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남아여행기27> 에필로그 - 나의 여행, 나의 친구들.
<동남아여행기27> 에필로그 - 나의 여행, 나의 친구들.
앞서 난 설레임 없이 이번 여행을 시작했다고 내심 불안해하고 있었다. 4년전 베트남 여행이 떠올랐다. 그때 공항에서 기다리며 말할 수 없이 가슴이 쿵쾅거렸던 기억이 생생하다. 아무래도 첫사랑의 기억이 한평생을 하듯, 처녀여행이었기 때문이리라.
그러나 막상 이번 여행을 시작하고 보니, 첫여행과 같은 설레임은 없었으나 정말 잘 선택했다는 확신이 들었다. 내가 참으로 '행복'했기 때문이다. 그럼 되는 것 아닌가. 인간은 행복하기 위해 사는 것인데.
여행 스타일에 있어 교과서는 없다. 각자의 관심과 개성에 따라 각자에게 맞는 여행 스타일이 있을 것이다. 뭐 자연 풍경을 좋아하면 그런 곳을 찾아다니면 되는 거고, 혼자 조용히 다니는 걸 좋아하면 그러면 되는 거고, 시끌벅적해야 직성이 풀리면 또 그러면 되는거다.
예컨대 내 한 친구의 경우 초등학교 교사인 관계로 근 몇 년동안 여름, 겨울방학 때마다 친구들과 해외 배낭여행을 하곤 하는데, 주로 다른 사람들을 만나기보다는 그냥 친구와 조용히 다니는 걸 좋아하는 편이다. 그럼 난 늘 왜 사람들을 안 만나? 하고 묻는데 그는 난 그게 좋은걸, 너처럼 사람들 많이 만나고 다니는 건 별로야, 라고 대답하곤 한다. 난 처음엔 그의 여행 스타일이 잘 이해가 되질 않았지만 지금은 알겠다. 그냥 여행이란 자기가 가장 편하게 하는게 좋은 거지, 정석은 없다.
그랬다. 나는 사람들을 좋아한다. 여행 중 사람들을 만나는 게 그렇게 행복할 수가 없다. 그래서인지 나의 근본적인 성격은 '내성적'이라고 볼 수 있지만, 여행에서는 전혀 그렇지 않다. 혼자 있으면 좀이 쑤신다. 말없이 가만히 있는 건 못 참는다. 기어코 내가 먼저 입을 떼어 그들의 친구가 되고자 한다. 꼭 사귀지 못해도 상관없다. 그냥 사람과 사람의 만남 자체가 소중한 것 아닌가.
이번 여행에서도 그런 소중한 사람들을 많이 만날 수 있었고, 그래서 난 진심으로 행복했다. 앞서의 여행기에서 잠깐잠깐이라도 그들의 이름을 다 언급하고 싶었다. 아주 사소한 기억이라고 난 어쨌든 그들과 맺은 소중한 인연을 잊지 않고 싶었기 때문이다. 왜 불교에서는 한번의 옷깃을 스치기 위해 수천겁의 윤회를 해야 한다고 하지 않는가.
잠깐이라도 나와 얘기를 했던 이들, 그들의 얼굴이 아련히 떠오른다.
돈무앙 공항에서부터 태국에 있는 동안 인연을 맺었던 중식, 득림, 연준, 성... 이들과의 인연은 한국에서도 계속 되고 있다. 9월14일 서울에서 얼굴을 보기로 했다. 이 자리에는 서로 공유하지 못한 각자의 여행의 기억을 가지고 올 것이다.
지민씨와 순원씨. 지민씨는 지금도 태국에 있을테고 순원씨는 개강을 했겠지.
마이키. 글쎄, 그는 9월 11일까지 휴가라고 했는데, 지금쯤 도착해서 직장에 복귀했겠지.
대만인 린니는 어떻게 지낼까. 얼마전 이메일이 왔는데 학교 선생님인 그는 지금 개학해서 무지 바쁘다는 전갈이다.
일본인 마나부를 비롯해 그리고 아유타야에서 만난 여러 친구들, 역시 칸차나부리 가던 중 만난 유럽인들. 모두 잘 살고 있겠지.
코사무이로 간다던 일본인 나오와 니카는 어떻게 살고 있을까. 그때 수랏타니에서 나만 떨어져나오는 바람에 그들과 인사도 못하고 헤어졌지.
칸차나부리, 아유타야 갈 때 태국인 가이드 '두'와 '파'. 참 친절하고 유머가 넘치는 친구들이었다. 태국에서의 마지막날 카오산 거리에서 퇴근하는 파를 만났을 때 '다음에 방콕에서 다시 만나자'던 그녀의 말이 실현되길 나도 바란다.
