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짜 여행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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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기

초짜 여행자

고구마 1 273
(2005년 글입니다.)



탕구역(인천발 진천페리가 도착하는 항구)에서 잡아탄 기차는 거의 3시간이 지나서야 우리를 북경에 데려다 놓았다. 원래 맘에 점찍어둔 숙소가 있었건만, 북경 역 앞의 수많은  삐끼들 중 한명이 내보이는 숙소사진에 맘이 혹해서 쭐래쭐래 그를 따라 나섰다.
태국에서는 삐끼를 따라가는 일 같은 건 없다. 우리의 발걸음은 늘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도 당당했건만, 여기선 이리 두리번 저리 두리번 고개가 시계추처럼 왔다 갔다 한다.
첸먼(전문) 근처의 120위엔짜리 숙소로 말을 맞추고 차에 올라탔는데, 웬걸 전혀 다른 방향으로 계속 내달리는 게 아닌가. 암만 우리가 초행자라 해도 그렇지, 방향 감각쯤은 있다구...
결국 첫 숙소에서는 차에서 내리지도 않고, 첸먼 만 외쳤더니 다시 북경역으로 돌아와 다른 차를 알선해 준다. 이미 약이 좀 오른 우리는 두 번째 숙소를 보기도 전에 맘이 좀 틀어져 있던터라, 의외로 깨끗한 두 번째 숙소의 방 상태를 보고도 한 동안 돌아나갈까 말까 망설였다.
결국은 여기서 묵기로 결정하니 시간은 저녁 8시... 인천을 떠나온 지 거의 30시간이다.
숙소에 짐을 대충 팽개쳐 놓고 거리에 무작정 나서긴 했는데,
생전 첨 와보는 낯선 도시에서의 첫날이 환한 대낮도 아니고 깜깜한 밤이라니.....
이건 싸움으로 치면 일단 선빵부터 맞고 시작하는 거나 마찬지로 불리한 상황인걸.

생각보다 어두운 거리(서울의 밤은 얼마나 화려한지....), 낯설고 시끄러운 말들, 사전지식 전혀 없이 지도에 의지해서 걸어야만 하는 상황 등등으로 우리는 약간 흥분하기도 하고 불안하기도 했던 거 같다.
전문으로 가기 위해 첫 번째 사거리를-분명히 보행자 파란불이 선명한- 건너던 중 우회전 하는 차가 속도도 별로 줄이지 않은 체 그냥 우리쪽으로 쭈욱~ 들이대었다.

가만가만...서울에서라면 어떠했던가...물론 서울에서도 녹색불임에도 불구하고 , 보행자가 뜸하거나 한산한 틈을 타서 우회전을 하는 차가 있긴 하지만 사람이 지나갈 때면 재빨리 멈추는게 당연한 그림이었던거 같은데... 적어도 건널목에 녹색불이 켜져 있는 동안에는 ,속도를 줄이는 건 차가 할 몫이지 사람은 아니었다. (적어도 내 경우에는...) 파란불이 깜박이는 동안의 건널목은 당당히 보행자 구역이라 말이지... 돈 많이 벌어놨으면 한번 쳐보시든가, 하는 몽니를 부려봐도 먹히는 곳이 서울의 횡단보도가 아니었던가.
근데 여기선 짤 없다. 그냥 차가 밀고 들어온다. ‘뼈 튼튼하면 한번 치어 보시든가..’. 뭐 이런 생각인가보다. 차의 범퍼가 요왕의 몸을 슬슬 밀어대는걸 보니 분노 폭발!! 손가락으로 신호등을 가리키며 “파란 불이잖아!!” 라고 소리치며 차를 노려봤다.
물론 그 운전자는 웬 정신 나간 여자의 개 짖는 소리쯤으로 여기고 아무생각 없이 지나갔겠지만 말이다. 적어도 난 그게 옳다고 생각했다.
나의 이 ‘무식하면 용감하고,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르는’ 행동은 그 후 한시간만에 완전히 기가 꺾여버렸다. 아까와는 달리 내 행동은 방향을 급선회해서, 두발로 성하게 걸어 다니고 싶으면 ‘파란불도 다시보고 차가 오면 일단 움츠리자’ 라는 비굴 모드로 바뀌었다.
방금 전과 같은 무드로 나갔다가는 등짝에 타이어 자국 찍힌 채로 베이징의 넓디넓은 도로에 엎어져 있는 건 시간문제일 것 같았다. 다치면 나만 손해 일뿐, 한국에서 어떠했는지는 여기선 아무런 고려사항이 안될 뿐만 아니라, 설사 뼈가 부러진 채 엎어져 있어도 누구하나 선뜻 도와 줄 것 같지도 않은 이 거대하고 건조한 도시에서 내 몸은 내가 지키는 게 제일 현명한 방법 인 듯하다.
 

첸먼(전문) 근처의 번화가 따자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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톈탄(천단) 북쪽 거리에 있는 숙소. 이름은 모른다 -_-;;. 1박 120위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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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Comments
알뜰공주 2020.08.30 21:25  
중국에서의 첫날을 여러가지로 가슴 쓸어내리게 하였네요.
교통규칙따위는 없는 중국 ㅠ 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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