폰사반의 항아리 평원 그리고 전쟁의 흔적
라오스의 폰사반(시엥쿠앙)은 월남전쟁의 당사자가 아니면서도 전쟁의 가장 큰 상처를 입은 도시이다. 그리고 그 유래를 알 수 없는 신비로운 항아리 평원을 품고 있는 곳이지만 교통이 불편하여 일반 여행객들이 찾아가기 어려운 곳이기도 하다.
비엔티안의 동북부 지역에 위치하는 폰사반을 가는 방법은 항공편과 버스편이 있는데 비행기는 30분, 버스는 10시간이 걸린다.
이번 여행도 오토바이를 이용하기 위하여 지도 등 여러 가지 자료를 조사했다. 가는 코스는 북쪽의 방비엥을 경유하거나 남쪽의 팍산을 경유해서 가는 방법이 있는데 팍산을 경유하는 방법이 생각보다 길도 좋고 거리도 짧은 편이다.
비엔티안에서 폰사반은 왕복 700km 가 넘는 거리인데 주위를 돌아보거나 길을 잘못 들면 거리가 늘어날 소지가 많아 약 750km를 예상한다. 돌아온 뒤 정리를 해보니 정확하게 758km를 주행했다. 한국 잇수로 약 2천 리의 거리니 그리 짧은 거리는 아니다.
폰사반 까지의 거리는 210km의 거리로 높은 산을 3개를 넘어야 한다. 전체 이정의 반 정도는 험한 산길이라 운전에 조심을 해야 한다. 인가가 드물고 주유소가 없거나 문 닫은 곳이 많아 출발 전에 충분한 연료를 챙기거나 예비 연료의 준비가 필요하다.
팍산은 비엔티안에서 144km의 거리인데 전에 꽁로 마을을 갈 때 들려서 자고 간 곳이라 친숙한 곳이다. 길도 비교적 좋은 편이라 80km 까지 속력을 낼 수 있어 편안하게 왔는데 막상 팍산에서 폰사반으로 진입하는 길이 아리송하다. 이정표가 서 있는데 시앙쿠앙이라고 표기가 되어 있어 오토바이를 타고 가면서 판별하기가 쉽지 않다.
팍산에서 조금 가면 산길이 시작된다. 비교적 좁은 도로를 휘돌아 나가는 길이 엉성하긴 하지만 포장이 돼어 있다는 것을 고마워하며 달려야 한다. 우리나라 도로처럼 표면이 매끄럽지 않고 거친 곳이 많아 우리나라의 도로가 얼마나 훌륭한지 고마운 마음을 새삼 느끼게 된다.
가다보니 산불이 나는 곳이 보인다. 여기 산불은 우리나라 산불처럼 요란하지 않고 화력도 약한 편이다. 어느 정도 타다가 대부분 꺼지는 것 같은데 오가는 차량들의 운전사들도 별로 걱정하는 기색이 안 보인다. 나만 오토바이를 세우고 사진을 찍는다.
그래도 불은 인정사정이 없어 산불 근처에 있던 인가는 주인이 보는 가운데 재로 변하고 있다. 불을 끄는 헬기는 기대 할 수도 없지만 그 알량한 소방차 한 대도 출동을 안 했는데 가다보니 멀찍암치 떨어진 길가에 공무원처럼 보이는 사람 둘이서 차를 세워 놓고 불구경을 하고 있다.
그래 이곳이 바로 라오스다.
한 동네를 지나가다 보니 눈에 많이 익은 바위가 보인다. 저 바위 산들을 언제 보았던가? 맞아 지난 12월 통싸사이 동네 몽족 축제를 구경 왔던 곳이 바로 여기다. 그 동네 이름이 바로 파명이었지, 그리고 이 바위 동굴 입구에 있는 게스트 하우스에서 이틀을 잤던 곳이다. 반가운 마음에 사진을 찍었다.
