끄라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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끄라비

고구마 0 551
(2003년 글입니다.)



아마 많은 여행자들이 생각해 보듯이, 우리도 태국에서 인생의 얼마간을 (짧게는 몇 달에서 길게는 몇년.....) 사는 것에 대해 잠깐씩 생각해보곤 한다...
태국의 어디에서? 라는 물음에 우리의 대답은 “끄라비 아니면 깐짜나부리 요!!!” 이다.
피피로 통하는 관문이기도 하며 아오낭과 라이레 해변을 가지고 있는 끄라비는 우리의 취향에 걸맞게 도시의 규모가 작고, 밤이면 이동 식당으로 가득해지는 예쁜 선착장을 가진데다 또한 저렴한 물가로 여행자들을 기쁘게 하는 곳이다. 뭔가 더더욱 합당한 이유가 있어야겠지만 딱이 꼬집어서 뭐라고 설명할수 없는 편안함이 끄라비에는 있었다. 물론 이건 우리의 개인적인 느낌일 뿐인지라 다른 많은 여행자들에게는 끄라비가 그저 피피를 드나들기 위해 거쳐 가는 작은 도시일 뿐일 것이다.
우리는 만약 한국에서 조그만 까페나 음식점을 내게 된다면 그 이름을 ‘끄라비’ 로 하기로 하자며 살짝 웃었던 듯 싶다. 끄라비에 살수도 없고 한국에 끄라비 라는 이름의 까페를 낼수 없을지도 모르지만, 하여튼 상상만은 자유롭다.

우리가 좋아했던 숙소, 찬차레의 상태는 2년만에 그 빛을 많이 잃은 듯 하고 햇빛이 안드는 방에는 조그만 빈대가 살고 있기도 했다. 공동 사워장의 샤워기는 한쪽이 금가서 물이 줄줄새기도 할정도 였지만, 어쨌든 이곳에 여장을 풀고 우리는 끄라비 근처의 호랑이 동굴 사원으로 오토바이를 빌려 타고 달렸다.
호랑이 동굴이래 봤자 뭐 별다른게 있을리 없었고, 난 정말 태국의 ‘왓’ 이 지겹기 짝이 없었다. 호랑이 머리 비스므리 한 조그만 바위가 하나 있고 어울리지도 않게 거다란 고래 머리뼈도 떡~ 하니 전시되어 있었다. 사원내에는 1237개의 가파른 계단을 올라가면 커다란 불상이 안치되어 있는 절벽 이 한쪽을 차지하고 서있다.
“ 같이 올라가자..고구마야..”
“ 싫어...그 지겨운 불상 보러 계단을 천개도 넘게 올라가야 된다고...?”
“ 혼자가기 심심 하니까 그렇지...같이 가자....”
내키지 않는 걸음으로 한 오십계단 정도 올라갔을까...나는 숨이 차고 정말로 덥고 힘들었다.
하기 싫은 일은 하지 않아도 되는 나는 이럴 때 얼마나 편리한가...나와는 달리 사진을 찍어야만 하는 요왕은 힘든 걸음걸이와 구부정한 자세를 하고서는 차차 사라져 갔다.
한시간반동안 벤치에 앉아서 내려오는 사람들을 구경하는 동안 나는 요왕의 고생을 미루어 짐작할 수가 있었다. 내려오는 이들의 몰골이 다 똑같았다. 얼빠진 얼굴에 푹 젖은 상의...
곧 이어 내려온 요왕은 거기에다 옵션으로 더해서 멀리서 보기에도 확연히 표가 나게 다리를 후덜덜~ 떨고 있었다.
“ 으악..손수건이 다 젖었네....”
“ 그거 한 열 번은 짠거야..너 안 올라가길 정말 잘했다. 중간 쯤에 가니까 원숭이 들이 가로등 형광등을 깨서는 그안을 날름날름 핥아먹고 있더라...미친 원숭이들...아마 중금속 중독되서 일찍 죽을거야...게다가 시커먼 산 모기 떼랑..으흑.....그리고 올라가는데 원숭이가 자꾸 뒷발목을 살짝살짝 잡는거 있지...안경 채갈까봐 혼났어...아이구~ 대략 정신이 혼미해진다...”
끄라비 시내로 돌아온 허기지고 지친 우리의 눈에 일본식 식당 ‘사쿠라’가 눈에 띄었다. 분명 비쌀 것이라는 나의 우려와는 달리 돈까스와 함박이 각각 100, 80밧 밖에 하지 않으며 미소시루와 쫄깃한 밥, 기대치도 않았던 몇가지의 사이드 디쉬는 우리의 위장과 마음을 행복하게 해주었다. 여느 일본인과 마찬가지로 이집의 주인인 아담한 체구의 일본인 아저씨도 무척이나 친절한 사람이었다. 난 문득 ‘미소의 나라’ 라는 명칭이 태국보다는 일본에게 더 잘 어울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잠시 들었다. 숙소에서 우리는 지친 몸과 부른 배를 껴않고 금세 잠들 수가 있었다.
우리는 그 외에도 롱테일 보트를 빌려 끄라비강의 맹그로브 나무 숲과 동굴절벽 등을 둘러보기도 했다. 한시간 남짓한 투어 동안 뱃사공은 “ 유 해피?  아임 해피!! 남한은 아주 좋아요~ 북한은 조금 좋아요~ ” 라는 둥 잘 알아먹지 못할 말로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해서 우리를 웃겼다.
분명 투어 전에 1시간에 250 에 흥정하고 탓건만 막상 나중에는 잔돈이 없다며 50 밧은 자기를 위해 팁으로 달란다...이이런~......그러면서 “ 나는 아이도 가지고 있어요” 라고 말한다.
잔돈이 없다는 뻔한 속임수에 순간 어이가 없었지만, 아이를 기르고 있다는 말에 맘이 약해져서 기분 좋게 웃으며 잔돈은 포기했다. 우리 아버지도 자식들을 기르기 위해 자신보다 더 어린 사람에게  아쉬운 소리와 이해를 구한적이 있었을까.....?
마음 한켠이 약간 저릿저릿 하다...

사진1 : 찬차레의 식당 테이블
사진2 : 호랑이 동굴 사원 꼭대기
사진3 : 사꾸라 식당
사진4 : 끄라비강 투어를 해준 아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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