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ucky의 인도로 가는 길-06 웨일즈왕자 박물관
지난 여름 인도를 다녀왔습니다. 이제는 막내도 중 2가 되었습니다. 기행문을 올립니다. 그러나 여행정보보다 관심사와 감상을 많이 적은 개인적인 기행문입니다. 여행의 목적과 관심사가 나와 다른 분들은 재미가 없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여기에는 내가 직접 체험하고 확인한 것만 썼습니다. 일정은 3주간 뭄바이 - 아우랑가바드 - 카주라호 - 바라나시 - 자이푸르 - 아그라 - 푸쉬가르 - 델리입니다.
2005년 7월 20일(수) 뭄바이 웨일즈왕자 박물관
‘레오폴드’로 가서 늦은 점심을 먹었다. 엘리펀트섬에서 나온 시간이 생각보다 늦어졌기 때문에 오늘의 계획을 약간 수정하여 ‘웨일즈왕자 박물관(Prince of Wales Museum)’만 가기로 하였다. 웨일즈 왕자 박물관은 타지호텔에서 걸어서 10분 안에 도착할 수 있는 거리였다. 1914년에 지어진 이 건물은 ‘인도문’과 마찬가지로 1911년 후일 조지 5세가 된 웨일즈 왕자의 인도방문을 기념하여 지은 것이라고 한다.
박물관의 입장료는 300Rs인데 종민이는 15세 이하로 입장료를 내지 않았다. 인도전역 중요한곳의 입장료가 ‘15세 이하 무료’라는 단서조항 때문에 종민이는 무료로 들어갔다. 그러나 그때마다 ID카드(학생증)을 가져오지 않아서 말다툼을 해야 했다. 반 정도에서는 어린이라 주장하면 무료입장을 시켜 주었지만, 나머지 반에서는 ‘패스포드(Passport)를 꺼내 들어야 했다. 혹시 방콕을 경유할 사람이라면, 그리고 자기의 얼굴이 조금 동안(童顔)이라고 생각된다면, 15세 이하의 국제학생증을 만들어 가지고 가는 것도 생각해 볼만하다. 방콕에서 학생증 만드는데 150~200밧, 타지마할 입장료(750Rs) 한 가지 만으로도 충분히 남는 장사가 된다. 카메라 촬영권은 30Rs다. 박물관은 다른 곳과는 다르게 입장권이 예쁘게 만들어졌다. - 이 말을 보통은 이해하지 못한다. 그러나 인도의 입장권은 정말 그 값에 비하여 너무 초라하게 만들어져있다. - 뿐만 아니라, 영어 가이드테이프를 무상으로 대여해 주고 있다. 관람 포인트에서 테이프를 들으면 유물에 대하여 설명이 나오도록 되어있다. 그러나 유창한 영어로 되어 있어 한국어 가이드가 나올 때 까지는 참는 수밖에 없었다. 입장권을 사는 곳에 물건을 맏아 주는 보관소가 있다.
박물관 내부는 중앙 홀을 가운데 두고 전시실이 방사선 모양으로 펼쳐져 있는 형태로 되어있다. 2층 까지 전시실이 있는데, 1층은 조각예술품이 주로 전시되어 있고, 2층은 미술품과 자연사관이 자리 잡고 있다. 외부로 난 복도를 통하여 왼쪽으로 가면 고고학실이 있는데 우리가 방문했을 때는 무슨 일에서인지 공개하지 않고 있었다.
거대한 뱀 아난타(Ananta)위에 누어있는 비쉬누 신
서구적인 모습이 잔뜩 들어있는 석판화, 해설에는 ‘왕실마차 Tlglath-pilecer Ⅲ BC 744-727’라고 쓰여져 있다.
