빗속에서 아름다운 싱가포르강가를 거닐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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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남아여행기23> 빗속에서 아름다운 싱가포르강가를 거닐며

연윤정 2 2223
<동남아여행기23> 빗속에서 아름다운 싱가포르강가를 거닐며

26일(월) 9일째 - 동남아에서의 마지막날.

싱가포르에서 하룻밤 묵었던 나의 숙소는 힐 스트리트에 위치한 디심플 게스트하우스. 도미토리가 10S$(7,300원 가량)에서 묵었는데 3개국 중 가장 비싼 숙소였음에도 불구하고 시설은 제일 꽝이었다.
딱 들어섰더니 모두 10명이 들어가는 방이고 모두 유럽애들로 꽉 차있다. 내 침대는 문가의 2층 침대인데, 기가 막혀서, 이렇게 심하게 흔들거리는 침대는 또 처음이다.
그때 한 남자애가 내 시트 펴는 걸 도와주며 하는 말,
"걱정하지마. 침대가 이렇게 흔들려도 안전해."
아무튼 이렇게 신경을 곤두세우며 자긴 또 첨이다. 내가 움직이면 침대가 엄청 삐걱거리는데, 아랫침대 사람에게 미안해 맘대로 뒤척이지도 못하겠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는 수밖에 없었다. 아랫사람이 깨지 않도록 조심하며 내려왔지만, 그게 내 의지대로 되는 문제는 아니지 않는가. 침대가 엄청 흔들렸다. 그래도 신기한건 아랫사람은 전혀 개의치 않고 곤하게 잠만 잘 잔다. 이런, 나 혼자만 괜히 걱정했나?
싱가포르에서 내게 주어진 시간은 딱 하루. 정말 금쪽 같은 시간이다. 이날을 마지막으로 난 길고도 긴(?) 동남아 여행을 마치고 현실로 돌아가야 하는 것이다.
싱가포르의 많은 부분을 포기하고 '핵심'만 돌아다니기로 했다. 걸어서 가능하며 핵심만 포함돼있는 시청을 중심으로 한 지역. 이 지역에는 시청, 헌법재판소, 싱가포르를 개척했다는 영국인 래플리경 동상이 있는 빅토리아 기념관, 성 앤드류 교회, 낭만의 싱가포르강, 싱가포르를 상징하는 머라이언상, 그리고 2차세계대전 당시 일본군에게 희생된 싱가포르인의 위령탑 등이 점심때까지 열심히 다닌 곳이다.
그 날은 점심때가 지나도록 오전부터 계속 비가 내렸다. 동남아에서 이렇게 비가 내내 오는 것도 드문 일일텐데, 난 오히려 기분이 더 났다. 죽 걷다보니 싱가포르강이 나왔다. 비를 맞으며 예쁜 우산을 쓰고 싱가포르 강가를 걷는 기분이란. 싱가포르 강가를 따라 멋진 서양풍 건물들이 모양을 뽐내고 있다.
싱가포르강을 건넌데 이어 큰 길을 건너니 바로 머라이언상이 나온다. 싱가포르를 상징하는 머리는 사자, 몸은 인어인 동상 말이다. 그런데 애개? 이게 뭐야?
사실 난 이 머라이언상에 정말 많은 기대를 하고 왔다. 내 방에는 아시아나 항공에서 나온 책상달력이 하나 있다. 거기에 바로 이 머라이언상 사진이 있는데 얼마나 환상적인지 모른다. 하지만 그건 다 사진술의 승리였던 것이다. 직접 보니 말 그대로 머라이언상 하나밖에 없고, 그나마 얼굴은 강쪽을 향하고 있어 난 뒷통수만 봐야 했다. 게다가 그 주변은 공사 중이어서 썩 이쁜 환경은 아니었다. 아쉽지만 어쩔 수 없지.
다음은 일본군 희생자 위령탑이라. 나도 이번 여행이 아니었으면 몰랐을 일일 거다. 일본군은 2차세계대전 당시 동남아시아를 '대동아공영'이라는 허울 하에서 손아귀에 넣은 적이 있다. 이때 싱가포르 역시 예외가 아니었는데, 이때 일본군은 싱가포르인 5만명을 대량 학살하고 만다. 진짜 경악할 일이다. 싱가포르 인구가 얼마 된다고 5만명씩을 학살을 한단 말인가.
한때 동아시아 국가들은 일본의 대동아공영론에 잠깐 솔깃하던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막상 일본군 지배하에 들어갔을 때 그것이 침략을 위한 거짓말이었음을 알 수 있었으나 이미 때는 늦은 것이었다. 물론 당시 일본군의 가혹행위 정도에 따라 그렇게 일본에 감정을 갖지 않는 국가도 있다. 하지만 과거를 잊었을 때 더한 대가가 온다는 사실을 아시아는 잊어서는 안될 것이라는 생각을 이 위령탑 앞에서 잠시 해보았다. 억울하게 희생당한 싱가포르인의 명복을 빌며.

2 Comments
2002.09.14 01:54  
  센토사섬에도 머라이언상이 있는데 엄청 크지요. 관광객들이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 갈 수도 있습니다.주변 풍광이 기가 막힐 정도로 아릅답습니다.아마 달력에서 본 사진은 센토사 머라이언상일듯 합니다.
연윤정 2002.09.14 12:58  
  아하, 그랬군요.
맞아요, 그 달력에도 주변의 풍경이 참 멋졌던 것 같아요.
이제서야 의문이 풀립니다. 언젠가 또 기회가 닿는다면 센토사섬엘 꼭 들러야겠네요.
고맙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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