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리... 좌 창산, 우 얼하이의 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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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리... 좌 창산, 우 얼하이의 마을

고구마 1 681

(2005년 글입니다.)



리장-따리간 이동 시간이 가이드북에서 나온 것 보다 훨씬 짧은 3시간 남짓인 걸로 보아하니 아마도 늘어가는 관광단을 실어 나르기 위해 새 길과 도로가 마구 건설 되었나부다.
버스는 우리를 따리 동쪽성문의 고속도로변에 떨궈 주고는 진짜 목적지인 샤관으로 부웅~ 달려가 버렸다.
배낭을 메고는 도저히 걸어낼 수 있을 거 같지가 않아 5위엔을 내고, 따리에 오면 묵어보리라 생각했던 넘버쓰리 게스트 하우스까지 봉고를 타고 이동한다.
사실... 청두의 ‘심스 코지’에서 처음 지내봤던 도미토리 경험은 그다지 편안한 게 아니었다. 아마도 처음이라는 낯 선 감정과 그 방에는 여자가 나 혼자 뿐이라서 약간 편치 못했던 것도 있고, 게다가 옆 침대의 일본인 아이가 새벽 3시에 들어와 불을 번쩍 켜버리는 싸가지 없는 행동을 하는 바람에 잠을 설쳐버린 것도 큰 원인 일듯 하다. 그 새벽에 잠이 깨버린 탓에 나는 도미토리에서 나와 3층 옥상에 멍하니 혼자 앉아 있다가 온 적이 있었다. 역시 난 도미토리 체질이 아니군.... 하면서 말이다.
하지만 모든 것이 다 그러하듯 처음이 어려운가 보다. 호도협 트레킹 하면서 묵어본 하프웨이 게스트 하우스에서 지내보니 또 왠지 약간의 자신감도 붙고, 무엇보다 경비를 아낄 수 있다는 게 큰 매력~~

한국인이 운영하는 넘버쓰리는 널찍한 방에 2층 침대가 아닌 4개의 단층침대 밖에 없는 도미토리라서 지내는 동안 사람들에게 치인다거나 북적인다는 느낌은 들지 않았지만, 상대적으로 적은 화장실과 샤워실의 개수는(각각 2개씩...) 좀 미진한 느낌을 주는 곳이었다. 처음엔 하루 이틀만 머물다가 다른 숙소의 더블룸으로 옮기려고 작정했는데, 웬걸 지내보니 도미토리 생활도 나름 잼 있고 그럭저럭 지낼 만 한데다가 한국인 여행자들과 지내고 싶은 열망에 따리에 있는 닷새 동안 계속 이곳의 도미토리에서만 지내게 되었다.

- 나에 대한 재발견을 한 거 같애... 난 도미토리에서는 잠이 안 오는 사람이라고 생각 했는데, 그럭저럭 지내보니 적응이 되는 거 같어....
- 그렇지? 맨 날 둘이서만 있으면 뭔 재미겠어... 꼭 사람들 하고 이야기 하지 않아도 도미토리에서 있다 보면 덜 심심하고 시간도 잘 간다.

따리의 넘버쓰리 게스트하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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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장의 높아져만 가는 유명세에 밀려 따리는 요즘 상대적인 불경기에 시달리고 있다고 했다. 앞으로도 점점 그럴 것인지, 아니면 금방 그만의 매력을 되찾아 여행자들을 불러 모을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불경기고 뭐시고 간에 이곳에 오니 정말 살 것 만 같았다. 숨이 쉬어지는 느낌이다.....
따리 고성의 규모는 무척이나 소박한 것이어서 고성의 남문에서 북문까지 걷는데 30분 정도면 충분하고, 백패커 여행자들의 주 활동 거리인 후궈루와 런민루는 그 끝에서 끝까지 가는데 15분 정도면 거뜬한 곳이다. 느릿느릿하게 걸으면서 둘러본 후궈루의 모습이 무척이나 낮이 익다고 느껴졌는데, 도로변으로 삐죽 나온 탁자와 의자에 서양인들이 둘러 앉아 맥주를 들이키는 모습이, 아하~ 방콕의 카오산 로드와 비슷한 모습이라며 우리는 입을 모았다.
도시의 전경이나, 스타일만 본다면 분명히 리장의 완승이지만... 그나마 숨 쉴 수 있는 한적함을 우리에게 선사해줬던 곳... 따리였다.
리장이 나시족의 고향이라면 이곳 따리는 바이족白族의 고향이라는데, 사실 소수민족에 대해 별 조예가 없는 나로서는 그 민족이 입고 있는 의상으로 대충 구분을 해낼 뿐이다. 뭘 모르는 내가 봐도 지금 까지 본 소수민족 중에서는 제일 패셔너블하고 나풀나풀한 복장을 갖추고 있는 걸로 봐서 '백족'이란 명칭이 그냥 저절로 붙은 건 아닌 듯.
사실 지금 현재의 따리 고성의 모습도 원래의 모습이라기 보다는, 재개발과 재건축으로 옛것 비스므리 하게 ‘증축’ 내지는 ‘재현’해 놓은 것이라는데, 아무래도 미적인 센스가 좀 떨어지는 사람이 공사를 맡았는지, 아니면 공사도중에 돈이 좀 떨어져버렸는지 약간은 가짜 냄새가 좀 나는 게 흠이지 싶다.

