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유람단과 함께한 만리장성 패키지 투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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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유람단과 함께한 만리장성 패키지 투어

고구마 2 431
(2005년 글입니다.)



베이징에 도착한지도 여러 날이 지났다. 그동안 우리는 천안문, 자금성, 경산공원, 왕푸징, 류리창 등등 베이징 시내의 볼거리들을 돌아보고 다녔는데, 사실 그것만 해도 그다지 만만한 일이 아니었다. 일단 목적지까지 찾아가는 것도 힘이 드는데다가(긁어모을 수 있는 모든 정보를 다 동원해서 버스를 이용하거나 그것도 안 되면 그냥 무작정 걸었다. 흑흑...), 관광지 자체의 면적도 대단해서 이건 뭐 관광을 하는 건지 극기 훈련을 하는 건지 구별이 안 될 정도로 머리에서 열이 나고 눈동자가 뱅뱅 돌아갈 지경에 이른 것이다.
여느 날과 마찬가지로 아침에 숙소비를 지불하러 사무실에 들렀더니 주인장이 우리에게 말을 건다.

구꽁? 구꽁? (여기서 구꽁이란 古宮. 즉, 자금성...)

창청은? (창청長城;만리장성)
아니, 안 봤는데...
그럼 일루 와봐봐...

딱이 대화랄 것도 없이 우리는 주인장이 꼬시는데로 들어가서 한동안 만리장성과 명 13릉 패키지 관광버스에 대한 설명을 멍하니 듣고 있었다. 곧 우리의 손에는 220위엔과 맞바꾼 티켓 2장이 들려 있게 되었다. 만리장성도 나름 개인적으로 찾아가는 방법이 있긴 하지만, 이번에는 좀 편하게 둘러볼 심산이었다.

내일 새벽 3시반에 출발이야!
뭐여? 안돼안돼...(고개를 세차게 가로저으며..)
그럼 5시 반
좋아요.

다음날 알람시계가 내지르는 소리에 일어나 대충 준비를 마치고 나니 주인이 우리를 태울 차가 밖에서 기다리고 있다며 문을 콩콩 두드린다.
그 승용차에 실려 베이징 서부역 근처의 공터에 준비된 중형 버스에 올라타니, 우리가 맨 마지막 탑승자 인지 제일 뒷줄의 중간자리 2칸 밖에 남은 게 없다. 하필이면 제일 불편한 자리라니, 자리 운도 없지....
일단 우리버스안의 구성원으로 보자면, 우리 빼고는 전부 중국 사람이었다.
우리 앞의 아줌마 3명은 자기들끼리 이야기 할 때는 중국어가 아닌 약간 이상한 언어를 쓰는 걸로 봐서 아마도 소수민족 출신 인 듯.... 우리는 그녀들을 그저 생각 나는대로 ‘여진족들’이라고 이름 붙이고, 오늘 하루 우리와 함께할 다른 여행자들을 찬찬히 훓어보았다.
노인들, 젊은 가족들, 연인들, 짝 없이 뭉쳐온 4명의 남자들, 홀로 온 여자 등등....

차가 출발한지 얼마 안되어 여자 가이드가 사람들에게 일일이 돈을 걷기 시작하는데, 영문을 모르는 우리는 돈 달라는 그녀에게 계속 표만 내밀어 보여줬다. 표에는 모든 입장료랑 가이드 그리고 점심 포함이랬는데 뭘 또 걷는단 말이야...
가이드는 뭔가를 계속 이야기 하는데, 우리는 그저 멍하니 ‘팅부동’ (난 몰라요) 모드로 돌입했다. 그러자 옆에서 한마디씩 거들기 시작하는데, 아아~ 동시다발적으로 들려오는 중국어라니, 북치고 장구 치는 소리 저리가라 수준이다.
그나마 다른 사람들도 순순히 내는걸 보니 뭔가 내긴 내야할 돈인거 같은데....
알고 보니 그건 장성을 오르내리는 일인 레일카 이용료란다. 일인당 60위엔
차가 굴러가기 시작한 때가 새벽 6시 반이었는데 7시 반이 되니 장성중에서도 가장 많은 사람들이 몰린다는 빠다링(팔달령)에 도착했다.

