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두호스텔에서 만난 씩씩한 한국인 장기여행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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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남아여행기10> 푸두호스텔에서 만난 씩씩한 한국인 장기여행자

연윤정 2 3502
<동남아여행기10> 푸두호스텔에서 만난 씩씩한 한국인 장기여행자

드디어 우리 버스는 KL의 푸두라야 터미널에 도착했다. 난 팀에게 "넌 어디서 묵을거니?" 했더니, 글쎄 나와 같은 '푸두호스텔'에서 묵는다는게 아닌가. 푸두호스텔, 그곳이 어떤 곳이냐. 바로 한국인 데이비드 임이란 분이 운영하는 국내에서 많이 알려진 곳이다. 그런데 그곳을 그 네덜란드 녀석이 가겠다는 게 아닌가.
"거기 어떻게 알아?"
"이전에 여기 왔을 때 머물렀던 곳이지"
"그런데 유럽여행자들한테도 유명한 곳이야?"
"응"
"거기 사장이 한국인이다. 너 아냐?"
"어, 알고 있어"
뭐랄까. 왜 이렇게 기분이 뿌듯하지? 어쨌든 한국인 사장이 운영하는 게스트하우스가 유럽인들에게도 잘 알려져 있다?
푸두호스텔에 들어가서 더 그런 기분이 들었다. 실제 한국인들은 거의 없고 거의가 다 유럽여행자들이 득실거렸기 때문이다. 태국만 해도 한국인들이 조금 되는데 당장 말레이시아만 해도 한국 여행자들이 별로 없다.
팀과 난 체크인을 하고 각자 다른 도미토리(12링깃, 약 4,000원)에 배정받았다. 뭐 아쉬울 건 없다. 진짜 무뚝뚝한 녀석이기 때문이다.
이곳의 도미토리는 2층 침대 2개가 놓여져 있는 곳이다. 처음 들어갔더니 아무도 없다. 왼쪽 침대에는 배낭들만 놓여져 있고 오른쪽 윗 침대는 내 침대, 그리고 아랫 침대에는 짐이 아무렇게나 펼쳐져 있다. 앗, 이럴 수가! 한국어로 쓰여진 여행책자가 있질 않은가.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KL에 오는 동안 한국사람 하나 못 만나 얼마나 외로웠던가.
조금 있다가 시커먼 한 남자가 들어온다. 어느 나라 사람인지 잘 모르겠다. 어느 침대로 갈지 주의 깊게 보는데 바로 오른쪽 아랫 침대로 가는게 아닌가. 이런! 이 사람이 한국사람?
도저히 믿어지지 않았다. 광대뼈가 툭 튀어나오고 눈도 쑥 들어간 게 얼핏 보기엔 동남아 사람과 비슷한데 말이다.
"혹시 한국사람이예요?"
그가 나를 휙 보더니, 또렷한 우리말로 "맞는데요"라고 대답한다.
"에구, 얼핏보면 한국사람인지 진짜 모르겠는데요?"
그의 이름은 종성. 올해로 29살인 건강한 한국 남자다. 벌써 석달째 동남아 여행 중이고 돈 떨어질때까지 계속 여행을 하겠단다. 대충 앞으로 2달이면 돈이 다 떨어질 것 같단다.
"아, 장기여행을 하시는 분이군요? 학생인가요?"
"아뇨. 졸업한지는 한 2년 돼요. 지금 백수거든요. 그래서 여행이나 하고 직장을 구하려고요."
그냥 그런 생각이 들었단다. 어차피 백수동안 여행이나 하고 돌아와서 직장도 구하고 열심히 살자고. 그래서 그동안 모아놨던 돈이랑 부모님께 지원을 받아서 지금 3개월째 동남아시아를 떠돌고 있는 것이다.
종성씨와 난 인근의 차이나타운으로 나갔다. 말레이시아는 이슬람국가라 술을 파는 곳이 상당히 제약돼있고, 그것도 굉장히 비싸다. 그러나 차이나타운에서는 가게에서 술을 팔 수 있다.
우린 탕수육을 시켜놓고 맥주 한잔씩을 들이켰다. 그의 여행이야기가 참 재밌다. 태국에서 한달간 머물면서 만났던 치앙마이의 대학생들이 그립고, 파타야에서 알카자쇼에 출연하는 게이들과 놀았던 얘기들을 쏟아냈다. 여기 KL에 대한 이것저것 설명도 해준다.
KL에서 사흘을 머물렀는데 별로 재미가 없어서 다음날은 말라카로 간단다. 그 뒤에 어디 갈거냐고 했더니, 모르겠단다.
오우, 이거 진짜 내가 원하는 여행이 아닌가. 그냥 발길 닿는대로 하는 여행. 갑자기 그가 부럽기도 하고 안스럽기도 하고 그런다.
앞으로는 인도와 네팔로 갈 거란다.
"서울 산다고요? 그럼 나중에 서울에서 한번 만나요."
"저 백순데요. 맛있는거 사 줄꺼죠?"
"그래요. 지금은 종성씨가 백수니까 제가 사줄테니, 나중에 종성씨가 취업하면 그때 한턱 쏘는거예요?"
난 그렇게 KL에서의 첫날을 보내고 있었다.

* 종성씨와는 내가 한국에 돌아온 이후 몇 번 이메일을 주고 받고 있는데, 지금은 파타야에 있고, 알카자쇼의 게이 친구들과 놀고 있다는 전언.

2 Comments
초이 2002.10.03 01:40  
  안녕하세요 푸두호스텔 도우미 초이입니다...
글잘읽었습니다... 근데... 언제 다녀가셨나요? 도통 기억이 나지 않는군요...
연윤정 2003.02.09 11:32  
  오랜만에 다시 들어와 봤어요. 여행기 마지막에서 이젠 여행의 추억을 덮고 일상으로 돌아갈 거라고 했지만, 가끔은 그때가 그리워지곤 해서요...
아마 앞으로도 그렇겠지요... 그냥 여기 오면 기분이 좋아지네요.
그리고 초이님, 제가 갔을 때는 초이님은 아마 한국에 있었을 걸요? 제가 방 예약한다고 법석거리며 초이님과 몇번 이멜을 주고 받았거든요. 그때 제가 방문할때 쯤에는 없을 거라고 그랬지요, 아마. 저도 초이님을 못 만났던 게 안타깝더군여... 프론트의 말레이 아저씨한테 안되는 영어로 방 잡으랴 길 물어보랴 짐 맡기랴 아무튼 쬐금 힘들었든요.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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