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ucky의 인도로 가는 길-21 바라나시와 갠지스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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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ucky의 인도로 가는 길-21 바라나시와 갠지스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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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여름 인도를 다녀왔습니다. 이제는 막내도 중 2가 되었습니다. 기행문을 올립니다. 그러나 여행정보보다 관심사와 감상을 많이 적은 개인적인 기행문입니다. 여행의 목적과 관심사가 나와 다른 분들은 재미가 없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여기에는 내가 직접 체험하고 확인한 것만 썼습니다. 일정은 3주간 뭄바이 - 아우랑가바드 - 카주라호 - 바라나시 - 자이푸르 - 아그라 - 푸쉬가르 - 델리입니다.



2005년 7월 28일(목요일)

바라나시와 성스러운 갠지스강


처음의 계획은 오늘 바라나시를 떠나 아그라고 갈 예정이었다. 그러나 아그라의 타지마할은 금요일 날은 문을 열지 않는다고 한다. 그래서 바라나시에서 하루를 더 묵기로 했다. ‘친따라’ 팀원들 중에 같이 아그라로 가기를 권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친따라’ 가이드를 대접하는 차원에서 ‘친따라’와 헤어지는 길을 택했다. 그들은 우리와 거의 같은 코스를 가고 있지만 단지 ‘가이드가 있다’는 조건 하나만으로 두 배 가까운 여행비를 부담하고 왔다. 좀 더 같이 행동한다면 그들 사이에서 여행비의 적정성에 불만을 갖는 사람들이 생길지도 모른다는 생각에서 였다. 또한 ‘바바 게스트하우스’에서의 생활이 마음이 편했기 때문이기도 했다.


어제 피곤했던지 종민이는 늦잠을 잤다. 어제 계획에는 오늘아침 일찍 일어나 갠지스강의 배를 타고 아침 해를 보자고 했는데 깨워도 일어나지 않는다. 혼자서 옥상에 올라가보니 밤에는 별이 총총했던 하늘이 어느새 구름이 끼어 있었다. 아침 해가 그렇게 좋을 것 같지 않아 더 이상 종민이를 깨우지 않고 혼자서 가까운 가트에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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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라나시를 찾는 사람들은 모두 신성한 갠지스강에서 배를 타보기를 원한다. 도도히 흐르는 강물에 배를 맞기고 떠오르는 아침해를 맞이하거나, 또는 석양을 보는 것도 추억의 하나가 된다.



가트에는 아침 해맞이를 하는 사람들이 꽤 있었다. 동네 사람인 듯 한 젊거나 어린아이들은 아주 물속에서 수영을 즐기고, 나이가 좀 들은 사람들은 물가에서 몸을 담그는 정도를 한다. 여자들도 몇 명 조심조심 물속에 들어가 신성한 갠지스강물에 몸을 담근다. 뚱뚱한 한 인도 여성은 사리를 곱게 입고 조심스럼게 계단을 내려가 몸을 물에 담그는데 뿌연 흙탕물을 소중하게 손으로 떠서 몸을 적신다. 속살이 보일까 조심조심 옷깃을 여미며 조금씩 몸을 적셔가는 모습을 보고, 아무리 종교적으로 상관없는 이방인(異邦人)이라도 음심(淫心)을 품을 수가 없을 것 같았다.


한쪽에서는 우리나라 우유통 같은 스테인레스 통에 물을 담아가는 사람을 볼 수 있다. 몇 개의 물통을 채워서 가지고 가는 것을 보면 자기가 사용할 것 이라기보다는 어느 가정에 배달해 주는 것이 아닌가 생각이 되었다. 구경하는 것은 상관이 없으나 사진을 찍는 것은 허락되지 않는다. 아마 사진 찍는 것을 보면 카메라를 빼앗는다나 뭐그런 이야기가 떠돈다. 그러나 뱃사공의 말은 또 다르다. 여기에서는 사진을 찍을 수 없지만 배를 타서는 찍을 수 있다고 한다. 배에서 찍는 사진은 뭐 사진이 아닌가? 정말 이상한 인도인의 논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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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갠지스 강이라고 부르는 이 강을 인도인은 ‘강가’라고 부른다. 시바신이 천상의 강을 지상으로 돌려 이 강에서 목욕함으로 모든 죄를 씻을 수 있다고 한다.



