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벳을 살짝 들여다보는 여정의 시작 - 캉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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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벳을 살짝 들여다보는 여정의 시작 - 캉딩

고구마 1 446
(2005년 글입니다.)



서울에서 살 때는 집 바로 앞에 있는 칼산도 1년에 한번 올라갈까 말까 하던 요왕이, 중국에 와서는 산 귀신이 들러붙었는지, 전체 여정에 ‘산’ 이 심심찮게 보인다.
청두에서 차로 두 시간 정도 달리면 나오는 어메이 산을 트레킹하고  그 근처의 러산 대불을 구경하는 것이 우리의 다음 목표...
청두에서 충분한 휴식을 하긴 했지만, 말 트레킹의 여파로 당분간은 그 어떤 액티비티에도 관심이 사라진 나는 이번에는 과감하게시리 혼자 숙소에 남기로 결정했다.
어메이산 등반에 1박2일을 목표로 하고 첫날 새벽 날도 밝기 전에 숙소에서 빌린 지팡이를 들고 어둠속으로 총총히 사라지는 그의 뒷모습을 보자니, 왠지 나도 따라갈걸 그랬나...? 하는 후회가 드는 것도 잠깐...
곧 못다 이룬 잠을 쿨쿨 자고 티비보고 뒹굴다가 어메이 시내 가서 군것질거리 사와서 먹고 인터넷 하다 보니 하루가 금방 간다.
낄낄~ 나는 요렇게 폭신한 이불 덮고 자는데, 요왕은 오늘 밤 산속에서 고생 좀 할 거 같다. 하긴 자기가 원해서 하는 거니까 엄밀히 말하면 고생이라 할 수도 없지 뭐...

트레킹을 떠나기 전에 어메이 산의 지도를 보고 루트를 그린 바에 의하면 요왕은 둘째날 오후 3시 쯤 숙소에도착할 예정이었다. 산을 타느라 지쳤을 테니 돌아오기 전에 뭔가 맛있는 거라도 좀 사다놔야지 라고 생각하면서 둘쨋날 아침을 아직 이불속에서 밍기적 거리고 있는데, 누군가 문을 쾅쾅쾅! 두들긴다.
오모낫 ! 이 아침부터 남편도 없는데 누구람..
- 문 좀 빨리 열어줘....
잉... 아직 9시도 안됐는데, 이게 왠 요왕 목소리람... 후다닥 문을 여니 땀에 폭삭 절은 채로 출발할 때 신나게 흔들며 가던 지팽이에 온몸을 의지하고 후들후들 거리면서 들어오더니 침대에 푹 고꾸라졌다.

- 어메이산 생각보다 별로더라니까. 오히려 설악산이 더 좋은 거 같애... 그래도 계획한 루트보다는 먼 길로 왔어.
그러면서 무릎에서 이상한 소리가 난다며 다리를 오그렸다 폈다 하니, 정말 끼릭~ 하는 소리가 나는 것이 이만저만 고생이 아니었나 보다. 다리에는 몇 군데 빨간 생채기도 나있다. 하긴 쏭판에서 만난 한국인 여행자도 어메이산 트레킹에서 좀 실망을 했다며, 우리가 이곳으로 가는 걸 그다지 추천해 주지 않았던 게 생각난다.
입장료와 고생한 것에 비하면 산이 주는 느낌에 실망을 했다고 고개를 가로저으면서 이럴 때는 몸을 풀어주는 맛사지를 받아야 된다며 맛사지 타령을 한다.
그 맛사지 내가 해주마! 하며 허벅지를 꽉 눌렀더니 비명을 꽥~ 지르며 지금 이 상태로는 맛사지도 못 받겠다나 뭐라나...
냐하하하하... 뭐 신날 거 까진 없지만, 이번 일을 기회로 러프한 일정이 좀 말랑말랑 해질거라는  기대가 확~ 드는 것이, 짐짓 측은한 얼굴로 위로를 해줬지만, 마음은 왠지 므흣하기도 하다.
그 후 어메이 산에 대한 여행기를 쓰라고 요왕에게 독촉했건만, 별 감흥을 받은 게 없어서 쓸 말도 없다며 그냥 정보나 올리겠단다. 헐~

몸 상태로 봐서는 이곳 숙소에서 하루를 더 쉬어야 했건만, 얼렁 이곳을 뜨는 싶다는 요왕의 말에 일정보다 하루 이른 오늘 짐을 싸서 러산으로 향했다.

