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켓타운에서의 장기여행자의 평범한 하루
빠똥-까론-까따를 필두로 해서 푸껫 본 섬에 얼마나 많은 해변이 있는데, 푸껫까지 가서 바닷가에 묵지 않고 타운에서 묵는 건 어리석고 의미 없는 짓. 그럴려면 당최 왜 간 거야?
다 맞는 말씀이고 동감이 되는 바도 있는데... 우리는 해변정취와는 관련이 1도 없는 이 올드타운에 들러야 푸껫에 온 기분이 든다.
이번 우리 숙소는 라넝 거리 분수대 근처.
이곳은 푸껫의 각 지역으로 가는 노선 썽태우의 시발점이다. 낡고 느리고 먼지구덩이의 불편한 썽태우. 털털거리고 투박한 낡은 트럭이지만 섬의 곳곳으로 저예산 배낭여행자들과 현지인들을 옮겨다 주는 고마운 교통수단이다.
라넝 길은 썽태우 시발점이며 동시에 시장구역이기도한데 새벽부터 상인과 손님들 그리고 그들이 타고 온 차량과 오토바이로 매우 분주한 곳이다. 그런 만큼 새벽부터 찻소리를 포함해 오만 소음이 일기도 하지만 우리에겐 큰 문제는 아니다.
태국의 한낮 기온을 생각해보면 식료품 시장이 활발히 움직이기에는 이때가 제일 적당할 때다. 우리나라는 재래시장이 일러도 오전 10시에서 오픈해 저녁에 문을 닫는 모양새인데, 태국에서 그렇게 했다가는 일사병에 시장에서 상인이고 손님이고 여러 명 쓰러질 듯... 게다가 이 푸르른 채소들과 향긋한 열대과일들도 한낮에 팔린다면 볕을 받아서 금방 시들해 질테고 말이다.
별다른 일정이 없는 푸껫타운에서의 하루는 이른 아침에 시장으로 나가 현지인들의 복잡다단한 일상 속에 어설프게나마 한발을 살짝 담그고는, 몇 가지 과일을 채집해 와서 냉장고에 넣어두는 걸로 시작한다.
웬만큼 차가워진 마프라오 파오(구운야자)를 들이키면서 하는 생각, ‘오늘의 끼니는 뭘로 꾸려볼까?’
연이은 태국식에 살짝 물렸으니까 오늘은 점심은 양식 비스무리한 걸로 먹어보자. 그러면 가성비 최강의 씨즐러로 고고~
라넝 거리에서 출발하는 빠똥행 트럭 썽태우를 타고 조금만 가서 센트럴 페스티벌에서 내리면 되는데 요금은 20밧이다. 종점인 빠똥까지는 30밧...
푸껫 센트럴 페스티벌 3층에 자리 잡은 씨즐러는 우리가 꼬꼬마시절에서부터 신선한 야채 생각이 나면 달려가는 프랜차이즈다. 우리나라에서는 망해 나갔지만 태국에는 어느정도 규모되는 중소도시에도 지점이 있다. 기억으로는 맨 처음에는 샐러드바 뷔페가 99밧이었나 79밧이었나 했고 조금씩 올라서 179밧까지 했다가 지금은 오히려 좀 내려서 149밧이다.
아니 샐러드 전문 카페에서 단품 샐러드 한 접시에 100밧이 넘는데 여기선 여러종류 샐러드와 두 종류 누들, 그리고 몇가지 스프에 디저트까지 포함한 뷔페가 149밧이라니~ 아이 좋아~
2019년 들어 푸껫에는 센트럴이 두 개 더 생겼다.
원래 있던 센트럴 페스티벌점에 더해서, 바로 맞은편의 센트럴 푸껫점과 그리고 빠똥 정실론 건너편의 센트럴 빠똥점... 하여튼 센트럴의 사세 확장이 장난이 아니구먼....
센트럴 푸껫점은 명품 위주 브랜드 들이 ‘커밍순’이라는 가림막을 달고 아직 준비 중이다. 아마도 푸껫에 상륙작전하다시피 몰려는 중국, 러시아 여행자들이 주 고객이 될 테지.
채소와 드레싱으로 가득찬 배를 하고는 티셔츠를 사러 AIIZ에 가서 무난한 흰색 면 티를 한 장에 139밧에 주고 샀다. 에이투지(태국 발음 에투쌧) 역시 웬만한 쇼핑몰에는 예외 없이 입점해있는 이 브랜드는 늘 세일을 하는데, 우리나라에서 미처 반팔티셔츠를 준비하지 못했을 때 현지에서 부담 없이 입는 티셔츠로는 괜츈하다. 세일해서 단돈 139밧짜리 티셔츠에 디자인이나 색감 이런 걸 크게 기대 할 것까진 없고, 그저 정직해 보이는 재단에 간단한 앞판의 프린팅. 그래도 어느 정도 규모감 있는 브랜드라 그런지 옷감 품질은 좋은편이다.
