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기 독촉 겸 보은 여행기) 도로시& 동쪽마녀 IN 콩찌암 파땜국립공원 (2019.01)
망고찰밥님 소도시 여행기 기다리다 제 풀에 지쳐 올립니다.
궁금해서 이미 여러 번 독촉을 드렸던 터라 죄송해서 더는 못 하겠어서요.
(파야오, 난 궁금해죽겠습니다.ㅠㅠ)
2010년 캄보디아 시엠립 여행기 이후 여행기는 10년만이구먼요.
2019년 1월 중순부터 2월 중순 사이 돌아본 곳들 중
가장 좋았던 두 곳 (콩찌암, 롬싹)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다녀온 곳들 전부 올리는 것이 아니어서 이야기가 듬성 듬성하니 양해해주세요.
백만년만에 친정에 보은합니다.^^
< FROM UBONRACHATHANI TO KHONGCHIAM >
지나가는 오토바이 소음에 잠을 깼는데 시계를 보니 벌써 아침 8시였다.
도로시를 깨워 어제 밤 사다 놓은 빵을 먹이고 차비를 차려
아침 10시 롯뚜를 타러 터미널로 향했다.
아마도 10시 롯뚜는 출발한 것 같았고 그 뒤 차편인 10시 40분 롯뚜를 타야했다.
탑승하는 곳은 28번 플랫폼.
혹여 가방 땜에 돈을 더 달라고 할까봐 눈치를 봤는데
짐 실어주시는 아저씨가 정말 맘 고운 분이어서
맨 끝자리 좌석과 좌석 사이에 그 큰 캐리어를 실어주셨다.
롯뚜는 만석이었고 더웠다.
피분을 지나 계속 사람을 실어서
문 바로 앞에 앉아 있던 외국인 언니는 편히 앉아 가지 못했다.
그래도 웃는 얼굴을 하고 재밌어하는 그 프렌치 언니가 참 좋았다.
통로는 짐으로 가득 찼고 사람들은 곳곳에서 내리고 탔다.
콩찌암호텔은 조사한 바대로 콩찌암플레이스 대각선 맞은 편에 신관인 콩찌암호텔2가
그 맞은 편에 콩찌암호텔 구관이 있었다.
한낮의 콩찌암은 이런데 무슨 영업이 될려나 싶을 만큼 한산하였다.
콩찌암호텔 구관에 앉아 있던 오빠를 불러 방을 보여달랬는데
가격대비 넓고 밝고 깨끗했다.
3일을 묵는다고 했더니 내일 풀 부킹이라 트윈룸은 없다고.
1층에 묵을까 2층에 묵을까 고민하다가
2층에 비해 더 시원한 1층 가장 조용한 끝방 (101호) 더블룸에 묵기로 했다.
꽤 탁월한 선택이었다.
착한 메이드 언니에게 룸바닥을 한 번 더 닦아 달라고 하고 짐을 푼 뒤
바로 동네 탐방에 나섰다.
맨 처음 롯뚜가 우리를 내려놓은 길이 메인 로드이고 마을 초입이며
바로 맞은 편이 아침 시장이자 야시장이었다.
그 메인 로드 상에 세븐일레븐이며 테스코 로터스, 은행들이 모여 있고
그 쪽에서 한 골목 안쪽으로 들어가면
아마도 금, 토, 일요일만 유원지로 바뀌는 곳이 있으며 그 너머가 강변이다.
강변길을 따라 커피숍이며 음식점이 주르르 이어져있다.
콩찌암 강변길.
이 번 여행 중 첫 강변 마을이 콩찌암이었다.
강바람이 참 시원하였고 고즈넉하여 마음에 드는 마을이었다.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야시장에 들러 이런 저런 먹을거리를 사들고 들어왔다.
쏨땀은 너무 어린 언니가 만들어주는 탓에 설탕을 많이 넣어 두 번 먹고 싶지 않았지만
썰어 파는 과일 행상 할머니는 수박, 파인애플, 파파야 세 봉지에 50밧만 받으셨다.
동네가 작아서 돌아다니고 마사지 한 번 받고
저녁에 야시장에서 먹을거리와 과일 사다 먹는 것 외에 돈 쓸 일도 없거니와
물가 매우 저렴하고 강변마을이라 강바람 시원하고.