여행서에 의하면 ‘러산대불의 크기와 그 수려한 예술성에 숨이 멎을 정도’ 라고 표현이 되어 있는데...
숨이 멎긴 멎었다. 그 예외 없는 중국 단체 관광단의 행렬 속에서 앞뒤로 부대끼느라고...
크기는 무지하게 컸지만, 예술성에서는 고개를 갸웃거리게 만드는 이 우직한 얼굴의 부처상 앞에서 우리는 중국의 과도하게 비싼 입장료에 대해 투덜투덜 거리며 (별 볼일 없는 동방불도공원까지 포함한 통합입장료가 무려 105위엔..) 다음부터는 꼭 필요한 엑기스만 보자며 그곳을 빠져나왔다.

꽤 이름을 날리는 여행지였건만 우리는 별 재미를 보지 못한 곳, 어메이 산과 러산대불 이었다.
하지만 이건 그저 개인적인 느낌일 뿐이라서(또 명성이란게 그저 생기는게 아니니까..) 다른 여행자들은 또 다르게 느끼겠지...

연이어 실망한 맘을 안고 우리는 러산에서 캉딩으로 향한다.

쓰촨의 서남부에 나란히 위치해 있는 캉딩, 리탕, 샹청은 티벳의 경계를 넘지 않고도 티벳의 분위기를 느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쓰촨에서 윈난성 북부로 진입하는 인기 있는 샛길이란다.

아침 9시 반 캉딩 행 버스에 올라타니, 아니나 다를까 하나 둘씩 담배를 입에 물고 연기를 뻑뻑 피워 낸다. 기차 안에선 그래도 복무원 언니들이 소리를 꽥~ 질러서(옆에서 듣는 내가 다 민망할 정도로...) 기선 제압한 후 애연가들을 통로로 쫒아 내버렸는데, 여기선 운전기사가 먼저 피워 물고 있으니 할 말 다했지 뭐...
- 아아 도저히 못 참겠다. 가서 말해야지
- 무슨 말을 어떻게 하겠다는 건데..
- 중국어 회화책 줘봐. 금연 이란 단어 찾아서 보여줘야겠어.
그러면서 회화책을 뒤적이던 요왕은 ‘금연’ 이란 단어를 찾아내긴 했지만, 과연 누구한테 보여줘야 될런지 얼마간 망설였다. 연신 담배를 피우는 기사한테? 아니면 뒤쪽의 수많은 애연가들한테?
괜시리 분위기 쌩하게 만들지 말고 그냥 참고 가자며(현지인들도 가만있는데 힘없는 외국인 말을 콧등으로 들을 거 같지도 않고...) 옷깃을 잡아 당겨 겨우 앉혔다.

- 우리 서울 있을 때 모임이나 호프집 같은 데서는 어떻게 견뎠담?
- 거기보다 여기가 더 참기 힘든걸.....
- 이궁, 이제 보니 댁이 술김에 취해서 정도를 잘 분간 못하는구먼... 맨 정신에 맡아보니 다른가 부다...

게다가 이 차는 창문도 열수 없는 통 유리창이었다. 캉딩까지 장장 9시간을 달리는 동안, 요왕은 계속 투덜투덜 거리거나 그들에게 약한 눈빛 광선을 쏘아주거나 마른 기침을 쿨럭쿨럭 해봤지만 결과는 무소득... 환경에 적응하는게 ‘진정한 여행자’의 자세라며 나한테 일장연설을 하던 요왕이였는데, 어지간히 참기 힘든 모양이다.
오히려 나는 그다지 불만이 없는데 말이다.
버스는 달리고 달려, 캉딩 경계로 들어서자 차창 밖으로 보이는 행인들의 모습이 꽤 드라마틱하게 변하기 시작했다. 검은 이미지의 티벳 사람들...
고지대에 사는 탓에 자외선을 너무 과도하게 쬐인 덕분인지 남자 여자 할 거 없이 검은 얼굴을 하고 있고, 치렁치렁 하게 기른 까만 머리... 게다가 어두운 색의 긴 옷들 까지... 왠지 어두침침한 분위기이다.

