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남아여행기19> 말라카 버스터미널에서 나를 붙든 그리운 아저씨들
<동남아여행기19> 말라카 버스터미널에서 나를 붙든 그리운 아저씨들
때는 점심 때를 훌쩍 지난 오후2시쯤. 맡겨놓았던 짐을 찾으려 트래블러스 롯지로 돌아왔다. 점심식사하고 해리랑 사진을 찍으며 석별의 정을 나누느라 어느덧 오후2시30분. 버스타고 고속버스터미널까지 찾아가는데 30분을 추가해 대충 오후3시가 됐다.
이거 큰일이군, 아무래도 나이트 사파리는 포기할 수밖에 없다,고 자위하며 싱가포르행 버스표를 사려는데, 이럴수가! 버스표가... 오후6시 것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건 전적으로 나의 실수였다. 조금만 생각하면 알 수 있었던 것인데, 그만 내가 그날이 일요일이란 사실을 간과하고 있었던 것이다. 일요일이 어떤 날인가. 여기서 특히 말레이시아와 싱가포르의 관계를 떠올려야 했다. 싱가포르 사람들은 높은 경제력을 가진 만큼 주말이면 물가가 싸고 볼거리가 많은 말레이시아로 자주 놀러 나온다. 주말에 실컷 놀고 일요일은 돌아가는 날인 것이다. 그러니 버스표가 있을 턱이 없지. 전날이나 이날 아침 예매를 해놨어야 했는데, 전날 밤늦게 도착했고, 아침 일찍부터 다니느라 그럴 시간이 언제 있었겠는가.
어쩔 수 없었다. 일단 싱가포르행 버스표를 샀으나 무려 3시간을 기다려야 했다. 그리고 말라카에서 싱가포르까지는 4시간이나 걸리니 아무리 빨리 도착해도 밤 10시라는 얘긴데, 난 숙소도 전혀 구해놓지 못했고, 무조건 게스트하우스가 많다는 비치로드로 갈 생각만 하고 있었다. 게다가 난 싱가포르달러로 바꿔놓은 것도 없는데, 일요일이라고 여기 버스터미널 환전소가 모두 문을 닫은 것이다.
정말 난감하기 짝이 없었다. 말라카에 그대로 하루 머물다가 다음날 오전8시 첫차를 타고 가는 방안도 있다. 그럼 싱가포르에 점심 때 도착할테고 그날 밤11시30분발로 서울로 떠나는 거니까 싱가포르에서 하루 다 못채우는 방안이다. 물론 이것도 나쁘지 않다. 오히려 억지로 싱가포르에 갔다가 노숙을 할 판이었으니까.
하지만 난 이상한 오기가 발동했다. 일단 싱가포르행 표를 샀다. 여기서 주저앉을 수는 없어, 뭐 이런걸 '무대뽀' 정신이라고나 할까. 하지만 '하늘은 스스로 돕는자를 돕는다'고 했던가, 어쩌면 가장 힘든 시절이던 고등학교 때 되뇌었던 이 말을 여전히 난 무의식적으로 기억하고 있었나보다.
"안녕?"
누가 나를 툭 치며 아는 척을 한다. 그를 쳐다보았지만 잘 모르는 사람이다.
"…누구?"
"나 몰라?"
난 멋적어 하며, "글쎄, 누군지 잘 모르겠는데…"라며 말꼬리를 내린다.
그때 그가 무언가를 흔든다.
앗, 이런... 내가 줬던 핸드폰 줄이다!
그랬다. 전날 밤 만난 애미(AMY)인 것이다.
내 사정을 들은 애미가 따라오란다. 그가 데리고 간 곳은 길가에 나 있는 터미널 식당으로 쉬면서 싱가포르행 버스를 3시간동안 기다리라는 그의 배려였다. 하긴, 나도 3시간 동안 어디에 주저앉아 있어야 하나 고민하던 참인데 진짜 잘 됐다.
이날에서야 애미의 직업을 알게 됐다. 애미는 이렇게 버스터미널에 죽치고 앉아 있다가 새로 버스가 들어오면 여행자들에게 게스트하우스 전단지를 나눠주는 일을 하는 직업을 갖고 있었다. 난 전날 밤에 여기 도착했기 때문에 그를 만날 수 없었던 것인데, 이곳이 그의 직장이었던 셈이다.