‘거기 한궈런(한국인) 들, 일루 좀 와봐봐’

여자 가이드는 종이에 차번호와 9:30 이란 숫자를 써주며 얼렁 다른 사람들 따라 올라가라며 등을 떼민다.
아... 우리에겐 낯선 이 관광버스 분위기라니....
이 위대하고 역사적인 건축물을 즐길 시간이 달랑 2시간뿐이라니, 우리를 대체 언제 베이징에 보낼려고 이렇게 빨리 재촉할까...
장성에 올라가 산을 따라 끝없이 이어진 벽돌 길을 보고 있자니, 진시황제는 위대함과 정신병 사이의 경계에서 오락가락한 인물이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든다. 그냥 오르내리기도 힘든 이 산등성이에 이런 장성이 쌓여 있는 광경을 보자니 낮은 탄성이 절러 흘러나왔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뼈와 피가 이 장성 아래 묻혀 있을까...
하지만 이 위대한 장성도 사람의 생리현상은 어쩌질 못하는지 어둑한 구석마다 지린내가 스물스물 풍기는 것이 약간 비위를 거스른다.

그건 그렇고....
다른 관광객들과 앞서거니 뒷서거니 하며 장성을 걷는 것도 그다지 쉬운 일은 아니어서 금방 숨이 턱에 차기 시작한다. 그나마 레일카를 타고 온 우리들은 숨만 헐떡이는 정도였지만, 그저 자신의 두발로 여기까지 올라온 사람들은 이미 우리가 출발하는 시점에서부터 땀을 비 오듯 흘리고 몸이 앞으로 구부러져 있었다.

만리장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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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도 못 알아 듣는데다 시간까지 못 지키면 완전히 미운오리새끼가 될 것 같아서  예정시간 보다 빨리 장성에서 내려와 삶은 달걀 하나와 과일 한 조각을 들고 차안으로 들어가 대기 하고 있는데, 웬걸 9시 반이 됐는데도 차가 갈 생각을 안 한다. 또 다시 와글와글 대는 버스 안, 한 사람이 모자라는데 할아버지가 일어나서 뭐라고뭐라고 설명을 하는 걸로 봐서 아마 동행자인 할머니가 아직 안온 모양이다. 젊은 가이드가 할아버지에게 얼른 데리고 오라고 손짓하고 곧이어 할아버지 손에 이끌려온 할머니는 연신 ‘뚜이부치(미안함돠)’하며 계면쩍은 웃음을 흘렸다.

사실, 이렇게 좀 시시하게시리 만리장성 체험은 끝이 났다.
그 후 버스는 어디론가 신나게 달렸는데, 그 시간 내내 가이드는 중국어로 뭔가 힘차게 떠들어댄다. 높낮이가 분명한데다가 강약까지 조절해 가며 내지르는 그녀의 우렁찬 목청은 자던 사람도 깨울 정도로 시끄러웠지만, 이미 더위와 이른 기상에 지쳐버린 우리는 열심히 머리를 부딪혀가며 졸았다.
한 시간 쯤 달려 차가 멈춘 곳은 옥 파는 가게. 옥베게, 옥팔찌, 옥목걸이, 옥방석 등등 옥으로 만들만한건 다 있었다. 우리는 그저 빙빙 돌아다니며 사지도 않을 물건을 한번 씩 들어 올리는 걸로 시간을 보냈다.
지루한 시간이 지나고 다시 차에 오른 후 도착한 곳은 베이징 카오야 (북경 오리구이) 파는 가게... -_-;;
옥 파는 곳에서와는 달리 여기서는 다른 중국인들도 지갑을 열고 두 손 가득 오리구이를 들고 샵을 빠져나왔다. 우리 손은 여기서도 빈손...
베이징 카오야 샵 문밖에서 서성거리는 우리를 끌고 가이드가 데려간 곳은 허름한 대형 식당이다.
철판으로 된 식판에 대충 주워 담은 밥으로 허기를 면하고 나니 다시 차에 오르란다.
이젠 어디로 가는 걸까..... 설마 또 가게는 아니겠지... 라는 기대와 달리 이번에 간곳은 한약방이었다. 젠장....
또 뭐라고뭐라고 설명하는데 우리에게 그저 무당 굿하는 소리일 뿐...
혹시 억지로 눕히고 침이라도 꽂을까봐 살짝 두려워져서 중간에 사람들 무리에서 빠져나와 나무그늘 아래 쪼그리고 앉아 있었다. 여기서 빠져나와 다음 관광지인 명 13릉에 도착하니 시간은 잘만 흘러 벌써 오후 2시다. 13릉 중에서 가장 규모가 크다는 장릉을 둘러보고 또다시 차에 실려 어디론가 향한다. 차에 올랐다 내렸다 하는 게 오늘 여행의 주 메뉴인듯...
이젠 좀 제대로 된 곳으로 데려다 주겠지......
이번에 도착한 곳은 가게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그다지 마땅치도 않은 구룡유원지라는 곳이었다. 도착 하고보니 입장료와 놀이기구 타는 비용이 일인당 55위엔이라네.... 3명의 여진족 아줌마들은 자기네들 끼리 쑥덕쑥덕 한참을 의논하더니 그냥 돈 안내고 밖에서 기다리겠단다. 허걱...그저 밖에서 뭘 한단 말인가...

