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웃 오브 리탕 - 이보다 더 나쁠 순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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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웃 오브 리탕 - 이보다 더 나쁠 순 없다.

고구마 1 278
(2005년 글입니다.)



아침 7시에 일제히 떠나는 여러 대의 리탕 행 버스에는 우리 말고도 몇몇의 서양인 여행자들이 있었다.
다른 버스는 다들 7시에 출발하는데, 우리 버스만 기사들이 우왕좌왕 하며 표 검사를 무려 여섯 번이나(그것도 외국인들만 집중적으로다가...) 해대며, 뭐가 잘못됐는지 중국말로 한참을 와글와글 떠든다.
이유인 즉슨 우리 차의 표는 전부 24장이 팔렸는데, 차에 올라타고 있는 사람은 27명이라는 거다.
결국 매표 사무소에서 나온 우렁찬 목소리의 아줌마가 버스에 올라 다시 표 검사를 꼼꼼히 하니, 앞자리에 떡하고 버티고 앉아있던 3명의 중국 청년이 쫓겨 내려갔다. 그 멍청이 3인방이 자기 버스를 제대로 찾아서 올라타는 순간 우리차도 출발했다. 대여섯 번이나 표 검사를 해대고도 뭐가 잘못됐는지 알아내지 못한 오늘의 기사 양반들도 그다지 똑똑한 분들은 아닌 듯... 걱정이다.

우리 옆에 탄 티벳 아줌마가 갈색의 긴치마를 풀석~ 거리면서 자리에 앉는 순간 예상치도 못한 냄새가 확~ 끼치는 바람에 우린 둘 다 정신이 혼미한 상태가 되어버렸다. 아아... 어떻게 이런 강한 포스를 풍기시나요...
한참을 달린 후 점심을 먹으라며 버스는 휴게소에 정차했다. 별로 식욕은 없었지만 달리 할 일도 없는 탓에 우리는 식당 앞을 어슬렁거리며 메뉴를 살짝살짝 보고 있었는데... 그때 커다란 돌덩이를 실은 트럭이 주차장으로 들어서는 순간 차체가 기우뚱~ 하더니만 뒤 칸에 실은 커다란 돌덩이가 10개 정도 우수수 미끄러져 땅으로 떨어지는 것이었다. 세상에나~ 그 돌이 떨어진 곳은 방금 전에 우리가 지나온 곳이고, 다른 사람들이 서 있을 수도 있는 곳이었는데... 만약 그곳에 누가 서 있었거나, 누군가 지나가기라고 했다면, 그 다음 상황은...아아~ 상상하기도 싫다. 앞으로 저런 트럭이 오면 무조건 멀찌감치 피해야지....

다시 올라탄 차안은 담배연기에다가 옆에서 솔솔 풍겨오는 당황스런 냄새까지 점점 더해져, 그야말로 리탕에 도착하면 만세라도 부를 작정이었다.
꼬불꼬불, 울퉁불퉁 한 길을 꼬박 10시간 달려 리탕에 도착해서 짐칸을 열어보니, 오 마이 갓~ 우리 배낭 꼴이 이게 뭐람... 짐칸에 온통 배기가스가 들어 찬데다가 거친 길을 달린 탓에 배낭이 그 안에서 미친여자 널뛰듯 온통 굴러다닌 것이었다. 시꺼먼 기름때와 흙먼지가 묻은 배낭을 암만 털어봤지만, 털리기는커녕 옷만 버렸다. -_-;;
게다가 그 강한 포스의 아줌마가 넣어둔 고기가 잔뜩 담긴 자루(도대체 그 긴 시간동안 상하지는 않았을까...?)에서 배어져 나온 비릿한 냄새까지 배낭에 잔뜩 배어 주시고... 참 여러모로 강한 아주머니시다.
짐칸이 꽉 찬 덕분에 자기 배낭을 걸머지고 버스에 올라탄 다른 여행자들은 유유자적 깨끗한 배낭을 둘러메고 총총히 사라져버렸다.

이곳 리탕은 확실히 한족들보다는 티벳인들의 숫자가 훨씬 많은 곳이었다. 실제로 시장(西藏) 티벳 자치구의 모습과 이곳이 얼마나 닮아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정직히 말해서 이곳 리탕의 티벳인들의 모양새는 좀 답이 안 나온다.
여느 다른 도시나 마을에 가면 꼭 한명씩은 있기 마련인 상태 안 좋은 걸인(머리는 수수망태기처럼 떡져 있고 얼굴은 덕지덕지 새카만...)의 행색과 이곳에 평범하게 왔다갔다하는 많은 티벳아저씨들의 모습이 그다지 다를 게 없다는 게 일단 놀랍기도 하고 한숨이 나오기도 한다.
게다가 다른 곳에서와는 달리 이곳에서는 거지들이 끈질기게 깡통을 내밀며 앞에 빤히 서있거나 팔을 만지고, 심지어 밥을 먹는데도 옆에서 침을 튀기며 돈을 구걸하는 승려까지......-_-;;
지금은 미안한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그 당시에는 정말 불쾌한 마음에 ‘제발 밥 먹을 때 만이라도 빨리 우리 옆에서 사라줘 줬으면...’ 하는 생각이 굴뚝같았다.
그런 스타일로 살게 된 데에는 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겠지만, 그동안 티벳에 대해 가졌던 막연하고도 안스러운 마음이(달라이 라마도 티벳을 떠나 인도로 망명하고 독립도 할 수 없는 안타까운 상황들...) 오히려 이곳에 있으면서 점점 감소해지는 거 같다. 어쨌거나 저쨌거나 사는 형편이 좀 더 나아지기만 바랄 뿐이다.