바바 게스트하우스의 음식은 그런대로 맛있다고 할 수 있다. 백반도 많은 반찬에 맛있고, 비빔밥도 한국의 맛이라고 하는 고추장을 듬뿍 먹을 수 있다. 치즈를 넣은 라면도 언제든지 입맛을 돋우는 음식이었다. 그러나 ‘바바’에서 경험한 최악의 음식은 - 아마 인도에서 먹은 것 중에서도 - 수제비였다. 주방장은 친절하고 무엇이든 잘 해주려고 노력하는 사람이었다. 단지 음식을 만드는 손이 빠르지 못한지 기다리는 시간이 오래 걸리는 것이 흠이라면 흠이었다. 이 주방장이 수제비를 만들어 주겠다고 한다. 아주 맛이 있다고, 그러나 만들어 가지고 나온 수제비는 그 이름이 부끄러울 정도였다. 인도 오기 전에 ‘수제비는 먹을 만하다.’는 글을 많이 읽었다. 티벳의 ‘둑바’라는 음식이 우리의 수제비와 비슷해서 잘 만드는것 같다고 들 했다. 그러나 바바의 수제비는 야채는 거의 넣지 않고 밀가루를 칼국수 만들듯이 반죽하여 마름모꼴로 썰은 다음 다시다 물에 넣고 끓인 것으로 ‘끔찍하다’라는 표현 밖에는 달리 할 말이 없었다. 수제비는 사양해 주세요.


종민이는 배가 따끔거리며 살살 아파온다고 쉬고 싶다고 하여 혼자서 ‘라가카페(Raga cafe)’를 찾아 갔다. 라가카페는 ‘다샤스와메드 가트’에서 하류쪽으로 내려가 ‘마르까르니까 가트’ 근처에 있다. 마르까르니까 가트는 화장터로서 일명 ‘버닝가트’라고 불리운다. 갠지스강을 따라 내려가면 쉽게 갈 수 있으련만 강(江)의 수위(水位)가 높아 갈 수가 없다. 골목길을 찾아 가야 하는데, 바라나시의 골목길이 미로(迷路)로 얽혀있는 것은 이미 들어온 터이다. 지도를 가지고 골목길을 더듬어 대강의 방향을 잡고 출발했다.


라가카페 근처에는 산티게스트하우스(Shati G H) 신디아 게스트하우스(Scindia G H)가 있어 한국인이 많이 가는 곳이다. 뿐만 아니라 바라나시에 왔다면 그 유명한 화장터도 한번 구경해야 할 것이 아닌가? 일단 황금사원(Golden Temple)까지 가는 골목을 목표로 삼아 근처까지 간 다음에 또 찾아가면 될 것 같았다.


황금사원을 가는 골목길은 좁은데도 양쪽으로 상점이 줄지어 있고, 많은 사람들이 왕래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 다음 부터가 문제다. 어디에서 옆으로 나가야 할지 알 수가 없다. 이리 돌아도 먼저 그 자리로 오게 되고, 저리 돌면 엉뚱한 곳으로 갈 것만 같았다. 다행이 지나가는 사람 중에 한국인이 있어 물어보니 요리 조리로 자세하게 알려준다. 그 길로 가 보았지만 뚜렷한 이정표라는 것이 없다. 한참을 헤메다 어제 기차역에서 헤어진 학생들을 만났다. ‘이제 다 오셨어요, 바로 조긴걸요.’하며 라가카페입구에 데려다 주었다.


2층은 다다미방으로 되어있는데 안주인인 듯한 여자가 맞아준다. 30대 후반쯤 되었을까? 상냥하지만 깔끔한 자세다. 땀을 많이 흘린 탓에 시원한 냉커피를 주문했다. 라가카페의 야채죽이 맛있다는 이야기를 듣기는 했지만 아직 식사를 하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몇몇 한국 학생들이 모여 잡지며 만화며를 보며 또는 정보교환을 하고 있었다. 벽에는 티벳 국경을 넘는 방법 등이 자세하게 적혀져 있다. 역시 한국인이 많이 이용하고 있었다. 그러나 잠시 뒤 냉커피를 보곤 주인에 대해 적잖이 실망했다. 레규러 커피를 한 스푼 푼 컵에 작은 얼음 두개가 동동 떠 있었다. 냉커피란 이름이 부끄러웠다. 냉녹차를 주문한 다른 한국인들도 마찬가지였다. 얼음을 좀 더 달라고 하니 ‘바라나시는 정전이 잘 되어서 얼음 사정이 나쁘다 그래서 더 드릴 수 없다.’는 깔끔한 대답이 돌아왔다.


