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절의 미덕을 갖춘 싱가포르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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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남아여행기22> 친절의 미덕을 갖춘 싱가포르 사람들

연윤정 1 2548
<동남아여행기22> 친절의 미덕을 갖춘 싱가포르 사람들

다시 앞서 말라카 고속버스터미널. 남을 것인가 말 것인가를 놓고 한창 갈등하고 있을 때 그만 버스가 오고 말았다. 때는 저녁6시40분. 이왕 온 거 부딪쳐 보는 게 낫다고 생각했다. 어차피 싱가포르에서 하룻밤도 머물지 못한다는 것도 나중에 후회가 될 것 같았다. 숙소를 구하지 못하면 노숙이라도 하겠다는 각오까지 하며. 무대뽀 정신이 다시 발동되는 순간이었다.
결국 가겠다는 나의 결심에 아저씨들도 어쩌지 못한다. 아쉬운 이별의 시간이 다가왔다. 아저씨들 전부 내게 잘 가라는 인사말을 한마디씩 한다. 나도 고마운 친구들을 만나 반가웠다며, 계속 연락하자고 이별의 한마디를 했다. 마지막까지 손을 흔들어주던 그들을, 말라카의 내 친구들을 영원히 잊지 못할 것이다.
이런 우여곡절 끝에 드디어 싱가포르행 버스에 올라탔다. 그런데 내 옆자리에 웬일로 젊은 남자가 앉아 있는게 아닌가. 우리나라에서는 늘 고속버스를 타면 한번도 젊은 남자가 앉아본 적이 없었는데... 매번 할아버지, 중년의 아저씨, 아줌마, 기타 등등 아무튼 젊은 남자를 제외한 사람들과는 모두 앉아봤지만, 여기서는 운(?)이 매우 좋은 것 같다.
그의 이름은 앞서 언급한 왕카리우. 중국계 젊은 청년이다. 그도 꽤나 말이 없는 사람이어서, 결국 내가 또 선수를 쳐야 했다. 휴게실에서 산 과자를 주며 먹어보겠냐고 권했고, 그는 괜찮다고 거절했지만 그걸로 우린 말문이 트일 수 있었다. 한국에서 왔다고 하니까 대번 월드컵 얘기가 나온다. 그러면서 안정환 선수 얘기도 나온 거고.
싱가포르에 점점 가까이 갈수록 난 매우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워낙 늦게 출발했기 때문에 밤 11시쯤에야 도착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왕카리우와 얘기하면서 그런 불안감을 내비치며, 혹시 비치로드가 어딘지 아느냐고 물어봤다. 제발 안다고 말해다오, 라고 속으로 외쳤건만 그는 '노'라고 자신있게(!) 대답한다. 순간 내 표정은 시무룩 그 자체였다.
하지만 그것도 잠깐, '에라, 될 대로 되라고 해!'라는 최근에 생긴 나의 신조어를 되뇌이며, 불안감은 어느새 망각의 늪으로 빠져들고 말았다.
하지만 왕카리우는 잊지 않고 있었다. 그는 정말 친절한 사나이였다. 말레이시아에서 싱가포르로 넘어가는 국경도시인 '조흐루바루'에서 입출국 심사를 받을 때 외국인과 싱가포르인이 각각 다른 창구에서 절차를 밟는데 먼저 끝났어도 나를 기다려주는가 하면, 수속을 끝내고 밖으로 나와 우리 버스를 못 찾는 나를 꼭 챙겨준다.
그리고는 기어코 싱가포르로 넘어가자마자 말라카에서 한 아저씨가 알려준 싱가포르 게스트하우스 전화번호를 내게 묻더니 직접 전화까지 해주는게 아닌가. 그래서 다행히 난 전화로 도미토리 예약을 할 수 있었고, 밤 11시가 넘어서 도착했어도 난 무사히 노숙이 아닌, 게스트하우스에서 잠을 잘 수 있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싱가포르 버스터미널에 도착한 후 밤 늦게 나만 놔두고 갈 수가 없었나 보다. 자신이 택시를 잡아주겠단다. 하지만 택시기사 아저씨가 내가 들고 있는 게스트하우스의 주소를 모른다고 하자, 그는 직접 지도책을 펴들고 택시기사와 함께 찾을 때까지 씨름을 하는게 아닌가. 기어코 찾아내고는 '이 손님을 잘 부탁한다'(물론 중국말이어서 못 알아들었지만 역시 통역은 가능했다!)는 당부의 말까지 한다.
난 너무 고마워서 한국 이미지의 열쇠고리(핸드폰줄은 다 나갔다!)를 그에게 줬더니 한사코 괜찮단다. 억지로 손에다 쥐어주며 몇번이고 고맙다는 인사를 건넸다.
그렇게 그와 헤어지고 택시를 탄 나는 다시한번 깜짝 놀라고 말았다. 이 택시기사 아저씨의 친절은 왕카리우 보다도 한술 더 뜨는 게 아닌가. 우선 내가 뒷좌석에 앉아있던 내게 친절히 안전벨트를 매라고 하고 내가 매는 걸 확인하고는 출발한다. 또한 떠나기 전 지도책을 보여주며 우리가 갈 곳이 여긴데 지금 우린 여기 있다, 그러니 잘 보고 있어라, 이런다. 그러니까 사기를 치지 않겠다는 약속인 셈이다.
그리고는 내가 찾는 숙소의 간판을 찾아 그곳에 정차를 했는데, 아저씨가 5.6S$가 나왔다고 메타를 딱 끊고는, 택시에서 내려서 나를 이끌고 숙소 코앞까지 데려다 주는게 아닌가. 번지수에 숙소이름까지 확인하며 '여기가 맞냐'고 다시한번 확인한다. 그는 나의 '예쓰'라는 몇번이나 말을 듣고서야 발길을 돌린다.
2년전 일본 배낭여행을 할 때 일본사람들 정말 친절하다고 혀를 내두른 적이 있는데, 싱가포르 사람들을 따라갈 수는 없을 것 같다.
다시한번 모두들 고맙습니다!

참, 한가지 덧붙일 말씀. 싱가포르에 대한 발음과 관련 싱가'폴'이라고 하면 안된다. 말라카에서 싱가포르행 버스가 도착했길래 난 기사아저씨에게 "아저씨, 이거 싱가'폴' 가는 버스 맞아요?"라고 확인했다가 난 아저씨께 싱가'포르'의 정확한 발음이 나올 때까지 강의를 들어야만 했다.
아저씨 왈, "자 따라해봐. 싱가포르"
윤정 왈, "싱가폴"
"오, 노우, 싱가포르"
"싱가포"
"그게 아니라니까. 싱가포르"
"싱가포르"
"예쓰, 바로 그거야"
사실 싱가포'르'도 아니다. 포에서 들릴 듯 안 들릴 듯 살짝만 굴려야 한다. 진짜 힘들다. --;

1 Comments
그치 2002.11.24 12:36  
 
 운전수 팁은 주셨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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