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오싱 - 가이드북에 대한 작은 불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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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오싱 - 가이드북에 대한 작은 불평

고구마 1 590

(2005년 글입니다.)



전 세계 여행자들의 바이블이자 교과서이기도 한 론리플래닛의 정보의 정확성과 업데이트 능력은 가히 독보적인 존재이긴 하지만, 워낙 넓은 지역을 워낙 다양한 성격의 작가들이 쓰다 보니 몇몇 지역은 그 일관성 면에서 약간 비껴나 있는 경우도 있다. 물론 아주 예외적인 경우이긴 하지만 말이다.

중국 서남부만을 다룬 론리의 경우... 이 책에서 소개되는 거의 대부분의 시골마을들이 다 환타스틱~ 하고 엘레강스하며 러브리 하단다.

도시에 관한 리포트는 거의 대부분 바르게 맞아 떨어지는 것 같은데, 작가가 시골에만 가면 그 공정성에 약간 착오가 오는 듯....


시장에서 아침 일찍 빠져나온 우리는 다시 털털 거리는 버스를 타고 2시간을 달려 레이산 에 도착...

레이산에서 운 좋게 총장으로 가는 버스를 잡아타고 보니 좌석이라고 남은 게 맨 뒷자리 뿐이다. 버스 뒷자리가 젤 요동이 심한데 어쩔 수 없지... 버스가 한번 씩 덜컥 댈 때마다 온몸이 주책없이 튀어 오르고 위장에서도 신물이 올라온다. 커브길을 하염없이 달리며 남쪽으로 향하다보니 6시간 만에 총장 도착~

이곳에서 다시 털털이 시골버스에 닭, 오리, 토끼와 함께 실려져서 (침과 담배연기는 필수 옵션~) 두 시간을 달리니 뤄샹~에 도착했다.

문제는 뤄샹에서 자오싱까지 가야 오늘의 여정이 끝나게 되는데, 이 자오싱이라는 마을로 말하자면 광시성의 북쪽 경계선과 거의 맞닿아 있는 구이저우성 최대의 둥족 집성촌이란다.

론리에서는 이곳으로 가는 두 가지 방법을 제시하고 있는데, 그중 하나는 이미 물 건너 갔고 (버스 시간이 끊겨서리...) 두 번째 안이 1시간 반을 걸어서 뤄샹에서 자오싱까지 가는 것이었다.

책은 여기에서 ‘lovely한 1시간 반의 여정 어쩌구 저쩌구, 엑설런트한 트립 어쩌구 저쩌구’ 하며 마구 찬사를 늘어놓고 있다.

그래 한번 해보지 뭐....그렇게 러브리 하다는데 한번 걸어보는 거야....

그리고는 동쪽으로 방향을 잡고 걷기 시작했다.


젠장... lovely 가 웬말이냐... 이건 deadly 아닌가....?

벌써 10시간이 넘게 버스를 타고 온 나의 몸은 이미 정상의 상태를 벗어나 있었다. 거기에 45리터 배낭까지 짊어지고, 요왕은 덧붙여서 커다란 손가방까지 든데다가 땅은 완전한 비포장 돌길....

터벅터벅 땅만 보고 걷기를 십분, 이십분, 삼십분. 드디어 오십분에 다다르자... 체면과 인내심이 바닥을 치고 몸에서 더 이상 땀도 안 빠져 나올 거 같은 상태가 되어버렸다. 이미 오도 가도 못하고 중간지점에 와버린 우리를 태워줄 오토바이 삼륜차도 없고...

차라리 아까 뤄샹에서 삼륜차가 40위엔 부를 때 그냥 약간 깎아서 탈 걸 그랬나 하는 후회가 멀멀 올라온다.

그때다~ 중국 공안 차가 우리 뒤쪽에서 다가왔다. 요왕은 저거라도 꼭 잡아타고야 말겠다고 손을 훼훼 휘두르니 일단 서긴 서는데... 계면쩍게 웃으며 타도 되냐고 물어보니 날라 오는 대답은 안 된단다.

휴우~ 할 수 없지... 자오싱의 위치를 한 번 더 그들에게 묻고는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다시 터벅터벅 걷는데, 우리 뒷모습이 어지간히도 안 돼 보였나보다.

방금 전에는 난색을 표하더니 잠시 뒤 뒤에서 빵빵!! 한다. 아... 아직은 길바닥에서 엎어질 운명이 아니군...

