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도협 트레킹 - 안했으면 후회 할 뻔했다.
(2005년 글입니다.)
사실 호도협 트레킹은 내가 예상하기에 그다지 벅찬 건 아니었다. 왜냐면 예전에 쏭판에서 만났던 여대생들이 2박3일의 말 트레킹을 끝낸 후 ...
- 아이구~ 우리는 호도협 트레킹 할 때 정말 힘들다고 그랬었는데요, 말 트레킹에 비하면 그건 암껏도 아니에요. 그리고 우리는 말이 타고 싶어서 24굽이도 반은 걷고 반은 말 타고 갔었는데요. 말 타고 가는 게 더 무서웠어요. 자꾸 말이 풀 뜯어 먹을라고 절벽 쪽으로 슬금슬금 가고... 차라리 그냥 걷는 게 훨씬 낫다니까요. 별로 힘도 안 들어요.
라고 했던 말을 기억하기 때문이다.
얼마 전 죽은 이스라엘 사람은 어쩌다 불의의 사고를 겪게 된 걸까... 아마도 그날은 비가 많이 와서 돌덩이가 절벽에서 떨어졌거나 폭이 좁은 길에서 미끈한 말똥에 미끄러졌을지 모르겠다.
천만다행으로, 리장에서도 내내 비가 부슬부슬 내려서 사람 심난하게 하더니만, 우리가 호도협 트레킹하는 날 부터는 연일 날씨 맑음이다. 대부분의 짐을 숙소에 맡기고 최대한 단촐하게 짐을 챙겨 숙소에서 나왔다.
리장에서 우연히 만나 같이 트레킹을 하기로 한 부부 여행자 분들과 리장에서 출발해 챠오터우에 도착하니 벌써 11시 반이였다.
어찌된 게 중뎬에서 리장 오는 게 3시간 반 걸렸는데, 똑같은 길을 리장에서 챠오터우 가는 게 2시간 반이나 걸린다냐... 정말 알 수 없는 노릇이지만 그건 별로 중요한 게 아니지. 자~ 어쨌든 출발!!!
호도협 역시 중국인 여행자들의 사랑을 듬뿍 받아주시고는 있지만, 그들은 거의 차로 죽죽~ 이동해서 협곡을 들여다보는 루트라서 우리와는 전혀 마주칠 일이 없었다. 우리의 트레킹 루트는 혈기왕성한 중국인 대학생들과 서양인 여행자들의 것~
자 출발이다~~~ 하며 출발 하긴 했는데 초입부터 어디로 가야 될지 방향잡기가 조금 애매해서 서성거렸다.
그때 짠~ 하고 나타난 마부들이 길을 가리켜 주는 대로 방향을 잡고 보니 그 다음 부터는 주욱~ 한길이다.
평평한 길을 걷다보니 약간의 오르막도 나오고 약간의 내리막도 나오고, 그럭저럭 평이한 수준의 길이 한참을 이어진다. 우리랑 같이 조우한 부부 여행자 분이 나눠주는 빵도 먹고 이야기도 하며 동네 뒷산 등산하듯이 설렁설렁 걷다 보니 가벼운 산행 나온 거 마냥 앞서거니 뒷서거니 하며 걸었다.
근데! 이 즐거운 산행을 방해하는 훼방꾼이 있었으니... 다름 아니 말과 마부들이었다.
이 사람들의 목적은 우리가 지쳐서 말에 올라타는 것~ 우리와 약간의 간격차를 두고 계속 따라오는데 너무 너무 신경이 곤두서는 거다. 뒤에서 계속 ‘너는 곧 지칠 것이다. 그리고 탈 것이다’ 하는 최면요법이 막 날라 오는 것 같은데다가, 말 모가지에 단 딸랑 거리는 방울소리도 신경질을 돋운다.
이건 마부가 말을 모는 게 아니라, 나를 몰아가는 것 같아서,,, 나중에는 기어 올라가는 한이 있어도 내 두발로 올라가야지 하는 묘한 오기가 발동해버렸다.
