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ucky의 인도로 가는 길-10 엘로라 석굴 감상 3
이번 여름 인도를 다녀왔습니다. 이제는 막내도 중 2가 되었습니다. 기행문을 올립니다. 그러나 여행정보보다 관심사와 감상을 많이 적은 개인적인 기행문입니다. 여행의 목적과 관심사가 나와 다른 분들은 재미가 없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여기에는 내가 직접 체험하고 확인한 것만 썼습니다. 일정은 3주간 뭄바이 - 아우랑가바드 - 카주라호 - 바라나시 - 자이푸르 - 아그라 - 푸쉬가르 - 델리입니다.
엘로라 석굴 감상 3 - 중요 석굴에 대한 감상
12번 석굴, 마치 현대의 아파트같이 생겼다. 더 정확하게 비유한다면 복도식 3층 아파트다. 그 크기만 생각한다면 16번 ‘카알라쉬 사원’에 버금갈 정도로 큰 규모로, 각 층마다 난간을 돌리고 앞에는 널찍한 광장도 마련되어 있다. 그러나 1,2,3층 모두 수행자들이 거처하던 곳이었는지, 각 층 좌우로 커다란 불상조각이 있을 뿐 나머지는 넓은 공간으로 되어있다. 2층이나 3층쯤의 테라스에서 밖을 내다보면 한가롭고 경치가 좋아 한참 쉬다 나왔다. 참 2층에 있는 조각 중에는 힌두교식의 젓가슴이 도드라진 조각이 있는데 ‘브래지어’같은 것을 착용하고 있어 ‘패션’ 또는 ‘의상(衣裳)’쪽으로 특이했다.
10번 석굴, 특이한 구조로 말하면 엘로라 석굴군에서 빼 놓을 수 없는 모양이다. 차이티야(Caitya 塔廟窟))굴의 특징을 그대로 가지고 있는 이 굴은, 안쪽으로(세로 방향으로) 길게 파 들어갔다. 천정을 둥근 터널식 천정(볼트 Vault)으로 석가래를 대어놓은 것같이 만들어 시각적으로 안정감을 준다. 마치 유럽의 목조 ‘카톨릭성당’을 보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또한 석가래 형식의 천정기둥에 그림을 그렸던 흔적이 있다. 그림은 바위에 직접 그린 것이 아니라 회(灰)반죽 같은 것을 바르고 그 위에 그렸다. 안쪽으로 사리탑과 같이 생긴 둥근 형태의 탑을 모셔놓고 그 앞에 석가모니불을 중심으로 삼존불상을 조각하여 예배의 대상으로 삼았다. 전체적으로 석굴 앞모양을 2층으로 꾸며, 2층의 창을 통하여 들어오는 빛이 석굴 전체를 비추도록 했다. 기둥의 배치도 가운데는 간격을 넓혀 중앙에 많은 사람들이 막힘없이 예불을 올릴 수 있는 공간을 만들었다. 전체적으로 법당(法堂)의 용도에 가장 알맞도록 설계된 전형적인 차이티야(Caitya) 석굴이다.
엘로라 불교석굴중 최고의 석굴이라고 나름대로 평가한 10번 굴 입구, 입구의 설계부터 내부의 광량(光量)을 조절하는 과학적 설계를 했다.
10번 굴 내부, 초기에는 둥근형태의 탑만 모시고 예배를 보다가 나중에 불상을 조각한 것이 아닌가 생각했다. 누군가 흥미를 가지고 계속 연구해 보았으면 좋겠다
5번굴 앞으로 처마가 길게 나와 있는 특이한 모습을 가지고 있다. 지붕 끝에서 가느다란 물줄기가 떨어지는 것으로 보아, 비가 오면 수로(水路)가 생기는 위치인 것 같았다. 차라리 비가 퍼부어서 폭포가 생기는 모양을 보았으면 더 멋있었을 것 같다. 2번굴과 같이 대표적인 비하라(Vihara 僧院窟)굴이다. 내부에는 거추장스러운 기둥 같은 것은 아예 만들지 않고, 가장 간단하고 간결하게 거주(居住)공간을 만들었다. 특별히 볼만한 것이 있다면 ‘아 넓구나!’라는 것이다. 그러나 5번굴의 특별한 점을 찾으라면, 바닥 군데군데에 무엇엔가 의해 움푹하게 갈려진(磨)자국이다. 도대체 누가 무엇 때문에 이런 흔적을 남겼을까? 용도(用度)가 무엇이었을까? 다음날 엘로라에서 가이드에게 물어보았더니 ‘벽화를 그리기 위해 물감으로 쓰는 것들을 갈(磨)은 흔적이라고 한다. 그러나 5번 굴에는 벽화를 그렸던 흔적이 없다.
