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쉬움 없는 이별... 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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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쉬움 없는 이별... 리장

고구마 1 359

(2005년 글입니다.)



호도협 트레킹을 한 후 짐을 맡겨두었던 숙소로 돌아왔더니만 우리가 묵었던 방이 아닌 다른 방을 안내해 주었다. 췟~ 우리가 전에 묵었던 곳이 이방 보다는 더 좋았는데... 그 방에 손님이 있으니 할 수 없지...

사실 그전에 묵었던 방도 그다지 편치는 않았다. 내 침대가 앉자마자 판때기가 부러지며 푹 꺼지는 바람에 침대 수리하는 동안 내내 밖에 있어야 했고(이미 직원도 알고 있는 부실함 이었다. 절대 내 체중의 잘못이 아니다. 쩝~), 새벽에 비몽사몽인체로 화장실 갔던 요왕은 변기 수조에 물이 안차는 바람에 그거 고치느라고 내내 고생을 했단다. 내부에 줄이 끊어졌는데 그 끈 잇는 것도 제대로 안되는데, 거기다가 변기 덮개까지 바닥에 떨어뜨려 십 년 감수를 했다나 뭐라나... 운 좋게 깨지진 않았지만...
변기를 다 수리하고 나오는데, 덜거덕 거리는 소리에 잠이 깬 내가 화장실문 밖에 서 있는 것도 모르고  무심결에 문을 열고 나오는 바람에, 머리를 산발한 채로 서있는 내 모습보고 기절초풍해서 심장 멎는 줄 알았단다.
아아~ 머나먼 타국에서 숙소 변기 고치다가 마누라 모습에 놀라 심장마비 걸려 죽는다면, 세상에 이보다 더 나쁜 팔자가 어디 있을까...
어쨌든 새로 배정받은 방은 약간은 더 좁고 습기도 더 많았지만, 그럭저럭 아쉬운 대로 묵기로 했다.

하프웨이에서 해결 못했던 여러 가지 자연현상도 해결하고 어제 오늘 같이 트레킹 했던 한국분들 만나 마마 푸에서 공짜 스테이크도 얻어먹고 즐거운 맘으로 숙소로 돌아왔는데...

켁!! 이게 왠 변괴람... 변기가 막. 혔. 다.

그 사실을 알아버린 후 그냥 한순간은 시간이 딱 멈추는 것만 같았다. 주책스럽게도 뭔가가 꾸역꾸역 삐집고 나오는 그것의 덮개를 닫아버리고 모든 물품을 다 빼낸 후 화장실문을 걸었다. 결단코 뭔가 문제될 짓을 한 적이 없는데... 도대체 뭐가 잘못된 걸까... 화장실문 너머로 괴물이 있는 것만 같다.
원래는 수호라는 포스트 리장을 가 볼려고 했는데 이래저래 쌓이고 쌓여 이곳을 빨리 뜨고만 싶어졌다.

- 아... 정말 여기 더 이상 있기 싫어... 빨리 리장을 뜨고 싶어.
- 그러자... 짐 싸자...

편한 것과는 거리가 먼 선잠을 자고 난 후 다음날 새벽 일어났더니, 그 사이 둘 다 안색이 수척해져버렸다. 흑흑...

- 내가 무슨 꿈 꿨는지 알아? 젠장... 꿈에서까지 시달렸다니까... 글쎄 꿈속에서 오늘이 내 생일인거야... 그래서 친구들이 케이크 가져와서 불 끄랬는데 케이크 상자 열어보니 똥 덩어리에 촛불이 꽂혀져 있는 거 있지...
나 참.. 황당해서리...
그리고 이 숙소에서 무사히 나와 터미널에서 따리 가는 차 기다리고 있는데, 숙소에 배낭을 놓고 온 거야..그래서 다시 여기로 와야 된다며 우는 꿈 꿨어...

- 그나마 너는 좀 낫다... 내가 꾼 꿈은 숙소 체크 아웃하는 데, 온 숙소 스텝들이랑 동네 사람들이 화장실 체크해야 된다면서 우리 방으로 꾸역꾸역 몰려오는 꿈 꿨어... 꿈속에서도 얼마나 당황스러웠는데...

역시 체크인과 체크아웃을 전담하는 요왕답게 꿈도 그런 걸 꿨구먼... 고장이 난걸 말해줘야 하나 말아야 하나 망설이다가 결국은 그들이 저절로 알게 될 것을 바라며 아침 일찍 그곳을 나왔다.
그나마 이 숙소에 있는 공용 화장실로 가봤더니, 거기에도 누군가가 작업을 한 후 물을 내리지 않은(또는 못한... ?) 만행을 저질러 놓은 꼴을 보고야 말았다. 정말 만정이 뚝 떨어져서 무거운 짐을 졌는데도 불구하고 터미널로 향하는 발걸음이 날개를 단 듯 빨라졌다.
결코 한적함이라고는 모를 거 같은 이 리장도 우리가 이곳을 떠나오는 이른 아침에는 쓰레기차만 한가로이 다니고 있었다. 결국 우리가 그토록 원하던 한가함을  떠나는 마지막 시간에서나마 느낄 수 있어서 다행이라 생각 위로하면서 이곳에서 총총히 사라졌다.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예정보다 약간 일찍 이곳을 떠나게 되었지만, 아쉬움 같은 건 없었다.
중국인들의 거대한 놀이터로 변해 버린 이곳이 앞으로도 전혀 그리워 질 거 같진 않다.


방 4개 달랑 있는 지낼만한 숙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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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Comments
meiyu 2020.12.23 12:19  
ㅎㅎㅎㅎㅎㅎ
아침부터 배꼽 빠지게 한
고구마님 감사해요.
2년 전 갔던 리지앙의 모습이 생각나네요.
나는 아침 산책 나갔다 예쁜 집 공사하는거 구경하다
그 집에서 차 대접 받은 좋은 기억이 있습니다만,
완전히 상가로 바뀐 리지앙 읍내의 모습에
엄청 실망했었습니다.
수허 고성도 모두 상가들입니다.
그나마 덜 복잡하기는 했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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