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뜨고 코 베인' 수랏타니에서의 악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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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남아여행기8> '눈뜨고 코 베인' 수랏타니에서의 악몽

연윤정 3 3000
<동남아여행기8> '눈뜨고 코 베인' 수랏타니에서의 악몽

22일(목) 닷새째

결론적으로 최악의 날이었다. 이런 날은 다시 없어야만 한다!
기분좋은 태국의 모습을 간직하고 싶었건만, 태국은 결국 마지막에 또다른 얼굴을 보여주고 만 것이다. 태국은 나를 웃고 울게 만든 나를 혼란스럽게 한 나라였던 것이다.
왓포에 혼자 왔을 때, 비로소 혼자만의 여유와 자유를 느낄 수 있어 행복했다.(앞서 태국에서 함께 했던 일행과 왕궁 앞에서 헤어졌다. 각자의 갈길이 따로 있었기에...) 사원 한 켠의 한적한 벤치에 앉아 마지막 태국을 정리하는 명상에 잠겨보았다. 나를 돌아볼 여유없이 바쁘게 돌아다닌 태국이었지만, 참으로 흥미진진한 이곳이 맘에 들었다. 그리고 다음에 꼭 다시 와보자는 다짐도 해보았다. 신혼여행이든 다른 곳에 가기 전 잠시 들르건, 어쨌든 태국을 다 보지 못한 아쉬움이 컸던 것 같다.
그리고 앞으로 혼자 해야할 여행에 대해서도 그려보았다. 힘겨운 여행이 되겠지. 버스를 여러번 갈아타며 28시간을 가야 한다는데. 부디 좋은 여행자들 만나고 별일이 없길 기원도 해보았다. 그리고 내가 왜 이 여행을 선택했는지, 그 물음에 늘 충실하자고 다시한번 다짐했다. 사실 태국은 거의 내게 생각할 시간을 주지 않은 곳이다. 전반적으로 태국은 들떠있는 분위기였다.
난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KL)로 가기 위해 소위 '조인트 티켓'이란 걸 끊었다. 이것은 행선지가 각각 다른 여행자들이 중간중간 동승했다가 흩어지고 하는 방식으로 각자의 목적지까지 가는 티켓을 말한다. 예컨대 내가 처음 탄 버스는 꽉 찼지만, KL로 가는 사람은 나 뿐이고 다른 여행자들도 각각 다른 목적지들을 갖고 있었다.
이 버스에서 만난 일본인 아가씨 나오(23)와 니카(20) 일행은 코사무이로 간다고 한다. 그러니까 나의 첫 버스는 코사무이로 들어가는 입구격의 수랏타니에서 내렸던 것이다.
그러나 난 이 수랏타니가 바로 사기를 당한 악몽의 그 곳이었던 것이다. 결코 좋은 기억으로 남을 수 없는... 지금 생각해도 열이 난다.
수랏타니에 도착하니 우리 버스 일행 중 말레이시아로 넘어가는 사람이 나밖에 없었다. 그래서 수랏타니의 조인트 티켓 담당 여행사에서는 나만 데리고 그들의 사무실로 간 것. 여기서 태국 아줌마가 방실방실 웃으면서 하는 말이 바로 그 사기의 시작이었던 것이다.
그 여자 왈, "말레이시아로 넘어가려면 여기서 링깃(말레이시아 화폐단위)으로 바꿔야 하는데, 적어도 500링깃(약 17만원, 태국돈 약 5,683바트)은 바꿔야 한다. 돈 있냐"
한마디로 이 여행사에서 환전을 하라는 얘기다. 하지만 내가 완전히 배낭여행의 초짜가 아닌 이상 그 말을 곧이곧대로 들을리 없다. 배낭여행의 절대수칙 하나. 환전은 꼭 은행이나 공식 환전소에서 해야만 한다.
그런데 문제는 생전 처음 간 동네에서 너무 강압적인 분위기를 연출하면서 난 겁이 나고 말았다. 또 국경을 넘는 여행은 처음이었기 때문에 꼭 미리 환전을 해야 하는 것인가 혼란스럽기도 했다. 게다가 500링깃이면 보통 큰 돈이 아니다. 뭔가 수상쩍은 냄새가 났다. 게다가 돈을 바꾸기 전에는 KL까지 가는 티켓을 주지 않을 심산인 것 같았다.
더 황당한 것은 태국 돈이 없다는 나의 말에 그 여자를 비롯한 여행사 직원들은 ATM(현금지급기)으로 가보라고 하면서 등을 떠미는게 아닌가. 결국 그들은 오토바이까지 대령하면서 나를 은행으로 데리고 갔고, 내 등뒤에서 "꼭 500링깃 바꿀 정도의 돈을 찾아와야 해"라고 소리치기까지 했다. 기가 막혔다. 이 새벽에 은행으로 굳이 나를 데려가는 그들의 심산이 불안스러웠다.
결국 난 울며겨자 먹기로 태국 돈을 꽤 많이 찾았다. 내가 왜 비자카드를 들고 갔던고.
어쨌든 다시 돌아와보니 다른 여행자들이 사무실에 들어와 있다. 앗, 구원자를 만난 느낌이었다. 난 오토바이에서 내리자마자 막 사무실로 들어가려고 하는데, 글쎄 여행사 남자직원이 나를 못들어가게 막는 게 아닌가. 정말 기가 막혔다. 그리고 더욱 수상스러웠다.
난 그 아저씨를 밀치고 사무실로 들어갔다. 일본인 2명이었다. 난 이 사람들 거짓말하는 것 같다, 수상하다며 난 같이 대응하자는 식으로 얘기하는데, 일본인들의 반응이 시큰둥하다. 게다가 뒤늦게 도착한 한 네덜란드인에게도 그 얘기를 하는데, 내 앞에서 그냥 돈을 바꾸는게 아닌가. 다행히 아줌마가 내게 얘기했던 것처럼 그들에게는 큰 돈을 요구하지 않았다는 거다. 아마도 여럿이 있는데다, 다음 버스 떠날 시간이 촉박했던 것 같다. 아마 나 혼자였다면 어떻게든 큰 돈을 바꾸게 하려 했을거다.
나도 어쩔 수 없이 갖고 있던 돈 중 일부를 내놓긴 했다. 하지만 이럴수가! 아무리 수상쩍었지만, 이렇게 노골적인 것은 처음 봤다. 1000바트(3만원)를 내놨는데 66.6링깃(2만2,700원가량)밖에 바꿔주지 않는게 아닌가. 그러니까 뻔히 내가 눈을 뜨고 있는데 1/4을 그들이 챙겨간 것이다. 난 전자계산기를 두드려대며 잘못됐다며 다시 바트를 내놓으라고 소리를 치는데 어림도 없다. 그들은 그제서야 KL행 티켓을 휙 끊어주며, "너 때문에 다른 일행들이 기다리고 있지 않느냐. 빨리 나가라"고 오히려 큰 소리를 친다. 여행사 밖에서는 다음 목적지까지 가는 봉고차가 다른 여행자들을 태운채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얼마를 더 버텨봤지만 정말 나 혼자는 역부족이었다. 다른 여행자들이 원망스럽기조차 하다. 그들도 당해놓고 왜 가만히 있나?
결국 난 발길을 돌릴 수밖에 없었다. 분한 마음에 씩씩댔지만, 조직적인 그들의 사기에 난 '눈 뜨고 코를 베이고' 말았던 것이다.
잊지 못하리라, 수탓타니.