게다가 산뜻해야할 등산로에 군데군데 싸질러 놓은 말똥도 눈에 곱게 보이지 않는 것이... 쩝쩌구리.. 마부 미워!
전망이 예쁜 숙소, 차마객잔
점심시간이 될 때까지 딴 생각 안하고 열심히 걸으니 ‘나시 게스트하우스’가 짠~ 하고 나왔다.
사실 겨우 두시간 정도 밖에 걷지 않았는데도 벌써 대부분의 여행자들의 티셔츠는 땀으로 홈빡 젖어버렸다.
분명히 예전에는 몇몇의 모험심 강한 백패커들이 끼니를 해결하고 갔을 이 게스트 하우스가 지금은 트레킹 여행자들의 점심을 대주는 함바집 비슷하게 기업화 되어버렸다.
시간차를 두고 전부 뱃속을 불린 후, 다시 걷기 시작...
조금 걸으니 24굽이(또는 28굽이라고도 하는데 뭐가 정확한 건지는 모르겠다.) 가 출현했다.
아아... 여기서부터는 꼬불꼬불한 길이 계속 오르막으로 이어지는데, 이것만 넘으면 그 담길은 계속 평탄해서 걱정 할게 없다지... 좋아좋아...
도마뱀도 보고...
딱정벌레도 보고...
상도협
점심을 먹은 나시 게스트하우스
나시 게스트하우스에서부터 계속 따라붙는 마부들의 방울소리는 여기서부터 더욱 선명하게 들리기 시작한다. 대부분 걷기를 포기하고 말에 의지해 가는 사람들이 여기에서부터 슬슬 나오기 시작한단다.
다리가 짧은데다 날렵한거랑은 거리가 먼 나는 사실 호도협 초입에서부터 벌써 ‘오늘의 먹잇감’으로 찍혀서 계속 눈독 들여 지고 있다는 걸 눈치 챘다. 거슬리는 방울소리에 더 독이 올라 걷고 걷고 또 걷다 보니 결국은 평지에 도달... 무릎이 약간씩 삐거덕 거리고 가만히 서있는데도 다리가 주책없이 덜덜덜덜 떨리긴 하지만, 드디어 마부꾼들도 다들 사라져버리고 정말 조용하고 평화로운 길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사실 이러한 신경 거슬림은 나만의 감정은 아니어서 호도협을 트레킹한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눠보면 일반적으로 갖게 되는 감정인 듯 했다. 어떤 사람은 방울소리를 들으며 ‘나는 별에 나오는 스테파니야.. 그리고 저 방울소리는 양떼들을 모는 목동의 소리야... ’라고 자기최면을 걸기도 했다는데 그렇게 최면까지 걸어야 한다는 게 불편하다는 것의 반증일 수도 있겠다.
그리고 따리에서 만난 중국어 연수하는 여대생들이 한말에 의하면 끝까지 말을 안타고 자기 힘으로 24구비를 넘는 자기들을 향해 마부들이 중국말로 좀 껄쩍지근한 말을 수근거렸단다. 알아들었지만 모른 척 하는 게 그상황에서 더 나을 거 같아서 그냥 아무소리 없이 참았는데 기분은 나빴었다고 하는 거 보니 우리도 우리가 알아먹지를 못해서 그렇지 혹시나 그런 나쁜 말에 노출된 적이 있지 않았나 싶어 기분이 착찹해졌다.
마부에 대해서 나쁜 소리를 하고 싶지는 않지만, 다음날 아침 하프웨이 게스트 하우스에서 만난 한국인 대학생(그는 우리보다 약간 앞서 가던 사람이었다.)이 전하는 바에 의하면 24굽이를 지나는데 갑자기 비명소리가 들려서 내려다보니 말과 마부가 길도 아닌 산비탈을 나르듯이 획획~ 내려가더라는 거다.