6번굴 작은 크기인데 조각들이 다른 굴에 비하여 잘 남아있다. 굴과 문의 위치가 외기의 변화를 민감하게 받아들이지 않는 위치였던 것 같다. 깨끗하고 아름다운 조각상이 있어 촬영 후 가이드북을 보니 ‘엘로라 석굴 사원 중 가장 아름다운 조각상’이라고 소개되어 있다. 이름을 ‘타라(Tara)’라고 하는데 우리가 말하는 ‘관세음보살’과 같은 존재라고 한다. 그러나 젓가슴이 도발적으로 도드라져 아직 힌두교와 조각의 분화가 이루어지지 않았음을 알 수있다. 좌편의 보살은 ‘마하마유리(Mahamayuri)’라고하는 지혜의 여신이라고 한다. 마치 힌두교의 사라스와띠(Saraswati)와 같은 존재라고 한다. 그러나 설명이 너무 간소하여 종교적으로 이해하기는 어려웠다.
이 글을 쓰면서 인터넷을 뒤져 다음과 같은 정보들을 모았다.
'다라보살'(多羅菩薩) :타라 보디삿트와의 음역. 보살의 이름. 다라는 눈동자를 뜻하는 타라의 음역. 태장계 만다라의 관음원(觀音院)의 1존(尊)이다. 관음보살의 눈동자에서 나왔기 때문에 다라라고 이름 지어졌으며, 보안(普眼)으로써 널리 중생을 구제하는 대승 보살이다. -인터넷 동방불교대학 검색
싯다르타가 열 아홉 살이 되자 부왕은 서둘러 태자비를 물색하기로 했다. 어느 날 대신은 태자의 마음에 적합한 여인을 발견하였는데, 그는 집장이라는 대신의 딸 ‘야소다라’였다. 그녀는 단정한데다가 인상이 좋고 깨끗하여 천하제일이었으며, 어질고 재주가 남보다 뛰어나고 예의를 다 갖추었으니 이는 바로 과거 세상에 꽃을 팔았던 여인이었다. 서둘러 정반왕에게 가서 보고하고 …
남방의 성전(聖典)인 <붓다밤사> 속에서는 처음부터 그 비(妃)의 이름을 ‘밧다캇챠나(跋陀迦?延)’라고 하고 있으며, 올덴베르그 같은 독일의 불교학자는 이 이름이 태자의 정비(正妃)의 이름이었을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이 성전은 매우 후대에 속하는 문헌이므로 그렇게 믿어서 좋을지는 의문이다. 태자가 결혼한 나이는 남방의 전설에 의하면 16세 때였다. 태자의 비(妃)에 관해서는 또 한 사람뿐이었다는 설(說)과 세 사람 있었다는 설(說)이 있으나, 이것도 확실히 알 수는 없다. 그러나 당시의 풍속이 다처(多妻)였던 것은 확실하다.
개인적으로는 조각의 관능적인 모습으로 보아 불교신의 하나 보다는 싯달타의 부인인 타라(Tara)像으로 결론을 내리고 싶었지만 조사를 더 할수록 점점 무엇인지 모르게 되었다. 훗날 엘로라를 가시는 분께서는 이 부분을 좀 더 확실하게 조사해서 나의 잘못을 바로잡아 주시기 바란다.