3 Comments
음.. 2002.09.06 10:32  
  저도 태국에서 사기당한 일이 있어서 태국에 대해 좋은 인상을 가지고 있지 않답니다. - -; 님의 기분 너무나 이해되네요.
데이비드임 2002.09.18 04:11  
  조인트 티켓에 대하여 여행자들마다 불평이더군요.
결론은 조인트 티켓 끊지말고,방콕에서든지 아님 다른 지역에서든지
버스 또는 기차로 태국 남부의 "핫야이"에 도착한 후에 핫야이에서 말레이시아 KL 행 버스 또는 알로스타 행 버스를 타시면 비용도 덜 들고 시간도 절약 됩니다.
만일 오전인데 KL 또는 알로스타 행 버스가 저녁에만 있다고 한다던지,오후인데  내일 아침에만 있다고 한다던지 하는것은 그 버스회사 사정이지 다른 버스회사 사정이 아니므로 핫야이 종합버스터미널로 가거나,아니면 다른 버스회사를 찾아가겠다고 하시면 반응이 달라집니다.
어찌되었건 30링깃 이하에 KL 까지 가는 직통 VIP버스를 타시게 되면 성공입니다.만일 여기저기 버스회사 찾아다니는 것이 귀찮아서 버스표를 예매했는데 출발 시간이 넘넘 오래 남아있다면 도미토리 숙소(8~10 링깃 합니다)에 들어가서 한 숨 푹 자고 나오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나역시 2003.05.14 19:14  
  조인트 티켓으로 무려 코사무이에서 싱가포르까지 한꺼번에 가면서 피곤해 죽을뻔한 적이 있었는데 중간 핫야이에서 바로 그런 식으로 환전하라고 하더군요. 단 한마디...않한다고 했죠. 노 아이 돈 원트. 그리고 얼굴을 돌려버렸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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