그리고 음, 왓포 앞 노상에서 내게 국수를 팔던 할머니, 못 알아듣는 태국말로 아마도 맛있냐, 먹을만 하냐, 뭐 이러며 이것저것 신경을 써주셨지. 또 왓포에서 카오산 거리에 가는 길을 물어봤더니 친절하게 큰길까지 나를 데리고 나와 버스 번호며, 가격까지 세세히 알려줬던 아저씨. 덕분에 난 태국에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버스를 타 볼 수 있었다.
그리고 아유타야 유적지에서 만난 아리따운 고등학교 여학생들, 사진을 같이 찍자는 말에 친근하게 내 팔짱을 끼고 포즈를 취해주기도 했다. 사진을 보내주고 싶다고 이메일 주소를 물으니 그런 거 없다며 무척 당황하던 그들.
그리고 거리에서 만난 이름모를 태국인들, 심지어 거리 곳곳에 널려있는 멍멍이들. (진짜 이 멍멍이들을 생각하면 웃음이 나온다. 애완견이 아닌 관계로 집집마다 개를 키우면서도 거의 방치하는데 길거리에 널브러져 있거나 온몸이 가려워 아예 벌러덩 누워 사지를 뒤트는 경우를 심심찮게 목격할 수 있었다.)
수랏타니부터 말레이시아까지 내내 함께 했던 네덜란드인 스무살 총각, 팀. 진짜 무뚝뚝한 그였지만, 그래도 내 옆에서 함께 했던 인연을 기억하고 싶다.
푸두호스텔에서 만난 장기 여행자 종성씨. 아마도 계속 인연이 된다면 서울에서도 만날 수 있겠지.
쿠알라룸푸르의 역사박물관에서 만난 미옥, 미숙 자매. 이들은 한달간 자매가 여행을 나온 경우다. 오늘(14일) 연락이 왔는데, 어제 막 도착했다는 연락이 왔다. 그들의 한달간의 이야기가 궁금하다.
쿠알라룸푸르에서 사는 친구 한분이, 그의 언니, 연변 아줌마, 그리고 한분이의 동업자 신동오 사장님. 역시 잊지 못할 것이다.
그리고 한분이 찾아갈 때 만난 멋진 미소를 갖고 있던 택시 아저씨. 쿠알라룸푸르의 국립박물관에서 만난 직원 아저씨. 그는 내가 입장료 1링깃을 내기 위해 50링깃짜리를 줬더니 황당해했지. 그래도 아무 소리 않고 거스름돈을 주었는데, 그만 내가 동전을 잘못 봐서 "아저씨, 좀 모자라는데요"라고 한마디 하자, 어린애를 가르치듯 하나하나 동전을 세며 설명해 주었다.(여기 동전은 아무튼 좀 헷갈린다. 한번은 화장실 갈 때 20센트를 내야 하는데, 2센트를 내는 바람에 화장실 지킴이 할아버지한테 한 소리 들었던 기억도 있다.)
말라카의 해리, 카이룬, 애미, 그리고 애미의 버스터미널 친구들. 카이룬은 이메일 주소가 잘못돼서 내 편지가 가지 못하고 있고, 애미로부터는 얼마전 답장이 왔는데, 날 무지 좋아하고 있는 눈치다. 킥킥 ^^ 농담이고... 영원히 좋은 친구가 되자고 한다.
트래블러스 롯지의 내 오른 쪽 침대에서 묵었던 일본인 마사토. 그는 당초 개강 전까지 인도네시아에 있을 예정이었으나 말라카를 떠난 다음날인 8월27일 급거 귀국을 했다고 한다. 할아버지가 곧 돌아가실 것 같다는 연락을 받았는데, 다행히 할아버지의 임종을 지킬 수 있었다고 한다.
싱가포르의 친절맨 왕카리우. 그와는 안타깝게도 연락이 안된다. 정말 고마운 사람이었는데. 그밖에도 또다른 친절맨 택시기사 아저씨, 한국 드라마를 무지 좋아하던 싱가포르 아줌마. 그리고 나도 모르게 나와 옷깃을 스쳤을 수많은 사람들...
그리고 마지막으로... 인연 중에서도 특별한 인연... 이성으로 마음이 설레었던 이에 대한 기억도 있다. 사실은 그에 대해 따로 글을 쓰기도 했지만, 그 감정은 여행 중 발생한 감정이고 지속할 수 있다는 장담을 함부로 할 수는 없어 굳이 싣지는 않았다. 그냥 특별한 인연이었다고 소중히 간직하는 게 나은 것일까... 아니면... 모르겠다.
이들의 이름은 아마도 얼마 안 가서 잊혀지고 말 거다. 왜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고 또 이것저것 핑계 댈 게 많은 존재이므로. 또한 나 역시 그들의 기억으로부터 멀어질 게 분명하다.
