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랑소녀 삼천포의 나홀로 네팔 여행ㅡ8
(식겁한 이야기4)
한가로운 오전 나는 페와 호수를 산책하다 목이 말라서 호숫가에 쭈욱 늘어서 있는
허름한 생과일 주스 가게 중 특히 나에게 적극적으로 손을 흔들며 반겨 맞아주는 한곳으로 가서
망고 주스를 골랐다.
날은 덥고 습해서 불쾌한 컨디션이었지만 주스를 만들며 싱글싱글 웃고 있는
할아버지의 인상이 너무 선량해보여서 나까지 덩달아 기분이 좋아질 정도였다.
정성껏 갈아 만든 주스를 내게 건넨 할아버지는 예의 그 사람 좋아보이는 미소를 함박 머금은채로
500루피야 하고 말했다. 너무나 당연하다는듯이. 그 모습이 어찌나 자연스럽던지
나는 하마터면 당연히 낼 돈을 내야하듯이 지갑을 열 뻔 했다.
그러다 문득 정신을 차리고 생각해보니 너무나 터무니없이 비싼 금액이다.
어제 옆가게에서 사먹었을 땐 50루피였고, 그저께 옆옆가게에서 사먹었을 땐 60루피였고,
하물며 드라마 나인의 촬영지인 포카라의 최고급 레스토랑에서 사먹었던 주스도 200루피 내외였었는데
이 할아버지는 무슨 똥배짱으로 내게 이런 어처구니없이 비싼 바가지를 상냥하게 씌우는걸까...?
주스를 사기 전에 얼마인지 먼저 물어봤어야 했는데 나는 페와 호수의 풍경과 할아버지의 미소에
눈이 멀어 주스부터 덥석 마시고 말았으니 취소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500루피를 다 주자니 약이 올라 미칠것만 같다.
왜 이렇게 비싸냐고 옆집보다 10배나 더 비싼게 말이 되냐고 따졌더니
자기네는 비싼 망고를 써서 그렇다고 ㅡ.ㅡ;;;
비싼 망고같은 소리 하고 있네...다 똑같은 망곤데ㅋㅋㅋ
금테 두른 망고를 손에 들고 자랑하며 백만년은 안닦은 것 같은 도마에,
날파리들까지 함께 갈렸을 것 같은 더러븐 믹서기를 민지작 만지작 거리며 셀셀 웃는
할아버지를 보고있자니 얄미워서 도저히 안되겠다.
발을 동동 구르며 따져봐도 씨알도 안먹히는데, 나는 약이 오를대로 올라 얼굴이 벌게져서
그럼 한국 레스토랑 사장님께 전화해서 관광 경찰한테 전화좀 해달라고 부탁한 뒤,
이 주스 가격이 맞는 건지 물어보고 정당한 가격이라고 하면 돈을 낼거라고 말했다.
그리고는 폰을 꺼내 한국 사장님한테 전화하는 척 하면서
말도 안되는 한국어로 랩을 하듯이 씨부렁 씨부렁 대고 있자니 슬슬 당황하기 시작하는 할아버지.
통화중(인 척 하는) 내게 손가락으로 슬며시 100루피라고 신호를 보낸다.ㅋㅋㅋ
나는 못이기는 척 전화를 끊고 80루피를 낸다.
할아버지는 20루피를 더 내라며 손을 내밀다가 내가 다시 폰을 드는 척 하자 슬그머니 손을 내려놓는다.
더위를 식히려 마신 주스 한 잔에 오히려 땀만 바가지로 쏟은 나는 기진맥진해
얼렁 숙소로 돌아가서 쉬려고 지름길인 골목길로 접어들었는데,
좁고 지저분한 골목길 한가운데서 딱 마주친 거지 형제들.
열한두살정도 되어보이는 형제가 그 좁은 골목길에서 나를 애워싸고 손을 내민다.
평소같으면 한푼이라도 줬을텐데 주스값을 내느라 잔돈을 탈탈 털어 개털이었고,
그 할아버지 때문에 빈정이 상할대로 상한 상태라 나를 애워싸며 위협하듯이 들이대며
심지어 팔을 만지기까지 하는 애들이 짜증나고 무섭기까지 해서 대꾸도 없이 그냥 가던 길을 가려는데,
아이중의 한명이 갑자기 내 지갑을 낚아채려한다.
순간 너무 놀라서 그 아이의 팔을 세게 치며 야이, 씨양 하고 소리를 치니
아이도 놀랐는지 저만치로 달아나버린다.