따리 고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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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착한 다음날 마을을 어슬렁거리며 둘러 다니다 보니 눈에 띄는 투어가 여행사마다 붙어 있다. 물어보니 오늘이 무슨 횃불 축제라는데, 우린 첨에 이 축제가 여행자들을 끌어 모으기 위해서 일주일이나 한 달에 한번 정도 늘 열리는 관광객들의 유흥을 위한 축제 인줄로 알았다.
근데 알고 보니 음력 6월 24일에 하는 그러니까 일 년에 단 한번 밖에 없는 ‘불로 귀신과 잡귀를 쫓는’ 축제란다. 오호~ 운도 좋은 거라~
아하... 그래서 오늘따라 ‘따리가 불경기’라는 소문과는 거의 어울리지 않게 관광버스가 바쁘게 몰려 들었구만... 한적했던 시내는 순식간에 몰려든 버스와 여행자들로 금세 북적이고, 숙소도 금방 full로 꽉 차버리고 마을은 순간 활기가 돌았다.
이 축제에 대한 상세한 정보를 알기 전 시장구경을 간 우리는, 어른이고 아이고 할 거 없이 전부 다 뾰족하고 커다란 나무를 낑낑거리며 들고 가는걸 보고는 ‘따리가 생각보다 엄청 시골인가벼... 아직도 장작불 때우나봐...’ 같은 멍청한 소리를 했었다.

이 장작에 나름대로 빨간 사과를 매달아 이쁘게 데코레이션을 하기도 하고, 하여튼 마을 전체가 엄청나게 분주해져 버렸다.
어두워지자 방에 있던 사람들이 한꺼번에 온통 거리로 쏟아져 나오고, 집집마다 문 앞에 뾰족하게 깍은 나무를 세워두고 불을 지피기 시작하는데, 그냥 불만 붙이는 게 아니라 활활 불타는 나무에다가 송진가루까지 팍팍~ 뿌려서 순간적인 화염을 펑~ 하고 일으킨다.
태국의 신년행사인 쏭끄란에서 물 대신 불을 대입한 모습이라고나 할까....

횃불 축제의 모습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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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전체가 불과 화염 연기로 금방 덮히게 되었다. 처음 한 두 시간은 흥겨운 나머지 사람들과 섞여서 마구 쏘다니거나, 숙소에서 마련해준 공짜 술과 고기를 향해 바쁘게 젓가락질을 했는데... 시간이 지나자 눈에서 눈물이 막 쏟아지고 연기 때문에 정신이 아득해져 버렸다. 게다가 인정사정 안 봐주고 확~ 뿌려대는 송진가루가 일으키는 화염은 사실 약간 위험하기도 하고, 연기는 계속 계속 피어올라 최루탄 살포 한 거랑 비슷한 분위기가 나버렸지만........그래도 축제는 즐겁다.
공짜술과 분위기에 정신이 나간 요왕은 밖에서 놀던지 말던지 일단 나는 모기향 맡은 모기처럼 어찔어찔 한 채로 숙소에 들어와 누워서 평화롭게 잠이 들었다. 비록 몸에서는 화약 냄새가 펄펄 진동을 하지만 서도 말이다. 하지만 그 평화로움도 잠깐...
같은 방을 쓰는 한국인 아저씨가 이내 들어와서 코를 골기 시작하는데... 정말 거짓말 안하고 트랙터로 밭가는 소리를 밤새도록 내는 거다. 음... 이런 것이 바로 도미토리의 함정 인가...?
경운기 한 대... 경운기 두 대... 경운기 세대...
코를 골다 골다가 어느 순간엔 잠깐 숨을 멈추더니만 곧 케케켁~ 숨 끊어지는 소리를 내면서 다시 코를 골기 시작하는데... 그 아저씨가 코 골 때는 신경질 나고 숨 끊어지는 소리 낼 때는 걱정되고... 이래 저래 잠은 다 잤다.
살금살금 다가가서 코에 빨래집게를 꽃아 주고 싶은 걸 밤새 내내 참았다. 아... 저 아저씨랑 내일도 한방을 쓰게 된다면 좀 곤란한걸...(다행히 그날 새벽 일찍 어디론가 휘리릭~ 떠난 버린다. 아저씨... 웬만하면 싱글룸을 쓰는 센스를 발휘해 주세여... 흑흑흑...)
그러고 뒤척이고 있는데, 누군가 문을 탕탕탕!!! 두드린다. 알고 보니 술에 취한 요왕이 우리 방 앞 의자에서 반 졸도 상태로 꾸벅꾸벅 졸고 있다가, 모기한테 왕창 물어뜯기는 바람에 혼수상태에서 퍼득! 깨어나 방안으로 비실비실 피신해 들어온 것...