하지만 인연이란 불변의 존재. 설사 내가 그들을 기억하지 못할지라도, 그 기억 속의 존재는 영원할 것이다.
앞서 난 설레임 없이 이번 여행을 시작했다고 내심 불안해하고 있었다. 4년전 베트남 여행이 떠올랐다. 그때 공항에서 기다리며 말할 수 없이 가슴이 쿵쾅거렸던 기억이 생생하다. 아무래도 첫사랑의 기억이 한평생을 하듯, 처녀여행이었기 때문이리라.
그러나 막상 이번 여행을 시작하고 보니, 첫여행과 같은 설레임은 없었으나 정말 잘 선택했다는 확신이 들었다. 내가 참으로 '행복'했기 때문이다. 그럼 되는 것 아닌가. 인간은 행복하기 위해 사는 것인데.
여행 스타일에 있어 교과서는 없다. 각자의 관심과 개성에 따라 각자에게 맞는 여행 스타일이 있을 것이다. 뭐 자연 풍경을 좋아하면 그런 곳을 찾아다니면 되는 거고, 혼자 조용히 다니는 걸 좋아하면 그러면 되는 거고, 시끌벅적해야 직성이 풀리면 또 그러면 되는거다.
예컨대 내 한 친구의 경우 초등학교 교사인 관계로 근 몇 년동안 여름, 겨울방학 때마다 친구들과 해외 배낭여행을 하곤 하는데, 주로 다른 사람들을 만나기보다는 그냥 친구와 조용히 다니는 걸 좋아하는 편이다. 그럼 난 늘 왜 사람들을 안 만나? 하고 묻는데 그는 난 그게 좋은걸, 너처럼 사람들 많이 만나고 다니는 건 별로야, 라고 대답하곤 한다. 난 처음엔 그의 여행 스타일이 잘 이해가 되질 않았지만 지금은 알겠다. 그냥 여행이란 자기가 가장 편하게 하는게 좋은 거지, 정석은 없다.
그랬다. 나는 사람들을 좋아한다. 여행 중 사람들을 만나는 게 그렇게 행복할 수가 없다. 그래서인지 나의 근본적인 성격은 '내성적'이라고 볼 수 있지만, 여행에서는 전혀 그렇지 않다. 혼자 있으면 좀이 쑤신다. 말없이 가만히 있는 건 못 참는다. 기어코 내가 먼저 입을 떼어 그들의 친구가 되고자 한다. 꼭 사귀지 못해도 상관없다. 그냥 사람과 사람의 만남 자체가 소중한 것 아닌가.
이번 여행에서도 그런 소중한 사람들을 많이 만날 수 있었고, 그래서 난 진심으로 행복했다. 앞서의 여행기에서 잠깐잠깐이라도 그들의 이름을 다 언급하고 싶었다. 아주 사소한 기억이라고 난 어쨌든 그들과 맺은 소중한 인연을 잊지 않고 싶었기 때문이다. 왜 불교에서는 한번의 옷깃을 스치기 위해 수천겁의 윤회를 해야 한다고 하지 않는가.
잠깐이라도 나와 얘기를 했던 이들, 그들의 얼굴이 아련히 떠오른다.
돈무앙 공항에서부터 태국에 있는 동안 인연을 맺었던 중식, 득림, 연준, 성... 이들과의 인연은 한국에서도 계속 되고 있다. 9월14일 서울에서 얼굴을 보기로 했다. 이 자리에는 서로 공유하지 못한 각자의 여행의 기억을 가지고 올 것이다.
지민씨와 순원씨. 지민씨는 지금도 태국에 있을테고 순원씨는 개강을 했겠지.
마이키. 글쎄, 그는 9월 11일까지 휴가라고 했는데, 지금쯤 도착해서 직장에 복귀했겠지.
대만인 린니는 어떻게 지낼까. 얼마전 이메일이 왔는데 학교 선생님인 그는 지금 개학해서 무지 바쁘다는 전갈이다.
일본인 마나부를 비롯해 그리고 아유타야에서 만난 여러 친구들, 역시 칸차나부리 가던 중 만난 유럽인들. 모두 잘 살고 있겠지.
코사무이로 간다던 일본인 나오와 니카는 어떻게 살고 있을까. 그때 수랏타니에서 나만 떨어져나오는 바람에 그들과 인사도 못하고 헤어졌지.
칸차나부리, 아유타야 갈 때 태국인 가이드 '두'와 '파'. 참 친절하고 유머가 넘치는 친구들이었다. 태국에서의 마지막날 카오산 거리에서 퇴근하는 파를 만났을 때 '다음에 방콕에서 다시 만나자'던 그녀의 말이 실현되길 나도 바란다.