냉장고에 얼려둔 얼음이 모자라게 되면 찬 음료수 - 냉커피 - 를 팔지 않으면 된다. 얼음이 없어서 만들 수 없는 것이니까. 그리고 다른 사람에게 팔기 위해서 얼음을 더 줄 수 없다면, 냉커피라는 말을 빼면 된다. 이것도 저것도 아닌 것은 나의 수입을 위해 손님을 기만(欺瞞)하는 행위밖에는 되지 않는다. 사실 라가카페의 음식은 다른 한국식을 하는 식당들에 비하여 값이 비싸다. - 바바나 모라니자에서는 비빔밥이 100Rs이하 닭백숙 300Rs 이하, 냉 음료수 20Rs정도, 그러나 라가카페에서는 각각 150Rs, 600Rs, 30Rs이상을 받는다. - 그렇다면 비싼 이유가 있어야 하지 않을까? 라가카페에 실망하고 돌아 나왔다.


마르까르니까 가트로 가서 화장(火葬)하는 것을 구경하였다. 화장장은 신분에 따라 가트의 높이가 다르다고 한다. 지금은 강물이 불어 높은 신분의 화장터에서만 화장을 할 수 있다고 한다. 주변에는 화장용 나무들이 높직이 쌓여있고, 매캐한 연기와 냄새가 가득 차 있다. 여기도 삐기가 달려오더니 설명을 해 준다. 눈으로 보는 것은 상관이 없으나 사진을 찍어서는 않된다고 주의를 준다. 부근의 팔각정 비슷한 건물을 가리키며 ‘일본인들이 세운 건물인데 관광객은 이 위에 올라가서 보면 잘 보인다.’라고 하며 얼마간의 돈을 요구한다. 그러나 가트는 물에 잠겨있고, 그 위에 올라가서 볼 만한 것이 없어 사양했다.


그러는 가운데 두 구(柩)의 시체가 불에 타고 있었고, 또 한 구(柩)의 시체가 운반되어 왔다. 금색 천으로 둘둘 말려 있는 시체는 대나무로 만든 틀 위에 엊혀져 도착했는데, 시체를 운구하는 사람들은 무엇인가 주문 같은 것을 합창하며 빠른 걸음으로 간다. 그들만의 어떠한 의식의 말 이련만 이방인인 나는 ‘안나오면 쳐들어간다..’하는 우리의 놀이리듬이 생각나 웃음을 참을 수 없었다. 화장의 뒤처리까지 보려면 한참을 더 있어야 하기에 화장터 구경은 그만하고 돌아왔다. 돌아오는 길은 갈 때보다 수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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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이 되면 꼭 시바교도가 아니라도 강가에 나와 성스러운 강가의 물에 몸을 담근다, 목욕이 아니라 마치 침례교의 의식과 같은 수침(水沈)이라고 하는 것이 옳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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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침의 의식 뒤에는 제물을 갖춰 신에게 하루의 평온을 기원한다.



바바게스트하우스 근처에는 원숭이들이 많이 있다. 아침에 옥상에 올라가면 원숭이들이 먼저 자리를 차지하고 해맞이를 하고 있었다. 창문가에 무엇인가 놓아두면 그것을 집어가려고 창문에 매달려 있다. 물론 창문에는 가는 창살 외에 철망까지 쳐 놓아서 안전하다. 비라도 오면 집그늘에 원숭이 가족들이 무더기 무더기 앉아서 서로 털다듬기를 해 주고 있고, 어떤 새끼는 어미배에 찰싹 붙어서 떨어지지를 않는다. 옥상 식당에서 식사를 하고 있을 때도 양철 지붕위를 쿵쾅 거리고 뛰어 다녀 사람을 놀라게 하기도 한다.


오후에 ‘친따라’ 팀은 아그라로 갔다. 친따라가 나가고 나서 바로 비가 숨을 쉬지 못할 정도로 억수같이 내려 걱정을 했다. 그런데 무엇 때문인지 친따라는 아직 출발하지 않았다. 정말 비를 맞지 않은 것은 다행이었다. 그러나, 그 더러운 골목에 물이 찼을 텐데, 그것을 - 소똥 개똥 그리고 또 다른 똥 - 헤치고 갈 것을 생각하면 정말 다행인지? 종민이는 몸이 좋아졌는지 대학생들과 어울려 밤늦도록 놀다가 왔다.




* 다음은 바라나시의 힌두대학 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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