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의 맛과 향기
(2005년 글입니다.)
막상 제목을 맛과 향기라고 하긴 했는데, 사실 우리가 가진 베트남 음식에 대한 정보와 조예는 상당히 빈약했었다. 그래서 사실 좀 조심스럽고 소극적인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고, 그래서 보름 이라는 기간 동안 베트남의 맛을 충실히 체험 했는지에 대해서는 아무런 자신감이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베트남을 떠나는 이 시점에서 꽤 아쉬운 것은 이제 한동안 퍼나 분짜 같은 멋진 음식은 먹을 수가 없다는 것이다. 태국으로 들어가게 되면 아마도 우리는 향수를 느끼며 베트남 음식점을 찾아 갈지도 모르겠다. 얼마나 만족 시켜 줄지는 모르지만 말이다.
여행자 식당에서 먹은 것들
하노이의 구시가지 지역에 빼곡히 들어차 있는 여행자 전문 영업 식당들에서 그럭저럭 합리적인 가격에 평범하고 무난한 맛의 음식을 먹곤 했었는데, 지금 지나서 생각해 보니 별 기억이 없고 감흥도 없는 맛이었던 같다. 국적불명이긴 하지만, 웨스턴이나 극동 아시아인의 입맛에 두루두루 맞춘 볶음밥 이나 샌드위치 등등을 여행 초기에 먹었던거 같다. 현지 물가에 대한 감도 안 오고 메뉴판이 없는 로컬식당에서 매끄럽게 뭔가를 주문해 내기에도 힘들어서 갔던 몇몇 여행자 식당에서 먹었던 음식들 이다.
스프링롤 또는 춘권이라고도 불리는 이 '넴Nem'은 전채요리나 스낵으로 먹기에도 좋고, 국수에 얹어 먹어도 맛있고 그야말로 전방위 요리였다.
‘분탕Bun Thang’이라는 이 국수는 노점에서 먹어야 제격인데, 우린 그냥 여행자 식당에서 시켜 먹어서 별 재미를 못 봤다. 진한 육수에 닭고기 돼지고기 새우랑 계란 후라이가 들어가야 정식 분탕이라는데... 저 놈은 사이비 버전의 분탕 인듯...
베트남이 바게트 만드는 건 잘 전수 받은 거 같은데. 피자는 영~ 아니었다. 물론 비싼데 가서 시켰다면 이야기가 달라졌겠지만, 무엇보다 저 어이없는 크기가 나를 화나게 했다. -_-;;
길거리에서 쉽게 먹을 수 있는 국수들... 분과 퍼 형제
구운 고기와 잘 어울리는 부드러운 국수 '분Bun'
하노이에서 정처 없이 이 골목 저 골목 헤매고 다닐 때 우리 눈에 번쩍 뜨인 풍경이 있었는데, 석쇠에 끼운 고기를 숯불에 타닥타닥 구워 내고 있는 모습이었다. 짙은 갈색 양념을 뒤집어쓰고 있는 고기를 잘 펴서 연기를 펑펑 풍기며 익혀내고 있었는데, 냄새가 그야말로 기가 막히다. 완전 돼지 갈비 냄새를 풍기는 이 훌륭한 냄새에 끌려들어가서 일단 주문부터 하고~
사각사각한 무가 들어간 새콤달콤한 국물에 막 구워낸 고기를 듬뿍 넣어주고 따로 쌀국수와 허브를 내어주는 이 yammy한 음식은 바로 분 짜~ 사실 분 짜 가 맞는지 분 차가 맞는지 모르겠다. 분 짜라고 발음한 내 발음을 현지 아줌마가 분 차라고 바로 고쳐 주는 거 같았는데...