으아~오늘 덩 밟은 날이다 생각하며 다시 가려는데 순간,
정말이지 순식간에 다른 아이 한 명이 내 궁뎅이를 꽈악 움켜쥐더니
너무 놀란 내가 뿌엑 하고 돼지 멱따는 소리를 지르자,
그런 내게 허공에다 대고 주먹 감자 백만개를 먹이며 달아나버린다. 허허...환상의 콤비 플레이 보소ㄷㄷㄷ
하아...하아...이 호놀룰루에서 얼어 죽을 애시키들아..
이..이..이...근본도 없는 오랑캐같은 개나리 시키들아...
니들은 나에게 모욕감을 줬어 ㅠ.ㅠ
허허...오늘 아주 빅똥을 밟았구나..
허허허.....
어찌나 어이가 없고, 황당하고, 불쾌하고, 울고 싶은 하루였던지
숙소에 돌아와서도 놀란 가슴이 진정이 되질 않아 한참을 누워서 옴마니반매홈을 중얼중얼.
어이쿠~득도할 뻔 했네.
이럴땐 우리 봉봉이 몰랑몰랑한 발바닥 꼬순내를 맡으며 힐링해야 하는데, 엉엉 ㅠ.ㅠ
봉봉아~내 멍이야, 내 똥강아지야~
결국은 차선책으로 숙소 강아지 럭키의 꼬리꼬리한 발냄새를 맡으며 많이 진정되고 안정을 찾았음.ㅋ
발을 안주려는 도도한 럭키를 꼬시느라 저녁반찬으로 시킨 계란말이 다 갖다 바쳤음, 개시키ㅡㅡㅋㅋ
아잉~ 나는 왜 이리 멍이 발냄새가 좋을까?
실은, 부끄럽지만 내 발냄새도 좋음ㅋㅋㅋㅋㅋ
양말 벗어 킁킁대며 냄새 맡다가 맘이한테 들켜 파리채로 등짝 맞은 적도 있음ㅋㅋㅋ
나만 그래?나만 쓰레기야?ㅋㅋㅋ나는 변태찡♡
이로써, 식겁 시리즈로 시작했던 이야기는 나는 변태라는 수줍은 고백으로 마무리ㅋㅋㅋ
기승전변태ㅋㅋㅋㅋㅋ
(난 누군가? 또 여긴 어딘가?)
사원 구경을 갔다가 피곤해서 사원 안의 벤치에 앉아 쉬고 있는데
네팔리 할머니가 내 옆에 다가와 앉는다.
그러려니 하면서 딴짓을 하는데 잠시 후 찰칵. 하는 소리가 들려서 보니
우리 앞에 서서 사진을 찍고 있는 한 남자. ㅡ.ㅡ;;
그리고는, 잠시후 그 남자가 내 옆에 와서 앉는다.
내 의사는 물어보지도 않고, 그냥 자연스럽게...ㅋㅋㅋ
그리고는 또 찰칵.
그리고, 이번에는 그남자의 아내가 와서 앉고 찰칵.
그의 아들,딸, 사돈의 팔촌까지 와서 앉고 찰칵 찰칵.
난 마치 사진 찍어주는 입간판이 된 듯한 기분이었다.ㅋㅋㅋㅋㅋㅋㅋ
근데, 나는 또 귀찮아서 일어나진 않아...ㅋㅋㅋ
그리고, 나와 함께 사진을 찍는 사람중에 그 누구도 내게 양해를 구하지도 않고...ㅋㅋ
우리는 그냥 그렇게 자연스럽게 함께 사진을 찍었다.
대가족이라 무려 20여명의 사람들과 함께 찍어주느라 급똥까지 참아가며...ㅋㅋ
그러다가 갑자기 할머니가 내게 뭐라 뭐라 궁시렁 댄다.
그러자, 그의 손자가 다가와 급공손한 태도로 말한다.
포즈 좀 바꿔달라고...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이번에는 나와 함께 다른 포즈로 사진을 찍고 싶으시다며.
나는 그냥 가도 될것을 굳이 또 일어나서 할머니와 함께 나란히 서서 사진을 찍는다.
그리고는 또 다시 아들에 이어 며느리에 손주에 사돈에 팔촌까지 함께 일일이 찰칵 찰칵.
그렇게 보람찬 하루일을 마친 잉여는 숙소로 돌아와서 뻗었다고 한다.