콩찌암 참 좋다.
눈이 너무 잘 보여서 더 무서워어."
"쟤는 네가 무서울거야, 도로시."
우리 방 앞 천장에 붙어 있던 왕찡쪽.
공기 좋고 물 좋아서 그런가 콩찌암은 찡쪽들도 다들 크다.
건강하렴.
건강한 왕찡쪽이 밤 새 망 봐주는 숙소여서 이 번 여행 처음으로 숙면하였다.
아침밥으로 나온 메뉴가 고수 듬뿍 든 돼지고기 죽이어서 난감해하고 있는데
숙소 오빠가 와서 쌈판복과 파땜국립공원 (싸오 짤리앙 포함) 토탈 2,000밧이라고.
늘 느긋한 오빠의 느닷없는 제안은 콩구워먹듯 얼른 주워먹어야 제 맛이지.
당장 아침 9시에 출발하기로 하고 바로 차비를 차려 떠났다.
< SKIPPING SAMPHANBOK AND SAOCHALIANG >
가기 전 싸오 짤리앙과 파땜국립공원이 같은 곳에 문만 달리하여 있는 줄 알았는데
그건 아니었다.
싸오 짤리앙에서 차로 다시 20분 가까이 간 것 같았다.
파땜 입장료는 외국인 400밧인데
함께 간 주인마님이 도로시는 학생(낙슥사) 라고 말씀해주신 듯 했다.
결과적으로 나는 400밧 도로시는 200밧.
옥수수 수염머리 기사 오빠가 에어컨도 아낌없이 틀어주고
주인 마님이 어디서 기다리고 있겠다고 정확히 말씀해주시고
마음 고운 주인 마님이 동승하니 참 좋다.
파땜국립공원은 순전히 선사벽화를 보러 간 곳인데
길이 좁고 험해서 우기에는 비추.
미끄러져서 좁은 길 바로 옆 낭떠러지로 구르면 그대로 사망각이다.
그래도 선사 벽화 그룹 1과 2까지는 갈 만 했지만
3부터는 길이 너무 좁고 험난하여져서 걷기도 힘이 들었다.
벽화 3과 4는 잘 안 보이니
벽화 2까지만 보고 온 길로 다시 돌아가라는 안내문이 있었지만
선사유적을 보고 모험심이 발동한 도로시는 끝까지 가보고 싶어했다.
공대 오빠같은 내 딸은 모험심이 거의 레이더스 급인 어린이였던거다.
파땜국립공원 입구에 있는 선사벽화 지도.
도로시더러 지도니까 일단 찍으라고 했는데 안 찍고 갔더라면
엉뚱한 길로 가서 헤매다 온 길로 다시 돌아나오는 생고생을 사서 할 뻔 했다.
사람 많이 안 다니는 곳에서 지도는 정말 소중하다는 것을 다시 한 번 느꼈다.
파땜국립공원 입구에서 내려다 본 전경.
시원하고 아름답다.
이 때는 나도 도로시도 두 시간 이상 험한 길 걷느라 고생할 줄 모르고
매우 해맑은 상태로 감탄하였었다.
저 강물은 어디서에서 오는 걸까, 순수 감탄 중이었다.
한 치 앞은 커녕 단 두 어 시간 후의 운명도 모르는 존재가 사람인 것을.
참 덧없어.
이 곳이 파땜국립공원이고 우본 주에 있소.
선사 벽화 그룹 1.
저런 모양의 숨은 그림을 찾으시오.
도로시도 나도 화를 냈다.
"아, 진짜 어딜 봐서 이게 물고기고 어디에 코끼리가 있다는거야!"
"그냥 그렇게 생각하고 싶은 것 아니야?"
"그룹 2도 이런 식이면 나 정말 화날거야, 엄마.
여기 들어오는데 우리 600밧이나 냈단 말이야!"
그러지 않기를 바라자, 도로시야.
선사벽화 그룹 2.
정말 저렇게 코끼리하고 물고기하고 샘물인지 냇물인지하고 선명하게 안 보이면
막 화낸다 니들.
오!!
두 번째 벽화들은 솔직히 나름 선명하여 보기 나쁘지 않아서
크게 상상력을 발휘할 필요가 없었다.