담배연기가 온몸에 베인 채 목적지에 내리니 시계는 이미 저녁 7시다. 묵기로 점 찍어둔 2개의 여행자 숙소가 이미 full~ 이라는 말에 실망한 채 서성거리다가 지은 지 얼마 안 되는 듯한 중국식 호텔에 배낭을 풀고 캉딩 시내를 어슬렁어슬렁 거리기 시작했다.
이곳 캉딩은 예전에 어느 작은 티벳 왕국의 수도이기도 했다던데, 도시 중심을 흐르는 강의 물줄기가 세찬 것을 빼면 그 다지 인상적일 것은 없는 평범한 도시였다. 물론 티벳인들로 추정되는 검은 얼굴의 아저씨들과 자줏빛 적삼의 티벳 승려들, 그리고 긴 원피스를 입은 티벳 아줌마들이 보이긴 했지만 이미 조그만 도시의 모습을 갖춘 곳이라 그런지 색다르게 눈에 들어오는 건 없었다.

그나저나 티벳의 명물이라는 버터차를 마셔봐야지~
작은 주전자 하나에 10위엔짜리 버터차를 주문해놓고, 우리는 이 맛있어 보이는 이름의 생소한 차를 즐길 생각에 혹시나 양이 너무 적으면 어떻게 하나 걱정까지 했다.
드디어 나온 버터차~
뜨거운 물에 버터 녹인 맛이었다. 쩝....
한 모금 마시니 입안은 물론이고 목구멍까지 기름으로 쫙~ 코팅 되는 것이 아아... 이 우울한 느낌은 뭐람...
하긴 음식이란 건 익숙해지면 좋아지기 마련이긴 하다. 지금 내가 즐겨 먹는 것 중엔 불과 십년 전에는 입에도 못 대던 것들도 꽤 있었으니, 이 버터차도 계속계속 즐기다 보면 나중엔 버터티홀릭이 될지도 모를 일이긴 하다만...
한 모금 마신 후 조용히 잔을 내려놓고 서로 당황한 눈길을 교환한 우리가 여기에 돈을 더 쓸 거 같지는 않다.

슬퍼진 맘을 추스르고 노트북을 들고 인터넷을 하러 갔더니만, 주인이 와서 IP 설정을 해주는 동안 우리에게 어느 나라 사람이냐고 묻는다.
- 한국인인데요...
- 한국인 좋아요. 재패니즈! 아웃!
그러면서 일본인이 들어오면 쫒아낸다면서 손으로 획획~ 내쫒는 시늉을 하며 웃는 아저씨를 보니 왠지 상반된 감정이 교차하는 것이 맘이 약간 복잡해 졌다. 하긴 동남아 어디서나 우글우글 대던 일본 여행자들을 이곳 중국에선 잘 볼 수 없는 것도(몇몇 패키지 관광단을 빼고...) 이런 이유 때문인가 싶기도 하고, 중국인들도 일본한테 어지간히 감정이 많이 쌓여 있나보다.

캉딩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는 몇몇 여행자들의 눈길을 끌만한 관광포인트가 있긴 했지만, 이곳에 온 이유가 티벳인들의 일상생활을 조금이나마 엿보려고 온 것이어서 근교 볼거리는 일단 제외 하고 나니 딱히 도시 안에서는 할 만한 것도 볼 만한 것도 없다.
별 특징이랄 건 없는 동네지만, 9시간의 이동 후에 바로 다음날 리탕으로 움직일 여력이 없어서 결국은 이틀을 묵고 리탕으로 떠난다.
 

 

 

계곡속의 작은 도시 캉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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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Comments
알뜰공주 2020.08.31 10:49  
통유리로 된 버스안에서 담배를 그리피워 대다니요~
무식하긴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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