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박7일 베이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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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박7일 베이징

고구마 0 278

(2005년 글입니다.)




베이징에 온지 3일째 되던 날, 우따오커우에 있다는 어언문화대학 근처를 다녀오면서 버스 안에서 바라본 이 도시의 모습은 여느 곳과 다를 바 없이, 낡은 건물과 촘촘히 들어차있는 가게들 차와 사람의 엉김으로 끝없이 이어지고 있다. 숙소까지 계속 이어질 것만 같은 우중충한 분위기의 풍경이 어느 길로 접어든 순간부터 이전의 그것과는 꽤 다른 모습을 하고 있다.

멍하게 창밖을 보던 우리는 고개를 곧추세우고 ‘여기가 어딘가...?’하고 두리번거리며 지도를 펴기 시작했는데, 표지판을 보아하니 ‘고루대가鼓樓大街’ 라는 곳이네.....

뭐 별천지가 펼쳐졌다, 그런 건 아니고 길가에 늘어선 몇몇 건물들의 모습이 나름 중국 전통 가옥의 멋을 잘 살렸으면서도 말끔하다. 오고 가는 사람들 중에 서양 여행자들도 꽤 보이는데다 길도 널찍하고 깨끗한 것이, 좀 손을 봐서 새 단장을 한 거 같기도 하다.

지하철 2호선 고루대가 역 앞에서 시작되는 이 나름대로 멋진 분위기의 길이 인상 깊었던 우리는 베이징을 떠나기 전 시간이 허락한다면 이 동네에 다시 들르기로 했고, 시안 행 저녁 기차를 예매한 우리는 북경에서의 마지막 날 낮 시간을 어디에서건 보내야만 했으므로 그 장소로 주저 없이 이곳에 한번 와보기로 했다.

드디어 베이징의 마지막 날. 사실 우리의 원래계획은 베이징에서 길어야 3일 정도만 머무르고 시안으로 곧장 달려가는 거였다. 만리장성과 자금성을 보는데 각각 하루를 투자하고 나머지 자투리 밤 시간엔 왕푸징이나 시내 몇 곳을 둘러볼 심산이었는데, 이 거대한 도시는 그렇게 호락호락 한 곳이 아니었다. 겨우 2~3일 만에 이곳을 둘러보고 빠져나갈 생각을 했다니...

일단 우리는 이번이 첫 베이징 방문인 더듬거리는 초보여행자 인데다 , 베이징 자체가 가진 볼거리들 또한 아기자기 하거나 소박한 것과는 거리가 있는 초중량급 선수 들이었다.

이곳의 대부분이 말하자면 ‘남쪽 문으로 입장해서 북쪽 문으로 그냥 획 빠져나가는 데만 2시간이 걸린다우...’ 하는 식이다.

남들 다 가보는 곳은 우리도 빠질 수 없다는 일념 하에... 지도를 부여잡고 열심히 돌아다닌다고 다니긴 했는데, 손을 꼽아보니 천안문, 자금성, 경산공원, 북해공원, 이화원, 천단공원, 그리고 만리장성이랑 시내의 몇몇 이름난 쇼핑가인 왕푸징과 전문대로 등등... 그야말로 남들 다 보는 기본적인 것만 섭렵하는데도 시간은 획획 잘만 흘러가서 생각과는 달리 결과적으로 6일이나 이곳에서 묵게 되었다.

드디어 마지막 날 오전, 예정대로라면 오전에 천단공원을 둘러보러 나가야했지만 ‘쓰러질 것 같다’ 는 말도 안 되는 핑계를 대고 요왕만 내보냈다.

아아... 에어컨 빵빵하게 틀어놓고 혼자 방에서 보내는 유유자적한 시간이라니... 요왕에겐 미안하지만(나 혼자 외출하는 경우는 거의 없어서 이런 호사는 나만의 것) 정말 좋다.... 낄낄.

몇 시간 뒤 땀을 뒤집어쓰고 돌아온 요왕은 ‘천단공원은 중요한 건물을 공사로 못들어가게 해놓고 입장료는 다 받더라’면서 투덜거렸고, 우리는 그길로 배낭을 싸서 북경서역으로 향했다.

