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시작이구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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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시작이구먼

고구마 0 539

(2005년 글입니다.)



와글와글 북적 북적... 도대체 지금이 몇 시나 된 건지도 모르겠다. 하여튼 분명한 건 세상 고요한 이 한밤중에 누군가가 큰 목소리로 떠들어 대고 있다는 거다. 우웅... 가만 보자... 내가 대충 밤 10시쯤에 잠이 들었으니까, 적어도 지금 밤 12시는 넘었겠네... 근데 이거 술주정하는 소린가?

자오싱에서의 마지막 밤을 보낸(마지막 이래 봤자 달랑 이틀 머문 것 뿐 이라서 사실은 두 번째 밤) 우리 숙소는, 4층 가옥 전체가 나무로 만들어져 있는 곳이었다. 그래서 숙소 분위기는 꽤 독특했지만, 누군가가 걸을 때 마다 삐거덕~ 거리는 소리가 온 집을 울리게 만드는데다가, 방음? 그런 건 있을 수도 없는 곳이다.
우리가 잠들기 전 외지에서 온 중국인 두 명이 우리 층에 묵는 걸 봤는데, 아무래도 그 사람들이 내는 소리 인듯...
요왕도 벌써 잠이 깨고 나도 약간 비몽사몽 해진 채 불만스럽게 뒤척였는데, 그 와중에서도 알아들을 수 있는 말은 야오스(열쇠)와 슬콰이(10위엔)였다. 한밤 중의 소란의 주제가 고작 열쇠와 10위엔 이란 말이야...
이 숙소의 열쇠 보증금이 10위엔 인데 그거랑 뭔 상관이 있는 건가? 중국은 야진이라 불리는 보증금 제도가 일반적이어서 그것에 대한 항의도 아닐 테고... 근데 도대체 뭐지?
정말 놀라울 정도로 쉬지 않고 혼자서 악을 쓰는 중국인의 음성 사이사이로, 주인아저씨의 난처하고 가느다란 음성과 주인 할머니의 걱정스런 말투가 간간히 들렸을 뿐... 완전히 그 남자의 독무대 인 듯하다.
결국 잠은 다 잤구먼... 에잉~ 저러다 곧 끝나겠지... 하고 생각하며 야광시계를 눌러보니 거의 새벽 한시가 다되어가는 시간...
근데 소동과 악다구니는 점점 더 커지기만 하더니, 사람들의 목소리와 발걸음 소리가 점점 많이 들리기 시작했다. 후다닥 올라오고 내려가는 소리, 절대 그치지 않을 것만 같은 그 남자의 큰 고함질, 그리고 정체를 알 수 없는 다수의 남자들의 짜증스런 목소리... 이쯤 되니까 이제 신경질이 나는 게 아니라 조금씩 무서워지려고 한다.
호기심을 참지 못한 나는 옷을 대충 갖춰 입고 머리는 산발을 한 채, 숙소에 있던 쪼리를 질질 끌고 복도로 나갔는데 마침 그때 숙소 주인아저씨가 근심스런 표정으로 우리 방에서 별로 떨어지지 않은 방에서 나온다.
오~~ 저 방이로구먼... 구경 가야지~
느릿느릿 소리 나지 않게 슬리퍼를 끌고 가던 나는 방안을 보고 깜짝 놀라고 말았는데... 불이 훤히 켜진 방에는 언뜻 보기에도 스무 명은 돼 보이는 웃통 벗은 남자들로 꽉차있고, 이 소동의 장본인은 구석으로 몰려있는데도 불구하고 여전히 입에서는 거친 소리를 내고 손가락으로 하늘을 찌르고 있었다.
예상치도 못한 중국인들의 수에 기가 팍 질린 나, 괜히 이 사람들 눈에 띄어 봤자 좋을 거 하나 없겠다는 생각이 들며 다리를 재빠르게(하지만 최대한 조용하게) 움직여 방으로 돌아왔다.
요왕은 어둠속에서 방문을 빼꼼이 연 채 ‘도대체 뭐하는 짓이야!! 미쳤다고 거길 가냐?’ 라면서 얼렁 내 어깨를 끌어당기고 문을 잠궜다.

