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르데카(독립)!" '하나의 말레이시아'을 위한 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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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남아여행기11> "메르데카(독립)!" '하나의 말레이시아'을 위한 울림

연윤정 0 2535
<동남아여행기11> "메르데카(독립)!" '하나의 말레이시아'을 위한 울림

23일(금) 엿새째

종성씨가 오전 말라카로 떠났다. 이렇게 좋은 여행자를 만났을 때가 기분이 좋다. 진짜 여행을 하는 느낌이랄까.
난 푸두호스텔을 나와 KL지도를 펼쳐들고 시내를 돌기 시작했다. 앗, 도시가 생각보다 그렇게 크진 않은 것 같다. 지도상으로 볼 때는 꽤 멀 줄 알았는데, 금방금방 목적지가 나타난다.
KL은 진짜 태국과는 또 다른 느낌이다. 이슬람국가다 보니 여성들은 모두 머리에 스카프(히잡)을 두르고 다닌다. 남자들도 그 특유의 모자(이름을 모름)를 쓰고 있는 사람이 많다.
첫 번째 코스는 KL에서 제일 오래됐다는 이슬람 사원을 찾았다.
"오, 들어가면 안돼요."
내가 사원에 들어서자 경비실에서 한 아저씨가 말그대로 뛰쳐나오더니 손사래를 치며 안된단다.
비이슬람신자는 딱 정해진 시간에만 들어가야 하는데 금요일에는 오후2시30분에 들어가야 한단다. 아직도 한참 남았다. 알았다고 하며 사진만 찍고 나왔다.
다음 코스는 말레이시아 연방 청사. 그리고 그 앞의 메르데카(독립) 광장.
말레이시아는 모두 13개주로 구성된 연방국가다. 각 주에는 술탄(왕)이 존재하며(없는 곳도 몇 곳 된다) 모두 9주의 술탄이 돌아가며 말레이 국왕 자리에 오른다고 한다. 말그대로 명목상의 국왕일 뿐이다. 반면 태국은 똑같이 입헌군주국이면서도 국민들의 국왕에 대한 신뢰는 절대적이다. 실제 국왕이 국가의 통치에 직접 간여하지 않지만 정치·사회적 안정에 절대적인 역할을 한다. 그것은 아무리 군부라고 해도 거스를 수 있는게 아니란다.
그리고 메르테카 광장. 말레이시아는 태국처럼 통일왕조가 있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말라카 왕국을 중심으로 각 지역에서 술탄이 통치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곳은 일찍부터 이슬람 상인과의 교류가 있어왔던 터라 대부분 이슬람교로 개종할 수 있었고, 또한 일찍 서구세계에 알려졌다. 이는 이후 서구 열강의 동아시아 진출의 또 하나의 교두보가 된다. 또한 통일왕조가 성립되지 못한 관계로 각 지역의 술탄들은 자기 지역을 지키기 위해 서구 열강에 보호를 요청했고 그것이 자연스레 식민지로 전락되는 자충수가 되고 만다. 이런 배경으로 말레이반도는 차례로 포르투갈, 네덜란드, 영국, 그리고 2차 세계대전 때는 일본의 통치를 받게 된다.
그리고 1957년 8월31일. 말레이시아는 말레이연방으로 영국으로부터 독립할 수가 있었다. 이는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도 무려 12년이란 세월이 걸린 것으로 얼마나 지난한 투쟁의 과정이었는가를 쉽게 짐작할 수 있다.
그런데 독립 이후 중국계의 폭동이 일어난 모양이다. 말레이시아는 다민족 국가다. 말레이계가 55%로 가장 다수를 차지하고 있고, 중국계 35%, 인도 및 기타 10% 등으로 존재해있는데, 중국계가 경제력을 쥐고 있는 관계로 말레이계의 경제력은 낮은 상태다.
당시 이 과정에서 중국계와 말레이계 간의 민족간 피를 부르는 충돌이 있었고, 이 메르데카 광장의 분수가 피로 물들었다고 해서 '피의 분수'라고 부를 정도라고 한다. 또한 이 과정에서 떨어져 나간 곳이 싱가포르다.
싱가포르는 당시 많은 중국계가 이주해서 말레이연방에서 탈퇴, 영연방에 가입했다가 몇 년뒤 따로 독립한 국가로 여기는 중국계가 75% 가량되고 다음이 말레이계 15%, 나머지는 인도계 및 기타의 순이다.
어쨌든 말레이시아는 어렵게 독립을 이룬 이후 아픔을 겪은 이후 '하나의 말레이시아'를 강조하게 됐다고 한다.
내가 한창 KL을 돌아다니던 때도 보니 메르데카 광장에 큰 연단을 설치하느라고 정신이 없었다. 또한 시내 곳곳에도 말레이시아 국기가 내걸려 있는 등 그들이 8월31일 독립기념일을 얼마나 소중하게 여기는지 금새 알 수 있었다.
메르데카 광장 옆에 있는 역사박물관에서 독립기념일 행사 관련 사진을 보니 꽤나 커다란 행사를 치르고 특히 이 자리에서 각 민족의상을 입은 사람들이 대표적으로 나와 '하나의 말레이시아'를 강조하는 과정도 있는 것 같다.
말레이시아는 현재 경제력은 중국계가 장악하고 있지만 정치력은 말레이계가 장악하고 있다. 정부부처 장관 중 중국계는 딱 한 사람뿐이라고 한다. 그것도 별로 요직이 아니란다. 또한 말레이시아 정부는 말레이계 우대정책을 펴고 있다. 경제력이 낮은 만큼 은행 대출이나 주택 및 차량 구입에서 말레이계는 우대를 받는다.
그래도 중국계는 크게 불만을 나타내지 않는다고 한다. 한번 민족간 충돌로 피를 본 이상 다시는 그런 일이 없어야 한다는 '안정'을 원하고 있기 때문이란다. 어쩌면 민족간 합리적인 균형점을 찾은 것 같다. 어떤 민족도 크게 차별 받지 않는 상태에서 불균형을 바로 잡기 위한 정부 차원의 노력이 엿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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