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마간산 인도 여행기(1)
주마간산(走馬看山) 인도 여행기<?xml:namespace prefix = o ns = "urn:schemas-microsoft-com:office:office" />
(<?xml:namespace prefix = st1 ns = "urn:schemas-microsoft-com:office:smarttags" />2009.1.28~2.18)
PROLOGUE(序)
여행은 꼭 무얼 보기 위해서 떠나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낯선 세계로의 떠남을 동경하는 것은
외부에 있는 어떤 것이 아닌, 바로 자기 자신에게
더 가까이 다가가기 위함이다.
류시화 시인이 쓴 책 ‘하늘 호수로 떠난 여행’을 읽으면서
과연 나에게 인도는 어떠한 모습으로 다가올까 궁금해하며
인도여행의 출발 날짜를 손꼽아 기다렸다.
그의 ‘노 프라블럼(NO PROBLEM) 명상법’에 따르면
외부에서 일어나는 일로 결코 자기 자신을 괴롭히지 말라는 것이다. 하지만 많은 배낭여행자들은 “인도는 정말로 문제가 너무 많은, ‘노우(9) 프라블럼 [9개의 문제]’ 국가”라고 이구동성으로 얘기한다. 그게 정말일까?
나에게 있어 인도(INDIA)는? 이제 그 첫 단추를 꿰어본다.
2009.1.28 (수) [제1일]
미술대학 서양화를 전공하는 내 딸 아란이 특별히 특정 향수를 사달라고 부탁하기에 인천국제공항 면세점에서 그 향수 하나를 사고는 이리저리 어슬렁거리며 대한항공 KE 655편(뭄바이행) 20:40출발시간을 기다렸다. [이 향수는 1달동안 불편한 내 배낭 깊숙이 있으면서 주인을 기다리고 있었다]
2009.1.29 (목) [제2일]
한밤중인 02:40인도 뭄바이(MUMBAI) 공항에 도착했다.
[한국에서 9시간 소요, 시차는 3시간30분, 기온 25도]
여행사 ‘인도소풍’ 에서 마중 나온 길벗 <?xml:namespace prefix = st2 ns = "urn:schemas:contacts" />이보연(인도경력 6년)씨의 안내로 PREPAID TAXI를 이용하여 뭄바이 외곽 위성도시인 NAVI MUMBAI 에 있는 HOTEL에 여장을 푸니 새벽 4시30분. 잠깐 눈을 붙인 다음 아침 9시 뭄바이 투어를 시작했다. 이번 인도 배낭여행에서 나와 3주간 여정을 함께 할 여장부들은 강민경(고 2), 강한얼(중 3) 이 두 당찬 자매와 이정희(미국 뉴욕유학생)이다. 우리 일행은 길벗 포함 5명이어서 왠만하면 택시나 오토릭샤 1대로 이동이 가능하여 시간과 경비 절감에 상당히 도움이 되었다. 오토릭샤를 이용(20루피), 나비 역(NAVI STATION)으로 이동한 다음 교외전철(SUBURBAN) 편으로(1인당 10루피) 뭄바이 C.S.T 역까지 가기로 했다.
몇 대의 복잡한 열차를 보내고, 다소 한가한 열차에 올라 처음 여성 전용칸에 들어갔으나 내가 남자라는 이유로 쫓겨나와 옆 칸의 화물칸(사람과 짐이 함께 뒤엉키는 칸) 통로에 우리 일행이 자리를 잡았다. 여유있는 시간은 잠깐이고 몇 정거장 가지도 못하고 화물칸은 터져나갈 지경이다. 한국의 지옥철은 저리가라할 정도고, 그야말로 혼잡의 극치인 열차 내.외부에 사람이 매달려 간다. 50여분 현지인들로부터 우리 일행을 보호하느라 진을 다빼고 나니 뭄바이 C.S.T 역이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이 역은 영국 식민지 시절 건축물중 가장 우아한 것으로 손꼽힌다고…. 걸어서 여행자 거리인 꼴라바(COLABA)를 지나니 인도문(GATEWAY OF INDIA)[1924년 완공된 뭄바이의 상징물], 타즈마할(TAJ MAHAL) 호텔[1903년 완공, 인도에서 가장 유명한 호텔]이 나온다. 작년 타즈마할 호텔 테러이후 뭄바이 시내 경비는 상당히 삼엄한 편이다. 이 테러 이후 인도 여행객 수가 급감한 것도 사실인데, 실제로 인도 여행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안전 문제에 대해 걱정을 했었다.