천 년도 넘은 벽화들이 아직도 남아 있다니 뭘로 그렸을까,
도로시와 열심히 토론하였는데
동물의 피나 열매, 풀 같은 자연염료로 그렸을 것이라는 나름 심오한 결론을 내렸다.
"도로시, 그럼 그런 재료들이 오래도록 지워지지 않고 색을 낸다는 것을
어떻게 알았을까?"
"음 . . . 여러 번 그려봐서 경험으로 알지 않았을까?
예를 들어 동물의 피보다 동물의 피에 뭘 섞어서 그리면 그림이 더 오래 간다거나
무슨 열매하고 풀하고 섞었더니 색이 더 선명했다거나."
"그 당시에도 예술가들이 많았을려나?"
"그림을 그리든 노래를 부르든 무언가를 통해 자신을 표현하고 싶어하는 것은
인간의 대표적인 욕구라고 어디서 읽은 것 같어.
어쨌든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니까."
"사회적 동물이니까 뭘 표현해서 자신의 흔적을 남기고 싶어하는 뭐 그런 욕구?
그럼 도로시는 뭘 실현해서 너 자신을 표현하고 흔적을 남기고 싶어?"
"그래서 일기도 쓰고 여행 그림도 그리잖아, 엄마."
"아!"
그림이며 색채며 비교적 선명한 편이다.
국딩 때 나도 냇물을 저렇게 물결로 그렸는데
선사시대 사람들도 강물을 나처럼 그렸나 보다.
물고기 그림도 내가 아이 때 그렸던 것이랑 비슷하고.
나는 아무래도 선사시대 형 인류인 모양이다.
무슨 변화 발전이 없니.
쳇.
도로시도 나도 이건 무슨 빗살무늬 토기 같은 용기일 것이라고 믿어의심치 않았는데
나중에 파땜국립공원 엽서를 보고 알았다.
사람이다.
이건 산 아니면 강물?
아, 정말 생각하는 것이며 그림 수준이 지금의 나랑 다를 바 하나도 없어.
하지만 산 넘고 물 건너 사냥하며 다니느라 먹고 살기 고단한 나 여기 있어요,
하는 것 같은 손자국.
옛날이나 지금이나 먹고 살기 힘든 건 마찬가지였겠지.
게다가 색채가 여적 저리도 선명하다는 게 뭔가 울컥하여서.
당신의 뚜렷한 손도장이 뿌듯할 만큼 괜찮은 생이었기를.
선사벽화 그룹 3.
'파 몬 노이' 라고 부르나 보다.
어쩐지 오래 걸었다 했더니 다른 선사벽화와 800미터 정도 떨어져 있는 유적이었다.
선사벽화 그룹 1보다는 낫지만 이것도 거의 숨은 그림 찾기 수준이라
손도장 말고는 내 눈에는 안 보이오.
음 . . . 맨 오른쪽 저 뭔가 그물도 아닌 것이 계단도 아닌 것이
벼논을 선으로 그린 거구나.
진짜 다른 건 모르겠다.
선사벽화 그룹 4로 가는 길은 참 험했다.
네비게이터 도로시군에게 이 길 맞겠지, 맞을거야,
반신반의 확인하고 또 확인하며 걸어간 길이었다.
만약 길이 여러 길이었다면 나도 도로시도 엄청 헤매다
다시 선사벽화 그룹 2가 있었던 곳으로 되돌아 나갔을 것이다.
키가 크거나 날씬하지 않으신 분은 지나갈 수 없는 뭔가 화가 나는 길이다.
나는 키가 작고 날씬하지 않고 도로시는 키가 크고 날씬하지 않아서
지나가느라 고생했다.
"아, 정말 이런 길을 꼭 가야 해?"
"엄마, 우리 600밧이나 냈다는 것을 잊지마.
돈 냈으면 돈 낸 만큼 꼭 봐야지!"
내 딸이 의지의 한국 어린이라는 것은 초딩 때 치앙마이에서 트래킹하면서 이미 알았지만 이 정도일 줄은.
나는 벌써 이 때부터 다리가 후들거리기 시작했던 것 같다.
