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ucky의 인도로 가는 길-13 아잔타 석굴
이번 여름 인도를 다녀왔습니다. 이제는 막내도 중 2가 되었습니다. 기행문을 올립니다. 그러나 여행정보보다 관심사와 감상을 많이 적은 개인적인 기행문입니다. 여행의 목적과 관심사가 나와 다른 분들은 재미가 없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여기에는 내가 직접 체험하고 확인한 것만 썼습니다. 일정은 3주간 뭄바이 - 아우랑가바드 - 카주라호 - 바라나시 - 자이푸르 - 아그라 - 푸쉬가르 - 델리입니다.
2005년 7월 22일(금) 아잔타(Ajanta)
- 불교예술의 보고 아잔타 석굴관람
1번 굴 입구에 가니 한 사람이 신발을 벗으라고 한다. 엘로라 석굴은 이미 신앙과는 멀어져서 그랬는지 신발을 벗어야 하는 곳은 없었는데, 아잔타에 오니 신발을 벗는 곳이 꽤 있었다. 신앙때문인지, 아니면 아잔타 석굴을 보호하겠다는 명분에서 인지 알 수 없었다. 신앙 때문이라면 혹시 이해할 수도 있으나, 석굴 보호명목이라면 참 가소로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흔히 ‘타지마할’을 갈 때 ‘양말’을 준비하라고 한다. 그러나 아잔타를 구경 갈 때도 반드시 양말을 준비하는 것이 좋다. 맨발족인 인도인들은 발바닥 감촉?에 대하 별로 신경을 쓰지 않지만, 신발족인 우리들에게는 제대로 청소되지 않은 석굴을 맨발로 다니는 것이 유쾌한 일은 아니기 때문이다.
1번 굴은 조명권이 필요한 굴 이었다. 흐릿한 불을 켜 놓고 조명권이 있어야 볼 수 있다고 한다. ‘카메라 사진은 찍을 수 있지만 후레쉬를 사용할 수는 없다.’고 한다. 그렇다면 어떻게 사진을 찍을 수 있는가? 앞서 말했지만 우리는 조명권을 사지 않았다. 그러나 1번 굴에서는 우리 앞에 들어간 두명의 대학생을 우리와 같은 팀으로 오해 했는지 따로 조명권 확인을 하지 않았다.
천정까지 아름답게 세심한 배려를 한 차이티야(Caitya 塔廟窟) 석굴 터널식 천장에 빠짐없이 석가래를 대었고 그곳에 모두 그림을 그려 넣었다. 우리나라 고건축에서 건물의 품위를 높이기 위한 단청(丹靑)과 어떤 연관이 있는지.
1번 굴을 보고 나오니 한 늙은이가 ‘자기를 고용하면 동굴 설명과 사진을 찍을 수 있게 해 주겠다.’고 조건을 걸었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자기는 불교 신자고, 아잔타 공식 가이드라고 했다.’ 어제 엘로라에서 가이드의 필요성을 느끼긴 했지만 가이드비 때문에 망설이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사진을 찍을 수 있게 해 주겠다.’는 조건에 그만 마음이 동하여 200Rs에 고용을 했다. 가이드의 안내를 받으며 빼도 좋은 굴은 찾아가지 않으며 중요한 굴만 구경하였다. 그러나 정말 중요한지 신발을 벗으며 들어가야 하는 굴에는 조명권 검사를 하는 사람과, 내부에서 설명을 해 주는 사람이 있었다. 왜 따라들어와 설명을 하지 않느냐고 했더니 ‘자기는 아웃사이더 가이드이며, 내부에는 인사이드 가이드가 있다. 안에까지 따라 들어갈 수 있는 진짜 가이드는 더 높은 가격을 주어야 한다.’고 발뺌을 한다. 이런 사기꾼 같으니라고, 처음부터 그런 말을 했어야지 당신은 필요 없다고 했더니 ‘자기는 예순 아홉 살에 아들 셋에 딸 하나 있는데 아들하나와 딸만 겨우 결혼을 했다. 자기가 벌지 못하면 식구들은 모두 굶는다.’등등 죽는 소리를 한다. 사기당한 것 같은 기분을 떨쳐 버릴 수 없었으나 할 수 없이 같이 다니는 수밖에 없었다.
내 생각에 아잔타 석굴을 잘 구경하는 법은 기존에 우리가 구입할 수 있는 가이드북을 잘 활용하는 것이다. 가이드북을 보고 중요한 석굴로 설명되어 있는 것만 골라서 준비를 한다. 특히 아잔타 석굴은 벽화 감상이 그 전부이기 때문에 가이드북에 설명되어 있지 않은 석굴들은 이미 벽화가 많이 회손 된 곳이거나 볼 것이 없는 석굴이다. 앞서 엘로라에서도 말했듯이 모든 석굴을 빠짐없이 구경한다는 것은 큰 소득 없이 힘만 드는 일이다.
