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사실은 여행과 그다지 친밀하지 않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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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사실은 여행과 그다지 친밀하지 않는 사람...

고구마 2 593

살다보면 이런 사람 꼭 있다.
맛있게 차려놓은 식탁앞에서 바쁘게 젓가락질하는 날 보면서  ‘어머..난 이런거 잘 못먹겠던데, 넌 참 잘먹네...내 것도 먹을래? ’ 라고 말하는 사람들...
발품 팔아가며 고민고민 하면서 준비해간 선물을, 단지 지 요구에 안 맞다는 이유로 뜨악하게 보면서 ‘고마워..잘 쓸게..’ 하며 한켠으로 밀어놓고 썩은 미소 날리는 인간들...
한마디로 잔잔한 내가슴에 초를 치는 인간들이라고 볼수 있는데,
사실 배낭여행자 커뮤니티에서 ‘난 여행하고 별로 안 친합니다’ 라고 말하는건 저런 초치는 액션이랑 별로 다를게 없다는걸 잘 안다. 그래서 왠만하면 자기기만과 최면술 비스므리 한걸 동원해서 그 사실을 외면하려 해도 , 결론은 난 떠돌이형 인간이 아니라 붙박이형( 약간 히끼코모리 성향도 있는듯...) 인간이란 사실이다.
여행이 지루한 일상의 탈출구 이긴 하지만, 자칫 장기여행은  " 여행이 일상사가 되버리는.." 아이러니한 구석이 있다. 그야말로 여행이 주는 그만의 뭔가를 잃어버릴 공산이 커진단 이야기. 뭐든지 일상이 되버리면 그건 본래의 빛을 잃기 마련이라 그런가보다.....

가만히 되집어 보자니, 이렇게 여행을 부담스럽게 느끼게 된데에는 아무래도 나의 첫 해외여행이자 신혼여행이 되었던  5개월간의 태국체류가 그 원인이지 싶다. (누구든 불행의 원인은 외부에서 찾는다지 ....)
무엇이든간에 첫 경험은 좀 말랑말랑하고 슬로우하게 시작했어야 했건만, 왠만한 거지 배낭여행자들도 안하는 노숙을 돈무앙 공항 도착하는 첫날부터 한데다가 여행자체의 성격도 남편의 작업일정(가이드북 맹그는..)에 맞춰 스케쥴 대로 움직이자니, 완전 뱁새가 황새 따라가다가 가랑이가 턱까지 찢어질 지경에 처해버린것이었다. 한마디로, 완전히 디어서 나가 떨어져 버렸다.

어쨌든 이번 여행을 놓고 과연 우리가 이 여행에서 행복할수 있을까..라고 진지하게 이야기 해 봤는데, 요왕 왈 그건 전부 다 내 하기에 달려있단다.
자기는 어쨌거나 저쨋거나 여행 자체만으로 행복한 위인인지라, 별 문제가 없으니 나만 히스테리 발작 안 일으키고 행복해 하면 만사 거칠것이 별로 없다면서 부담감을 팍~ 안겨준다. 휴우~
이거 뭐 잘되면 자기탓, 못되면 내탓인거 같은데...잘되봤자 본전이구먼...

사실 원래는 이렇게 긴~( 2년의 시간이 우리앞에 있다) 시간이 아닌 최대 일년을 목표로 계획을 잡았는데, 그만 집 문제가 내 발목을 콱 붙들어매고 말았다.
여행가기전에 우리의 가장 큰 고민거리가 되었던 집.....
한달씩 여행갈때는 마냥 비워놓고 갔었지만, 여행기간이 워낙 장기이다보니 세를 줘서 얼마간의 경비도 보충할겸 세입자를 찾기 시작햇다.