우리나라도 똑같은 설렁탕이라도 어디에서 먹느냐에 따라 맛이 확~ 달라지듯(가격 차이는 별로 안남에도 불구하고...) 이 분 짜도 어디에서 먹느냐에 따라 조금 다르긴 하다. 형편없이 고기를 작게 주고 10,000동이나 받는 곳도 있었고, 적당한 양에 6,000 받는 식당이 구시가지에 똑같이 존재하는 바, 약간 운이 따르긴 하지만 워낙 맛있는 아이템이라 대충 분위기 보고 선택하면 별 리스크는 없을 듯...
올리는 고명에 따라 분 짜도 되고 분 넴(국수+스프링롤)도 되고 분 팃 넴(국수+다진고기 구이)도 되는 요 야들야들한 국수가 벌써 그립다.
'분 팃 넴Bun Thit Nem'이라 불리워지는 이 국수는 새콤달콤한 양념장을 끼얹어 먹기 때문에 입맛을 잃기 쉬운 더운 기후에서 그야말로 제격인 음식이었다. 야들야들한 국수와 채소 그리고 고기의 하모니라니... 우웅~ 먹고 싶다.
태국의 꿰띠아오 정도는 가볍게 무릎 꿇릴 수 있는 '퍼Pho'
나는 사실 꿰띠아오를 무척이나 좋아하는 사람이다. 아침 식사는 거의 이 개운한 쌀국수로 해결하는 편인데다가 (맛있는 고추 피클과 빨간 양념까지 펑펑 넣어서...) 먹은 횟수도 퍼에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많아서 훨씬 내 입에 익숙해 졌음에도 불구하고 양이나 맛이나 질에서 완벽한 ‘퍼’의 승리~라 아니할 수 없을 듯...
일반적으로 퍼는 소고기 퍼인 퍼 보Pho Bo와 닭고기 퍼인 퍼 가Pho Ga 두 가지가 대표적인데, 퍼 보가 열배는 더 맛있는 듯...
사실 하노이의 구시가지에서 10,000동을 주고 처음 먹어본 퍼는 ‘이게 그 유명한 맛이야...?’라고 중얼거릴 만큼 좀 실망스런 맛이었는데, 사이공에서의 선택은 ‘오~ 이 맛이야~’라는 소리가 절로 나온다. 일단 국물이... 완전 소고기 육수 맛이다. 우리가 간 식당의 냉장고와 식탁에는 육수를 우린 후에 건져낸 수육 덩어리들이 꽉꽉 들어차 있었는데, 이렇게 제대로 하는 곳에서 한 그릇 먹고 나면 그야말로 ‘탕’ 한 그릇 먹은 것 마냥 든든하고 땀이 뻘뻘 흐른다. 게다가 아삭한 숙주와 양파 그리고 기호에 따라 넣기도 하고 안 넣기도 하는 라임과 허브들 의 조화가 정말 딱!이었다.
먹고 나서도 혀에 자극을 남기는 싸구려 조미료 국물 맛은 저리 가라~
인기있는 퍼 체인인 Pho 24의 한 분점에서 먹은 Special Pho. 29,000동. 퍼 식당에 가면 이렇게 Special Pho란 메뉴가 있는데 일반 소고기 퍼인 퍼 보Pho Bo 보다 약간(2,000~5,000동) 정도 비싸지만 도가니, 차돌박이 등 다양한 부위의 소고기가 많이 들어간다.
퍼24에서 딸려 나오는 각종 야채들... 약간 비싼 곳(다른 곳의 2배 가격)이라서 야채들이 좀 멋을 냈다.
일반적인 퍼 전문 식당 퍼를 먹을 때 딸려 나오는 소스와 고추, 라임
사이공 부이 비엔 거리의 Pho Bo 94 식당에서 먹은 Special Pho. 15,000동
팜 응우 라오 거리의 Pho Quynh 이란 식당에서 먹은 Special Pho 18,000동
베트남 노점 식당에서 먹은 것들...