부른 배와 티셔츠를 득템하고 숙소로 돌아와서 딩굴딩굴 하다가, 우주 광선무기 같은 강렬한 햇살이 어느 정도 사그라든 5시 즈음 로빈슨 백화점 쪽으로 걸어 가 본다.
라넝 거리에서 로빈슨으로 향하는 길목에는 맛있는 노포들이 꽤 있는데 그중 ‘미 똔포’와 ‘쏨찟’에 손님들이 몇몇 앉아있다. 이 두 식당 모두 아주 예전에는 외관이나 식당풍경이 옹색하고 너절했었는데 지금은 꽤나 정돈된 모양새로 영업 중이다. 푸껫타운의 스테디셀러이고 예전에는 이거 먹겠다고 차를 대절해서 시티투어하는 김에 이곳까지 들르기도 했다.
로빈슨 백화점은 여행자들의 발길이 상대적으로 미미하고 손님 대부분이 현지인들인 오래된 백화점인데 좋은 곳이 자꾸 생기다보니 여기도 분위기가 많이 죽었다. 1층 탑스 슈퍼와 프랜차이즈 식당에는 그래도 사람들이 좀 있는 편이지만 2층부터 시작하는 브랜드 상점에는 손님들이 거의 없네...
살인적인 기세로 쪼아대는 해가 완전히 들어가고 어둠이 검게 깔리면 푸껫타운은 요염한 자태를 드러내는데, 이런 풍경을 보자면 카메라에 손이 안 갈 수가 없다. 여행하다 보면 생눈으로 보는 것보다 카메라에 찍힌 풍경이 더 아름다워 보이는데, 이 푸껫타운도 좀 그런 편이다.
우리는 탈랑거리를 천천히 걸었는데 일요시장이 열리는 이 거리는 평일에는 그저 적적하고 어두침침한 길거리일 뿐이다. 일요일에는 난리법석 그런 난리도 없다. 음식을 하느라 열을 뿜는 리어카와 각종 매대들 그리고 이를 둘러보는 인파들 그리고 악기를 들고나와 거리 공연을 하는 팀도 3개나 되고...
여행자들이 도시에서 볼거리 중 손에 꼽을 만한 것은 역시 시장이다. 푸껫에도 일요일에는 탈랑거리의 야시장, 수목금에는 인디 야시장이 올드타운 안에서 열리고 자가 교통수단이 있다면 약간 외곽에 있는 나카 주말시장과 평일에 열리는 칠와마켓을 가 봐도 되고...
옛 거리를 산책 한 후 우리는 라넝 분수대 근처에 자리잡은 중국 할머니 덮밥집에 가서 반찬 2개 올린 밥으로 맛있는 식사를 한다.
이 집 주인인 중국인 할머니는 우리에게 “유 콘찐?(중국사람이야?)” 라고 물었는데 한국인이랬더니... “오~ 그래? 아러이(맛있어)? 까올리 쎔쎔?(한국이랑 같은 맛?)”하고 묻는다.
아마도 반찬이 입에 맞는지 뭐 이런 중의적인 의미로 물은 것 같은 데 정말이지 빈말 아니고 반찬이 입에 딱딱 맞는다. 태국식 반찬덮밥집처럼 카피르라임이나 레몬그라스 같은 강렬한 향신채를 안 쓰고 정말 우리나라 시골 할머니 집에서 먹는 것 같은 반찬들이다. 좀 짜고 단 반찬(예를 들어 닭고기 간장 조림 같은 거)이 있긴 하지만 그것도 맛있다. 요왕은 이집의 무나물을 좋아한다.
이대로 집에 들어가기가 아쉬워 바로 옆에 위치한 푸껫틱에 자리를 잡고 앉아 푸껫맥주를 들이키는 걸로 오늘의 마무리...
우리처럼 오래된 부부는 이런 술집에 마주하고 있어봤자 서로 딱히 할 말이란 게 없어서 그냥 거리를 봤다가 테이블을 봤다가 스마트폰도 봤다가하며 조용히 있다가 자리를 털고 일어난다.
내일 아침은 뭐 먹지... 이런 형이하학적인 생각이나 하면서 숙소로 돌아오는데 오늘은 무슨 뚜렷한 액티비티를 한 것도 없는데 발바닥이 무거운 것이, 나이가 들어버려서 이런걸까? 싶기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