(룸비니로 가는 길)
나홀로 여행을 떠나오면서 애시당초 나는 외로움과 싸워 이기며 자아를 찾겠다는
거창한 계획 따윈 안중에도 없었다.
거의 2년동안을 들락날락 거리며 살다시피 했었던 인도 여행중에도
가장 많이 들었던 질문이 자아를 찾았냐, 깨달음을 얻었냐는 물음들.ㅡㅡ;;
보리수 나무 아래서 깨달음을 얻는 건 위대한 성인 싯다르타의 몫이고,
하찮은 인간인 나는 그저 하루하루 노느라 바빴을 뿐인데
무언가 엄청난 깨달음을 얻어서 돌아왔을거야 하며 기대에 차서 바라보는 지인들의 시선 앞에서
탄두리 치킨이 먹고 싶어서 갔다고, 킹피셔 비어가 그리워서 다시 갔다고 말할 순 없어서 아닥했음ㅋㅋㅋ
포카라에서 자주 가던 단골집 사장님이 내게 그랬다. 자기가 포카라에서 만난 여행자중
내가 제일 즐거워 보이고 행복해 보인다고, 그리고 한편으로는 제일 지루하고 따분해 보인다고도 ㅋㅋㅋ
그말을 듣고 내가 처음 이 여행을 시작했을 때 세웠던 계획대로
잘 진행되고 있는 것 같아서 몹시 뿌듯했다.ㅋㅋㅋ
애초 나의 여행의 목표는 히말라야 트래킹도, 세계문화유산 탐방도 아닌
"게으른 동네 돼지"가 되는것이었기에,
포카라에서의 생활은 더할나위 없이 만족스러웠다.
그러던 어느날 문득 이젠 떠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대로 더 머물다가는 돌아가는 항공권을 찢어버리고 눌러 앉을것만 같은 예감에,
결심한 지 5분만에 급히 숙소로 돌아가 룸비니행 버스표를 사버렸다.
이미 한차례 연장을 했었고 그 연장 덕분에 나는 맘이의 칠순도 챙겨드리지 못한 불효녀가 되어있었다.
뭐 그전에도 이미 불효녀였지만, 더 격렬하게 불효녀가 되어 가고 있었다.ㅋㅋㅋ
버스표를 사고 아지트처럼 하루에도 몇번 씩 들락거리던 한국 식당에 가서
그날도 역시나 모여서 노닥거리고 있는 나의 일당들에게 나 내일 룸비니 가 라고 하니
다들 뻥치지 말라고 비웃는다.ㅋㅋㅋ진짠데 ㅋㅋ
내일은 다함께 삼굡 파티나 할까 하며 계획을 세우던 사람이 갑자기 떠난다고 하니 모두들 멘붕!!!
다들 울며불며(??? 과장 쩐다 ㅋㅋㅋ)나를 뜯어말렸지만 이미 결심이 선 나는 마이웨이~~
특히 나를 잘 따르고 좋아했던 G군은 어미새를 떠나보내는 아기새처럼 칭얼칭얼대며
누나누나 하고 매달린다.
G군을 처음 만났을 때 G군과 나는 속으로 서로 저 또라이는 뭐지? 라며 경계했었는데ㅋㅋ
금세 친해져서 늘 함께 붙어다녔다.
G군은 여성스럽고 상냥한 말투의 나를 보고 경계를 풀었다가,
친해지고 보니 완전 이상한 상또라이라고ㅋㅋㅋ내 말투에 깜빡 속았다고ㅋㅋㅋ헤헤^^;;
내속엔 내가 너무도 많아서 그래여...후훗^^;;
그날밤은 다함께 모여 나의 송별 파티를 했다.
일병에 만원도 넘으니 평소엔 감히 마셔볼 엄두도 내지 못했던
소주도 막 시키고 보드카도 시키고 각종 안주에 맥주까지.
나는 다가올 이별의 울적함에 나의 사랑스럽고 친근한 일당들이 막 건네주는 술을
사양 않고 다 받아마시다 파티를 시작한지 한시간도 채 안되어 필름이 끊겨버렸다.ㅋㅋㅋ
눈을 떠보니 내방안이고, 시계를 보니 아침 6시.