궁금해서 올라오는 사람 붙잡고 물어봤더니, 마부가 중국인 대학생의 짐을 홀랑 훔쳐서 그 길로 달아나 버렸다는 것이다. 이미 24굽이 중턱쯤에 오면 누구나 다 숨이 턱에 차도록 힘이 드는데, 그 상황에서 물건을 도난당하면 사실 쫒아가는 건 고사하고 소리도 잘 안 나올 지경인데, 마부는 완전히 날듯이 산을 내려가고 있으니 두 눈 뻔히 뜨고 후들거리는 발만 동동 구르는 불쌍한 지경에 처해 버리는 것...
아마도 마부도 그걸 알고 그 시점에서 물건을 훔친 거 같은데, 어쨌거나 사람 안 다친 게 다행이다 싶다.
오른쪽으로 위치한 옥룡설산은 우리가 걸어가며 방향을 달리 하는 것에 따라 조금씩조금씩 그 위세를 드러내는데, 정말 멋있는 산세였다. 나처럼 산 안 좋아하는 사람도 이 트레킹만큼은 해볼만 하다고 느껴지는데, 아마도 등산 좋아하는 사람 데려다 놓으면 좋아서 환장할 듯... 싶다.
24굽이 꼭대기 부근에 있는 작은 노점
노랗고 빨갛고 파란 화살표들이 가는 방향을 알려준다
산을 걸으며 바라다 보이는 멋진 풍경들
- 우리 테마여행 하나 만드까... 살 빼고 싶은 사람들 대상으로 ‘책임감량 한 달에 8킬로 빼주는 중국 오지 여행’ 이런 거 말이야... 한 달동안 주기적으로 여기 오르락 내리락 하면 가능할거 같은데
- 아마 그런 식으로 하다간 한 달에 한명은 혼수상태에 걸릴걸... 아마 돈 더 꼴아 박거나 은팔찌 차고 깜방 가게 될지도 몰라...
- 그런가... 역시 우리는 사업가 체질이 아니군...
엄청나게 마셔주는 물이 무색할 정도로 땀도 비 오듯이 흘러서, 그 긴 시간 내내 화장실에 한번 안 가고 씩씩하게 잘 걷다보니, 드디어 오늘 우리가 묵기로 한 하프웨이 게스트 하우스가 나왔다.
오전 11시 반에 시작해서 저녁 7시 반에 끝났으니, 새벽 일찍 시작한다면 중도협에 있는 티나까지 가는 건 일도 아닐 듯 하다. 실제로 그렇게 간 사람들도 많은걸 보니 체력만 받쳐 준다면 해볼 만 할 듯하다...
지금도 증축을 계속하고 있는 이곳은 낡은 도미토리와 새로 지은 듯 한 산뜻한 더블룸으로 꾸며져 있는데, 더블룸은 베이징에서 온 중국인 대학생 커플이 벌써 선점해놓고 있었다. 아마도 전화로 이미 예약을 한 거 같은 눈치인데, 살짝 훔쳐본 그 방의 전경은 오오~~ 백만불짜리 전경 이었다.
하프웨이의 식당에서 바라보는 마운틴뷰는 엄청 멋있긴 한데, 바로 밑에 화장실이 있어서 주기적으로 역한 화장실 냄새가 밥 먹는데 꾸역꾸역 올라왔다. 경치가 멋있어서 나름 상쇄되긴 했지만 좀 거시기 한건 사실이었다.
우리가 그러고 밥 먹고 있을 때 걔네들은 자기방에서 룸서비스 시켜 먹는다... 오오~ 부르조아들...
부른 배와 지친 몸에 올 건 잠 밖에 더 있겠나... 늦은 저녁을 먹고 베개에 머리를 기대니 금방 잠이 쏟아져서 다소 껄적지근한 숙소의 환경 따위는 잊고 쿨쿨 잠들어 버렸다.