욕실이 딸린 숙소에 배낭을 던져두고, 우리는 빨래비누와 솔을 사서 숙소로 돌아왔다.
배낭속의 짐들을 들어내고 비누와 솔로 싹싹 빨아 놓고 나니 (게다가 100위엔 이나 준 숙소가 물은 왜 그렇게 쫄쫄 나오는지...) 내가 무슨 영화를 보자고 이 중국 산골까지 와서 이 고생인가 싶은 게, 한숨이 절로 푸~ 난다. 지도랄것도 필요도 없는 이 쪼그만 동네를 조금씩 둘러보는 것으로 오늘의 일정을 마치고 숙소로 돌아와 오랜만에 얼굴에 로션을 타닥타닥 발라줬다. 역시 건조한 동네라서(해발 4000미터가 넘는 이 마을의 초입에는 ‘世界高城’이라는 현판이 걸려있었다.) 피부가 쩍쩍 갈라지는구만~ 이라고 중얼거리면서 얼굴을 문지르는데 뭔가 이상하다. 평소와 다른 이 허전한 느낌은 뭐람...
어라~ 손을 보니 내 왼손에서 반짝거리고 있어야할 반지가 없다.
어디에다 벗어뒀나..? 아니, 그럴 리가 없는걸... 내가 언제 반지를 빼 둔적인 있었던가...
벌떡 일어나서 온 방을 뒤져보고 화장실까지 손전등으로 비춰봤지만, 없다... 아악!! 내가 미쳐...
도대체 어디서 사라진걸까? 아까 터미널에서 미친 듯이 가방을 털 때? 아니면 비누칠을 벅벅 해대면서 가방을 빨 때? 아니면 무의식중에 내가 어디다 두기라고 한 건가?
그 후 두어 시간 동안을 온방을 뒤지고 주머니란 주머니는 다 뒤져봤지만, 잃어버린 반지는 나오지 않았다.
손전등으로 침대 밑을 들여다 봤지만, 내 눈에 보이는 건 더러운 먼지 덩어리뿐이었다.
찾을 가능성이 없다는 걸 알면서도, 빈 주머니만 계속 뒤지고 뒤지길 한참...
커플링으로 맞춘 거라, 똑같은 모양의 반지가 요왕의 손가락에서 반짝이고 있는 탓에 오히려 상심이 더 커지고 복장이 터졌다. 너무 걱정 말라고, 한국가면 더 좋은 걸로 사주겠다는 요왕의 말도 전혀 위로가 안 된다.

우거지상을 하고 침대에 누워 왼쪽 손가락을 만지작만지작하며, 좌절감에 찌들어 깜박 잠이 들었는데, 웬 고통스런 신음 소리 때문에 잠이 반짝 깨었다.
옆 침대를 보니 요왕이 두 손으로 머리를 쥐어 싸고는 침대에 얼굴을 처박은 채로(전형적인 좌절인의 자세) 끙끙~ 거리고 있는 게 아닌가...
도대체 뭐가 잘못된 거람.

- 컴퓨터가 맛이 가버렸어. 어떻게 해야 될지 모르겠어..

켁! 모람. 저 컴퓨터에는 모든 자료랑 지금까지 찍은 사진이 다 들어있는데, 맛이 가버리다니...
틀림없이 아까 버스짐칸에서 사정없이 굴러다닌 탓에 받은 충격 때문이었을 거야~ 아니면 어제까지 멀쩡하던 놈이 갑자기 그럴 리가 없잖아... 아... 진짜...
나는 나대로, 요왕은 요왕대로 한숨을 쉬느라 우울모드가 온방에 가득하다.
결국 이러 저리 어떻게 수를 써서 컴터는 제 기능을 찾은 것처럼 보였지만 (장담 할 수 없다...) 그 안에 담긴 상당수의 사진이 획~ 사라져 버렸다.
어메이 산을 등반하면 찍은 것을, 북적이는 인파속에서 찍었던 러산 대불 사진, 귀여운 판다들 그리고 그동안 차곡차곡 모아둔 우리의 사진 등등등.....
낯모를 중국인들에게 어렵게 부탁해서 찍은 둘이 함께 찍힌 사진들이 다 사라져 버렸다. 흑흑... 그 중에선 꽤 다정하게 나온 사진도 있었고, 보기만 해도 웃기는 바보 같은 사진들도 많았건만...
반지도 사라지고, 사진도 사라지고... 웃음도 사라졌다.