9번 굴 힌두교적인 조각과 불교조각이 혼재해 있는 듯하다. 삼존불(三尊佛) 위의 비천상(飛天像)은 마치 힌두교의 ‘압살라’를 보는 듯하고, 연화대위에 서있는 여보살은 오른손에 무기를 들고 있고, 백조(?)인듯한 새가 있는 것으로 보아 힌두교의 여신의 모습이다.
여보살의 모습, 불교와 힌두교의 구분이 서지 않는 조각이다. 사실 이때 불교와 힌두교의 구분을 지금의 생각을 가지고 하는 것이 옳은 일인지 조차 모호하다.
14번 굴 시바사원이다. 그러나 천정의 모양으로 보아 처음의 석굴제작 의도는 승방이었던 것 같다. 춤을 추고 있는 시바와, 가네샤, 깔리(앙상한 갈비뼈를 드러내고 있다)등의 모습의 조각이 있고, 물소로 화신(化身)한 악마를 물리치는 두르가, 맷돼지(Varaha, 비슈누의 세 번째 화신이다)형상의 비슈누의 조각이 있다.
15번 굴 시바를 모신 신전으로 정교한 조각이 많다. 안쪽에 신성소를 만들고 링가를 묘셨다. 카일라쉬 산(Mt. Kailasa)을 흔드는 ‘라바나’를 위시해서 시바와 파르바티의 조각이 많다. ‘시바와 파르바티의 결혼식’ ‘휴식을 취하고 있는 시바’ ‘춤추는 시바’등과 빠질 수 없는 ‘가네샤’등이 있다.
또아리를 튼 뱀 위에 누워있는 ‘비쉬누 신’ 이 신상의 모습은 인도 여행시 몇 번 만나게 되는 것으로 보아 어떤 신화가 들어있는 것 같았으나 알아보지 못했다.
22번 굴 시바신전으로 되어있다. 굴의 입구에 시바신의 소 난디가 높직하게 자리를 잡고 있다. 석굴 가득히 아름다운 힌두교의 조각이 가득차 있는데, 가장 압권은 힌두교의 중요한 여신들이 한 자리에 모셔져 있다. 각각 타고 다니는 동물을 발아래 놓고 미를 겨루듯 한 자리에 있는 모습만으로도 22번 굴의 장관이라고 할 수 있다.
* 다음은 엘로라 석굴 감상 4편 - 자인교 석굴 편
엘로라 석굴 감상 3 - 중요 석굴에 대한 감상
12번 석굴, 마치 현대의 아파트같이 생겼다. 더 정확하게 비유한다면 복도식 3층 아파트다. 그 크기만 생각한다면 16번 ‘카알라쉬 사원’에 버금갈 정도로 큰 규모로, 각 층마다 난간을 돌리고 앞에는 널찍한 광장도 마련되어 있다. 그러나 1,2,3층 모두 수행자들이 거처하던 곳이었는지, 각 층 좌우로 커다란 불상조각이 있을 뿐 나머지는 넓은 공간으로 되어있다. 2층이나 3층쯤의 테라스에서 밖을 내다보면 한가롭고 경치가 좋아 한참 쉬다 나왔다. 참 2층에 있는 조각 중에는 힌두교식의 젓가슴이 도드라진 조각이 있는데 ‘브래지어’같은 것을 착용하고 있어 ‘패션’ 또는 ‘의상(衣裳)’쪽으로 특이했다.
