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ucky의 인도로 가는 길-16 카주라호의 미투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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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ucky의 인도로 가는 길-16 카주라호의 미투나상

Ducky 0 3747


이번 여름 인도를 다녀왔습니다. 이제는 막내도 중 2가 되었습니다. 기행문을 올립니다. 그러나 여행정보보다 관심사와 감상을 많이 적은 개인적인 기행문입니다. 여행의 목적과 관심사가 나와 다른 분들은 재미가 없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여기에는 내가 직접 체험하고 확인한 것만 썼습니다. 일정은 3주간 뭄바이 - 아우랑가바드 - 카주라호 - 바라나시 - 자이푸르 - 아그라 - 푸쉬가르 - 델리입니다.



2005년 7월 25일(월요일)
카주라호의 미투나상에 대하여



엄청난 몬순이 뭄바이를 덥쳐 물바다로 만들고, 뭄바이 시내의 대부분, 철도의 대부분이 물에 잠기고 진흙사태가 나서 많은 인명피해를 입게 된 것을 나중에 알았다.



카주라호의 사원들은 인도의 중기인 950년부터 1050년 사이에 달의 신 ‘찬드라’의 자손이 세웠다는 ‘찬델라 왕조(Chandela Dynasty)의 초기 수도로 정착되면서 집중적으로 건축되었다. 어떤 사람은 카주라호 사원이 행복과 종교적 감흥, 부유함, 천재적 예술성, 심미안적인 감수성에 대한 독특한 일치라고 말하기도 하는데 어찌하였든 이곳의 사원들은 자칫 외설처럼 보일 수 있는 성적인 표현을 진정한 예술작품으로서 승화시킨 세계 유일의 ‘에로티시즘 유산’이라고 말할 수 있다. 여인들의 풍만한 곡선미는 물론 남녀의 곡예사와 같은 성행위 모습이 너무나도 자세하고 적나라하게 그리고 정교하게 조각되어있어 처음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충격을 금치 못하게 하고 있다.


마하트마 간디는 “다 부숴버리고 싶다”고 경멸했다 하지만 간디의 경멸과 상관없이 유네스코는 이곳을 세계의 문화유산으로 지정했다. 찬델라 왕조의 전성기에는 80여개의 사원들이 있었다고 하는데, 무굴 제국의 아우랑제브에 의해 대부분 파괴되고 현재는 동서남군을 통틀어 겨우 20여개만이 남아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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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사람들의 흥미를 끌고 있는, 카주라호를 방문하는 목표가 되는 서부사원 외벽의 미투나상, 크기도 크고, 기묘한 구도에 SEX를 신성행위의 차원으로 만들어 놓았다.



기온이 올라가기 전 빨리 서부사원을 구경하자고 6시에 게스트하우스를 나왔다. 그러나 아무 가게도 문을 열지 않았다. 더군다나 사원에서는 한번 입장하고 나면 외출을 할 수 없다고 한다. 그럴 수가 있느냐며 항의를 했더니 ‘물을 살 수 있게 5분만 허락한다.’고 한다. 할 수 없어 7시 까지 기다려 ‘아씨’식당에서 간단하게 요기를 했다. ‘한국말을 할줄 아는 사람’을 찾으니 ‘보스가 안다.’고 한다. 보스를 데려오라고 하니 ‘지금 한국에 가서 없다.’고 한다. ‘아씨’는 보스의 성(姓)이 인도말로 ‘아씨’라서 그렇게 부르게 된 것이다.


벌써 태양은 중천(中天)에나 뜬 듯 엄청난 열기를 내뿜기 시작한다. 서부사원군 공원은 깨끗하게 정비되어 있어 인도답지 않았다. 입구에서 왼쪽으로 들어가 만나는 사원부터 시작하여 약 6개의 사원을 시계방향으로 돌며 구경하였다. 카주라호사원의 볼거리라고 하는 미투나상은 대부분 사원의 외부에 조각되어 있다. 크고 눈에 띄는 뚜렷한 것은 조형적 미감(美感)도 훌륭하지만, 수많은 조각들 틈에 끼어있는 작은 조각상은 그저 외설적인 내용 외에는 특기할 만 한 것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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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주라호의 미투나상에는 특히 짐승이 많다. 짐승도 성(性)의 상징으로 표현되어있다. 말은 남성, 코끼리는 여성을 상징한다.