오늘이 귀신과 잡귀 쫓는 축제라는데, 귀신을 쫓아 낼 게 아니라 저 두 사람을 쫓아내야 내가 편할 거 같다고 궁시렁거리며 억지로 잠을 청한다.
다음날 온통 연기를 뒤집어쓴 옷을 세탁하느라 숙소의 세탁기는 쉴 틈이 없이 돌아가고 우리의 콧구멍 안에서는 더 이상 검을 수 는 없는 깜장색 먼지가 자꾸만 자꾸만 나왔다.
모기한테 실컷 물어뜯긴 요왕의 허벅지는 빨간 모기자국이 피부병처럼 쫙~ 깔려 있다. 엄청나게 도수가 높은 술을 마신 덕분에 술병이 나서 계속 끙끙 신음소리만 내며 기절을 했는지 잠을 자는지 모르게 침대에 널부러져 있다. 다 죽어가는 목소리로 모기 물린 다리 긁을 힘도 없다고 읍소하며 하루 종일 이불 뒤집어쓰고 누워 있는 요왕의 앓는 모습을 봐야하는 후유증이 있긴 했지만서두...
그럼에도 불구하고, 화려하고 이색적인 소수민족의 횃불 축제... 일 년에 딱 한번뿐인 너무너무 멋진 광경이었다.

그후 따리에서 우리가 머무르면서 한일은....
따리 근교의 삼탑사를 관람 하고 ( 별 볼일 없는 탑 3개 띨렁 서 있는데 입장료는 52원... 날 강 도 들...)

약간의 서스펜스를 느끼며 체어리프트를 타고 창산에 올라 도시 전체의 모습을 감상한일...
이 창산은 그냥 걸어 올라가든지 또는 말을 타고 가든지 아니면 우리처럼 체어리프트(스키장에서 볼 수 있는 의자)를 타고 가는 3가지 방법이 있는데, 걸어 올라가는 방법은 경험자, 비경험자 할 거 없이 거의 비추하는 걸로 봐서 뭘 타고 올라가든지 타고 올라가는 게 좋은 거 같다. 왜냐면 걸어 올라가는 길이 체어리프트가 왱왱 다니는 바로 아랫길이라서, 걷다 보면 자괴감만 든다나 뭐라나... 하여튼 걸어 올라갔다 내려온 사람의 말이다.

그리고 얼하이 호수에서 유람선을 타고 호수 건너편으로 건너가 몇 몇 개의 마을과 ‘남조풍정도’라는 콧구멍만한 섬을 본 것....
얼하이 호수가 얼마나 큰지 남조풍정도에 내리니 섬 주변으로 마치 해변처럼 파도가 쳐댄다. 커다란 미륵보살이 우뚝 서 있는 이 섬은 역시나 커다란 페리선이 주기적으로 관광객들을 토해내는 전형적인 관광지였다.
여기서도 요왕은 사진 찍는다고 홀로 앞서 가버리는 바람에(표, 여권, 돈, 은 요왕이 다가지고 다니는데...) 나는 한동안 땡전 한 푼 없는 서글픈 미아 신세가 되기도 했다. 이 일 이후 돈 여권 카드 등등 모든 걸 분리해서 각자가 가지고 다니니 왠지 덜 불안하고 홀로 떨어지더라도 아쉬울 것이 없는 것이... 진작부터 이럴 걸 후회된다.

그리고 월요일마다 열리는 원주민들의 7일장 샤핑 시장과, 호수 근처의 시저우라는 마을을 어슬렁거리며 꾸며지지 않은 진짜 전통 가옥의 모습을 구경하고 다녔었다.

호수에 비친 삼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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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핑 시장의 어느 식당. 사람들이 돼지고기 육회를 먹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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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저우의 바이족 전통 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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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산 체어 리프트를 타고 내려오면서 본 따리 시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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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를 타고 호수 건너편으로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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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조풍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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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을 자꾸자꾸 잘만 흘러서 이렇게 여기서 뭉개고 있다가는, 날이 가면 갈수록 더 움직이기가 싫어질 것만 같아서 다시금 늘어놓았던 물건들을 정리하며 배낭을 꾸리기 시작 한다.
중국 땅에 발을 디딘지도 50일이 넘어간다. 시간이 지날수록 이동속도도 약간씩 느려지고, 여행도 여름날 김빠진 맥주 마냥 매너리즘의 함정에 걸린 것처럼 느껴진다.

중국 사람과 중국 음식에도 서서히 지쳐 가는 것이... 조금 힘들다...
이럴 땐 보약을 먹어줘야 하는데... 김치찌개, 떡볶이, 순대, 감자탕, 쫄면, 짜장면, 빙빙바. 보쌈김치... 으으으..나의 보약들.....그립다...
1 Comments
알뜰공주 2020.08.31 15:18  
중국에 50여일이나 있었으니 얼마나 집이 그리웠을까요.
너무 힘들고 매끼 무엇을 먹을까 고민도 많았을 듯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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