식당에서 아이스티 하나를 시키고는 애미랑 신나게 떠들고 있는데, 그와 같은 직종의 다른 아저씨들도 우리 자리로 몰려온다. 나이는 제각각으로 보였으나, 말레인들의 친근함과 자유분방함 때문에 난 그들과 금새 친해질 수 있었다.
지금은 아저씨들 이름이 다 기억나지 않지만, 정말 내게 그렇게 친절할 수가 없었다. 한국에 대한 관심도 대단했다. 이것저것 궁금한 것도 많은가 보다.
그런데 가만히 살펴보니 애미를 비롯해 아저씨들 대부분 말레이계처럼 보였는데 한 아저씨만 중국사람과 비슷하다. 물어보니, 조부모님이 말레이계와 중국계라는 것이다. 그때 전형적인 말레이인처럼 보인 애미도 "나도 할머니가 중국계야"라고 거들었다. 아직도 차이나타운이 있고 같은 민족끼리만 피를 이어오는 경우도 있지만 또 한쪽에서는 이렇게 서로의 피를 섞고 있었던 것이다. 그게 말레이시아의 힘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튼 이들과 수다를 떨다보니 3시간이 훌쩍 지나고 말았다. 이 과정에서 환전을 못한 내 사정을 들인 한 아저씨가 터미널의 환전소 주인에게 직접 부탁해 싱가포르달러로 바꿀 수 있게 도와주었다. 게다가 싱가포르에서 숙소도 못구했다는 나를 위해 한 아저씨가 자기네 게스트하우스로 전화를 해서 싱가포르의 한 숙소의 연락처를 알려주기까지 했다. 이렇게 고마울수가! 정말 이 3시간이 그렇게 소중할 수가 없었다.
정말 이들과 너무도 정이 들어버렸다. 게다가 아저씨들이 한결같이 "말라카에서 겨우 하루만 있다 가다니, 말도 안돼! 적어도 이틀은 있어야지"하며 나를 붙드는게 아닌가.
더군다나 애초 오후6시에 출발해야 할 버스가 시간이 지났는데도 고장났다는 이유로 연착이 되고 있었다. 순간 난 정말 갈등하고 있었다. 갈까, 말까, 갈까, 말까...
애미는 한술 더 뜬다. "내가 내일 걸로 표 바꿔 갖고 올까?"
애미! 에구, 나 미치겠다.
때는 점심 때를 훌쩍 지난 오후2시쯤. 맡겨놓았던 짐을 찾으려 트래블러스 롯지로 돌아왔다. 점심식사하고 해리랑 사진을 찍으며 석별의 정을 나누느라 어느덧 오후2시30분. 버스타고 고속버스터미널까지 찾아가는데 30분을 추가해 대충 오후3시가 됐다.
이거 큰일이군, 아무래도 나이트 사파리는 포기할 수밖에 없다,고 자위하며 싱가포르행 버스표를 사려는데, 이럴수가! 버스표가... 오후6시 것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건 전적으로 나의 실수였다. 조금만 생각하면 알 수 있었던 것인데, 그만 내가 그날이 일요일이란 사실을 간과하고 있었던 것이다. 일요일이 어떤 날인가. 여기서 특히 말레이시아와 싱가포르의 관계를 떠올려야 했다. 싱가포르 사람들은 높은 경제력을 가진 만큼 주말이면 물가가 싸고 볼거리가 많은 말레이시아로 자주 놀러 나온다. 주말에 실컷 놀고 일요일은 돌아가는 날인 것이다. 그러니 버스표가 있을 턱이 없지. 전날이나 이날 아침 예매를 해놨어야 했는데, 전날 밤늦게 도착했고, 아침 일찍부터 다니느라 그럴 시간이 언제 있었겠는가.
어쩔 수 없었다. 일단 싱가포르행 버스표를 샀으나 무려 3시간을 기다려야 했다. 그리고 말라카에서 싱가포르까지는 4시간이나 걸리니 아무리 빨리 도착해도 밤 10시라는 얘긴데, 난 숙소도 전혀 구해놓지 못했고, 무조건 게스트하우스가 많다는 비치로드로 갈 생각만 하고 있었다. 게다가 난 싱가포르달러로 바꿔놓은 것도 없는데, 일요일이라고 여기 버스터미널 환전소가 모두 문을 닫은 것이다.