몇 개 되지 않는 사원이건만 한꺼번에 볼 수 없을 정도로 더웠다. 조그만 그늘만 있어도 쉬고쉬고 하면서 사원(寺院)을 구경하고 나오니 10시 30분이 되었다. 날씨가 덥고 비수기라 그런지 사원을 찾은 사람은 많지 않았다. 카주라호 사원을 찾을 때도 역시 양말을 준비하는 것이 좋겠다. 사원의 외곽(外廓)만을 구경한다면 문제가 없어도, 사원의 내부(內部)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역시 신발을 벗어야 한다. 카주라호 사원들은 청소와는 거리가 먼 것 같다. 우선 입구에서부터 깨알 같은 박쥐 똥들이 잔뜩 널려있다.


서부사원앞 상가에서 CD버닝을 하고 약국에서 찜질 약을 샀다. 태양(太陽)빛이 너무 힘이 들어 릭샤를 타고 게스트하우스로 왔다. 게스트하우스도 덥기는 마찬가지이지만 더운물에 샤워 하고 침대에 누워있으니 조금 진정이 되었다. 왜 더운물에 샤워를 했느냐고? 인도의 여름은 찬물이란 없다.


고향식당에서 닭백숙을 먹었다. 방명록에 백숙을 잘한다고 많이 써 놓았다. 백숙을 못하는 집도 있을까? 닭, 감자, 마늘, 양파가 있다면 양파까지 - 인도에서 흔하게 구할 수 있는 식품재료들이다. - 한 솥에 넣고 끓이기만 하면 되는 것이 백숙 아닌가? 이런 것도 하지 못한다면 식당을 한다고 할 수 없지 않은가!


식사 후에 동부사원을 가려고 했지만 아직도 더위가 심해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같은 게스트하우스에 묵고있는 대학생들은 ‘르네폭포’를 간다고 했다. 돌아와 내일 ‘사트나’로 가는 버스와 사트나에서 바라나시가는 기차표 예매를 부탁했다. 더위에 지쳐 ‘잠깐 누워있자’고 했는데 종민이도 잠이 들어 9시 30분에 깨었다. 게스트하우스 식당에서 토스트와 콘프레이크를 주문해서 먹었다.



카주라호의 사원군

카주라호의 사원에 왜 에로틱한 조각이 많이 있을까? 많은 사람들이 여러 가지 근거를 대며 나름대로의 논리를 편다. 어떤 사람은 “사원에 새겨진 노골적인 성교의 모습은 다산 숭배의 일환으로 민중들의 잘 살아보고자 하는 염원이 종교적으로 표현된 것이다.”라고 하며 원시시대부터 다산(多産)과 풍요(豊饒)를 바라는 마음에서 만들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사실 경주국립박물관의 ‘장경호(長頸壺)토우(土偶)토기’에 붙어있는 토우들을 보면 이 설이 그럴듯해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경주국립박물관의 ‘토기(土器)’를 만든 사람은 민중(民衆)이었을 지 몰라도 이 사원을 건설한 사람이 ‘민중(民衆)’이었다고는 생각하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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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식 미투나 상인가? 경주국립박물관 ‘장경호토우토기’의 성교하는 토우



또 어떤 사람은 “지식을 추구한다는 것은 결코 쉼 없고 지침 없는 통합의 과정이요, 관념(觀念)의 세계에서 실체의 세계로 연결하는 실재적인 과정이다. 모름지기 힌두라 하면 다르마(法)와 아르타(實利)와 까마(性愛)의 세 가지를 추구하며 살아간다. 적어도 이론적으로는 혹은 높은 신분의 사람일수록 그렇다는 이야기다. 그들은 자신에게 주어진 직분에 따라 이들을 잘 실행하면 이승에서는 물론이고 저승에서도 무한한 기쁨과 행복을 누리게 된다고 믿는다.”고 힌두교의 교리를 내세우기도 한다. 이런 사람들은 대부분 고대 인도의 성 지침서인 ‘카마수트라(Kama Sutra)’를 들고 나온다.