전시품들의 가치를 평가할 수 있는 실력이 우리에게 없었으므로, 일반인의 눈으로 감상하는 정도가 모두 였다. 박물관의 조각상(彫刻像)이나 부조상(浮彫像)들은 힌두교의 신상들이 주조를 이루고 있었는데, 그 중 대작으로 박물관 복도 쪽에 전시되어 있는 ‘누워있는 비쉬누’상이 관심을 끌었다. 검은 색의 단단한 돌로 되어 있는 이 조각상은 수없이 또아리를 튼 뱀의 왕 아난타(Ananta)의 침대 위에 비쉬누가 누워있는 모습이다. 머리 위에는 일곱 마리의 코브라가 부채살같이 퍼져 있는데, 그 발치에는 볼록한 가슴을 가진 여신상이 앉아있다. 불행히도 손의 일부와 어깨 윗부분이 깨어져 없어져서 무엇을 하고 있는 어떤 신상인지는 알 수 없는데, 비쉬누의 다리 모양으로 보아 한쪽다리를 여신의 무릎쯤에 올려놓고 있지 않았었나 생각이 된다. 이 조각상의 나머지 빈곳에는 빠짐없이 여러 모습의 신상들이 조각되어 있어 매우 정성이 깃들을 작품이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 박물관 중앙에 자리 잡지 못하고, 바깥쪽에 있는 것을 보면 우리가 내린 평가가 정확하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그 외 청동으로 만들어진 조각상들과 서구식 얼굴에 투박한 옷자락을 자랑하고 있는 간다라식 조각상, 상아로 만든 아름다운 보석상자, 민속적인 냄새가 잔뜩 묻어 있는 그림들 등, 다양한 모습의 소장품들은 한쪽으로 편식하지 않고 골고루 볼 수 있게 해 주었다. 특히 말이 끌고 있는 외바퀴 전차를 타고 있는 석판화는 마치 서양 전차경기의 한 장면을 보여주는 것 같아 동서 문화에 대한 명확한 구분이란 것이 소용없는 것 같은 느낌을 주었다.
웨일즈 왕자 박물관을 나오니 시간은 5시가 지나가고 있었다. 어디에 가서 저녁을 먹기에도 시간이 맞지 않아 일단 게스트하우스에 가서 짐을 찾기로 했다. 너무 피곤해서 걸어가기가 무척 힘들었다. 그러나 차를 타고 갈 거리도 되지 않아 겨우 겨우 갔다. 종민이는 아직 어린애라서 그런지 피곤함을 그렇게 많이 느끼지 않는 것 같아 다행이었다.
게스트하우스에 가서 짐을 찾았다. 매니저가 짐을 내 주면서 다음에 또 오라고 하였지만 내가 다시 ‘뭄바이’에 온다고 해도 이 ‘Hotel Sea Loed 게스트하우스’에는 절대 다시 오지 않을 것이고, 또한 다른 사람들에게 추천하지도 않을 꺼다. 짐 보관료까지 받는 게스트를 좋다고 추천할 수는 없을 테니까.
락쉬미 신 설명에는 가자(gaja)라는 말이 붙어 있는데 무슨 뜻인지는 모르겠다
매우 산뜻한 포즈의 여인상. 인도적 아름다움을 충분히 느낄 수 있다
택시를 타고 뭄바이CTS역으로 갔다. 뭄바이에는 역도 많이 있는데, 가장 많이 이용되는 것이 바로 이 CST역이라고 한다. 그런데 사람들이 이 역에 대한 명칭을 다르게 한다. 그것은 ‘뭄바이VT역’이라고 부르는 것인데 VT란 빅토리아 터미너스(Victoria Teminus)의 약자로서 얼마 전까지 이렇게 불렀는데, ‘빅토리아’라는 명칭을 사용하지 않기로 하고 ‘CST(Chatrapathi Shivaji Terminus 짜뜨라바띠 쉬바지 터미너스)’로 개명(改名)을 했다고 한다. 그래서 택시 운전사들도 ‘CST’역으로 말했을 때 알아듣지 못하는 사람도 있다고 한다.
‘아우랑가바드’행 기차는 밤 9시 5분에 출발예정으로 처음 계획에는 8시경에 뭄바이역에 도착할 예정이었으나, 몸은 지치고 특별히 할일도 갈 곳도 없어 바로 역으로 갔다. 역에 도착하고 보니 어둠이 내리기 시작하는데 시간은 7시가 채 되지 않았다. 크고 복잡하며, 여태까지 간접경험으로만 들어온 인도 기차역의 무질서함이 눈앞에 펼쳐져 있는데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아니 정신을 차리지 않으면 메고 있는 배낭마저 잃어버릴 것 같았다. 역은 광장이 따로 없이 바로 역사(驛舍) 안이 되며, 넓은 역사 안 한쪽은 바로 플랫홈이 된다. 수많은 사람들이 어딜 그렇게 바쁘게 가는지 끊임없이 물 흐르듯이 흘러가고 있는가 하면, 넓은 역사(驛舍) 안에는 둥글게, 혹은 네모나게, 아니면 제 모양대로 둘러않은 사람들이 무엇인가 풀러놓고 먹기도 하고, 누워있기도 하고, 제 각각의 모양으로 자리를 잡고 있는데 이것이 질서(秩序)인지, 혼돈(混沌)인지 알 수 없다.