뒤척뒤척 하다가 다음날 일어나도 우울한 기분은 여전한데, 거기다 덧붙여 우리 지갑에 충분한 중국 돈이 없다는 요왕의 대책 없는 말씀 한마디... 예산을 너무 타이트 하게 잡은 탓에 남아있는 중국 돈이 겨우 몇 백 위엔뿐이란다...
어떻게든 이곳에서 환전이 되야 될텐데... 하며 리탕에 하나 있는 은행으로 가봤지만 문이 굳게 닫혀있다.
은행이 문을 열 시간까지 마을구경이나 좀 하자면서 이곳저곳 둘러봤지만, 풍경은 눈에 안 들어 오고 머릿속엔 온통 돈 걱정 뿐이다.

- 왠지 여기서 환전 안 될 거 같지 않냐... 큰 도시에서도 Bank of China에서만 되는데...
- 그래도 일단은 기다려 보자...
그나마 불확실한 상황에서는 작은 희망이나 가능했건만, 은행 문이 막상 열리자 예상대로 ‘환전불가’란다.
좀 큰 숙소를 돌아다니면서 환전을 부탁해도 다들 고개만 가로 젓는다.

아아! 맞다. 어젯밤 우리 방 옆에 한국인 아저씨가 중국인 친구들과 같이 여행 중이라고 했지... 거기 찾아가서 달러를 좀 바꿔 달라고 사정해 보자! 라며 숙소로 달려갔는데, 이미 그 방은 문이 활짝 열려진 채 복무원들이 열심히 청소중이었다. 이미 체크 아웃을 해 버린 듯... 흑흑...
사방팔방 아무리 둘러봐도 환전이 안 된다는 걸 확실히 깨닫게 되자 그제서야 정신이 번쩍든다.

지금껏 누려왔던 약간의 여유모드에서 한 순간에 궁핍모드로 전환된 우리는 주섬주섬 짐을 싸서 숙소에서 나왔다. 그리고 찾아들어간 40위엔짜리 방에서 유리가 덜렁 거리는 창문을 바라보고 있자니 둘 다 의기소침해져 버려서 아무 말이 안 나온다.

자... 이제 방법은 이곳과 샹청을 빨리 거쳐서 중뎬으로 가는 방법뿐이다. 공식적인 이름을 샹그릴라로 바꾸며 관광객들을 끌어 모으고 있는 그곳으로 가면 분명히 환전 할 곳이 있을테지...

일단은 버스정거장에 가서 내일 아침 샹청 가는 버스를 예매 해야지~

- 샹청! 두 사람 이요.
- 메이요(없어요).
- 헉! 그럼 중뎬!
- 메이요...

개 됐다.
샹청으로 가는 차도 없고 중뎬으로 가는 차도 없는 것이다. 지금 상황에서 환전을 하려면 캉딩으로 돌아가는 수 밖에...
우리는 얼빠진 얼굴로 매표창구 앞에서 입만 벌리고 있었더니, 주책없는 매표원이 우리 모습을 보고 낄낄 웃는다. 아아 미워라~
숙소로 돌아와 서성거렸지만, 숙소에 앉아 있는다고 무슨 수가 생기랴...
일단 터미널로 가서 우리와 같은 처지의 다른 외국인을 낚아보자 라고 결심하고 정거장 앞 의자에 널 부러져 있었다.
천만다행으로 빵차(다마스 같은 미니 승합차) 운전수가 내일 새벽 샹청으로 간단다. 두 사람에 150위엔(정거장에 걸려있는 샹청 행 티켓의 표 값보다는 비쌌지만)으로 흥정하고, 꼭 약속을 지켜야 된다며 그와 새끼손가락까지 걸고 숙소로 오니 티벳 분위기고 뭣이고 간에 빨리 여길 뜨고 싶은 생각뿐이다.
매 끼니 맛있고 저렴한 중국음식 먹는 게 낙이었던 우리의 식사는 싸구려 만토우(속에 아무것도 안든 찐빵)와 감자 몇 알로 순식간에 대체되었다.

- 가난은 단지 불편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란 말이 있잖아... 그거 다 헛소리인거 같지 않냐. 혹시 예전에 가난 했어도 지금은 잘 살고 있는 사람이나, 가난한 상황을 겪어보지도 못한 인간들의 잘난 척인 거 같아... 우리가 진짜로 돈이 없는 것도 아니고, 단지 환전을 못해서 좀 불안한 상황인데도 이렇게 스트레스인데 말이야...

시간이 날 때 마다 남은 돈을 세보며 만토우를 뜯어먹는 걸로 리탕의 두 번째 밤을 맞이했다.
평소에는 거들떠도 안 보던 만토우 이건만 왜 이렇게 맛이 좋다냐... 흑~
불운은 이제 그만... 내일 모레면 우리는 샹그릴라에 도착해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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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Comments
알뜰공주 2020.08.31 10:57  
애고! 왠 사서 고생이람.... 반지도 잃어버리고, 인터넷의 사진들도 사라지고....
 정말 가슴이 딱 막히네요.
티벳아이들처럼 미소가 가득한 풍경이 펼쳐졌음하는 바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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