귀여운 천사의 모습, 절대로 사진촬영 금지라고 하면서도 찍을 수 있도록 도와준 사진
이렇게 꼭 봐야할 굴을 고른 다음, 그곳에 가면 거의 조명권을 검사하거나 내부에서 설명해 주는 사람이 있게 마련이다. 이 사람들을 적극 활용하여, 그 굴에서 꼭 봐야할 것, 중요한 것을 설명해 달라고 하고, 사진을 찍고 싶으면 다른 관광객이 없을 때 사진을 찍고 싶다고 부탁을 한다. 그러면 거의 다 사진을 찍을 수 있도록 도와준다. 물론 다른 관광객이 없어야 한다. 이때 ‘다른 관광객’이라면 ‘외국인’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인도인’을 말한다. 인도인들은 대부분이 단체로 와서 단체로 몰려 다니는데 이러한 사람들과는 거리를 두고 다니는 것이 좋다. 이런 인도인 단체가 있으면 일이 어렵다. 이들만 없으면 후레쉬를 사용하는 것도 문제가 없다. 물론 굴을 다 구경하고 나서는 가이드한데 약간의 박쉬쉬(팁)를 주어야 한다. 후레쉬를 쓸 수 없는 곳에서 사진을 제대로 찍게 해 주었다면 크게 인심 써서 10Rs 주는 것도 좋다. 이렇게 하는 것이 우리와 같이 어쭙지않게 가이드를 구하는 것보다 좋을 듯하다.
중요한 석굴 구경을 마치고 건너편에 올려다 보이는 V-point를 올라가기로 했다. 그런데 아래에서 사가지고 온 물을 다 먹어서 물이 없이 그곳을 올라갈 수는 없었다. 근처 기념품 파는 녀석들에게 말하니 자기에게 30Rs를 주면 물을 사다 주겠다고 한다. 물론 아래에서 파는 물 값이 15Rs니 두 배를 달라는 것이다.
와고래강의 시작 아잔타 폭포, 조금씩 흐르는 물이 유구한 세월 바위를 깍아 기괴한 모양의 절벽 폭포를 만들었다.
개울가에서 V-point 까지는 멀어 보였으나 사실 올라가기 시작하니 얼마 걸리지 않았다. 8각정이 서 있는 곳이 사방을 조망하기에 가장 좋은 곳인데, 이곳에 서면 시원한 바람이 아잔타 석굴 위를 휩쓸고 지나간다. 거기에다가 언제 올라왔는지 음료수 파는 사람이 기다리고 있다. 음료수장수가 있는 줄 알았으면 물을 사지 않았을 텐데, 음료수 한병에 20Rs, 잠시 쉬었다가 이번에는 멀리 데칸고원의 한쪽 끝에 만들어진 Big V-point로 갔다. 이곳은 영국인 병사가 호랑이를 쏜 곳인데, 호랑이가 달아난 곳을 찾아 헤메다 아잔타 석굴을 발견했다는 것이다. 바로 그 장소에 Big V-point를 만들었다고 한다. V-point에서 거기까지는 약 20분 정도 걸린다.
데칸 고원위에 있는 Big V-point에서의 조망, 좀더 멀리 보이는 것 외에는 아래쪽과 큰 차이는 없다. 여기에는 오토바이가 올라와 있다.
가는 길은 시멘트를 깔았거나, 계단을 만들었거나 해서 편안하게 잘 되어 있다. 계단의 끝에 작은 문 같은것이 있지만 형식적인 것이고 그곳을 올라서면 어떤 건물의 마당이 된다. 그 건물은 단층의 아담한 건물인데 지금 사람이 살고 있는지 관리는 잘 되어있었다. 어떤 용도로 사용되고 있는지 그런 것은 알 수 없었다. 넓은 마당 중앙에는 커다란 나무가 서있고 마당의 가장자리로는 안전책이 만들어져 있다. 이미 10여명의 사람들이 모여 있었는데 관광객은 하나도 없고 모두 물건을 팔기 위한 사람들인 것 같았다. 우리가 올라가니 커다란 상자를 두개씩이나 들고 와서 앞에다 펼쳐 놓는다. 이것을 사라, 이것을 사라. 조금도 쉴 틈이 없다. 이곳까지 힘들게 올라왔는데 데칸고원의 자연경관을 구경할 수 있는 시간을 주지 않는다. 누가 여기까지 와서 물건만 구경하다 가고 싶겠는가? 왜 관광객의 마음을 이렇게 몰라줄까.
마당 한 구석에는 오토바이가 서 있다. 아잔타에서 이곳까지 오토바이로 올라올 수 있다고 한다. 또 어느 글에 보니 자동차를 타고 올수도 있다고 쓰여 있는데 자동차는 보지 못했으니 확인할 수는 없었다.
그래도 이곳은 데칸고원의 한 끝 여기에 부는 바람이 ‘데칸고원의 바람’이라고 어느 책에 쓰여져 있는 것을 보았는데 큰 감동은 있지 않았다. 단지 멀리 보이는 모든 것이 뾰족하게 솟은 것은 하나도 없이 모두 평평했다. 장사꾼들의 등살에 마음 편히 앉아 있을 수가 없어서 차라리 내려가기로 했다. 내려가는 길은 온 길을 바로 가는 방법이 있고 왼쪽으로 아잔타 석굴의 골짜기를 한 바퀴 돌아 내려가는 방법이 있다. 석굴의 위를 한 바퀴 돈다면 한시간 정도가 걸린다고 하는데 종민이를 달래 그쪽 길을 가보기로 했다. 호텔로 가기에는 아직 시간이 남은 것 같았고, 이 길이 아잔타에서 추억으로 남길만한 일인 것 같았다.