공안 차에 올라타니 에어컨까지 나오고, 그나저나 얼마를 달려야 한담.

단언컨대 우리가 차를 타고 온 길은 배낭을 메고 50분은 족히 걸었어야 할 거리였다. 아찔해지고 식은 땀이 송송 솟았다.

어쨌든 이렇게 물 건너 산 건너 공안 차까지 얻어 타고 온 자오싱... 구이저우 성 동부의 한줄기 오아시스 같은 곳이라고 하던데... 글쎄... 우리 시각으로는 먀오족과 둥족의 모습이나 가옥구조, 생활상이 잘 구분가지 않을뿐더러 마을은 온통 공사 중이어서 어수선한 분위기다. 이 마을의 최고 볼거리라는 북탑(鼓塔)와 풍우교風雨橋도 ‘이게 다야?’ 하는 정도... 다만 이틀 후 이곳을 떠나 다음 목적지인 싼장 방향으로 가는 길의 계단식 논의 경관은 탄성을 자아내게 했다. 완펑후버스를 타고 가는 동안 계속 이어지는 산자락의 계단식 논은 그야말로 멋진 파노라마 그 자체~

암튼 역시나 다른 소수 민족 마을처럼 마을 자체가 매력 일뿐이라는 이 소박하고 검은색의 마을에서 우리는 정체가 의심스러운 냄새가 폴폴 나는 물로 샤워 하고 이튿날은 숙소를 그 옆집으로 옮겼는데 옆집은 그런 물마저도 안 나와서 대충 물수건으로 닦아 가며 지냈다.

다 둘러보는데 체 몇 십 분이 안 걸리는 이 시골마을에서 우리는 베틀 앞에서 직물을 짜는 아줌마와 (관광객을 위한 액션이 아닌 진짜 모습...) 집안에 갇혀진 체 길러지는 통통한 백돼지들을 살짝살짝 옅보며 다니는걸로 약간 따분한 시간을 보냈던 것 같다.

식생활은 공심채(영어로는 모닝글로리, 태국에선 팍붕)와 함께하는 공심채 볶음밥과 공심채 볶음 요리 등으로 대충 때워 버렸다. 어느 야채를 시켜도 결국 나오는 건 공심채 뿐인 묘한 식당에서 연달아 끼니를 해결하고(그나마 사람들로 가장 붐비는 식당이었고 다른 식당을 찾아봐야 뭔가 시원찮은 게 나올 거 같지도 않다) 마을을 조금 돌아다니니 그나마도 할 일이 없어진다. 숙소 주인이 일러준대로 마침 뤄샹에서 열린다는 장터에 오토바이 삼륜차를 타고 구경하러 갔는데 그 역시도 별 다를 게 없는 그저 시골 장터 일뿐... 시장의 모습은 아무리 시골로 들어와도 어디나 비슷... 자오싱에서 뤄샹까지 오고 가는 동안 비포장이 얼마나 험난한지, 길 위에서 콩 볶듯이 튀는 오토바이 삼륜차 안에서 균형 잡느라 온몸에 힘을 줬더니 없던 근육이 다 불끈 솟아날 지경이었다.

삼륜차를 타고 오는 동안 시장에서 금방 사온 배를 우리에게 먹으라며 선뜻 건네주기도 하고, 우리의 발이 불편할까봐 이리저리 짐을 옮겨가며 자리를 마련해 주던 둥족 아줌마의 순진한 웃음 덕분에 길이 주는 피곤함이 상쇄되는 느낌이었다.

보드랍고 친절한 숙소 주인 아저씨(비록 물은 안나왔지만서두...)...우리가 이곳을 떠나던 비가 쏟아지던 날, 버스를 기다리기 위해 흠뻑 젖은 체 로 들어서는 우리에게 사람 좋게 웃어 주던 기념품점 아저씨... 길을 묻는 내 손을 이끌고 직접 목적지까지 데려다 준 식당 아줌마 등등... 유순하고 친근한 둥족 사람들로 가득한 자오싱에서 2박을 하고 우리는 광시성으로 향한다....

아... 이곳을 빠져나와 다음 목적지로 가는 여정이 우리를 까마득하게 만든다.



자오싱 마을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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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덕 위에 올라 내려다 본 자오싱. 집들 사이로 북탑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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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탑과 풍우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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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우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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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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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탑의 조각 장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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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Comments
알뜰공주 2020.08.31 16:05  
친절했던 숙소아저씨와 삼륜차를 함께 탔던 아주머니의 인정이 따스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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