카마(kama)란 힌두교에서 인간이 추구하는 세 가지 실천과제중의 하나이며, 정신과 마음의 합일로 작동하는 오감(hearing, feeling, seeing, tasting & smelling)에 의한 적절한 대상에 대한 즐거움을 말한다고 한다. 이 즐거움이란 감각기관과 대상 간 특유의 접촉을 통해서 일어나며, 즐거움에 대한 의식이 바로 카마(kama)라 불린다고 한다. 그리고 수트라(sutra)는 경전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결국 카마수트라(Kama Sutra)만 가지고 이 거대한 사원군을 만들기에는 역부족이란 뜻이다. 물론 힌두교에 대한 깊은 배움이 없이 이렇게 결정짓는 것도 매우 위험한 생각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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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性)이란 이렇게 인간 본연의 것인가. 경남 울주군 반구대 청동기 시대 암각화의 남자상. 건장한 성기를 노출시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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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증맞은 꼬추?를 그대로 노출하고 있는 서부사원의 신상



사실 인도의 유적을 답사하다 보면 종교를 떠나서 거의 모든 유적에서 매우 육감적(肉感的)인 조각상을 발견할 수 있다. 이성을 유혹(誘惑)하는 듯한 몸짓, 성적 매력을 가득 담고 있는 가슴과 허리, 그리고 히프, 도발적(挑發的)으로 사랑을 요구하고 있는 입술, 이루 셀 수 없을 정도다. 이런 조각상들도 모두 ‘에로틱한 조각’의 범주에 넣을 수 있다. 그러나 ‘카주라호’가 특히 그 중심에 있게 된 것은 ‘노골적인 성행위(性行爲)를 묘사한 조각상’때문이 아닌가 한다. 현대의 에로틱한 성인잡지에서나 볼 수 있는 성체위(性體位)를 조각해 놓은 것이다.


나는 중학생인 아들과 카주라호 사원을 답사하였다. 또 답사 도중에 많은 사람들과 만나고 헤어졌다. 그들 중에는 우리나라 앳띤 여대생도 있었고, 서양의 노부부도 있었고, 탱탱 튀는 발랄함을 마음껏 노출하고 있는 이스라엘아가씨도 있었다. 그러나 그들과 수많은 조각들 사이에서 이 성행위를 묘사한 ‘미투나(Mithuna)상(像)’ 찾고, 알려주고 하면서도 속(俗)된 성적흥분(性的興憤)을 느끼지 못했다. 그것은 이 조각이 ‘노골적인 성행위(性行爲)를 묘사한 조각상’이지만 ‘아름다운 예술품’이었기 때문인 것 같다.


음화(淫畵)와 누드화를 어떻게 구분할까? 그것은 그린 사람의 차이가 아닐까한다. 음심(淫心)을 가지고 음심(淫心)을 발현시키려고 그렸다면 보는 사람들은 당연히 음심(淫心)을 가질 것이고 이것은 음화(淫畵)가 될 것이다. 그러나 전람회에 출품된 누드화를 보고 발정(發情)하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그것은 아름다움을 창조하기 위해 그린 것이기 때문에 그런 것이 아닐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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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별전’으로 소개된 엽전, 성체위가 구체적으로 묘사된 이 동전의 실물을 보지 못하고 사진만 받았다. ‘별전’으로 소개된 것으로 보아 실제로 통용되는 화폐의 기능은 없었고, 여성들 이기자(祈子)풍습으로 암암리에 소지하던 것이 아닌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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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주라호 서부사원군 사원의 외벽을 가득 채우고 있는 신상(神像)들, 꼭 미투나상 때문이 아니라 수많은 신상들의 각각 개성적인 모습들에 경탄을 금할 수 없다.




* 다음은 카주라호 사원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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