하프웨이 게스트하우스 전경
식당
다음날 아침을 해결하고 나머지 트레킹을 끝내야 하는 많은 여행자들이 식당에서 얼렁 챙겨먹고 후다닥 짐을 챙겨 다시 걷기 시작했다. 이른 아침인데도 숙소에서 빠져나가는 무리들을 보자니, 우리도 계속 여기서 밍기적 거리고 있어서 될 일이 아닌 듯...
트레킹 첫날, 옥룡설산의 자태에 반했다면 둘째 날의 선물은 멋지구리한 폭포였다. 우기여서 물의 양이 불어서 그런건지, 아니면 원래 사시사철 그런건지는 모르겠지만 하여튼 좍좍 쏟아지는 폭포줄기를 보니 오오오~~하는 감탄 소리가 저절로 나올 정도였다.
둘째 날의 트레킹은 넉넉잡고 두 시간 잡으면 끝나버리는 소프트 한 것이어서 우리는 점심 먹을 시간도 되기 전에 티나 게스트 하우스에 도착했다.
사진으로는 잘 가늠이 안 되지만 무지 큰 폭포다.
저 찻길까지 내려가면 등산은 끝...
부록으로 티나게스트 하우스에서 중도협으로 내려가면 나타나는 호도석(계곡 중간에 있는 바위로 호랑이가 이 바위를 한번 딛고 계곡을 넘었단다)을 잠깐 봐주고 오는 걸로 이 호도협 트레킹을 마치게 되었다. 호도석은 사실 별 감흥은 없었지만 그래도 여기까지 온 게 아까워서 곁다리로 봤었다. 다른 한국인 여행자들은 위험하기도 하고 별로 흥미도 없다며 그냥 티나에서 기다렸는데 그래도 무방할 정도의 그저그런 감흥이라고 느꼈다. 물론 이건 우리만의 느낌이고 다른 사람들은 멋지다고도 하니 가볼만한 가치는 있을 듯 하다.
중도협
이곳에 오기전 중뎬에서 만난 한국인 여행자들이 호도석 부근의 소용돌이치는 물결 속에서 웬 흑돼지가 죽은채로 대가리와 앞발만 위로 내놓은 채 뱅글뱅글 돌아가고 있는 모습을 목격 했다는데(물이 소용돌이치니 어디 빠져나가지도 못하고 계속 뱅글뱅글뱅글... 쩝...) 그말 들었을 때는 돼지한텐 미안하지만 너무 웃겨서 무진장 하게 웃었는데, 물결에 혹시라도 사람이 휩쓸리면 그 도야지 신세랑 별반 다를 게 없을 거라고 상상하니 뒷목이 쭈빗하다.
다른 서양인 무리들은 티나에서 조금 쉰 후 다시 하도협을 향해 차도를 따라 서서히 사라져 버렸다. 역시 서양인들은 끝장을 본다니까...
나 같은 사람도 할 수 있는 호도협 트레킹... 그다지 힘들지 않지만, 그에 비해 보여주는 것은 훨씬 많은 괜찮은 경험이었다. 단! 이건 날씨가 좋을 때 이야기일 뿐... 우기에는 절대 이스라엘 사람을 잊어서는 안 될 것 같다. 왜냐면 빵차를 빌려 챠오터우로 나오는 길 곳곳에도 돌이 무너져 내린 곳, 척 봐도 비오면 상당히 위험해 보이는 곳 등이 눈에 보였는데, 트레킹 길은 오죽할까 말이다.
티나 게스트하우스 앞에 정차해 있는 빵차를 4명이 리장까지 가는데 200위엔에 하기로 흥정하고 올라타니, 그제서야 쌓였던 피로가 세포에서 스물스물 기어나오는거 같았다.
이 산을 타고 난 후 요왕이 내게 한말은... 드디어 나의 기원을 최종적으로 알아냈다는 것이다.
