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남아여행기6> 타마사트 대학에서 태국의 학생운동을 떠올리며
<동남아여행기6> 타마사트 대학에서 태국의 학생운동을 떠올리며
21일(수) 넷째날
어느덧 태국에서의 마지막날.
정말 시간이 쏜살같다는 말은 이런 걸 두고 하는 말이다.
태국의 진수, 왕궁과 에메랄드 사원에 가는 날이다. 휘황찬란한, 그리고 뭉쿳왕의 숨결이 느껴지는 그 곳...
아침부터 비가 온다. 동남아시아의 기후는 스콜이라고 해서 하루에 2번정도 잠깐 비가 오고 만다. 오히려 우산을 들고 다닐 필요가 없다. 한 20∼30분 비를 피해있다가 그치면 움직이면 되는 것이다.
그래도 꿋꿋이 우산 쓴 이는 우리 일행 밖에 없다. 한국인들의 성격이 급한 것 다 아는 사실 아닌가? ^^
방콕의 왕궁근처를 돌아다니려면 걷는게 가장 좋은 방법이다. 다들 가까운 거리들에 위치해있다. 지도를 들고 여기저기 물으며 걷는 기분이 얼마나 좋은데!
우선 타마사트 대학을 찾았다. 어? 태국은 대학생들조차도 교복을 입네? 여학생은 까만 숏 또는 롱 치마를 입고 하얀 블라우스를 입는다. 남학생은 까만 바지에 하얀 와이셔츠. 이곳 타마사트 대학은 아마도 우리나라의 연·고대 정도 되는 명문으로 과거 태국 민주화운동 때 여기 대학생들이 많이 앞장섰다고 한다. 옛날에 봤던 뉴스를 기억하면 그때 태국의 대학생들이 꽤 많이 죽었다고 들었는데... 어디나 독재나 압제하에서 학생들이 나서는 것은 인지상정인가 보다. 정의와 열정을 지닌 '젊음'을 갖고 있기 때문에.
사실 태국의 정치상황을 보면 좀 갑갑하다. 태국은 아시아 국가 중 유일하게 독립을 지킨 국가다. 앞서 얘기한 그 중립외교의 힘이다. 때문에 과거 서구 열강과 일본의 침략으로부터 자국을 지켜낼 수 있었고, 근대화에도 성공할 수 있었다. 거기에는 지금 4대 랏타나코신 왕조 국왕들의 힘이 크다. 그 유명한 뭉쿳왕(라마 4세)이 바로 태국의 근대화의 길을 닦아놓는데 교두보 역할을 했다고 한다. 그는 젊은 시절 27년간 절에서 지냈는데, 이때 선교사 등 서양인들을 초청, 그들과 교류를 가지면서 그 자신도 영어를 유창하게 구사할 줄 알았고, 빠르게 돌아가는 세상을 접하는데 게을리하지 않았다고 한다. 애나가 가정교사로 왕의 자식들을 가르칠 수 있었던 것도 그런 그의 탁월한 시대적 감각 탓이다.
그러나 1932년 군인들의 무혈쿠데타 이후 입헌군주제가 시행된 이후 태국은 정치적 혼란을 적어도 10년전까지 지속해왔다고 한다. 32년 이래 60년동안 태국에서는 48개 내각에서 20명의 수상이 재직했고, 24개 내각은 군부정권 내각, 8개는 군부가 실제 지배하는 내각이었다. 또 15차례 헌법이 공포됐고, 18차례 선거가 치러졌으나 4번만이 진정한 의미의 정권교체였다고 한다. 또 32년부터 91년까지 태국에서는 총 17번의 구데타가 발생했는데 10번은 성공, 7번은 실패했다고 하는데 이는 3년5개월만에 한번씩 쿠데타가 일어났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런 정치적 혼란기 속에서 73년 학생들은 군사정권에 반대하며 학생혁명을 주도했으며, 92년 군장성 출신 수친다 수상 퇴진을 요구하며 대규모 반정부 시위가 일어났고, 이때 수친다가 퇴진하면서 정치적 혼란을 겪으면서 나름대로 지금의 민주화 기틀을 닦았다고 한다. 내가 기억하는 것이 바로 이 92년 사태였다.
지금은 모르겠다. 그 뒤 군부가 직접 집권에서 일단은 뒤로 물러난 모양이긴 한데, 쿠데타로 세워진 정치체제가 쉽게 무너질리 만무하겠지. 그런 의미에서 민주화를 이루는데 학생들의 역할이 한국이나 태국이나 참 컸던 것 같다.
