클어졌고

사랑은 침묵의 올가미에 걸려 박제되었고.

아직 길은 끝나지 않았는데,

이렇게 멈추면 '나의 이름'으로는 되돌아가지 못할 텐데.

어느 저녁, 어느 골목에서

어둠처럼 층층이 내려앉는 자책,

강바람처럼 끈적하게 달라붙는 불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