선사벽화 그룹 4는 그만큼 보러 가는 사람이 없어서인지
가는 길 내내 변변한 안내문도 없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거의 바위 끝에 매달려 봐야 해서
온갖 공포증을 내재하고 사는 나는 올라 가지도 못했다.
선사벽화 그룹 4.
치마를 입은 사람이 여자인지 남자인지 확인할 길이 없는 이유는
치마 입은 사람에게 가슴이 없어서 라고.
그렇겠지.
저 당시에는 다산이 노동력의 원천이었을테니 그걸 강조했을테지.
이건 정말 도로시니까 올라가서 사진까지 찍은 거다.
다른 건 몰라도 이건 칭찬해줘야 한다.
"꼭 올라가서 봐야겠니, 도로시?"
"엄마, 이건 선사유적이야.
게다가 정말 말그대로 그 오래된 선사유적이 코 앞에 있다고.
이런 걸 어떻게 안 봐."
아까 그 빗살무늬 토기인 줄 알았는데 사람 그림이었던 것과는 또 다르게
완연한 사람 그림이다.
선사벽화 . . . 죠?
선사벽화를 코앞에서 본다는 건 전율 이는 경험이었다고 도로시는 말했다.
그럼 되었다.
크메르 유적 투어와 함께 이 선사유적 투어도 도로시에게 보여주려고 한 것이니까.
하지만 진짜 문제는 선사벽화 그룹 4를 본 후부터였다.
꽤 장거리를 걸은데다 그 거리가 평지가 아니라 오르내리는 산길이어서
내 체력이 거의 고갈되었다는 것.
그리고 지금까지 걸어온 만큼 다시 걸어서 주차장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
그래.
선사벽화 그룹 4 파몬까지 왔다 가는 내가 장하다 정말.
이 길을 넘어가면 무슨 정자 같은 것이 나오는데 그 정자에서 가는 길이 없는 줄 알고
나와 도로시는 이 길을 내려와 왔던 길로 다시 가려고 했었다.
하지만 우리 도로시는 달리 네비게이터가 아니었다.
"엄마, 우리 공원 입구에서 지도 찍었지."
"그랬지."
"거기서 아까 그 정자를 본 것 같은데.
그 정자에서 돌아갈 것이 아니라 그 뒤로 가면 주차장이 있다고 본 것 같아.
사진 다시 확인해봐야겠어."
그렇게 나와 도로시는 온 길을 다시 돌아가는 바보짓을 면했다.
그랬더라면 나는 지금 이 글을 타이핑하고 있지 못할지도 모른다.
돌탑이다.
뭔가 간절히 바라는 마음은 국적불문 시대초월인가 보다.
"어떤 누가 먼저 돌을 쌓았을 거고
그걸 보고 이 길을 지나가는 사람들 중 뭔가 간절히 바라는 것이 있는 사람들이
하나씩 하나씩 그 위에 쌓았겠지.
엄마는 이런 걸 볼 때 마다
사람 안에는 누가 알려주지 않아도 내재되어 있는 신앙심이란 게 있구나, 그래.
경이롭거나 압도적인 자연을 볼 때 경외심을 느끼는 것도 그렇고
그런 자연을 숭배하는 종교가 있는 걸 봐도 그렇고
종교심은 사람의 본능 중 하나가 아닐까, 뭐 그런 생각을 하오, 딸램."
힘들어 지나치려다가 그래도 영화 '알렉산더' 를 찍은 장소라잖아, 하면서 한 컷.
그 많은 스텝들이며 배우들이 무거운 장비 이고 지고 이곳까지 올라왔다니
영화도 그냥 만들어지는 건 아니구나 싶었다.
쌈판복도 그렇고 싸오 짤리앙도 그렇고 이곳 파땜국립공원도 그렇고
참 신기한 지형이다.
이 사진을 끝으로 도로시와 나는 터벅 터벅 흙먼지 날리는 길을 주차장까지
말없이 걸었다.
후들거리는 다리를 하고 주차장으로 돌아오니 오후 3시가 다 된 시간이었다.
2시간 이상 그 험한 길을 쉬지도 않고 걸어다녔으니 다리가 후들거릴 만 했다.
매점에서 시원한 물을 사서 그 자리에서 다 마실 정도로 힘이 들었지만
이 번 투어는 그럴 만한 가치가 있었다.