10번 석굴, 특이한 구조로 말하면 엘로라 석굴군에서 빼 놓을 수 없는 모양이다. 차이티야(Caitya 塔廟窟))굴의 특징을 그대로 가지고 있는 이 굴은, 안쪽으로(세로 방향으로) 길게 파 들어갔다. 천정을 둥근 터널식 천정(볼트 Vault)으로 석가래를 대어놓은 것같이 만들어 시각적으로 안정감을 준다. 마치 유럽의 목조 ‘카톨릭성당’을 보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또한 석가래 형식의 천정기둥에 그림을 그렸던 흔적이 있다. 그림은 바위에 직접 그린 것이 아니라 회(灰)반죽 같은 것을 바르고 그 위에 그렸다. 안쪽으로 사리탑과 같이 생긴 둥근 형태의 탑을 모셔놓고 그 앞에 석가모니불을 중심으로 삼존불상을 조각하여 예배의 대상으로 삼았다. 전체적으로 석굴 앞모양을 2층으로 꾸며, 2층의 창을 통하여 들어오는 빛이 석굴 전체를 비추도록 했다. 기둥의 배치도 가운데는 간격을 넓혀 중앙에 많은 사람들이 막힘없이 예불을 올릴 수 있는 공간을 만들었다. 전체적으로 법당(法堂)의 용도에 가장 알맞도록 설계된 전형적인 차이티야(Caitya) 석굴이다.
엘로라 불교석굴중 최고의 석굴이라고 나름대로 평가한 10번 굴 입구, 입구의 설계부터 내부의 광량(光量)을 조절하는 과학적 설계를 했다.
10번 굴 내부, 초기에는 둥근형태의 탑만 모시고 예배를 보다가 나중에 불상을 조각한 것이 아닌가 생각했다. 누군가 흥미를 가지고 계속 연구해 보았으면 좋겠다
5번굴 앞으로 처마가 길게 나와 있는 특이한 모습을 가지고 있다. 지붕 끝에서 가느다란 물줄기가 떨어지는 것으로 보아, 비가 오면 수로(水路)가 생기는 위치인 것 같았다. 차라리 비가 퍼부어서 폭포가 생기는 모양을 보았으면 더 멋있었을 것 같다. 2번굴과 같이 대표적인 비하라(Vihara 僧院窟)굴이다. 내부에는 거추장스러운 기둥 같은 것은 아예 만들지 않고, 가장 간단하고 간결하게 거주(居住)공간을 만들었다. 특별히 볼만한 것이 있다면 ‘아 넓구나!’라는 것이다. 그러나 5번굴의 특별한 점을 찾으라면, 바닥 군데군데에 무엇엔가 의해 움푹하게 갈려진(磨)자국이다. 도대체 누가 무엇 때문에 이런 흔적을 남겼을까? 용도(用度)가 무엇이었을까? 다음날 엘로라에서 가이드에게 물어보았더니 ‘벽화를 그리기 위해 물감으로 쓰는 것들을 갈(磨)은 흔적이라고 한다. 그러나 5번 굴에는 벽화를 그렸던 흔적이 없다.
6번굴 작은 크기인데 조각들이 다른 굴에 비하여 잘 남아있다. 굴과 문의 위치가 외기의 변화를 민감하게 받아들이지 않는 위치였던 것 같다. 깨끗하고 아름다운 조각상이 있어 촬영 후 가이드북을 보니 ‘엘로라 석굴 사원 중 가장 아름다운 조각상’이라고 소개되어 있다. 이름을 ‘타라(Tara)’라고 하는데 우리가 말하는 ‘관세음보살’과 같은 존재라고 한다. 그러나 젓가슴이 도발적으로 도드라져 아직 힌두교와 조각의 분화가 이루어지지 않았음을 알 수있다. 좌편의 보살은 ‘마하마유리(Mahamayuri)’라고하는 지혜의 여신이라고 한다. 마치 힌두교의 사라스와띠(Saraswati)와 같은 존재라고 한다. 그러나 설명이 너무 간소하여 종교적으로 이해하기는 어려웠다.
이 글을 쓰면서 인터넷을 뒤져 다음과 같은 정보들을 모았다.