아잔타석굴 위의 데칸고원 길은 가 볼만한 길이었다. 군데군데 검은 바위가 노출된 곳에 선인장과의 가시가 많은 식물이 군락(群落)을 이루고 있으며, 가끔씩은 시원한 바람이 한 덩이 떨어진다. 단지 태양을 가릴 그늘이 하나도 없는 것이 흠이라면 흠 이었다. 와고레 강의 상류 끝은 폭포로 이루어져 있는데, 물에 의해 항아리 모양으로 둥글둥글하게 깎인 것이 신비스럽고 두렵게 느껴지기도 했다. 그러나 그곳으로 떨어지는 폭포의 근원이 되는 물줄기는 한걸음에 뛰어 넘을 수 있는 작은 도랑인데, 위 쪽으로 보이지 않는 곳에 마을이 있는지 물이 썩고 탁해서 가까이 가기가 싫었다.
아잔타 뷰포인트에서
가끔 바위가 부서진 곳을 살펴 보면 수정 부스러기가 지천으로 깔려 있다. 크고 번듯한 수정은 이미 동네 사람들이 다 주워다가 관광객만보면 사라고 쫓아 다니고, 상품으로서의 가치가 없는 자잘한 것들은 길바닥에 깔려 있다. 염소인지 산양인지 떼를 지어 한가롭게 풀을 뜯으며 이동한다. 한 시간이 조금 더 걸려 좁은 비탈길을 내려가니 아까 올라올 때 표 검사하던 곳이 나온다. 조금 내려가니 버스 타는 곳, 다시 에어콘 버스를 타고, 물건 사라고 조르는 상인들이 귀찮아 무조건 땅만 바라보면서 숙소로 돌아왔다.
이곳 파르다푸르에서는 식사하는 것이 큰 문제였다. 마땅히 먹을 곳이 없었다. 물론 위생에 신경을 쓰지 않는다면 현지인들이 먹는 곳이 있으니 걱정할 것은 없다. 그러나 건강을 조심해야 하는 입장에서는 그렇게 편하지가 않았다. 이곳에서 묵는 ‘친구따라’가 여기에서 꼭 ‘닭백숙’을 해 먹는 이유를 알 수 있다.
지나가는 릭샤를 잡아 ‘파르다푸르에서 가장 좋은 식당으로 가자.’라고 했더니 잠깐 머뭇거린다. 그러더니 한 곳을 생각해 냈는지 자신 있게 파르다푸르에서 가장 좋은 건물 앞에 세워준다. 거기는 우리의 숙소에서 파르다푸르 버스터미널을 지나 조금 더 간 곳에 있는 또 하나의 MTDC 숙소이다. 우리가 묵고 있는 곳보다 나중에 지은 곳으로 건물도 훌륭하고 시설도 더 낫다고 한다. 물론 가격도 더 비싸고. 식당이 같이 있어 일단 음식을 주문했다. 역시 손님이 없어서 그런지 음식은 한참 뒤에 나왔고, 정말 ‘겨우 먹을 만한’ 정도였다. 그러데 문제는 파리, 엄청난 파리 떼가 몰려들어 한손으로 파리를 쫓으며 한손으로 음식을 먹었다. 종업원이 수건을 들고 옆에 서서 파리떼를 쫓아 주는데, 그 수건에서 나는 퀴퀴한 냄새가 또한 식욕을 떨궜다.
천천히 걸어서 MTDC 숙소로 돌아 왔는데 불과 20분밖에 걸리지 않았다. 버스 정거장 근처에는 많은 노점이 있다. 현지인들이 먹는 음식에서 짜이, 닭, 마늘 양파 그 외 채소 등을 팔고 있었는데 의외로 과일은 없었다. 릭샤타고 지나가면서 본 조그만 자주색의 과일은 자세히 보니 양파였다. 길가에는 원숭이들이 떼를 지어 무엇인가 하고 있었는데, 카메라를 꺼내 들면 경계의 표정을 보이면서 다른 곳으로 갔다. 높이 1m정도로 쌓여진 개미탑도 있었다. 숙소에 돌아와 발코니에 의자를 놓고 앉아 담배를 피우니 더위도 가시고 편안한 것이 여행의 즐거움을 더해 주었다.
내일은 부사발로 가서 밤기차를 타고 잔시로 가야 한다. 처음 계획에는 오후에 버스를 타고 부사발로 가거나 또는 잘가온으로 가서 다시 부사발행 버스를 타는 것이었다. 그러나 내일 체크아웃 시간은 9시, 파르다푸르라는 작은 마을에선 할 것이 없었다. 종민이와 일정 협의 끝에 다이렉트 버스로 부사발로 가기로 했다.
* 다음은 아잔타 유적과 부사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