정말 난감하기 짝이 없었다. 말라카에 그대로 하루 머물다가 다음날 오전8시 첫차를 타고 가는 방안도 있다. 그럼 싱가포르에 점심 때 도착할테고 그날 밤11시30분발로 서울로 떠나는 거니까 싱가포르에서 하루 다 못채우는 방안이다. 물론 이것도 나쁘지 않다. 오히려 억지로 싱가포르에 갔다가 노숙을 할 판이었으니까.
하지만 난 이상한 오기가 발동했다. 일단 싱가포르행 표를 샀다. 여기서 주저앉을 수는 없어, 뭐 이런걸 '무대뽀' 정신이라고나 할까. 하지만 '하늘은 스스로 돕는자를 돕는다'고 했던가, 어쩌면 가장 힘든 시절이던 고등학교 때 되뇌었던 이 말을 여전히 난 무의식적으로 기억하고 있었나보다.
"안녕?"
누가 나를 툭 치며 아는 척을 한다. 그를 쳐다보았지만 잘 모르는 사람이다.
"…누구?"
"나 몰라?"
난 멋적어 하며, "글쎄, 누군지 잘 모르겠는데…"라며 말꼬리를 내린다.
그때 그가 무언가를 흔든다.
앗, 이런... 내가 줬던 핸드폰 줄이다!
그랬다. 전날 밤 만난 애미(AMY)인 것이다.
내 사정을 들은 애미가 따라오란다. 그가 데리고 간 곳은 길가에 나 있는 터미널 식당으로 쉬면서 싱가포르행 버스를 3시간동안 기다리라는 그의 배려였다. 하긴, 나도 3시간 동안 어디에 주저앉아 있어야 하나 고민하던 참인데 진짜 잘 됐다.
이날에서야 애미의 직업을 알게 됐다. 애미는 이렇게 버스터미널에 죽치고 앉아 있다가 새로 버스가 들어오면 여행자들에게 게스트하우스 전단지를 나눠주는 일을 하는 직업을 갖고 있었다. 난 전날 밤에 여기 도착했기 때문에 그를 만날 수 없었던 것인데, 이곳이 그의 직장이었던 셈이다.
식당에서 아이스티 하나를 시키고는 애미랑 신나게 떠들고 있는데, 그와 같은 직종의 다른 아저씨들도 우리 자리로 몰려온다. 나이는 제각각으로 보였으나, 말레인들의 친근함과 자유분방함 때문에 난 그들과 금새 친해질 수 있었다.
지금은 아저씨들 이름이 다 기억나지 않지만, 정말 내게 그렇게 친절할 수가 없었다. 한국에 대한 관심도 대단했다. 이것저것 궁금한 것도 많은가 보다.
그런데 가만히 살펴보니 애미를 비롯해 아저씨들 대부분 말레이계처럼 보였는데 한 아저씨만 중국사람과 비슷하다. 물어보니, 조부모님이 말레이계와 중국계라는 것이다. 그때 전형적인 말레이인처럼 보인 애미도 "나도 할머니가 중국계야"라고 거들었다. 아직도 차이나타운이 있고 같은 민족끼리만 피를 이어오는 경우도 있지만 또 한쪽에서는 이렇게 서로의 피를 섞고 있었던 것이다. 그게 말레이시아의 힘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튼 이들과 수다를 떨다보니 3시간이 훌쩍 지나고 말았다. 이 과정에서 환전을 못한 내 사정을 들인 한 아저씨가 터미널의 환전소 주인에게 직접 부탁해 싱가포르달러로 바꿀 수 있게 도와주었다. 게다가 싱가포르에서 숙소도 못구했다는 나를 위해 한 아저씨가 자기네 게스트하우스로 전화를 해서 싱가포르의 한 숙소의 연락처를 알려주기까지 했다. 이렇게 고마울수가! 정말 이 3시간이 그렇게 소중할 수가 없었다.
정말 이들과 너무도 정이 들어버렸다. 게다가 아저씨들이 한결같이 "말라카에서 겨우 하루만 있다 가다니, 말도 안돼! 적어도 이틀은 있어야지"하며 나를 붙드는게 아닌가.
더군다나 애초 오후6시에 출발해야 할 버스가 시간이 지났는데도 고장났다는 이유로 연착이 되고 있었다. 순간 난 정말 갈등하고 있었다. 갈까, 말까, 갈까, 말까...
애미는 한술 더 뜬다. "내가 내일 걸로 표 바꿔 갖고 올까?"
애미! 에구, 나 미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