7시까지 버스 정류장으로 가야해서 간신히 일어나 숙취에 시달리며 배낭을 싸다
썽이 나서 옷 다 찢어버릴 뻔ㅋㅋㅋㅋ뭔놈의 옷이 싸도싸도 끝이 없어, 씨양.ㅡ,.ㅡ
아니 무슨 패셔니스타라고 꼴에 입지도 않을 옷들을 그리도 바리바리 챙겨왔는지ㅋㅋㅋ
그렇게 간신히 짐을 꾸려 숙소를 나오는데 숙소 주인 부부와 애들까지 나와서 배웅을 해준다.
룸비니에 갔다가 다시 돌아오고 싶으면 돌아오라고, 302호는 너를 위해 비워두고 있겠다고.ㅠ.ㅠ
고마워유~
룸비니로 가는 버스를 기다리며 나의 일당들에게 카톡을 보냈다. 그동안 즐거웠고 고마웠다고.
한참후 답장이 왔는데 다들 내용이
"독한년, 징한년, 숭악한년, 지독스런년...."등등이다.ㅋㅋㅋㅋㅋ
지난밤에 나는 필름이 끊겨 몰랐었는데 다들 나 룸비니로 못떠나게 하려고
일부러 독한 술을 진탕 먹였다고 한다.
그 비싼 소주랑 보드카를 막 사느라 술값이 이십만원 가까이 나왔다고ㅋㅋㅋ네팔에서 이십만원 ㅋㅋㅋ
다들 돈지랄ㅋㅋ졸부들 났네ㅋㅋㅋ 그래서 다들 내가 뻗어서 못일어나 룸비니에 못갔을거라고,
작전 성공이라고 안심하고 있었는데 내가 떠난다는 문자를 보냈으니
징한년이라는 욕이 나올 수 밖에 ㅋㅋㅋㅋㅋ
그렇게 나는 우여곡절 끝에 싯다르타의 고향인 룸비니로 간다.
룸비니로 가는 길도 낭떠러지길에 꼬불꼬불한 급경사가 이어지고,
버스가 위태롭게 흔들릴때마다 내 뱃속의 보드카와 소주도 찰랑찰랑 물결이 일어
자꾸만 입밖으로 튀어나오려 하는걸 간신히 참아가며 고행의 10시간을 보낸 덕분에
룸비니 도착도 전에 득도했음ㅋㅋㅋ
룸비니에 도착해 한국절인 대성석가사에 가려고 릭샤를 타고 갔다.
대성석가사는 사진으로 보고 상상했던 웅장하고 멋진 이미지와는 달리
너무나 크고 황량하고 차가워 보였다.
여행자들이 묵는 숙소 건물도 크기만 하고 썰렁하고 휑해보인다.
관리인의 안내를 받아 들어간 도미토리룸은 먼저 온 한국 여자분들이 짐을 정리하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하고 인사를 하고 들어가니 여자들의 표정이 쎄하다. 나를 보더니
다들 인상을 찌푸리며 고개를 갸우뚱한다.
다정스런 환대에 당황한 나는 왜 그러세요? 하고 물어본다. 우리가 이 방 단독으로 예약했어요! 라며
쌀쌀맞게 말하는 그녀들에게 관리인이 이 방으로 가라고 해서...라며 우물쭈물 하는 내 모습이 처량하다.ㅋㅋ
그녀들은 관리인을 불러 막 설명을 하고 나는 다시 다른 방으로 옮겨진다.
넓디 넓은 도미토리 룸에 나 혼자다.
시멘트 벽과 바닥이 차가워 온몸에 냉기가 돈다.
너무 차갑고, 너무 크고, 어둡고, 칙칙하다.
방을 나와 마당으로 나가 보니 한창 공사중인 절이 보인다.
룸비니에 가면 누구나 다 이곳에서 묵는다는데, 나는 이곳이 너무나 마음에 들지 않는다.
이곳의 날씨는 포카라보다 더 더운데 나의 체감 날씨는 한겨울이다.
여긴 아니다. 내가 있을 곳이 아니다 라는 생각이 든다. 나는 다시 배낭을 매고 대성석가사를 빠져나온다.
릭샤를 타고 다시 버스정류장이 있는 중심가(?)로.찢어진 셔츠 사이로 보이는
등뼈가 안쓰러울 정도로 깡마른 소년이 운전하는 릭샤에 앉아 시원한 바람을 맞고 있자니
웬지 모르게 소년에게 미안해지는 마음이다.
내가 방을 알아보려고 돌아다니는 사이 소년은 얌전하게 기다리고 서서 내 배낭을 지켜준다.
