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ucky의 인도로 가는 길-35 델리 후마윤 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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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ucky의 인도로 가는 길-35 델리 후마윤 묘

Lucky 0 3875



이번 여름 인도를 다녀왔습니다. 이제는 막내도 중 2가 되었습니다. 기행문을 올립니다. 그러나 여행정보보다 관심사와 감상을 많이 적은 개인적인 기행문입니다. 여행의 목적과 관심사가 나와 다른 분들은 재미가 없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여기에는 내가 직접 체험하고 확인한 것만 썼습니다. 일정은 3주간 뭄바이 - 아우랑가바드 - 카주라호 - 바라나시 - 자이푸르 - 아그라 - 푸쉬가르 - 델리입니다.



2005년 8월 6일(토요일)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등록된 또 하나의 무덤 후마윤 묘



비가 조금 개는 것 같아 버스를 타고 후마윤 묘(Humayun's Tomb)로 가기로 했다. 물어물어 505번 버스를 탔다. 차장에게 ‘후마윤 묘(Humayun's Tomb)’에서 내려 달라고 몇 번 부탁을 했다. 그러나 문제없다고 한 인도인을 믿은 것이 잘못인 듯, 차장은 엉뚱한 곳에서 내려주었다. 할 수 없이 릭샤를 타고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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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고 웅장하여 안정감을 주고있으며 그 정원은 사각형의 수로로 나뉘어져 있는 후마윤 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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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마윤 묘의 정문인 ‘부 할리마의 문’도 훌륭한 건축물이다.





후마윤 묘(Humayun's Tomb)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된 유적이다. 인도의 유적 중에 묘(墓)가 세계문화 유산으로 등록된 것이 2가지 있는데, 타지 마할(Tai Mahal)과 후마윤 묘(Humayun's Tomb)다. 타지마할이 사랑하는 아내의 죽음을 슬퍼하는 남편에 의해 만들어진 아름다운 건축물이라면, 후마윤 묘(Humayun's Tomb)는 남편의 죽음을 슬퍼하는 아내 ‘허지 베검(Haji Begum)’에 의해 지어진 건축물이다. 비록 호화스러운 재료는 사용하지 않았지만 건축학상으로 안정된 구조에, 무덤을 아름답게 꾸미고 있는 정원의 설계등은 무굴시대의 건축물중 가장 아름다운 것 중의 하나로 손꼽힌다. 이것은 또 그대로 타지마할의 건축에 적용되었다고 한다.


후마윤 묘(Humayun's Tomb)는 아름다운 공원으로 꾸며져 있다. 깨끗하게 가꾸어진 잔디와 정원수들은 ‘여기가 진정 인도란 말인가?’하는 의문을 가질 정도였다. 묘역(墓域)으로 들어가는 문은 붉은 색의 사암과 흰색 대리석을 섞어 지었는데, 단정하면서도 단아한 모습이 그 크기를 짐작할 수 없게 만든다. 이 문은 ‘부 할리마의 문(Bu halima Gateway)’이란 것으로 16세기에 지어진 아름다운 건축물이다. 문(門)을 들어서면 정면의 묘당(墓堂)까지 넓고 곧은 붉은 색의 길이 나타난다. 길의 중앙에는 넓지 않은 수로(水路)가 있어 맑은 물을 흘려보내고 있는데, 이 수로는 정원을 가로 세로로 흐르고 있다. 넓은 정원을 정방형으로 나누며 흐르는 물은 중간 중간에 작은 연못을 만들며 방향을 바꾼다. 물 구배(句配)를 조절하여 빠르지도 멈추지도 않게 하였는데, 수로학(水路學)의 극치(極値)라고 할 만 했다.


묘당(墓堂)은 역시 붉은색 사암에 흰색 대리석으로 멋을 냈는데, 화려하지 않으면서도 기품이 있어 보인다. 특히 타지마할에 비하여 좌우의 폭이 넓어 안정감이 있으며, 묘당의 기단(基壇)이 되는 아래층이 높으면서도 좌우로 벌려있어, 묘당(墓堂)의 큰 돔을 크지 않게 보이게 하는 착시(錯視)현상을 가져오게 한다.


묘당에 오르면 멀리 ‘쟈므나 강’이 보인다고 했으나 시야(視野)가 가려서 그런지 강은 보이지 않고 키 큰 야자나무 사이로 아름다운 돔이 얹혀진 흰색 건물이 보인다. 델리에 있는 ‘시크교 사원(寺院)’이라고 한다.


