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랑소녀 삼천포의 나홀로 네팔 여행ㅡ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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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랑소녀 삼천포의 나홀로 네팔 여행ㅡ13

삼천포 9 2070

(소년 소녀를 만나다)

한 소년이 있었다.

그는 오랜 꿈이었던 히말라야 트래킹에 도전하기 위해 큰 결심을 하고

네팔에 가기로 했다.

일상이 빡빡하고 바빴던 소년은 시간을 쪼개고 쪼개서 간신히 힘들게 포카라에 도착했다.

그런데 그렇게 힘들게 포카라에 온 소년은 그만 도착한 첫날

우연히 마주친 소녀에게 첫눈에 반해버렸다.

그는 세상에서 그렇게 아름다운 여자는 처음봤다고 했다.

감탄보다도 먼저 깊은 한숨이 튀어나와 버릴 정도로

세상에나, 어찌 저렇게도 아름다울수가 있을까.

소년의 어린 마음이 감당하기에는 너무도 벅찬

그 아름다움에 눈물이 나올 뻔 했다고 한다.

나는 눈물이 많은 사람이다.

아름다운 풍경이나 아름다운 사람을 보면 나도 모르게 벅차올라서 눈물이 차오를 때가 있다.

그래서 나는 소년의 마음을 어느정도는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었다.

소년은 소녀와 함께 있고 싶어서 오랜 꿈이었던 히말라야 트래킹을 포기하기로 했다.

함께 왔던 친구와의 소중한 약속도 깨고

풀세트로 장착하고 왔던 트래킹 장비들은 짐 한 번 풀어보지도 못하고

그냥 내버려둔 체로 오로지 소녀의 곁에 있고 싶어서

소년의 인생에서 가장 힘들게 쥐어짜내서 온 짧은 시간을 오롯이 소녀에게만 쓰기로 했다.

삶의 한순간, 누구에게나 "한순간"의 기억은 가장 아름답고 강렬하게 남는다.

소녀와 함께한 소년의 일주일은 그 한순간의 연속이었다.

왜그토록 눈물이 났었는지,왜그토록 불붙는 슬픔을 느꼈었는지

이제는 그남자가 된 지금도 아직도 모르겠다고 한다.

다만 아직도 그때 그 시절을 떠올리면 주책스럽게도 가끔씩 눈물이 따라올때가 있다고 한다.

사랑, 이 지긋지긋하고 정다운것아...

 

 

 

 

 

 

(우리는 사랑이었을까?)

혹시 한국분이세요? 하는 소리가 들려서 보니

한 남자가 우리에게 말을 걸면서 웃고 서있다.

나와 함께 밥을 먹고 있던 그녀가 갑자기 눈을 빛내며 웃는다.

네, 저희 한국 사람이에요. 안녕하세요?

하며 상냥하게 인사하는 그녀.

나는 마치 처음 보는 사람인 양 어이가 없어서 그런 그녀를 바라본다.

그녀, 도도하고 새침한 암코양이 같은 그녀.

왠만한 남자들에게는 찬바람만 쌩쌩 부는 차도녀가 웬일인지 그남자에게는

훈훈한 봄바람처럼 살랑살랑댄다.

그남자와 대화를 튼지 정확하게 2분만에 그녀는 그와 다시 만날 약속을 잡는다.

나는 먹던 밥이 체한 듯 하여 그녀를 바라보며 눈만 꿈벅꿈벅 대고 있다.

언니, 나 오늘부터 좀 바쁠거예요. 당분간 찾지마세요!

그리고 그녀는 바로 그를 만나러 가버렸다.

그후로는 시도때도없이 그를 만나러 달려가곤 했다.

어느날은 한밤중에 갑자기 그가 보고싶다며 갔다온다고 고집을 부리기도 했다.

밤길은 위험하니 담날 아침에 가라고 말려도 기어이 혼자서 무서운 산길을 꾸역꾸역 가다가

동네 불량배들을 만나서 혼비백산해서 도망쳤다는 얘기를 하면서도

헤헤. 웃어댈때면 저년이(ㅋㅋㅋ)정말 내가 알던 도도한 차도녀가 맞는지 의심스럽기도 했다.

2주후 남자는 다른 곳으로 떠난다고 했다.

그녀에게 함께 가자고 했는데 당연히 따라갈거라고 생각했던 그녀는 그냥 이곳에 남겠다고 했다.