혹시나 내 배낭을 싣고 튀어버리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 들기도 했지만
그런 내 마음을 배려라도 하듯 소년은 내가 이동하는 곳마다 조금씩 움직이며
릭샤를 대령하고 기다리고 있다.
그런 소년의 배려 덕분에 나는 가벼운 몸으로 금방 숙소를 구했다.
그리고 소년과 나는 전속 계약(?)을 맺고 내일 다시 만나기로 하고 함께 콜라를 마시고 헤어졌다.
내가 구한 숙소는 모기가 너무 많아, 짐 정리하는 잠깐 사이에 몇십군데나 뜯겼다.
그래, 다 빨아먹어라~ 나는 보시하는 셈 치기로 한다. 이곳은 부처님의 탄생지니까
나도 조금은 너그러워져야 한다.
내방은 잠금 장치가 허술해 문이 잘 잠기지가 않는다.
포카라에서 한 번 식겁했던 경험 이후로 나는 자물쇠 강박증이 더 심해졌다.
종업원을 불러 고쳐달라고 했더니 그걸 붙잡고 몇시간 째 씨름중이다.
그 모습을 초조하게 지켜보며 나는 벌써부터 포카라가 그리워진다.
밤늦은 시간이면 내가 오나 목을 빼고 기다리고 있던 숙소의 주인 아저씨도 보고싶고,
매일매일 가던 카페도 그립고, 페와 호수길도 걷고 싶고, 무엇보다도 나의 일당들이 벌써부터 그리워진다.
우리들은 전부 그랬다.
이런 여행 처음이라고, 이렇게 즐겁고, 많이 웃고, 함께 어울리고, 서로를 그리워하며 찾게 될줄은 몰랐다고...
그 모든것이 우리 모두가 처음 경험해보는 낯선 감정들이었다.
룸비니에는 호랑이가 산다고, 늦은밤이 되면 호랑이 울음 소리가 들린다고 했는데
나는 그게 나를 겁주려고 하는 소리인줄로만 알았다.
그런데, 모기에 뜯기면서 자다가 잠결에 얼핏 산짐승이 울부짖는 무시무시한 소리를 들었다.
소름끼치게 무서운 소리였지만 밀려오는 잠의 무게가 더 무섭게 나를 덮쳤다.
나는 으으으~하고 작게 비명 소리를 내다 다시 잠이 들어버렸다.
소년과 나는 하루종일 함께 움직였다.
대성석가사도 다시 가보고 주변의 중국절과 일본절에도 가봤다.
대성석가사의 숙소비는 300루피에 삼시세끼 모두 제공이라
한국 여행자들이 거의 대부분 묵는 곳으로 유명했는데,
입소문을 타서 그런지 내가 갔을 땐 서양 여행자들이 더 많았다.
그러고보면 나는 삼시네끼, 다섯끼를 먹는 돼지라서 대성석가사가 그렇게 마음에 안들었었나보다.ㅋㅋㅋ
소년과 나는 이동 시간보다 쉬는 시간이 더 많았다.
소년은 나를 위해 힘차게 페달을 밟았고 한곳이라도 더 보여주려 안달했지만
나는 틈이 날때마다 쉬어 가자고 했다.
나는 불교 유적지를 보는 것도 좋았지만 유적지를 가는 사이사이에
스쳐지나가는 룸비니의 목가적인 풍경을 보는게 더 좋았다.
우리는 함께 짜이를 마셨고, 콜라를 마셨고, 볶음밥을 먹었다.
괜찮다고 몇 번이나 사양하는 걸 억지로 함께 먹자고 졸랐다.
소년은 나이가 어린데도 불구하고 예의 바르고 공손했다.
할머니를 모시고 살고 형제들도 많은데 전부 다 공부를 잘한다며 자랑스러워했다.
그 얘기를 듣고 보니 소년의 깡마른 팔에 얹혀 있는 삶의 무게가 안쓰럽다기보다는
오히려 더 건강하게 느껴졌다.
그리고 소년은 룸비니에 온걸 환영한다며 들판에 핀 꽃을 꺾어 내게 건네주었다.
나는 활짝 웃으며 기쁜 마음으로 그 꽃을 받았다.
꽃도 예뻤고 소년도 예뻤다.
부처님이 태어난 곳에서 나고 자란 소년의 마음씨도 부처님을 닮아서 소박하고 꽃처럼 어여뻤다.
나는 그제서야 조금씩 룸비니가 좋아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