틀림없이 선조가 동남아 출신 고산족 일꺼라나... 쉬어가자는 요왕의 옷깃을 잡아끌며 계속 앞으로 나아가자며 발을 쿵쿵 굴러대는 내가 야속했다는데,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모를 말이다...
- 아이구~ 우리는 호도협 트레킹 할 때 정말 힘들다고 그랬었는데요, 말 트레킹에 비하면 그건 암껏도 아니에요. 그리고 우리는 말이 타고 싶어서 24굽이도 반은 걷고 반은 말 타고 갔었는데요. 말 타고 가는 게 더 무서웠어요. 자꾸 말이 풀 뜯어 먹을라고 절벽 쪽으로 슬금슬금 가고... 차라리 그냥 걷는 게 훨씬 낫다니까요. 별로 힘도 안 들어요.
라고 했던 말을 기억하기 때문이다.
얼마 전 죽은 이스라엘 사람은 어쩌다 불의의 사고를 겪게 된 걸까... 아마도 그날은 비가 많이 와서 돌덩이가 절벽에서 떨어졌거나 폭이 좁은 길에서 미끈한 말똥에 미끄러졌을지 모르겠다.
천만다행으로, 리장에서도 내내 비가 부슬부슬 내려서 사람 심난하게 하더니만, 우리가 호도협 트레킹하는 날 부터는 연일 날씨 맑음이다. 대부분의 짐을 숙소에 맡기고 최대한 단촐하게 짐을 챙겨 숙소에서 나왔다.
리장에서 우연히 만나 같이 트레킹을 하기로 한 부부 여행자 분들과 리장에서 출발해 챠오터우에 도착하니 벌써 11시 반이였다.
어찌된 게 중뎬에서 리장 오는 게 3시간 반 걸렸는데, 똑같은 길을 리장에서 챠오터우 가는 게 2시간 반이나 걸린다냐... 정말 알 수 없는 노릇이지만 그건 별로 중요한 게 아니지. 자~ 어쨌든 출발!!!
호도협 역시 중국인 여행자들의 사랑을 듬뿍 받아주시고는 있지만, 그들은 거의 차로 죽죽~ 이동해서 협곡을 들여다보는 루트라서 우리와는 전혀 마주칠 일이 없었다. 우리의 트레킹 루트는 혈기왕성한 중국인 대학생들과 서양인 여행자들의 것~
자 출발이다~~~ 하며 출발 하긴 했는데 초입부터 어디로 가야 될지 방향잡기가 조금 애매해서 서성거렸다.
그때 짠~ 하고 나타난 마부들이 길을 가리켜 주는 대로 방향을 잡고 보니 그 다음 부터는 주욱~ 한길이다.
평평한 길을 걷다보니 약간의 오르막도 나오고 약간의 내리막도 나오고, 그럭저럭 평이한 수준의 길이 한참을 이어진다. 우리랑 같이 조우한 부부 여행자 분이 나눠주는 빵도 먹고 이야기도 하며 동네 뒷산 등산하듯이 설렁설렁 걷다 보니 가벼운 산행 나온 거 마냥 앞서거니 뒷서거니 하며 걸었다.
근데! 이 즐거운 산행을 방해하는 훼방꾼이 있었으니... 다름 아니 말과 마부들이었다.
이 사람들의 목적은 우리가 지쳐서 말에 올라타는 것~ 우리와 약간의 간격차를 두고 계속 따라오는데 너무 너무 신경이 곤두서는 거다. 뒤에서 계속 ‘너는 곧 지칠 것이다. 그리고 탈 것이다’ 하는 최면요법이 막 날라 오는 것 같은데다가, 말 모가지에 단 딸랑 거리는 방울소리도 신경질을 돋운다.
이건 마부가 말을 모는 게 아니라, 나를 몰아가는 것 같아서,,, 나중에는 기어 올라가는 한이 있어도 내 두발로 올라가야지 하는 묘한 오기가 발동해버렸다.