그남자가 글을 쓰고 있으면 옆에 가만히 앉아서 햇살만 쬐고 있어도 행복하다고

태어나서 처음으로 함께 살아도 괜찮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던 사람이었는데

막상 함께 떠나자고 하니

마치 결혼을 앞둔 새신부처럼 불안과 짜증이 확 밀려오더라고 한다.

 

언니, 나는 아무래도 혼자 살아야 할 팔잔가봐요, 헤헤.

하며 쿨하게 웃던 그녀에게 으이그. 이 화상아. 하고 한 대 콕 쥐어박았다.

 

언니, 나는 사랑에 빠지기엔 너무 철딱서니가 없나봐요.

어느날은 그남자 눈에 낀 눈꼽이 너무 싫어서 애정이 팍팍 식더라구요.

그러니 함께 떠나서 볼꼴 못볼꼴 다보고 다니면 얼마나 더 싫겠어요. 으으

 

 

그럼, 그날밤 한밤중에 보고싶다고 눈에 뵈는 거 없이 쳐달려간 그여자는 누구니?

 

 

으음...그 여자도 나예요. 물불 안가리고 미쳐 날뛴 그여자도 나고

짜게 식어 떠나지 못하는 그여자도 나예요.

 

 

그래. 잘했다. 잘했어.

 

 

언니, 어느날 그사람이 언제나처럼 양지 바른 곳에 앉아서 글을 쓰고 있고

저는 그옆에서 녹차팩을 물에 개어 내얼굴에도 바르고 그사람 얼굴에도 발라줬거든요.

그러다가 우리둘이 서로 눈이 마주쳤는데 그 꼴이 너무 웃겨서 그만 웃음이 터져버린거예요.

팩 하다가 웃으면 안되는데, 얼굴이 막 가뭄의 논바닥처럼 쩍쩍 갈라져서 깨지고

막 웃다가 저는 그순간 그냥 막 죽고싶은 거예요. 너무 좋아서, 너무 행복해서.

 

 

지랄똥을 쳐싸고 앉아있네.

 

 

언니, 저는 이제는 녹차팩을 하지 못할 것 같아요.

녹차팩은 이제 저에게는 슬픔으로 기억될거니까요.

 

 

니맘대로 하세요.

 

 

그나저나 언니, 우리는 사랑이었을까요?

 

 

 

 

 

 

 

(미련한 사랑 feat. 김동욱)

그는 키가 크고 체격이 굉장히 좋았다.

정말 남자답게 잘생긴 얼굴에 카리스마가 넘치는 사람이라

달라이라마의 행사가 있거나 큰 축제가 열리는 날에는 티벳 전통 의상을 멋지게 차려 입고

행사의 선두에 서서 깃발을 휘두르는게 그의 임무였다.

그 잘생기고 훤칠한 외모는 전통 의상을 입고 행사를 진두지휘할 때 더더욱 빛이 나서

온동네 처자들이 얼굴이 발그레헤진 체로 그의 모습을 몰래몰래 훔쳐보곤 했었다.

어느날 밤, 불빛 하나 없이 캄캄한 밤길을 걷다가 그는 한 여자와 마주쳤다.

길에서 마주칠때마다 늘 꽃처럼 아름답다고 생각했던 그녀였다.

혹여 그녀가 넘어질까봐 늘 휴대하고 다니던 플래시를 그녀의 발밑에 비춰주며 다가갔다.

늘 꽃처럼 아름다웠던 그녀가 웃자 그의 얼굴은 새빨개졌다.

친구네 집에 가는 길이라는 그녀를 안전하게 에스코트 해주며

그는 달빛이 더 어두웠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녀가 내게 더 의지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면서

그 생각의 유치함에 스스로 흠칫 놀라 큭큭 웃었다.

외로우면 외로운대로 외롭지 않으면 외롭지 않은대로 좋아서

늘 감사하고 담백하게 살아오던 삶이 그날밤 이후로 무너져 내렸다.

세상과 적당한 거리를 두고 사는게 좋아서

달라이라마를 뵈러 가는 것 외에는 은둔하다시피 살았던 그가

시내 중심가로 나오기 시작했다.

술을 싫어하고 주량도 약한 그가 시끌시끌한 술집에서 술에 취한 체로 목격되기도 했다.

나를 볼때마다 늘 환한 얼굴로 웃으며 반겨주던 그가 점점 웃음을 잃어가기 시작했다.

그녀를 만났니? 하고 물어보면

으음, 만난 건가 안만난건가 나도 헷갈리네..라는 아리송한 말을 하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도대체 어떤 여자이길래 그토록 잘생겼던 남자가

이렇게 볼때마다 말라가는지 궁금해졌다.