인도 최고의 상업도시이자 최대의 도시인 뭄바이. 시가지를 뒤덮고 있는 높은 빌딩과 세련된 거리의 뒷골목에는 최대규모의 빈민굴과 홍등가도 그늘처럼 자리잡고 있다고 한다. 타즈마할 호텔에서 멀지 않은 곳의 한 빈민굴을 찾아 들어가 보니 여긴 사람과 소, 개, 돼지, 염소가 같이 먹고, 자고, 싸고 한다. 바로 맞은 편에는 현대식 고층빌딩과 호화스런 저택이 존재하는 곳. 빈부격차가 하늘과 땅 만큼이나 있고, 카스트(CASTE) 제도로 인해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이 말살되고, 불가촉(UNTOUCHABLE) 천민 (달릿 ; DALIT)이 전체인구의 25% 이상이나 되는 인도(INDIA). 재정중심지이자 경제발전소인 뭄바이 중심에 지금 내가 있는 것이다. 마린 드라이브(MARINE DRIVE)[서쪽 해변도로]까지 시내버스로 이동한 후 해변에서 아라비아해를 바라보며 한동안 휴식을 취하며, 여행 첫 날 인도에 대한 적응을 서서히 하고 있었다.
오토릭샤(AUTO RICKSHAW) 편으로 도비 가트(DHOBI GHAT)[세계 최대 규모의 빨래터]로 이동, 철교 위에서 빨래하는 풍경을 카메라에 담으며 척박한 천민의 삶을 먼발치에서 지켜 보았다. [도비왈라(DHOBI WALLAH)는 상당히 거칠어 눈에 띄게 사진을 찍었다가는 봉변을 당할 수도 있다고….]
낮에 꼴라바 거리에서 환전을 하였는데 (100$=4,750루피) [바라나시에서는 100$=4,800루피, 자이뿌르에서는 100$=4,700루피], 1$=1400원, 앞으로 1루피(Rs)=34원 정도로 셈하면 된다. [얼마전 까지만 해도 1루피=30원 으로 셈했었는데, 참으로 우리 돈 가치가 많이도 떨어졌다]
2009.1.30 (금) [제3일]
전날 밤 9시5분 뭄바이발 야간열차(7057)[S9 COACH; BERTH 1]는 새벽 4시20분 아우랑가바드 역에 나를 내려 주었다. [7시간15분 소요]
내가 이용한 인도 야간열차는 SL(SLEEPER) 3회, 3AC(3 TIER A/C) 3회 이었는데 이 SL 이라는 것은 좁은 통로와 좌.우에 BERTH 9칸의 간이침대로 이루어져있는 완전히 닭장 열차이다. 물론 에어컨도 없다. 하지만 배낭여행자가 야간에 이동하는데 이 정도면 인도에서는 괜찮다고 해도 될 것이다.
침낭을 준비하였음에도 ‘밤에 그렇게 춥기야 하겠어’ 하고 얇은 모포 하나로 밤을 지새웠으나 추위에 역부족. 앞으로 남은 5회의 야간열차에서는 반드시 침낭을 써야겠다고 다짐해 본다. 덕분에 감기를 계속 달고 다니는 중….
아침 9시. 오토릭샤 편으로 아우랑가바드(AURANGABAD) 로컬버스터미널로 이동, 엘로라행 버스(17Rs)를 바로 타고는 50여분 황량한 데칸고원을 달려가니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이자 위대한 신앙의 창조물인 엘로라(ELLORA) 석굴 사원군이 나온다. 입장료 250Rs를 지불하고, 카일라쉬(KAILASH) 사원을 시작으로 1~12번 불교 사원군, 13~29번 힌두교 사원군, 30~34번 자인교 사원군을 차례로 둘러보았다.
일명 ‘석굴 사원의 어머니’라 불리는 카일라쉬 사원은 웅장한 조형미와 화려한 장식이 특히 눈길을 끌었고, 거대한 바위를 깍아 내려가며 조각했다는 것이 무엇보다 인상적이었다. 또한 불교 사원군에서 부처님의 모습이 처음에는 다리를 벌리고 서 있는 형상에서 뒤로 갈수록 가부좌를 한, 앉아 있는 모습으로 바뀐 것이 이채로웠다. 승합 지프편(1인당 25Rs)으로 아우랑가바드로 되돌아와서 GRAND BAZAAR 에서 내일 아잔타에서 먹을 음식거리를 알뜰하게 장만하였다.