게다가 산뜻해야할 등산로에 군데군데 싸질러 놓은 말똥도 눈에 곱게 보이지 않는 것이... 쩝쩌구리.. 마부 미워!
전망이 예쁜 숙소, 차마객잔
점심시간이 될 때까지 딴 생각 안하고 열심히 걸으니 ‘나시 게스트하우스’가 짠~ 하고 나왔다.
사실 겨우 두시간 정도 밖에 걷지 않았는데도 벌써 대부분의 여행자들의 티셔츠는 땀으로 홈빡 젖어버렸다.
분명히 예전에는 몇몇의 모험심 강한 백패커들이 끼니를 해결하고 갔을 이 게스트 하우스가 지금은 트레킹 여행자들의 점심을 대주는 함바집 비슷하게 기업화 되어버렸다.
시간차를 두고 전부 뱃속을 불린 후, 다시 걷기 시작...
조금 걸으니 24굽이(또는 28굽이라고도 하는데 뭐가 정확한 건지는 모르겠다.) 가 출현했다.
아아... 여기서부터는 꼬불꼬불한 길이 계속 오르막으로 이어지는데, 이것만 넘으면 그 담길은 계속 평탄해서 걱정 할게 없다지... 좋아좋아...
도마뱀도 보고...
딱정벌레도 보고...
상도협
점심을 먹은 나시 게스트하우스
나시 게스트하우스에서부터 계속 따라붙는 마부들의 방울소리는 여기서부터 더욱 선명하게 들리기 시작한다. 대부분 걷기를 포기하고 말에 의지해 가는 사람들이 여기에서부터 슬슬 나오기 시작한단다.
다리가 짧은데다 날렵한거랑은 거리가 먼 나는 사실 호도협 초입에서부터 벌써 ‘오늘의 먹잇감’으로 찍혀서 계속 눈독 들여 지고 있다는 걸 눈치 챘다. 거슬리는 방울소리에 더 독이 올라 걷고 걷고 또 걷다 보니 결국은 평지에 도달... 무릎이 약간씩 삐거덕 거리고 가만히 서있는데도 다리가 주책없이 덜덜덜덜 떨리긴 하지만, 드디어 마부꾼들도 다들 사라져버리고 정말 조용하고 평화로운 길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사실 이러한 신경 거슬림은 나만의 감정은 아니어서 호도협을 트레킹한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눠보면 일반적으로 갖게 되는 감정인 듯 했다. 어떤 사람은 방울소리를 들으며 ‘나는 별에 나오는 스테파니야.. 그리고 저 방울소리는 양떼들을 모는 목동의 소리야... ’라고 자기최면을 걸기도 했다는데 그렇게 최면까지 걸어야 한다는 게 불편하다는 것의 반증일 수도 있겠다.
그리고 따리에서 만난 중국어 연수하는 여대생들이 한말에 의하면 끝까지 말을 안타고 자기 힘으로 24구비를 넘는 자기들을 향해 마부들이 중국말로 좀 껄쩍지근한 말을 수근거렸단다. 알아들었지만 모른 척 하는 게 그상황에서 더 나을 거 같아서 그냥 아무소리 없이 참았는데 기분은 나빴었다고 하는 거 보니 우리도 우리가 알아먹지를 못해서 그렇지 혹시나 그런 나쁜 말에 노출된 적이 있지 않았나 싶어 기분이 착찹해졌다.
마부에 대해서 나쁜 소리를 하고 싶지는 않지만, 다음날 아침 하프웨이 게스트 하우스에서 만난 한국인 대학생(그는 우리보다 약간 앞서 가던 사람이었다.)이 전하는 바에 의하면 24굽이를 지나는데 갑자기 비명소리가 들려서 내려다보니 말과 마부가 길도 아닌 산비탈을 나르듯이 획획~ 내려가더라는 거다.