사실 베트남에 가기 전에 워낙 ‘외국인 요금’ 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들어서 다른 곳을 여행할 때와는 달리 선뜻 현지 노점 식당에 가서 뭔가를 주문하기가 망설여졌다. 그래서 별로 즐기지도 못한 거 같고, 사실 우리에게 청구한 가격이 외국인 전용 요금이었다는 감도 오긴 한다. 어쨌든 몇 가지 먹어본 것들...
저녁이면 하노이의 구시가지의 길목 구석구석은 노점 식당의 작은 식탁과 그사이로 옹기종기 모여 앉은 사람들로 빠글빠글 하다. 현지인들에게도 인기 있는 메뉴인 ‘빗뗏Bit Tet’! 비프스테이크의 초 다이어트 버전~ 보통 15,000~20,000동 한다
넴은 짜조Cha Gio(남부에서는 ‘짜요’라고 발음)라고도 한다. 1개에 1,000동짜리부터 3,000동이나 하는 커다란 것도 있다.
미 싸오 가 - 닭 볶음 국수 라고 해석 할수 있는데... 음... 분위기 상당히 너절한 현지 식당이었는데 가격은 20,000... 메뉴 자체가 외국인 전용 인듯 했다. 현지인들은 메뉴도 안보고 그냥 주문 하더만... 맛도 별로 였던듯...
껌 장 가 - 그냥 오다가다 노점에서 먹은 닭고기 볶음밥... 야채도 별로 없고 팍팍해서 더운 날씨에 잘 안 넘어갔다. 쩝...
하노이 호안끼엠 호수 남쪽에 위치한 현지인들에게 유명한 아이스크림 집이라는데, 크리미하지 않고 셔벗 같은 느낌을 주는 아이스크림 이었다. 사각사각하고 시원한 맛은 있는데, 부드러운 뭔가가 빠진 맛이다. 더운 날씨에 먹기에는 더 나을 수도 있을 듯... 아이스크림을 싸고 있는 참깨가 송송 들어있는 과자가 더 맛있었다. 3,500동
꽤 규모 있는 현지인 식당에서 먹은 것들
홀로 여행하는 여행자가 겪는 어려움 중에 하나가 바로 음식을 거나하게 즐길 수가 없다는 것 일테다.
거의 대부분의 식사를 단품 요리 하나로 해결하는 홀로 여행자들은 우리부부를 보고 (단순히 둘이 다닌다는 점 때문에...) 꽤 부러워 했었는데, 바로 근사한 식당에 가서 평소에는 질러보기 어려운 요리를 시켜 먹어볼수 있기 때문이었다.
엄청난 손님들로 빠글빠글 끓지만 정작 메뉴판은 없는 현지인 노점식당은 좀 더 정보를 긁어모아 도전해 보기로 하고 그나마 제대로 된 메뉴와 괜찮은 분위기를 갖춘 약간 고급식당에서 몇몇 가지 요리를 시켜 봤다.
사실 그중에는 ‘음... 먹을 만하군...’ 하는 음식도 있었고, 음식이 나오는 순간 숨을 죽이게 하는 음식도 있었다. 하여튼 뭘 시켜야 될지 몰라서 그냥 시켜본 세트 메뉴와, 메뉴를 한참 들여다 본 후 시켰는데도 그다지 재미를 못 봤던 몇몇 가지 음식들이다.
태국의 해산물 식당에서... 뭐를 시켜야 될지 몰라서 한참을 헤매다가 정작 나온 음식들 앞에서 황당한 표정을 짓던 일본인 여행자들을 몇 번 본적이 있었는데, 이번에 우리가 그 포지션 인 듯~
하지만 약간 간을 본 바에 의하면, 베트남 음식 조금만 더 연구해서 잘 선택하면 태국 음식 못지 않은 맛을 선사해 줄 거 같다.
마치 태국의 ‘얌 탈레’ 처럼 각종 해산물과 향신료 풀이 짜고 신 양념을 뒤집어 쓴 채 나왔다. 아마 베트남에서도 이런 류의 해산물 샐러드 요리가 많은 듯 하다.