게다가 아침 9시부터 꼬박 6시간 동안 험한 길을 운전하여 세 군데 국립공원을 돌아보고 투어비 2,000밧 지불이면
꽤 적정한 가격이라는 생각이다.
갈 때는 모르는 길이어서 그랬는지 굉장히 오래 걸린다고 생각했는데
돌아올 때는 아주 후딱이었다.
나는 완전히 파김치가 되어서
점심 때가 훌쩍 넘었는데도 밥도 먹기 싫고 아무 것도 하기 싫었지만
아이는 먹여야 하잖나.
어디서든 도로시 밥을 먹이려고 나서려는데 주인 마님이 밥상을 차려주셨다.
투어 내내 배고프지 않니, 뭘 먹고 다녀야 하지 않니, 걱정해 주어서
그저 참 인정 많은 주인 마님이시네, 그랬는데 정말 밥상을 차려주실 줄은.
밥과 국수, 쏨땀, 계란부침, 생선으로 된 정성어린 점심상이어서 마음 찡,했다.
비록 내가 잘 못 먹는 민물생선이고
계란부침에 고수가 가득이어서 도로시는 눈물을 흘리며 삼켜야했지만
주인 마님의 그 마음이 너무 고마웠다.
"밥 잘 먹었어요?"
"네, 아주 맛있었어요.
주인마님께 감사하다고 꼭 전해줘요."
"우리 엄마가 만드신 거예요."
숙소 오빠 숙소 주인집 아들이었구나.
우리 엄마가 만들었어요, 하는 말 속에
우리 엄마 요리 참 잘 하지요, 하는 으쓱함이 들어 있어서 정말 귀여웠다.
콩찌암도 콩찌암 숙소도 사람들도 정말 좋다.
가진 것이 마스크 팩 뿐이어서 고마운 마음을 담아 주인 마님께 드리고
몸이 아파 마사지를 받으러 갔다.
마사지사 아줌마는 잘 하는 편은 아니지만 최선을 다해주었다.
나는 언제나 최선을 다하는 사람에게 약하다.
200밧과 팁으로 100밧을 드리고 나오니 사방이 어둑어둑해지기 시작했다.
들고 나온 돈 중 남은 100밧을 들고
숙소 들어가는 골목 바로 앞 Coffee Cafe 에서 아메리카노를 주문하고 앉아 기다렸다.
어둠이 내리는 콩찌암은 뭐라 표현할 수 없을만큼 아늑하고 마음 편하였다.
호박빛 조명이 들어온 커피숍은 눈물나도록 마음 놓이고 따뜻하였다.
묵다한을 포기하고 콩찌암에 더 머물기로 결심했다.
삶은 늘 선택의 문제인거다.
가보지 않았으니 묵다한이 좋은지 어떤지 나는 알 수 없지만
그렇더라도 이 선택이 지금의 내게는 최선임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콩찌암호텔 구관 입구.
오른쪽으로 보이는 건물인가 그 뒷 건물인가가 완전 신삥 호텔인데
새 건물이라 깨끗하고 인테리어 참 예뻤지만
가격대비 방이 너무 좁고 방들이 다닥 다닥 붙어 있어서 방음 취약이 느껴졌던 곳.
조식포함 700밧인데 그 가격에 그 좁은 방이라니 묵고 싶지 않아서
뒤도 안 돌아보고 이 숙소로 돌아왔었다.
콩찌암호텔 마당.
구관이고 1박 조식 포함 450밧 일거다.
(400밧인가?)
구관 바로 맞은 편에 있는 신관.
구관보다 조금 더 비싼데 정확한 가격은 기억이.
콩찌암호텔 2로 되어 있고 2층 건물인데
2층은 보안이 더 나아 보이는 장점이 있지만 꼭대기층이라서 덥다.
묵어보니 콩찌암은 규모 작은 동네라서
보안 걱정은 크게 하지 않아도 될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고 문을 열어놓고 다녀도 괜찮다는 것은 절대 아니지만.
넓고 시원하고 책상 큰 방.
나는 조명이 밝고 책상이 큰 숙소를 선호한다.
화장실도 이 정도면 훌륭하였고.
고마운 숙소였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