일단 부동산에 말해놓기로는, 기간은 일년 정도로 대부분의 살림과 가재도구를 다 이용할수 있는 사람을 물색하고자 했건만, 부동산 아줌마가 물어온 세입자는 기간 2년에 가재도구 쓸맘은 전혀 없는 보편적인 가족들이었다.
좀 더 기다려보면 우리 요구에 딱 맞는 사람이 나타날지도 모른다는 내 주장과 달리, 요왕은 이사람 놓치면 다시는 기회가 없을거 처럼 안달복달을 하고 한숨을 내쉬었다 들이쉬었다  내목을 조르며 아주 오도방정을 떨며 닥달한다.
아...일년은 그런데로 참을수 있지만, 이년은 너무 까마득 한걸....
결국 요왕 뜻대로( 사실 대부분의 일은 다 요왕 뜻대로 된다. 흑흑...) 계약서에 사인하고 나니 왠지 모를 상실감이 팍 밀려와서 내내 우울했었다.
예전엔 수 틀리면 ‘항공권 들고 나 먼저 한국으로 나른다.나의 홈~ 스윗 홈~’
이라는 덧없는 상상이나마 가능했지만, 이젠 정말 갈곳이 휘리릭 사라져 버렸다. 마치 발 없는 새처럼 끊임없이 돌아 다녀야 한다니....

투덜투덜 불평불만 히스테리.....이런 나의 기분과 달리 장기간의 여행을 위한 준비는 미약하게나마 하나하나 이루어 지고 있다.
짐을 시댁으로 옮기고 배낭을 사고 비자를 받고 , 그동안 요왕 눈의 가시 같았던 허접한 디카와 몇몇 전자제품을 중고로 팔아치우고 새 카메라 두대와 여행자의 필수품 엠피쓰리 까지 구입하느라 마음만큼이나 카드 긁는 손도 같이 바뻤다.
아무래도 장기여행이다보니 이번에는 요왕이 지고 다니는 것과 같은 사이즈인 45리터짜리 배낭을 매기로 하고 등에 걸쳐보니 , 드래곤볼의 거북도사가 따로 없다. 이렇게 스타일이 안살아서야 원~

아아...안팎으로 어디에서도 위로 받을수 없는 내 신세...
싱숭생숭한 내맘과 달리 태사랑에선 “ 와~ 너무 부러워요. 좋겠어요. 나도 하고 싶다” 뭐 이런 류의 반응이고 우리집 식구들이나 내 친구들은 “ 너처럼 사는거 너무 이상해...감이 잘 안온다.넌 그냥 대구에 있지 그러냐....” 라며 생뚱맞은 소리나 하고있으니 ..음냐...
어쨌든 시간은 흐르고 흘러 더 이상 징징 대고 있을수만은 없게 되었다. 눈에 잘 들어오지도 않는 중국어 회화책을 보거나 가이드북을 보는 걸로 차근차근 여행의 첫발을 떼는 수밖에......


아무쪼록 내게 부딫히는 시간들이 나를 너무 채찍질 하지 않기를....

이 발걸음이 차곡차곡 쌓여 내 삶의 좋은 밑거름이 되기를 진심으로 절실하게 바라며,
'피할수 없으면 즐기라' 는 케케묵은 경구만 되새김질 해야겠다. 

2 Comments
동쪽마녀 2020.08.17 23:28  
제목 읽고 도로시 얘기인 줄 알았습니다.
5살 때 처음 데리고 간 더운나라에서 한낮 땡볕에 그렇게 걷고 걷게 했으니
아이가 비행기 타러 간다고만 하면 울었던 것도 이상하지는 않았구먼요 생각해보니.
그런데 두 분 2년 동안 장기여행을 하셨었군요.
그건 몰랐었습니다.
여행이 아니라 말그대로 일상이 되어버린 타국에서의 생활은 어떨까 싶습니다.
한 번 해보고 싶기는 합니다 저두요.

15, 6년 전의 고구마님과 요술왕자님은 이런 모습이셨구먼요.
두 분의 그런 과정 덕분에 우리 태사랑의 방대한 자료들을 저는 값없이 누리고 있구요.
늘 감사해하고 있습니다.
사랑합니다!^^
고구마 2020.08.18 09:13  
사실은 저 시절 여행시작할때 원래 목표는 2년을 작정하고 떠났는데요...하하.
결국은 몇개월 정도하고 ( 1년에는 조금 못미치는 기간....) 우리나라로 후다닥 돌아왔어요.
중간에 일이 좀 생기기도 하고 몸도 아프고
우리가 비행기 표 스케쥴도 안잡고 그냥 정처없이 나간거라
중간에 여행 끊고 돌아오기도 쉽더라고요.
저때 중국이랑 그 인근 동남아 좀 돌다가 중도귀환했다는....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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