무굴제국의 2대 황제인 후마윤(Humayun 재위 1530 - 1556))은 행운아(幸運兒)는 아니었던 것 같다. 아버지 바부르 (Babur, 1526 -1530)에 의해 왕위에 오르기는 했지만, 아프칸 세력의 공격에 의해 인도를 떠나 아프카니스탄으로 망명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15년간의 망명 끝에 아프카니스탄의 도움을 받아 자신의 제국을 찾기 위해 오랜 전투를 했고, 드디어 승리의 기쁨을 만끽하기에는 너무 짧은 기간, 다시 왕위에 오른지 6개월 만에 델리에 있는 자신의 도서관 계단에서 굴러 죽고 말았다. 철학자 왕의 죽음으로는 행복할지 몰라도, 남은 가족에게는 뜻하지 않은 슬픔이었을 것이다. 아내와 아들들에 의해 묘(墓)가 완성되었으며 그는 화려한 장례를 치렀다고 한다.


묘당(墓堂)은 중앙에 크고 화려한 묘실(墓室)이 있고, 돔의 천정은 아름답게 치장되어 있으며, 그 중앙에는 보석을 박아 만든 파란색 꽃이 활짝 피어 있다. 아름다운 그 꽃 아래에 흰 대리석의 후마윤(Humayun)의 관(棺)이 안치되어 있다. 주실(主室)의 주변을 돌아가며 다시 작은 묘실(墓室)이 마련되어 있고, 이곳에도 각각 몇 개씩의 관(棺)이 안치되어 있는 구조로 되어있다. 뿐만 아니라 묘당(墓堂)의 밖에도 몇 개의 관(棺)이 안치되어 있다. 이는 마치 황제의 묘역에 황제의 시중을 들었던 충직한 신하들의 묘(墓)를 만들도록 허락한 중국의 배묘(陪墓)를 보는 듯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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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마윤(Humayun) 묘역(墓域)의 입구 오른쪽에는 별개의 작은 묘역이 조성되어있다. 야트막한 담을 둘러치고 기단(基壇)도 없이 작은 돔을 얹은 팔각형의 묘실(墓室)이 있는 조그만 묘역이다. 비록 낡고 퇴락(頹落)했지만 짜임새 있고 아담한 모습이다. 뿐만 아니라 앞에는 작은 모스크까지 동반하고 있어 예사스럽지 않았다. 안내판을 보니 ‘이사 칸의 묘(墓)(Isa Khan Tomb)’로 ‘이사 칸 니야지(Isa Khan Niyagi)’라는 귀족의 무덤이라고 되어있다. ‘후마윤 묘(Humayun's Tomb)’가 세워지기 20년 전에 만들어진 것으로, 이 부근은 모두 ‘이사 칸의 묘(墓)(Isa Khan Tomb)’의 묘역(墓域)이었다고 한다. 묘실에는 예사롭지 않은 장식과, 주인공과 그 가족인 것인 듯한 관(棺)들이 모셔져 있다. 사방이 담으로 둘러져 있고, 푸른 잔디가 있는 이곳은 매우 한적하여 한가롭게 시간을 보낼 장소로는 아주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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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마윤 묘역 한쪽에 있으나 후마윤 보다 먼저 있었다는 ‘이사 칸의 묘)’ 작지만 짜임새 있고 아담하다. 특이한 것은 관을 모신 묘당(墓堂)이 팔각형으로 되어있다.




돌아와 가이드북 등을 찾아보니 ‘이곳에 5대 사자한의 세 아들의 묘와, 6대 아우랑제브 세 아들의 묘, 이 묘를 건축했던 5명의 페르시아 건축가들의 묘도 간결하게 자리 잡고 있다.’고 안내되어 있다. 그러나 어느 무덤이 그것인지 구분할 수 없었다. 또 ‘숲속 한쪽엔 후마윤 왕의 이발사의 집이 작은 궁전처럼 육중하게 서 있다.’는 기록이 있는데, 아무리 생각해 봐도 기억에 없어 아쉬웠다. 이것이 사실(事實)인지, 혹은 착오(錯誤)인지 확인이나 정정(訂定)을 할 수 없다.





* 다음은 그냥 델리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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