무진장 하게 큰 역 같으니라고... 택시 안에 앉아 정면으로 서서히 다가오며 커지는 북경서역의 모습을 보니 꼭 지옥문으로 천천히 들어서는 것 같은 느낌이다. 삼류 공포 영화를 너무 많이 봤나...

지은 지 그리 오래 되 보이지 않는 베이징의 우뚝 솟은 건물들과 빌딩들은 그 크기는 둘째 치고라도 디자인 면에서 꽤 사람을 움츠리게 하는 고압적인 뭔가가 있어서 천안문 광장에 걸려있는 모택동의 대형 초상과 함께, 이곳이 엄연한 사회주의 국가라는 느낌을 우리가 잊을만하면 살짝살짝 일깨워 주곤 했다.

어쨌든 서역에 짐을 맡기고 (배낭 2개 맡기는데 18위엔 이라니... 넘 비싸!!) 지하철 고루대가 역에서 내려 남쪽으로 방향을 잡고 살랑살랑 내려오니, 여기저기에 후퉁 간판이 보이고, 그 사이를 외국인을 태운 삼륜 인력거가 획획 내달리는 모습을 보니 뭔가 관광 포인트가 맞긴 맞는 모양... 음냐리... 그리고 길가에 있는 공중 화장실도 들어가 보진 않았지만 무척 깨끗해 보이는 것이 어느 정도 신경을 쓴 모양새다.

중국의 공공화장실 사정이 많이 개선되어진 걸 분명히 알면서도, 워낙 그 악명에 대한 이미지가 선명하게 각인되서인지(먼저 다녀간 여행자들이 남긴 심금을 울리는 글, 사진, 그림, 일러스트까지 동원된 그 자세한 구조들....) 숙소 이외의 장소에선 한 번도 화장실 갈 일이 없었다. 나름대로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어쨌든 흘리는 땀에 비해 턱없이 적게 마셔주는 물 덕분에 만성적인 수분부족의 피부는 나날이 맛이 가고 있다.

남쪽으로 천천히 걷다보니 작은 호수(톈하이前海)가 나오고 그 호수를 빙 둘러 지금까지 베이징에서 보지 못했던 스타일의 바들과 멋지구리한 레스토랑들이 줄지어 서 있다.(나중에 보니 북해공원 북문 앞 쪽에 정식 입구가 있는 길이다.)

오호 ~ 이런 곳이 있었다니... 미리 알았더라면 밤에 한번 와 볼 것을......

현대적인 곳, 고전적으로 꾸민 곳, 약간 루즈한 분위기, 부티가 줄줄 흐르는 분위기 등등 인테리어도 다르고, 살짝 훔쳐본 메뉴의 가격 또한 꽤 높은 것이 아마도 어둠이 깔리면 이곳은 베이징의 돈 있고 잘 차려입은 젊은이들로 북적일 거 같다.(실제로 보진 못했지만...)

들어가서 차를 마시거나 인력거를 타고 후퉁 구경을 할 것도 아니라서 고루 주변 거리 구경은 생각보다 일찍 끝났다. 이곳에서 멀지 않은 북경 최고의 상권 중 하나인 시단으로 가서 오고가는 쇼핑객들 사이에서 좀 헤매다 보니 시간은 잘도 흘러 열차 시간이 거의 다됐다.

6박7일 동안 있었건만 베이징은 우리에게 숨은 보물찾기 같은 곳으로 남겨져 있다. 실제로 있는지 없는지 조차도 확신 할 순 없지만, 우리가 가보지 않은 거리들과 별생각 없이 획~ 스쳐 지나왔던 많은 길과 골목들 사이에 크고 작은 보물들이 숨겨져 있을 것만 같다.

이 도시가 가진 이야깃거리와 의미들을 알려면 한 달로도 충분치 않을 것이며, 이렇게 모자란듯하게 남겨둬야 다음에 다시 올 때 즐거운 법이라고 주절거리면서 시안행 기차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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