 

 

내가 그녀를 반가워할때 그녀는 나를 반가워 하지 않아,

그리고 그녀가 나를 반가워할때면 내가 그녀가 반갑지가 않아.

우리는 이런 엇갈림의 연속이야.

 

 

그래? 그렇게 계속 엇갈리다보면 언젠가 한 번쯤은 겹쳐지겠지.

 

 

글쎄, 그 엇갈림의 연속이 너무 기니까 나도 이젠 지치네.

그런데 엇갈림의 길이보다 미련이 더 길어. 아오 정말 지긋지긋해.

 

 

 

 

어느날밤, 갑자기 그녀가 울었다..

마음이 무너져내린 그는 모든걸 포기하고 그녀를 찾아 헤맸으나

그녀는 이미 떠나고 없었다.

그녀가 살던 나라에서의 삶을 포기하고 다시 돌아왔을 때

그에게는 이미 다른 연인이 생긴 후였다.

 

 

 

다시 돌아온 그녀를 보내고 그는 쓸쓸히 집으로 돌아갔다.

달빛이 휘황하던 밤에.

 

 

 

 

 

 

 

 

 

 

 

 

 

 

 

 

 

 

 

 

* 오랜만입니다.

여행기를 안쓸때는 죽어라 못쓰겠더니 다시 써보자. 생각하니 두시간만에 뚝딱 쓰게되네요.

지금 제자신에게 놀라는 중. 소오오오오오름.ㅋㅋㅋㅋㅋㅋㅋ

 

 

9 Comments
Cal 2015.10.14 16:13  
오, 제가 일착인가요?  반갑습니다! 일단 댓글로 찜부터 하고 정독합니다~
Cal 2015.10.14 16:16  
에이고......  청춘 남녀가 사랑을 불태우는 모습을 보는 것이 저와 같은 중년들의 큰 즐거움이거늘, 이것은 이루어지지 못한 사랑 이야기네요!  이 주인공 여자분이 바로 전편에 등장하신 그 분인가요?
삼천포 2015.10.14 16:31  
그 여자분은 아니에요. 전편에 나온 분은 모쏠.ㅎㅎㅎ
저도 제3자의 입장에서 다른 사람들의 러브스토리를 지켜보는게
쏠쏠한 즐거움인데 새드 엔딩이라 안타까웠어요.
길위에서 만난 인연은 길위에서 끝내라는 말이 문득 생각나더라구요.
필리핀 2015.10.14 17:20  
오오! 삼천포님... 넘 오랫만이에요...
여행기 기다리다가 목이 쑤~욱 빠졌어요... ㅠㅠ

별일 없으시죠?
아무리 바쁘셔도 1주일에 1개씩은 올려주세요! ^^

광팬 올림! ㅎㅎ
삼천포 2015.10.14 18:37  
어머.
목이 쑤욱 빠졌으면 키가 더 커지셨겠네요.
축하축하^^

전 잘지내구요, 별 일 없답니다.
이젠  되도록이면 자주 올리도록 할게요.
감사합니다^^
디아맨 2015.10.14 17:47  
글 잘 봤어요^^
저도 팬이에요~~
삼천포 2015.10.14 18:37  
감사감사^^
늘 반갑고  고맙습니다.
외국인투자자 2015.10.14 21:23  
당신의 글이 미치도록 밉네요 ㅠㅠ
광팬으로써 너무 너무 얄미워요
멀쩡했던 날 이렇게
망가뜨리기 있기~??
사랑할수밖에 없는 미친 삼천포님의 여행기
헐 ~~~이제는 경이로운 수준이네요
울면서(눈물이 왜 났는지는 잘 모르겠어요)봤어요
녹차팩 사랑얘기 슬퍼요 ㅠㅠ
감사합니다
삼천포 2015.10.15 00:04  
투자자님 울면서 보는거 있긔~? 없긔~? ㅎㅎ
저만큼이나 눈물이 많으시군요.
아마도 감성이 풍부한 분이라 감정이입이 돼서
그러신 듯.
저는 감성보다는 스트레스 해소 차원에서 취미삼아
종종 운답니다. 그러고나면 속이 시원해지더군요.
썽도 좀 가라앉고.ㅋㅋ

제가 쓴 세가지 사랑 이야기는 저의 소중한 지인들의
사연인데, 저는 개인적으로 세번째 사랑이 젤
가슴 아팠어요. 제가 오랫동안 쭈욱 지켜봤었거든요.
안타깝고 슬펐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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