궁금해서 올라오는 사람 붙잡고 물어봤더니, 마부가 중국인 대학생의 짐을 홀랑 훔쳐서 그 길로 달아나 버렸다는 것이다. 이미 24굽이 중턱쯤에 오면 누구나 다 숨이 턱에 차도록 힘이 드는데, 그 상황에서 물건을 도난당하면 사실 쫒아가는 건 고사하고 소리도 잘 안 나올 지경인데, 마부는 완전히 날듯이 산을 내려가고 있으니 두 눈 뻔히 뜨고 후들거리는 발만 동동 구르는 불쌍한 지경에 처해 버리는 것...
아마도 마부도 그걸 알고 그 시점에서 물건을 훔친 거 같은데, 어쨌거나 사람 안 다친 게 다행이다 싶다.
오른쪽으로 위치한 옥룡설산은 우리가 걸어가며 방향을 달리 하는 것에 따라 조금씩조금씩 그 위세를 드러내는데, 정말 멋있는 산세였다. 나처럼 산 안 좋아하는 사람도 이 트레킹만큼은 해볼만 하다고 느껴지는데, 아마도 등산 좋아하는 사람 데려다 놓으면 좋아서 환장할 듯... 싶다.
24굽이 꼭대기 부근에 있는 작은 노점
노랗고 빨갛고 파란 화살표들이 가는 방향을 알려준다
산을 걸으며 바라다 보이는 멋진 풍경들
- 우리 테마여행 하나 만드까... 살 빼고 싶은 사람들 대상으로 ‘책임감량 한 달에 8킬로 빼주는 중국 오지 여행’ 이런 거 말이야... 한 달동안 주기적으로 여기 오르락 내리락 하면 가능할거 같은데
- 아마 그런 식으로 하다간 한 달에 한명은 혼수상태에 걸릴걸... 아마 돈 더 꼴아 박거나 은팔찌 차고 깜방 가게 될지도 몰라...
- 그런가... 역시 우리는 사업가 체질이 아니군...
엄청나게 마셔주는 물이 무색할 정도로 땀도 비 오듯이 흘러서, 그 긴 시간 내내 화장실에 한번 안 가고 씩씩하게 잘 걷다보니, 드디어 오늘 우리가 묵기로 한 하프웨이 게스트 하우스가 나왔다.
오전 11시 반에 시작해서 저녁 7시 반에 끝났으니, 새벽 일찍 시작한다면 중도협에 있는 티나까지 가는 건 일도 아닐 듯 하다. 실제로 그렇게 간 사람들도 많은걸 보니 체력만 받쳐 준다면 해볼 만 할 듯하다...
지금도 증축을 계속하고 있는 이곳은 낡은 도미토리와 새로 지은 듯 한 산뜻한 더블룸으로 꾸며져 있는데, 더블룸은 베이징에서 온 중국인 대학생 커플이 벌써 선점해놓고 있었다. 아마도 전화로 이미 예약을 한 거 같은 눈치인데, 살짝 훔쳐본 그 방의 전경은 오오~~ 백만불짜리 전경 이었다.
하프웨이의 식당에서 바라보는 마운틴뷰는 엄청 멋있긴 한데, 바로 밑에 화장실이 있어서 주기적으로 역한 화장실 냄새가 밥 먹는데 꾸역꾸역 올라왔다. 경치가 멋있어서 나름 상쇄되긴 했지만 좀 거시기 한건 사실이었다.
우리가 그러고 밥 먹고 있을 때 걔네들은 자기방에서 룸서비스 시켜 먹는다... 오오~ 부르조아들...
부른 배와 지친 몸에 올 건 잠 밖에 더 있겠나... 늦은 저녁을 먹고 베개에 머리를 기대니 금방 잠이 쏟아져서 다소 껄적지근한 숙소의 환경 따위는 잊고 쿨쿨 잠들어 버렸다.