그리고 음, 왓포 앞 노상에서 내게 국수를 팔던 할머니, 못 알아듣는 태국말로 아마도 맛있냐, 먹을만 하냐, 뭐 이러며 이것저것 신경을 써주셨지. 또 왓포에서 카오산 거리에 가는 길을 물어봤더니 친절하게 큰길까지 나를 데리고 나와 버스 번호며, 가격까지 세세히 알려줬던 아저씨. 덕분에 난 태국에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버스를 타 볼 수 있었다.
그리고 아유타야 유적지에서 만난 아리따운 고등학교 여학생들, 사진을 같이 찍자는 말에 친근하게 내 팔짱을 끼고 포즈를 취해주기도 했다. 사진을 보내주고 싶다고 이메일 주소를 물으니 그런 거 없다며 무척 당황하던 그들.
그리고 거리에서 만난 이름모를 태국인들, 심지어 거리 곳곳에 널려있는 멍멍이들. (진짜 이 멍멍이들을 생각하면 웃음이 나온다. 애완견이 아닌 관계로 집집마다 개를 키우면서도 거의 방치하는데 길거리에 널브러져 있거나 온몸이 가려워 아예 벌러덩 누워 사지를 뒤트는 경우를 심심찮게 목격할 수 있었다.)
수랏타니부터 말레이시아까지 내내 함께 했던 네덜란드인 스무살 총각, 팀. 진짜 무뚝뚝한 그였지만, 그래도 내 옆에서 함께 했던 인연을 기억하고 싶다.
푸두호스텔에서 만난 장기 여행자 종성씨. 아마도 계속 인연이 된다면 서울에서도 만날 수 있겠지.
쿠알라룸푸르의 역사박물관에서 만난 미옥, 미숙 자매. 이들은 한달간 자매가 여행을 나온 경우다. 오늘(14일) 연락이 왔는데, 어제 막 도착했다는 연락이 왔다. 그들의 한달간의 이야기가 궁금하다.
쿠알라룸푸르에서 사는 친구 한분이, 그의 언니, 연변 아줌마, 그리고 한분이의 동업자 신동오 사장님. 역시 잊지 못할 것이다.
그리고 한분이 찾아갈 때 만난 멋진 미소를 갖고 있던 택시 아저씨. 쿠알라룸푸르의 국립박물관에서 만난 직원 아저씨. 그는 내가 입장료 1링깃을 내기 위해 50링깃짜리를 줬더니 황당해했지. 그래도 아무 소리 않고 거스름돈을 주었는데, 그만 내가 동전을 잘못 봐서 "아저씨, 좀 모자라는데요"라고 한마디 하자, 어린애를 가르치듯 하나하나 동전을 세며 설명해 주었다.(여기 동전은 아무튼 좀 헷갈린다. 한번은 화장실 갈 때 20센트를 내야 하는데, 2센트를 내는 바람에 화장실 지킴이 할아버지한테 한 소리 들었던 기억도 있다.)
말라카의 해리, 카이룬, 애미, 그리고 애미의 버스터미널 친구들. 카이룬은 이메일 주소가 잘못돼서 내 편지가 가지 못하고 있고, 애미로부터는 얼마전 답장이 왔는데, 날 무지 좋아하고 있는 눈치다. 킥킥 ^^ 농담이고... 영원히 좋은 친구가 되자고 한다.
트래블러스 롯지의 내 오른 쪽 침대에서 묵었던 일본인 마사토. 그는 당초 개강 전까지 인도네시아에 있을 예정이었으나 말라카를 떠난 다음날인 8월27일 급거 귀국을 했다고 한다. 할아버지가 곧 돌아가실 것 같다는 연락을 받았는데, 다행히 할아버지의 임종을 지킬 수 있었다고 한다.
싱가포르의 친절맨 왕카리우. 그와는 안타깝게도 연락이 안된다. 정말 고마운 사람이었는데. 그밖에도 또다른 친절맨 택시기사 아저씨, 한국 드라마를 무지 좋아하던 싱가포르 아줌마. 그리고 나도 모르게 나와 옷깃을 스쳤을 수많은 사람들...
그리고 마지막으로... 인연 중에서도 특별한 인연... 이성으로 마음이 설레었던 이에 대한 기억도 있다. 사실은 그에 대해 따로 글을 쓰기도 했지만, 그 감정은 여행 중 발생한 감정이고 지속할 수 있다는 장담을 함부로 할 수는 없어 굳이 싣지는 않았다. 그냥 특별한 인연이었다고 소중히 간직하는 게 나은 것일까... 아니면... 모르겠다.
이들의 이름은 아마도 얼마 안 가서 잊혀지고 말 거다. 왜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고 또 이것저것 핑계 댈 게 많은 존재이므로. 또한 나 역시 그들의 기억으로부터 멀어질 게 분명하다.
하지만 인연이란 불변의 존재. 설사 내가 그들을 기억하지 못할지라도, 그 기억 속의 존재는 영원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