나는 다소 흥분한 채로 내가 본걸 더듬더듬 설명했는데, 그 이 후 잠이 달아난 게 문제가 아니라 이러다가 혹시 칼부림이라도 나는 거 아닌지, 괜히 몸싸움하다가 이 부실한 나무판자 문이 부서져 사람들이 우리방으로 쏟아지는 건 아닐까, 혹은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한 미친놈이 불을 질러 이 숙소가 불쏘시개가 되어버리는 건 아닌지에 대해 정말 진지하게 걱정이 되었다. 휴우...
괜시리 방안의 전등을 켰다가는 불필요한 관심을 끌 것 같아서, 우리는 정말 두 손 꼭 잡은 채 침대 가장자리에 걸터앉아 빨리 경찰이 오기만 기다렸다. 마치 독안에 갇힌 쥐새끼처럼 어둠속에서 두 눈만 반짝인 채로...
이 숙소에 누가 더 있었더라... 우리 말고 아이를 데리고 있는 영국인 가족도 있는데... 그 사람들은 지금 어떤 상태일까...
졸인 가슴을 부여잡고 있는데 갑자기 우당탕탕하는 소리와 고함소리, 사람 넘어지는 소리가 들리면서 우리방의 나무 벽이 쾅쾅 댄다. 다행히도 그 소동과 소란은 점점 멀어지더니 결국 우리 층의 그 많은 남자들이 계단을 타고 1층으로 우르르르~ 내려가는 소리가 들린다. 숙소 밖으로 일단 나가는 모양이구먼...
빼꼼이 창문에 손을 걸치고 밖을 염탐하던 우리의 눈에는, 도망가는 사람 그리고 ‘저 놈 잡아라~~’ 라고 소리 치면서(중국말 모르지만 그 액션에서 그 말 이외엔 나올 말이 없을듯...) 그 도망자를 쫒는 다수의 사람과 손전등 불빛... 그리고 웃통을 벗고 반바지를 걸친 채 서성이는 다수의 동네 아저씨들과 청년들이 눈에 들어왔다.
이게 왠 코미디람... 아니 이 마을에서 도망칠 데가 어디 있다고 도망을 가... 다 돌아보는데 십 분이면 충분할 이 마을에서, 산으로 가겠어, 아님 돼지우리에 숨겠어... 하여튼 이렇게 일단락 될 듯 보이던 소동은 약간의 휴식 타임을 가지더니만 2라운드 시작... 어우~ 미친다 진짜...
내려다보니 그 고함지르던 장본인이 이제는 숙소 앞마당에서 아예 사람들을 모아놓고 프리젠테이션을 하고 있다. 잡혀와서도 전혀 기죽지 않는 저 기골장대함이라니... 근데 이 사람 경극을 넘 많이 본거 아냐...
손을 위로 들었다 아래로 내렸다 몸을 꼬았다가 손바닥을 털털 털고 발을 앞뒤로 들었다 놨다... 하며 연신 뭔가를 고함치듯 이야기 하는데 정말 화분이라도 들어서 그 놈 머리 위에다가 떨어트리고 싶은 심정이다.
아저씨... 목에서 피 올라오겠수...

결국 이 소동은 새벽 4시가 되어서야 끝이 났고, 결국 날이 밝기만을 기다리며 비몽사몽 하다 보니 새벽 6시가 조금 넘어 있다. 날이라도 밝아지니 맘이 편해지고 이제 무서울 게 별로 없어져 버렸다. 그리고 어제 우리처럼 숨죽이고 있었을 영국인 가족의 말소리도 들리고...
배낭을 꾸리고 체크아웃을 하려던 우리는 공교롭게도 열쇠를 잃어버린 걸 깨닫고 풀이 죽은 채로 자오싱을 떠나게 된다. 그동안 여행하면서 열쇠 잃어버렸던 적이 이번이 처음인거 같다. 그나마 다행스럽게도 이곳의 열쇠 보증금은 10위엔 뿐이라서 그 돈을 포기하는 것으로 별 문제 없이 숙소에서 나왔고, 사실 어제의 소동 때문에 경찰서에 불려가던 주인아저씨한테 우리의 열쇠 분실쯤은 암 것도 아닌 모양이다.
영국인 가족은 일찌감치 짐을 싸서, 주인에게 몇 마디 항의의 말을 하고는 삼륜차를 잡아타고 새벽같이 이곳을 떠났단다.

그나저나 무지 궁금하네. 에휴... 도대체 어떤 스토리였길래 그랬을까 궁금해서 숙소에서 일하는 청년에게 물어봐도 이 청년도 잘 모른단다. 다만 그 사람들이 나쁜 사람들이란 이야기만 한다. 우리는 열쇠와 10원을 주제로 ‘아마 이랬을꺼야....’라며 ‘잃어버린 우리의 열쇠와 관계 된건 아닐까...?’ 등 말도 안 되는 시나리오를 만들어 가며 버스가 오기만을 기다렸다.