파명을 지나는데 이상한 현상이 느껴진다. 한낮의 더운 열기를 온몸으로 맞으며 달려가는데 문득 더운 바람 속에 차가운 기류가 섞여서 불어온다. 더운 바람과 찬바람이 섞여서 불어오는 이상한 현상이 신기하기도 해서 가다가 오토바이를 세우고 사진을 찍었다. 이곳 지형이 원래 그런 곳인가? 그런데 사진에는 아무 흔적이 없다.^^
한참을 가는 동안 계속되는 현상은 더운 날씨에 누가 나를 도와주는가 보다 편하게 생각하며 달려간다.
다시 큰고개를 하나 더 넘다가 시간과 남은 거리를 계산해 보니 중간 어느 적당한 마을에서 하루 자고 가야 하는데 마땅한 곳이 안 보인다. 지도상에서 보니 중간 지점의 탓홈이 적당할 것 같은데 게스트하우스가 있으려는지 모르겠다.
고개를 내려가는데 산사태가 크게 난 듯 산 한쪽 면이 많이 무너져 내렸다. 보수는 엄두도 못내고 차량만 겨우 통행하도록 해 놓았는데 이런 곳을 오토바이를 타고 지나가려면 조심해야 한다.
탓홈이라는 동네에 들어서니 크지도 않은 동네에서 삐마이 축제(라오스 새해 맞이 축제) 기간이라고 포장을 쳐놓은 안에서 사람들이 모여 스피카를 크게 틀어 놓고 흥겹게 놀고있다. 13일부터 16일까지 가 삐마이 기간인데 벌써부터 난리를 피우고 있다. 먹고 살기도 힘든데 매달 있는 각 가지 축제날에 빠지지 않고 참가하는 이 나라 사람들의 열성은 우리는 이해가 안 된다.
길가에 게스트 하우스 간판이 보여 오토바이를 세우고 안으로 들어가 보니 사람이 안 보인다. 주인을 불러도 아무도 나오지를 않아 책상 위에 있는 명함의 전화번호로 전화를 거니 누군가 전화를 받는다. 나 지금 당신 게스트하우스에 와 있으니 빨리 오라고 하니 자기는 지금 바빠서 못 온다고 전화를 뚝 끊는다. 게스트 하우스 주인은 지금 삐마이축제에 한껏 흥이 올라 있어 손님이고 뭐고 귀찮을 뿐이다.
시간은 벌써 4시인데 이곳에서 방을 못 구하면 잘못하다간 길에서 노숙을 해야 한다. 오토바이를 타고 작은 동네를 헤매다 보니 게스트 하우스가 눈에 들어온다. 여기서 결판을 내자고 오토바이를 세우고 주인을 찾으니 역시 사람이 안 보여 당황, 그렇다고 그냥 갈 수도 없어 멍하니 서 있는데 한 사람이 나타난다. 당신이 여기 주인이냐고 하니 그렇다고 한다. 그래서 천신만고 끝에 방 하나를 구하고 하룻밤을 보내게 되었다.
오늘 온 거리는 249km로 600리 길을 달려왔다. 길도 안 좋은 그 먼 거리를 불평하나 없이 달려와준 오토바이가 고맙기만 하다.
내가 오토바이 여행 중에 가지고 다니는 전열 취사도구로 저녁식사 준비를 한다. 출발 전에 라면을 준비했는데 바보같이 주방에다 놓고 그대로 출발을 했다. 가슴을 쳐 보지만 다 부질없는 짓이다. 할 수 없이 비상용으로 준비했던 오토밀로 대체를 한다. 한끼 먹으면 그게 그거다.
다음 날, 탓홈을 출발하며 다시 나타나는 큰 고개 하나, 굽이굽이 길이 험해 사진을 찍을 여유가 없다. 사진에는 평탄해 보이는 힘들게 넘어온 고개가 바로 눈앞에 보인다. 저게 내가 넘어온 그 고개인가 다시한 번 확인해 본다.