하프웨이 게스트하우스 전경
식당
다음날 아침을 해결하고 나머지 트레킹을 끝내야 하는 많은 여행자들이 식당에서 얼렁 챙겨먹고 후다닥 짐을 챙겨 다시 걷기 시작했다. 이른 아침인데도 숙소에서 빠져나가는 무리들을 보자니, 우리도 계속 여기서 밍기적 거리고 있어서 될 일이 아닌 듯...
트레킹 첫날, 옥룡설산의 자태에 반했다면 둘째 날의 선물은 멋지구리한 폭포였다. 우기여서 물의 양이 불어서 그런건지, 아니면 원래 사시사철 그런건지는 모르겠지만 하여튼 좍좍 쏟아지는 폭포줄기를 보니 오오오~~하는 감탄 소리가 저절로 나올 정도였다.
둘째 날의 트레킹은 넉넉잡고 두 시간 잡으면 끝나버리는 소프트 한 것이어서 우리는 점심 먹을 시간도 되기 전에 티나 게스트 하우스에 도착했다.
사진으로는 잘 가늠이 안 되지만 무지 큰 폭포다.
저 찻길까지 내려가면 등산은 끝...
부록으로 티나게스트 하우스에서 중도협으로 내려가면 나타나는 호도석(계곡 중간에 있는 바위로 호랑이가 이 바위를 한번 딛고 계곡을 넘었단다)을 잠깐 봐주고 오는 걸로 이 호도협 트레킹을 마치게 되었다. 호도석은 사실 별 감흥은 없었지만 그래도 여기까지 온 게 아까워서 곁다리로 봤었다. 다른 한국인 여행자들은 위험하기도 하고 별로 흥미도 없다며 그냥 티나에서 기다렸는데 그래도 무방할 정도의 그저그런 감흥이라고 느꼈다. 물론 이건 우리만의 느낌이고 다른 사람들은 멋지다고도 하니 가볼만한 가치는 있을 듯 하다.
중도협
이곳에 오기전 중뎬에서 만난 한국인 여행자들이 호도석 부근의 소용돌이치는 물결 속에서 웬 흑돼지가 죽은채로 대가리와 앞발만 위로 내놓은 채 뱅글뱅글 돌아가고 있는 모습을 목격 했다는데(물이 소용돌이치니 어디 빠져나가지도 못하고 계속 뱅글뱅글뱅글... 쩝...) 그말 들었을 때는 돼지한텐 미안하지만 너무 웃겨서 무진장 하게 웃었는데, 물결에 혹시라도 사람이 휩쓸리면 그 도야지 신세랑 별반 다를 게 없을 거라고 상상하니 뒷목이 쭈빗하다.
다른 서양인 무리들은 티나에서 조금 쉰 후 다시 하도협을 향해 차도를 따라 서서히 사라져 버렸다. 역시 서양인들은 끝장을 본다니까...
나 같은 사람도 할 수 있는 호도협 트레킹... 그다지 힘들지 않지만, 그에 비해 보여주는 것은 훨씬 많은 괜찮은 경험이었다. 단! 이건 날씨가 좋을 때 이야기일 뿐... 우기에는 절대 이스라엘 사람을 잊어서는 안 될 것 같다. 왜냐면 빵차를 빌려 챠오터우로 나오는 길 곳곳에도 돌이 무너져 내린 곳, 척 봐도 비오면 상당히 위험해 보이는 곳 등이 눈에 보였는데, 트레킹 길은 오죽할까 말이다.
티나 게스트하우스 앞에 정차해 있는 빵차를 4명이 리장까지 가는데 200위엔에 하기로 흥정하고 올라타니, 그제서야 쌓였던 피로가 세포에서 스물스물 기어나오는거 같았다.
이 산을 타고 난 후 요왕이 내게 한말은... 드디어 나의 기원을 최종적으로 알아냈다는 것이다.
틀림없이 선조가 동남아 출신 고산족 일꺼라나... 쉬어가자는 요왕의 옷깃을 잡아끌며 계속 앞으로 나아가자며 발을 쿵쿵 굴러대는 내가 야속했다는데,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모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