2009.1.31 (토) [제4일]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아잔타(AJANTA) 석굴 사원군은 불교 미술의 보고이자 인도 회화의 금자탑으로 평가 받는 곳이다. [BC 2~1세기에 걸쳐 조성된 전기 석굴군과, 5~7세기까지의 후기 석굴군이 혼재]
아잔타 T-JUNCTION 에서 유적지까지는 약 4KM 떨어져 있기에 셔틀버스를 이용했고 [12:30출발, 10분소요, A/C버스 12Rs (*NON A/C 7Rs)], 입장료는 250Rs(현지인은 10Rs). 아잔타에는 모두 28개의 석굴에 최고 수준의 불교 벽화와 조각품 등이 가득하다. 아잔타 석굴 내부에는 안내를 자청하는 현지인들이 있는데 이들은 한국돈 1천원권 여러 장을 인도 루피와 바꾸기를 원했다. ‘왜 이들이 한국돈을 많이 가지고 있을까?’ 생각해 보니 한국에서 온 보살들이 부처님전에 불전으로 놓은 것을 이들이 챙긴 것이 아닐까 한다.
한국 부처님 상은 가부좌를 튼 좌상이 전부 이었던 것 같은데, 이곳 부처님 상당수가 보대에 앉아 다리를 벌리고 있는 모습이다. 아마 시기적으로 부처님 모습이 ‘다리벌림에서 가부좌’로 점차 변해간 것으로 추정되었다.
벽화 상태가 다소 좋게 보존된 것은 복원작업을 통해서였고, 인도에서 가장 큰 열반상이 있다는 석굴의 와불은 상당히 인상적이었다. 오후 4시 아잔타를 출발하여, 5시30분 부사발(BHUSAWAL)에 도착했다.
역 앞 시장을 둘러보며 현지인의 생활상을 카메라에 담았는데 개, 염소, 소,코끼리 등이 상인과 어울려 좁고 더러운 시장통을 구성하고 있었다. 외국인이 거의 들리지 않는 이 곳 부사발 시장에 우리가 나타나자 온갖 사람들이 우릴 구경하느라 난리법석이고, 어린아이들은 줄지어 따라오며 마냥 신기해한다. 인도 기차역에는 1급/2급/SLEEPER 승객을 위한 WAITING ROOM이 따로 마련되어 있는데, 시장통 또는 시체안치소(?) 같은 현지인 대합실을 피할 수 있어 좋았다. 밤 11시15분 야간열차(SL) 편으로 잔시로 이동하였다.
2009.2.1 (일) [제5일]
아침 9시15분 잔시(JHANSI)역에 도착. [10시간 소요, 인도에서 예정시간보다 45분 연착은 아주 양호한 편이다]
대기중인 전용차량편으로 다시 오르차(ORCHHA)로 이동하여 먼저 제항기르마할(JEHANGIR MAHAL)을 둘러 보았는데, [MAHAL=궁전, PALACE] 이곳은 5층, 132개의 방으로 이루어져 있는 거대하고 장엄한 궁전이다.
[입장료 250Rs, 카메라FEE 25Rs] 이 궁전은 2002년7월 내가 여행했었던 덴마크 헬싱괴르에 있는 ‘크론보그 성(CASTLE)’[세익스피어 ‘햄릿’의 무대] 과 흡사하다. 궁전 여기저기를 둘러보고는, 옥상에서 내려다보는 오르차는 한적하고 정감있는 평화로운 작은 마을이다.
라즈마할(RAJ MAHAL)과 쉬시마할(SHEESH MAHAL)을 둘러보고 마치 유럽의 고딕 건축물과 같은 느낌을 주는 차투르부즈(CHATURBHUJ) 만디르(MANDIR)[=사원,TEMPLE]로 향했다. 그런데 외관은 매우 훌륭한데 내부는 볼 것이 아무것도 없다. 눈치 빠른 관리인이 첨탑으로 가는 자물쇠가 잠긴 통로 문을 열어주며 박시시(BAKSHEESH =팁,TIP)를 요구한다. 좁은 4층 통로를 나선형으로 지나 옥상에 올라서니 바람이 시원하여 속이 확 트이는 느낌이다. 여기서 바라보는 제항기르 마할의 풍광은 역시 매우 훌륭하였고, 주변의 전망을 감상하며 잠깐의 망중한을 즐겼다.
오후 2시30분. 약 200KM 떨어져 있는 카주라호(KHAJURAHO)로 이동을 시작하여[3시간30분 소요] 태양의 긴 그림자가 꼬리를 감출 무렵 카주라호에 도착했다. 이곳은 인도를 대표하는 유적지중 한 곳으로 한국인이 많이 찾는 곳이라서 한국음식을 모방한 한국형 식당들이 성업중이다. [아씨, 총각, 전라도, 고향식당 등] 일행과 전라도 식당에서 저녁을 함께 하는데, 로컬여행사 사장인 자이 싱(JAI SINGH)이 합석하게 되어 우연치 않게 많은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그는 현재 열애중인데, 카스트(CASTE) 제도로 인한 여자 집안의 반대로 인해 심각하게 고민중이었다. 애인은 브라만(BRAHMAN; 성직자계급; 신과 인간의 중계자 노릇을 하며 선택된 사람들), 본인은 무사/귀족계급인 크샤트리야(KSHATRIYA ; 대중을 이끌어가는 사람들)라서 서로 사랑하고 있음에도 결혼할 수가 없다는 것. 만약 결혼하게 되면 그 어느 계급에도 속하지 못하는 카스트 제도의 희생양, 미아가 되고 마는 것이다.