심한 커브길은 오토바이를 타고 가는 데는 양면성이 있다. 오토바이를 눕히며 코너 길을 돌아나가는 묘미도 있지만 코너를 잘못 돌아가다 보면 코너 원심력을 극복하지 못하고 반대 차선으로 넘어가서마주 오는 차와 충돌하거나 낭떠러지로 추락하는 대형사고가 날 수 있다.
바퀴가 작은 스쿠터는 기울임 각도가 오토바이 중 가장 취약해 40도이고 일반 오토바이는 50도라고 한다, 경주용 머신은 60도가 넘어 TV에서 보면 코너를 돌 때 완전히 누워서 돌아 나간다. 나중에 도착해서 보니 내 오토바이 바퀴가 옆면까지 도로와 접촉한 흔적이 확연하게 보인다. 멋지게 옆으로 누워서 돌아나간 표시다. ^^
내 오토바이는 연료탱크가 작아 연료를 꽉 채워도 150 km 정도밖에 주행을 못한다. 고개 밑에서 주유소를 못 만나 그대로 진입을 하다 보면 난감한 경우를 당할 수가 있다. 이번에도 그런 경우다. 조금 가면 주유소가 있겠거니 하고 갔는데 한참을 가다 보니 마침 주유소가 나오긴 했는데 장사가 안되는지 두군데나 문을 닫았다. 돌아갈 수도 없고 남은 연료로는 50킬로를 달리기도 어렵겠다. 산길을 빠져나가려면 아직도 80킬로 이상은 더 가야 된다.
연료게이지가 마지막까지 갈 즈음 한적한 곳에 바이크를 세우고 가지고 간 보조 연료로 보충을 하였다. 오토바이 여행 중 처음 시도해 보는 경우다. 미리 준비하기를 잘했다.
산 아래 므앙쿤 마을에 도착한 뒤 연료를 넣고 1리터짜리 보조 연료통에도 기름을 가득 채워 두었다. 내 배가 부른 듯 마음이 든든하다.
12시 조금 지나 폰사반에 도착해서 변두리에 있는 게스트 하우스에 숙소를 정했다. 짐을 풀어 놓은 뒤 집주인에게 항아리 평원을 물어보니 친절하게 설명을 해 준다. 남자 주인은 자기가 시간이 있으니 안내를 하겠다는 것을 사양을 하고 밖에 나가 점심 식사를 한 뒤 그리 멀지 않은 항아리 평원으로 향했다.
식당에서 찰밥과 구운 고기를 주문했는데 정작 나온 것은 쌀국수, 서로 말이 안 통하니 할 말도 없어 주인아줌마와 서로 마주보고 어깨를 으쓱하고 웃고 말았다. 아! 맛없는 쌀국수를 억지로 먹어야 하는 괴로움!!!
항아리 평원 입구, 일반 여행객들은 교통 편이 없어 여행사를 통하거나 트럭을 별도로 빌려야 하지만 오토바이는 그런 걱정이 없어 좋다.
이 머나먼 폰사반에 오는 단 하나의 이유는 항아리 평원을 보기 위해서다. 엄청난 수의 크고 작은 돌항아리들이 평원에 흩어져 있는데 이 지역에는 아직도 불발탄이 많아 지정된곳 이외에는 못다니게 한다. 이곳에 가면 보기 싫어도 봐야 하는 전쟁의 흔적들이 우리의 가슴을 아프게 한다,
전쟁의 후유증으로 불발탄들이 거리의 장식품이 되고 팔다리 잘린 사람들의 모습이 흔한 이곳, 그렇지만 누가 이들에게 관심이나 가져 주는가?
6.25 전쟁후 우리나라에서도 상점을 돌아다니며 강압적인 도움을 요구하던 상이군인들을 70년대 후반까지 볼 수 있었으니 남의 얘기를 할게 못된다. 6.25를 겪은 우리는 이 상황이 너무 가슴아프다.