21일(수) 넷째날
어느덧 태국에서의 마지막날.
정말 시간이 쏜살같다는 말은 이런 걸 두고 하는 말이다.
태국의 진수, 왕궁과 에메랄드 사원에 가는 날이다. 휘황찬란한, 그리고 뭉쿳왕의 숨결이 느껴지는 그 곳...
아침부터 비가 온다. 동남아시아의 기후는 스콜이라고 해서 하루에 2번정도 잠깐 비가 오고 만다. 오히려 우산을 들고 다닐 필요가 없다. 한 20∼30분 비를 피해있다가 그치면 움직이면 되는 것이다.
그래도 꿋꿋이 우산 쓴 이는 우리 일행 밖에 없다. 한국인들의 성격이 급한 것 다 아는 사실 아닌가? ^^
방콕의 왕궁근처를 돌아다니려면 걷는게 가장 좋은 방법이다. 다들 가까운 거리들에 위치해있다. 지도를 들고 여기저기 물으며 걷는 기분이 얼마나 좋은데!
우선 타마사트 대학을 찾았다. 어? 태국은 대학생들조차도 교복을 입네? 여학생은 까만 숏 또는 롱 치마를 입고 하얀 블라우스를 입는다. 남학생은 까만 바지에 하얀 와이셔츠. 이곳 타마사트 대학은 아마도 우리나라의 연·고대 정도 되는 명문으로 과거 태국 민주화운동 때 여기 대학생들이 많이 앞장섰다고 한다. 옛날에 봤던 뉴스를 기억하면 그때 태국의 대학생들이 꽤 많이 죽었다고 들었는데... 어디나 독재나 압제하에서 학생들이 나서는 것은 인지상정인가 보다. 정의와 열정을 지닌 '젊음'을 갖고 있기 때문에.
사실 태국의 정치상황을 보면 좀 갑갑하다. 태국은 아시아 국가 중 유일하게 독립을 지킨 국가다. 앞서 얘기한 그 중립외교의 힘이다. 때문에 과거 서구 열강과 일본의 침략으로부터 자국을 지켜낼 수 있었고, 근대화에도 성공할 수 있었다. 거기에는 지금 4대 랏타나코신 왕조 국왕들의 힘이 크다. 그 유명한 뭉쿳왕(라마 4세)이 바로 태국의 근대화의 길을 닦아놓는데 교두보 역할을 했다고 한다. 그는 젊은 시절 27년간 절에서 지냈는데, 이때 선교사 등 서양인들을 초청, 그들과 교류를 가지면서 그 자신도 영어를 유창하게 구사할 줄 알았고, 빠르게 돌아가는 세상을 접하는데 게을리하지 않았다고 한다. 애나가 가정교사로 왕의 자식들을 가르칠 수 있었던 것도 그런 그의 탁월한 시대적 감각 탓이다.
그러나 1932년 군인들의 무혈쿠데타 이후 입헌군주제가 시행된 이후 태국은 정치적 혼란을 적어도 10년전까지 지속해왔다고 한다. 32년 이래 60년동안 태국에서는 48개 내각에서 20명의 수상이 재직했고, 24개 내각은 군부정권 내각, 8개는 군부가 실제 지배하는 내각이었다. 또 15차례 헌법이 공포됐고, 18차례 선거가 치러졌으나 4번만이 진정한 의미의 정권교체였다고 한다. 또 32년부터 91년까지 태국에서는 총 17번의 구데타가 발생했는데 10번은 성공, 7번은 실패했다고 하는데 이는 3년5개월만에 한번씩 쿠데타가 일어났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런 정치적 혼란기 속에서 73년 학생들은 군사정권에 반대하며 학생혁명을 주도했으며, 92년 군장성 출신 수친다 수상 퇴진을 요구하며 대규모 반정부 시위가 일어났고, 이때 수친다가 퇴진하면서 정치적 혼란을 겪으면서 나름대로 지금의 민주화 기틀을 닦았다고 한다. 내가 기억하는 것이 바로 이 92년 사태였다.
지금은 모르겠다. 그 뒤 군부가 직접 집권에서 일단은 뒤로 물러난 모양이긴 한데, 쿠데타로 세워진 정치체제가 쉽게 무너질리 만무하겠지. 그런 의미에서 민주화를 이루는데 학생들의 역할이 한국이나 태국이나 참 컸던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