인도에 있어 순수한 인간의 사랑에 족쇄를 채우는 이 카스트 제도야 말로 정말 가장 큰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정말 ‘NO PROBLEM’ 이 아닌, 노우(9)가지 문제중 첫째가는 문제점이 아닐까 한다.
[* 카스트에는 브라만, 크샤트리야, 바이샤(VAISHYA :상인/서민), 수드라(SUDRA:천민/노예계급)의 4가지 바르나(VARNA)와 약 3천개의 자띠(JATI)가 있다. 힌두사회의 주장에 따르면 불가촉 (UNTOUCHABLE) 천민 (=달릿, DALIT) <인도인구(11억명)의 25%>은 인간이 아니라, 그저 힌두교의 성스러운 동물인 소나 원숭이 보다는 못하고, 개나 돼지와는 비등하거나 약간 나은 존재가 불가촉 천민 이라 한다]
2009.2.2 (월) [제6일]
카주라호 동/서/남 으로 나누어진 사원군의 외벽에는 수많은 에로(=EROTIC) 조각 미투나(MITHUNA : 남녀교합상)가 여행객의 눈을 자극하는데 전성기에는 85개나 되는 사원이 있었으나 이슬람 세력에 의해 거의 파괴되고 지금은 22개 사원만이 남아 있다고….
아침 10시. 볼거리가 많은 서부사원군(입장료 250Rs; 힌두교사원)은 미투나 상이 몰려 있고, 규모도 가장 크고 보존 상태도 좋은 곳이다. 락쉬마나 사원(MANDIR), 칸다리야 마하데브 사원, 바라하 사원 등을 돌아보며 마치 숨은 그림찾기 하듯 여러 종류의 미투나 상들을 카메라에 담느라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오후에는 사이클릭샤(왕복 50Rs)를 타고 동부사원군(힌두/자인교 사원)을 찾았는데 보존상태가 가장 좋은 바마나 사원과 빠르스바나뜨 사원, 자인(JAIN) ART MUSEUM 등이 특히 눈에 띄였다. 저녁에는 전라도식당에서 모처럼 포식[닭도리탕 200Rs, 맥주 120Rs]하며, 여행 1주차를 잘 넘기고 있음을 자축하였다.
2009.2.3 (화) [제7일]
자전거를 렌트(1/2 DAY ; 30Rs)하여 카주라호 외곽(16KM거리)에 있는 라네 폭포까지 가기로 작정하고 길을 나섰는데 가도가도 안내표시판도 안보이고 띠엄띠엄 농가만 보인다. 중간에 초등학교도 지나고 한적한 도로를 끝없이 달려나가며 수시로 ‘폭포(WATERFALL)’를 물어도 영어가 안통한다. 마침 한 사람과 대화가 되었는데 내가 다른 방향으로 너무 많이 지나쳐왔다는 것이다. 굳이 폭포를 갈 이유도 없었고, 지금까지 지나온 시골 풍경이 너무 좋았기에 이번 자전거 하이킹은 진짜 ‘NO PROBLEM’ 이었다.
다시 카주라호로 되돌아와 전망좋은 길가 카페에서 시원하고 맛있는 킹피셔(KINGFISHER) 맥주(650ML, 120Rs)로 목을 축였다. 인도에서는 주류판매 허가증이 있는 한정된 와인샵(WINE SHOP)에서만 술을 팔기에 태국에서 처럼 쉽게 술을 마시기는 곤란하다. 하지만 왠만한 식당,카페에서는 암암리에 술을 판다. 단, 그러기에 술값이 다소 비싸다는 것이 부담되지만….
오후 3시20분 전용차량 편으로 사트나(SATNA)로 출발했다. [105KM 거리, 2시간 소요] 사트나 역에서 7시30분 바라나시행 야간열차를 기다렸으나 역시 인도 기차는 정시에 오지 않는다. 2시간을 연착하여 기차가 꾸물꾸물 나타났다. 이번에는 에어컨이 들어오는, SL 보다 한 등급 높은 3AC(3 TIER 간이침대)를 이용하게 되어 야간 이동에 따른 불편함이 다소 감소될 것 같다.
[자세한 여행사진은 http://blog.naver.com/ldg5873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