음냐... 역시 세트 메뉴 안의 요리 였는데 누룽지에 뭔가 소스를 끼얹어 주며 내온다. 사실 이 요리는 등장하는 퍼포먼스가 엄청 났는데, 일단 이 누룽지가 담겨진 진흙냄비를 와장창~ 깨부순 후 그걸 몇 미터 정도 떨어져 있는 다른 웨이터의 접시에 공중부양 시켜 날린 후 그걸 받은 사람이 뭔가를 타닥타닥 털어낸 후 우리 식탁으로 옮겨져 왔다. 뭔 행위인지 모르겠지만 재밌었다... 헐...
이렇게 해서 이 세트메뉴가 1인당 90,000동. 메뉴에는 최소 4인이라고 써 있었는데 2명만도 해줬다.
사이공에서 돈을 좀 들여서 간 베트남 식당이었는데,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루는 곳이었다. 들어갈 엄두가 안 나다가 호기심을 못 참고 들어가 주문을 했는데, 별 재미는 못 본 듯...
베트남 현지인들은 잘 시켜서 무척 잘 먹어대는데, 우리는 약간 난감 모드...
제법 그럴듯하게 차린 식당에는 메뉴마다 영어 설명이 되어있어서 선택 자체는 그리 어렵지 않다.
프랑스 식민지 백년의 역사가 남긴 반 미~
19세기 중반부터 20세기 중반까지 이쪽 인도차이나 세 나라, 베트남, 캄보디아, 라오스는 프랑스령이었다고 하던데, 그 영향 때문인지 바게트 빵이 아주 일상화 되어있다. 묘하게도 빵 안에 들어가는 재료는 아주 베트남 적인 것이어서 그 맛이 참 오묘~ 하기도 한데, 치즈나 오믈렛 같이 평범한 걸 넣으면 꽤 맛이 좋고 가격도 저렴해서 투어시간에 쫓기거나 시간이 별로 없을 때 훌륭한 한 끼 식사가 된다.
숙소에서 아침마다 차려줬던 ‘반미Ban Mi’와 오믈렛... 부실해 보이는 외양과는 달리 꽤 맛있다. 길에서 파는 보다 튼실한 반미 샌드위치는 4,000동 선
사이공의 벤탄 시장에서 먹었던 몇 가지 단품요리들
하롱 만 투어 때 만났던 사이공 커플이 말하기를, 벤탄 시장에 가면 정말 맛있는 음식을 싼값에 먹을 수 있다고 이야기 했었다. 꼭 그 이야기 때문이 아니더라도, 벤탄 시장이라면 사이공을 들리는 여행자는 필히 들리는 곳이어서 우리도 그곳을 들렀다가 식사를 하게 됐는데 그때 먹은 간단한 단품 식사들이었다.
월남쌈이라고 불리는 고이꾸온 은 쌀 피 안에 분(국수)이 들어 있어서 생각보다 꽤 탄수화물스러운 놈이어서 한 두 개 먹으니 벌써 배가 불러 오려고 한다.
그리고 어디선가 주워들어서 시키게 된 ‘분 맘’...
새우 된장(마른 새우 반죽으로 만든 장) 국물에 다소 통통한 면을 넣고 새우랑 돼지고기 생선이 들어가 있는 , 가까이 하기에는 좀 시간과 인내심을 요구하는 맛을 내는 국수 였다.
보기와 달리 상당히 배가 불렀던 '고이 꾸온Goi Cuon'이었다. 잘 살펴보면 안에 돼지고기도 있고 새우도 있는데, 다른 재료들과 같이 섞이면 새우는 맛이 잘 안 난다... 그냥 개운한 쌀맛과 스피아민트 맛 만이... 한 개에 2,500동
'분 맘Bun Mam'... 내가 제대로 알고 있는지 모르겠는데, 분 맘은 짠맛의 국수라는 뜻이란다... 아주 묘하게 짠맛이 났다. 12,000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