비오는 날씨 속에 전 구간 완전 비포장 길을 5시간이나 달려 싼장三江에 도착했다. 여기서 부터는 바로 베트남과 국경을 맞대고 있다는 광시성~~ 싼장은 광시성의 최북단에 있는 작은 도시였다.
지체 없이 이곳에서 룽성으로 가서(차로 3시간 정도...) 거기서 다시 우리의 최종 목적지인 룽지티텐의 핑안平安에 가면 오늘의 여정은 끝~

켁!! 근데 싼장 버스 터미널에 내려 룽성 가는 표 달랬더니 없단다.
뭐지? 다소 어리둥절해진 우리는 그럼 룽성보다 더 남쪽에 있는 구이린 가는 표라도 달랬더니 그것도 없다네... 구이린 가는 표가 없을 리가... 다소 황당해진 우리에게 웬 청년이 다가와 무슨 벽에 붙은 공고문을 가리키는데, 핵심 내용은 이곳에서 룽성으로 가는 길의 일부가 막혀버려서, 룽성도 못가고 구이린도 못 가는 거란다(구이린으로 가는 빠른 길은 룽성을 거치게 되어있다).

방법은 구이린보다 훨씬 남쪽에 있는 류저우라는 곳으로 쭉 남하해서 다시 북쪽으로 올라와 구이린으로 가고 또 거기서 차를 갈아타 룽성으로 가는 것 뿐이라네... 이게 뭐냐구요!!!
근데, 여기서 그냥 버스 타고 류저우로 가면 좋으련만, 요왕은 좀 더 편하게 가보겠다며 기차를 타고 가겠단다. 음냐... 왠지 내키지 않았지만 할 수 없지...
길가에서 삼륜차 기사가 15원에 부르는 걸 12원에 깎아 훠처짠(기차역)으로 달리고 달려 드디어 도착했다. 생각보다 거리가 꽤 되는지라 우리는 그냥 깎은 가격 무시하고 15원을 주고 내렸고 열심히 역 쪽으로 걸었는데, 왠지 역의 생김새가 기차가 다닐 모양새가 아니다. 역시나... 가보니 역사에는 부랑자들만 드러누워 자고 있고 하루에 단 한 대, 이 역에 서는 유일한 기차는 벌써 20분전에 떠났단다. 아하하하~
터덜터덜 내려오니 우리를 실어다 준 모토 기사아저씨 아직 안 가고 길 옆에 차를 대 놓고 세차를 하고 있네...
- 메이요 처(차가 없어요). 깎아주셍. 10원에 다시 데려다 줘요.
- 십원? 커이커이 (좋아요.)
혹시 알면서도 우리를 순순히 이곳에 데려다 준 게 아닐까? 하는 의구심이 들었지만, 에이... 따지지 말자... 오늘은 새벽 12시 땡~ 종 치자마자 재수가 없구먼...
괜히 왕복 차비와 시간만 날리고 류저우 가는 버스표를 손에 넣은 후 화장실에 다녀오니 요왕이 상기된 얼굴로 말한다.
- 야~ 너 없는 동안 이 동네 깡패가 나 희롱했어.
- 엥... 그짓말... 괜히 그러는 거지?
- 내가 이런 기분에 뭐 하러 그런 거짓말을 하냐...

요왕 말에 의하면, 하루 종일 되는 것도 없고 열쇠 잃어버린 것과 잘못된 판단으로 기차역으로 가는 헛걸음 을 한 덕분에 내게 잔소리만 실컷 들어서 기분이 안 좋은 채로 앉아 있는데, 웬 술 취한 중국인이 와서 차표를 보여 달라고 하더란다. 당연히 안보여주고 외면했더니 인상이 험악해지며 공포분위기 조성하더라나... 그리곤 빼앗듯이 차표를 보더니 ‘류저우~’ 라고 한마디 하더니, 친구가 부르는 소리 듣고 휘청휘청 사라져 버렸단다.
나쁜 놈!!! 대낮부터 술 마시고 어디 와서 시비야... 분하네.
그나마 친구가 불러 사라진 게 어디냐며, 불행 중 다행이라고 서로 위로하면 어깨를 모으고 앉아있었다.
이쯤 되자 오늘은 일진이 사나운 날이므로 몸조심해야 겠다는 데 의견을 모으고 버스에 오르니 우리 자리는 또 맨 뒤의 중간 자리다. 혹시나 급정거 같은 거 하면 앞으로 데굴데굴 굴러가게 되는 맨 뒷자리의 중간석... 크흑...
이날 류저우로 가는 차안에서, 세상에서 태어나 가장 많은 번개를 보면서 이동한 우리는 혹시 번개가 이 차에 내리 꽂히지나 않을까 정말 걱정이 됐다. 다행히 사나운 일진은 이쯤에서 그치고 밤 10시가 다 된 시간, 드디어 피곤한 우리의 몸과 마음은 전혀 생각지도 않았던 류저우라는 이름조차 생소한 도시에서 쉴 수 있게 되었다.
확실히 일진 사나운 날 이란 게 있긴 있나보다...


자오싱의 숙소. 원화짠 빈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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싼장 터미널에 붙어 있는 공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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