가이드북의 기차역 이용하기에서 본대로 우선 ‘휴게실(Waiting Room)’을 찾았다. 그러나 한번 둘러 본 것 가지고는 휴게실을 찾을 수 없었다. 일단, 종민이 보고 한 군데 짐을 가지고 앉아 있도록 시킨 다음 혼자서 찾아보기로 했다. 또 기차표의 좌석을 확인할 필요도 있어 일단 예약사무소의 ENQUIRY 창구를 찾아 갔다. 의외로 뭄바이 CST역의 예약소는 넓었을 뿐 아니라 에어콘까지 나오고 있었다. 창구에 가서 공항에서 예약한 기차표를 주니 그제서야 기차표에 코치 번호와 좌석을 적어 준다. 또 ‘웨이팅 룸’을 찾으니 무어라고 사무실 밖을 가르키며 말하는데 알아들을 수 없어 대강 ‘땡큐’하고 그 자리를 물렀다. 웨이팅룸을 찾기보다는 종민이를 이리로 데리고 오는 것이 나았다. 여기만 해도 일단 에어콘이 나오는 것이 신기할 정도였으며 누어있거나 하는 사람도 없었다.
칼리여신
종민이를 데리고 와서 짐을 정리한 다음, 짐을 잡아매 두는 체인과 물과 과일 등을 사 오라고 시켰다. 물론 종민이도 힘들겠지만 내가 더 힘들어 움직일 수 없었다. 종민이가 나가서 이것저것 구경도 하고 전화도 하고 물건도 사 가지고 돌아왔다. 그 사이에 기차표를 꺼내 보는데 이상한 점이 있었다. 그것은 하나의 좌석이 나란히 두 번 쓰여 있는 것이었다. 옆에 앉아있던 인도인이 기차표를 넘겨다보더니 뭐라고 말하는데 그 표정이나 말투가 ‘너 잘못됐다.’는 식이었다. 하기야 내가 보기에도 잘못된 것 같았다. 그러나 그놈에게 잘못된 것을 고쳐 줄 수 있느냐고 말 하고 싶지는 않았다. 웬지 거부감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다음은 기차가 어느 플랫홈으로 들어오는가를 알아내는 것이었다. 다시 창구에 가서 물어보니 건너편 벽면을 가르치며 그곳을 보라고 한다. 그곳에는 컴퓨터도 몇 대 있고, 또 벽면에 쓰여진 것도 있고 해서 한참을 대조해 보았지만 알 수가 없었다. 겨우 알아낸 것은 ‘내가 타는 기차의 이름을 알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거기에는 기차의 번호가 아니라 이름이 나와 있기 때문이었다. 우여곡절 끝에 아우랑가바드행 기차가 몇 번 플랫홈에 정차하는지 알아냈다. 그러나 이것이 끝이 아니었다. 그 플랫홈은 보통 그 기차가 정차하는 것이고, 오늘도 그 자리에 정차할지는 알 수 없는 것이었다. 다행이 전화를 걸려고 역구내를 서성이다가, 전광판에 기차 플랫홈 번호가 디스플레이 되는 것을 보았다. 거기에는 몇 시 출발 몇 호 기차가 몇 번 플랫홈에서 출발한다고 계속 나오고 있었다. 그것만 보면 구태여 다른 사람에게 물어볼 필요가 없었다. 물론 마지막 까지 주의할 점이 있었는데 그것은 이 디스플레이마져 바뀔 수 있으므로 기차가 오기 직전까지 잘 봐야 한다는 것이다.
불교적 신상인데 여인을 안고있는 매우 선정적인 像 티벨 불교
예약소에서 기다리고 있는데 심심한지 젊은이들이 말을 걸어온다. 사실 심심한 것은 우리들이고, 그들에게는 호기심의 대상이었던 것이다. 우리가 보기에 많은 외국인이 인도를 돌아다니고 있지만, 인도인들의 입장에서 보면 ‘오늘 외국인 보았다.’는 손꼽을 만한 일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특히 호기심 많고, 남의 일에 참견하기 좋아하는 인도인의 특성으로 보아 외국인을 보고 그냥 둘 리가 없다. 이것저것, 무엇을 좋아하는가 하는 식성에서 부터, 너 이런 것도 먹어봤니? 하는 ‘몬도가네’ 점검, 그리고 종교(宗敎)가 무엇인지 같은 것이 화제가 되어 시간을 보냈다.