'다라보살'(多羅菩薩) :타라 보디삿트와의 음역. 보살의 이름. 다라는 눈동자를 뜻하는 타라의 음역. 태장계 만다라의 관음원(觀音院)의 1존(尊)이다. 관음보살의 눈동자에서 나왔기 때문에 다라라고 이름 지어졌으며, 보안(普眼)으로써 널리 중생을 구제하는 대승 보살이다. -인터넷 동방불교대학 검색
싯다르타가 열 아홉 살이 되자 부왕은 서둘러 태자비를 물색하기로 했다. 어느 날 대신은 태자의 마음에 적합한 여인을 발견하였는데, 그는 집장이라는 대신의 딸 ‘야소다라’였다. 그녀는 단정한데다가 인상이 좋고 깨끗하여 천하제일이었으며, 어질고 재주가 남보다 뛰어나고 예의를 다 갖추었으니 이는 바로 과거 세상에 꽃을 팔았던 여인이었다. 서둘러 정반왕에게 가서 보고하고 …
남방의 성전(聖典)인 <붓다밤사> 속에서는 처음부터 그 비(妃)의 이름을 ‘밧다캇챠나(跋陀迦?延)’라고 하고 있으며, 올덴베르그 같은 독일의 불교학자는 이 이름이 태자의 정비(正妃)의 이름이었을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이 성전은 매우 후대에 속하는 문헌이므로 그렇게 믿어서 좋을지는 의문이다. 태자가 결혼한 나이는 남방의 전설에 의하면 16세 때였다. 태자의 비(妃)에 관해서는 또 한 사람뿐이었다는 설(說)과 세 사람 있었다는 설(說)이 있으나, 이것도 확실히 알 수는 없다. 그러나 당시의 풍속이 다처(多妻)였던 것은 확실하다.
개인적으로는 조각의 관능적인 모습으로 보아 불교신의 하나 보다는 싯달타의 부인인 타라(Tara)像으로 결론을 내리고 싶었지만 조사를 더 할수록 점점 무엇인지 모르게 되었다. 훗날 엘로라를 가시는 분께서는 이 부분을 좀 더 확실하게 조사해서 나의 잘못을 바로잡아 주시기 바란다.
9번 굴 힌두교적인 조각과 불교조각이 혼재해 있는 듯하다. 삼존불(三尊佛) 위의 비천상(飛天像)은 마치 힌두교의 ‘압살라’를 보는 듯하고, 연화대위에 서있는 여보살은 오른손에 무기를 들고 있고, 백조(?)인듯한 새가 있는 것으로 보아 힌두교의 여신의 모습이다.
여보살의 모습, 불교와 힌두교의 구분이 서지 않는 조각이다. 사실 이때 불교와 힌두교의 구분을 지금의 생각을 가지고 하는 것이 옳은 일인지 조차 모호하다.
14번 굴 시바사원이다. 그러나 천정의 모양으로 보아 처음의 석굴제작 의도는 승방이었던 것 같다. 춤을 추고 있는 시바와, 가네샤, 깔리(앙상한 갈비뼈를 드러내고 있다)등의 모습의 조각이 있고, 물소로 화신(化身)한 악마를 물리치는 두르가, 맷돼지(Varaha, 비슈누의 세 번째 화신이다)형상의 비슈누의 조각이 있다.
15번 굴 시바를 모신 신전으로 정교한 조각이 많다. 안쪽에 신성소를 만들고 링가를 묘셨다. 카일라쉬 산(Mt. Kailasa)을 흔드는 ‘라바나’를 위시해서 시바와 파르바티의 조각이 많다. ‘시바와 파르바티의 결혼식’ ‘휴식을 취하고 있는 시바’ ‘춤추는 시바’등과 빠질 수 없는 ‘가네샤’등이 있다.
또아리를 튼 뱀 위에 누워있는 ‘비쉬누 신’ 이 신상의 모습은 인도 여행시 몇 번 만나게 되는 것으로 보아 어떤 신화가 들어있는 것 같았으나 알아보지 못했다.
22번 굴 시바신전으로 되어있다. 굴의 입구에 시바신의 소 난디가 높직하게 자리를 잡고 있다. 석굴 가득히 아름다운 힌두교의 조각이 가득차 있는데, 가장 압권은 힌두교의 중요한 여신들이 한 자리에 모셔져 있다. 각각 타고 다니는 동물을 발아래 놓고 미를 겨루듯 한 자리에 있는 모습만으로도 22번 굴의 장관이라고 할 수 있다.
* 다음은 엘로라 석굴 감상 4편 - 자인교 석굴 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