이곳은 월남전쟁 당시 산악지역으로 뒤덮힌 라오스 북부 지역에서 하노이에서 가깝고 평원으로 이루어진 폰사반 지역은 전쟁 당t시 양쪽에게 아주 중요한 요충 지역이었다. 당시 북부 베트남은 국경넘어 캄보디아와 라오스의 산악지역을 따라 호찌민 트레일이라는 군사 보급로를 확보했는데 미국은 이 보급로를 제거한다는 명목으로 비밀리에 이곳을 폭격하기 시작했다. 그 기간이 무려 9년간(1964 ~1973년) 단 하루도 쉬지 않고 폭격을 감행하여 세계 최대 폭격 지대라는 영예(?)를 안겨 주었다. 이곳이 바로 미국이 오랫동안 숨겨온 비밀전쟁의 현장이다.
우리나라는 70년 전 일제 강점기의 정신대 문제로 한번 보상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진정한 사과가 미흡했다고 해서 다시 사과를 하라고 일본을 닦달하고 있지만 약소국 라오스는 그런 억울한 피해를 입었으면서도 말 한마디 못하고 있다. 약소국의 설움이 바로 이런 것이다.
주차장에 오토바이를 세워 놓고 주차비와 입장료를 낸 뒤 셔틀버스를 타고 항아리 평원 입구로 이동한다. 차로 5분 거리인데 올 때는 걸어서 와도 된다.
잠시 후 도착한 입구에서 전부 하차한 뒤 완만한 경사 길을 걸어서 올라간다.
항아리 유적지는 지금까지 개발 되어 개방된 곳이 세곳으로 그중 제1 항아리평원이 가장 크다. 폰사반 시내에서 제1 유적지가 제일 가까워 10km, 2번 유적지는 24km, 3번 유적지는 30km 떨어져 있다. 대중 교통이 없어 투어를 이용하는 것이 편하다.
드디어 먼저 나타난 포탄 투하 흔적의 웅덩이. 나는 6.25 사변 때 영등포에서 시흥으로 피난 가 있었는데 지나가던 미군 정찰기가 인민군을 보고 연락하자 전투기가 와서 인민군이 있던 앞산을 폭격하고 기총소사를 하던 모습이 생생하게 기억 된다.
이어서 돌 항아리들이 보이는데 공습에 부서진 항아리들과 그나마 온전한 항아리들이 산만하게 흩어져 있다.
이 돌항아리는 2500년전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 된다. 항아리평원은 라오스어로 텅 하이힌이라고 하는데 항아리가 발견된 지역을 지칭한다. 돌항아리는 평균 1,100m고지의 총면적 450평방키로 미터 지역에 흩어져 있다. 현재까지 60여개 지역에 4천여개의 돌항아리가 발견되었다.
돌항아리는 술잔, 빗물저장고, 장례의식용등 이라는 여러 설이 있는데 학자의 연구 결과에 의하면 돌항아리는 일종의 무덤이라고 밝혀졌다. 고인돌의 일종이라고나 할까? 작은 돌항아리를 하나 만들려고 해도 엄청난 노력과 시간이 필요 했을 텐데 아무리 생각해도 불가사의한 일이다.
내가 내려갈 저 아래에 많은 항아리들의 모습이 보인다. 근처의 웅덩이들은 모두 포탄이 떨어진 흔적들이다.
더운 날씨에 나는 혼자서 언덕을 향해 걸어서 올라간다. 나라도 그렇게 올라가야 할 것 같은 생각이 든다,
포탄에 맞을 당시는 어떤 상황이었을까? 그리고 이런 벌판에 돌만 있는 곳을 10년 동안 왜 계속 폭격을 했는지 이해가 안 간다. 그것도 하루도 빠지지 않고...
언덕에 올라 내가 걸어온 아래를 내려다본다.
내려갈 주차장 방향
누군가 소형 조각물과 생수를 차려 놓았다. 불교 계통은 아닌 것 같고...
마침내 주차장이 보인다.