인도인이 잘 묻는 것 중의 하나가 ‘종교’다. 대체로 ‘무슨 교(敎)를 믿는가?’하고 묻지 않는다. 그들의 종교관(宗敎觀)을 들여다보면 당연한 것이다 ‘네가 모시고 있는 신(神)의 이름이 뭐냐?’이것이 종교에 대한 질문이다. ‘힌디’니 ‘무슬림’이니 하는 식으로 대답해 봐야 너무 막연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자기네들은 ‘무슬림’은 ‘무슬림’이라고 대답하지만 ‘힌디’는 자기의 신의 이름을 댄다 ‘시바’ ‘깔리’ ‘파르바티’ 등등. 이들에게 종교는 숨 쉬는 공기와 같다. 부모가 ‘힌디’의 공기로 숨을 쉬고 있었으면 자식도 당연히 그렇게 된다. ‘나는 싫어!’라고 할 수 없다. 그것은 숨을 쉬지 않겠다는 것이고, 곧 죽음을 의미하니까. 그래서 우리가 ‘나는 신이 없어.’라고 대답한다면 그것 같이 이상한 일이 없는 것 같다.
8시가 조금 넘어 플랫홈으로 가서 앉아 있으려니 바로 기차가 한대 들어와 선다. 잠시 뒤 차장인 듯한 사람이 오더니 문간에다 무엇인가를 풀로 붙인다. 가서 보니 오늘 그 기차를 예약한 사람들의 명단이다. 우리의 이름도 있었다. 기차가 우리의 생각보다 일찍 온 것이다. 인도의 기차는 항상 연발(延發)과 연착(延着)을 일삼는다고 했는데 그동안 마음을 바로 잡았는지 출발 시간은 아직도 한 시간 가까이 남았는데 온 것이다.
기차 칸에 불이 켜지기를 기다려 우리의 자리를 찾아 갔다. 우리의 좌석번호는 SL2코치에 RS36L이다. 자리를 찾아 가니 좌석이 컴포넌트 쪽이 아니라 복도 쪽에 길게 난 자리였다. 그것도 앉아서 가는 좌석 두개다. 밤에는 두개의 자리를 한 개로 만들어 침대같이 잠을 자게 만드니, 결국 한 개의 침대에 두 사람의 자리를 준 것이다. 처음 타보는 인도 기차에 불만이 쌓여있지만 어디에다 하소연 할 말(언어)이 없다. 외국어를 열심히 공부해야 하는 이유를 알겠는가?
정시에 기차는 떠났다. 정말 아무런 기척도 없이 있다가, 어느 순간 보니 기차가 움직이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한개의 자리에 둘이 겨우 다리를 뻗고 앉아 있으려니 차장이 와서 차표 검사를 한다. 차장에게 ‘우리는 두개의 자리를 예약했는데, 왜 한 개의 자리만 주었느냐?’고 따지듯이 물어보니 차장은 ‘*** RS ****'라고 한다. 무슨 소리인지 알 수 없지만 ‘너는 RS이기 때문에 그렇다.’는 것 같았다. 옆에 있던 참견하기 좋아하는 인도인들이 기차표를 보며 똑같이 ’RS‘라는 말을 하는데 그것이 무슨 뜻인지 알 수 없었다.
출발하고 한 시간 가량이 되었으려나, 아무리 불편해도 피곤은 이기지못하나 보다. 깜빡 잠이 들었는가 하는데 차장이 다시 와서 차표를 달라고 한다. 귀찮게 겨우 꺼내 주니, 두 칸 떨어진 옆 자리의 좌석번호를 적어주며 그리고 가라고 한다. 물병을 챙겨 가지고(베개 대용으로 사용한다.) 그 자리를 찾아 가니 어떤 사람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내 자리라고 비키라고 하니 순순히 비켜준다. 생각해 보니 RS란 웨이팅으로 예약한 자리가 기차 출발할 때 까지 나오지 않으면 사용하는 일종의 편법인 것 같다. 일단 두 사람을 한 자리에 배정하여 기차를 타게 한 다음, 차 안에서 차장이 자리를 봐서 배정해 주는 방법인 것 같다. 일단 여행을 해야 하는 외국인 여행자들을 배려하는 방법 중의 하나인 듯하다. 이것을 아는 사람들은 RS가 당연한 것으로 생각되어 그렇게 말한 것 같다.
* 다음은 아우랑가바드 엘로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