낡고 활기가 없어보이는 구룡유원지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놀이기구란

아이맥스 영화관 - 너무 화면이 낡아서 당췌 뭐가 뭔지 분간이 잘 안된다. 그나마 의자가 움직이는 거라서 조금 신기했음.

타고 나오는 사람마다 드러운 물로 흠뻑 젖게 만드는 급류 타기- 즐겁기는 커녕 물에 젖을까봐 걱정만 됐음

지하 용궁 레일(달리 표현할 말이 없다...) 기차- 유치한건 일단 둘째치고 의자에서 파란물이 배어나와 사람들 엉덩이가 다들 푸르딩딩 해 졌음. 이거 물이나 빠져야 될텐데....

용궁의 궁녀들이 춤을 춘다. 잠시 후 바다 동물로 얼굴이 바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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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아... 이 정도 쯤 되자 우리는 정말 숙소로 돌아가고 싶어 안달이 났지만, 우리 맘대로 어찌 해 볼 수가 없는 상황... 오늘의 주특기인 ‘할 일없이 땅보고 있기’를 하고 있자니 가이드가 우리보고 먼저 차안으로 가서 기다리란다. 하긴 더 따라 다녀봤자 뭐가 더 나올 것 같지도 않아 아무 아쉬움 없이 찌는듯한 차로 돌아왔다.
다른 사람들이 돌아온 시간이 오후 4시 , 그 후 30분 동안 각 행선지 별로 사람들을 가르고 나니 꽉 차 있던 우리 차에서 절반의 사람이 후다닥~빠져나갔다.
그 후 트래픽 잼에 걸려 베이징 시내에 들어오니 오후 6시 반이다...
하루를 몽땅 투자했건만, 남은 것은 흐릿한 만리장성의 기억과 바지에 선명한 파란 자국뿐이다.
중국현지인들과 부대끼는 것에 큰 의미를 둔다면 몰라도, 만리장성과 명13릉을 제대로 관람하고 싶다면 중국패키지 일일투어는 되도록 피해가도록 하자.
사방에서 들려오는 중국말로 머리가 아픈 날이다.... 

2 Comments
롤러캣 2020.08.17 16:10  
중국은 투어가면 안되는 곳 같아요. 버스에 실려 두시간 기다리기도 하고 호텔마다 돌면서 픽업하기도 하고 집단체제 지옥경험입니다. 저는 겨울에 베이징역에서 빠다링챵쳉행 기차를 타고 가서 외곽에 내려서 걸어올라갔어요. 청와대 가는 길 분위기나더라고요. 12월이라 춥고 사람도 없어서 호젓하게 사색하는 여행이었지요. 내려와서는 구멍가게에서 팥빵같은거 사먹고 다시 기차타고 돌아왔는데 땅거미가 질 무렵의 불이 켜지는 북경역이 참 아름답더라고요. 역무원들 제복도 멋있었던 것 같습니다.
 
저 인형극 재밌을 거 같애요. 의자의 파란물.. 실화입니까. 여진족인지 뭔지 어캐 아셨어요. 중국인들이 다 그렇고 그래 보이던데요
알뜰공주 2020.08.30 21:42  
중국인들과 일일투어 정말 고생하셨네요.
시끄러운 버스에 함께 타고 물건파는데를 3군데나 갔네요.
정말 힘들었겠어요.
제대로 된곳은 만리장성, 13릉뿐이었네요. 바지까지 물들이고.....지워지긴 했나 궁금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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