땀을 뻘뻘 흘리며 숙소에 돌아오니 샤워 할 생각밖에 안난다. 이제부터는 휴식이다
다음날은 돌아가는 날이다 왔던 길을 그대로 가는 동안 중간에서 다시 1박을 해야 한다
자료를 검색해 보니 올 때 무심히 지나쳤던 무앙쿤이 의미 있는 유적지다. 폰사반에서 35km 떨어진 므앙쿤은 14세기 프안왕국의 수도로 당시에는 란싼왕국과 어깨를 나란히 할 정도로 번성한 곳이었다. 1966년 미국의 공습으로 왕국의 유적이 대부분 파괴되자 주도가 므앙쿤에서 폰사반으로 이전되었다
므앙쿤 언덕에는 흙을 구워 만든 벽돌로 쌓은 30m 높이의 탓픈이라는 탑이 있는데. 처음 건설 당시 부처의 사리가 보관되어 있다고 하여 지금도 신성시하고 있다
언덕에서 내려다본 므앙쿤 시내, 아! 옛날이어~
므앙쿤 시내를 빠져나오는 삼거리 길목에서 다 부서져가는 왓피아왓 사원의 모습을 볼수가 있다. 세월 무상이라고 나 할까?
1164년에 시작해서 1582년에 완성한 이 사원은 이제 다 부서진 불상이 그 초췌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불상 옆에는 금방이라도 무너질 것 같은 기둥들이 자신의 존재감을 나타내려고 애를 쓰고 있다.
같은 길이라도 올 때의 모습과 갈 때의 모습은 시각의 차이 때문에 다르게 보일 수 있다. 마찬가지로 올라올 때의 길과 내려갈 때의 길은 그 느낌이 다르다. 올라올 때와 달리 내려갈 때는 왼쪽으로 바이크를 잔뜩 눕힌 채 달려 내려가야 하는데 갓길로 가면 잡석들이 깔려있어 미끄러질 염려가 있다. 만약 반대편에서 큰 트럭이라도 올라온다면 극히 조심해야 한다. 바이크의 최대 위험지역은 코너 길가에 자갈과 잡석이 깔려 있는 곳이다.
그리움이 쌓여 솟아오른 것을 산이라고 한다면, 그리움이 모여 반짝이며 흐르는 것을 강이라고 한다지...
4일 동안, 계속 산과 강을 보며 헤매다 보니 온몸이 온통 그리움에 젖어 버렸다.
마지막 날은 파명 마을 동굴 입구 게스트 하우스에서 묵기로 했다.
남자 주인에게 방값이 얼마냐고 물어보니 두 손을 펴서 가격을 표시한다. 선풍기 방은 손가락 여섯 개, 에어컨 방은 손가락 9개다. 그래서 나는 에어컨 방을 7만킵(9천 원)에 하자고 손가락 두 개를 접으니 안된다고 손가락을 펴려고 애를 쓴다. 그래서 둘이 손가락 가지고 씨름을 하다가 손가락 하나를 양보해 8만 킵에 낙찰이 되었다. ^^
아침에 일어나 창문을 여니 마침 암봉을 배경으로 해가 뜨고 있다.
팍산에 도착을 하니 9시가 조금 지났다. 이제는 평탄한 길 140km만 남았다. 오토바이를 길가에 세워 놓고 귤을 까먹는다. 오토바이를 타고 갈 때는 귤을 사가지고 가면서 쉬엄쉬엄 먹으면서 가면 그 맛이 기가 막히다.
이제 라오스도 건기가 끝나고 우기로 접어들기 시작한다. 기온은 40도를 넘나들며 더위가 맹위를 떨치기 시작한다.
자! 이제 점심은 집에 가서 라면을 끓여 먹기로 하자. "가즈아 집으로~"
참고사항
1.비엔티안 - That Hom (sudakham Guest house) 249km
2.That Hom - 폰사반 144km
3.폰사반 - 파명 동굴마을 179km
4.동굴마을 - 비엔티안 188km 계 : 758k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