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캄보디아] 6년만의 배낭 여행 #16 - 앙코르 왓 (Angkor Wat) - [세번째]
마음이 닿는 곳 - 중앙 성소
장사의 기술
앙코르 유적지를 하루 종일 둘러본 특혜 아가씨에게 빙긋 웃으며 물어봤었다.
"1달러짜리 얼마나 썼어요?"
그러자 특혜 아가씨 왈
"아오~ 내가 오늘 그놈의 1달러를 얼마나 뿌리고 다녔는지. 제 팔 좀 보세요. 이 팔찌가 도대체 몇 개야. 저 지금 내일 차비로 쓸 잔돈도 없어요."
특혜 아가씨는 팔에 주렁주렁 매달고 있는 팔찌도 부족해 가방에서 팔찌 무더기(...)를 꺼내며 1달러라는 소리에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근데....애들이 그렇게 파니까 안사줄수가 없더라구요. 구걸하는 것도 아니고 물건 파는건데 어떻게 외면하겠어요. 비싼것도 아니구...."
캄보디아 특히 앙코르 유적지에서의 어린 장사꾼들의 '1달러'는 유명하다. 가난한 나라의 가난한 집 아이들이 그렇듯 캄보디아에서도 어린 아이들이 생계를 위해 길거리로 내몰린다. 아이들은 손으로 만든 조잡한 팔찌나 스카프, 낡아빠진 헌 책 또는 프린트 상태 부실한 불법 복사한 새 책들을 들고 다니며 여행자들에게 파는데 대체로 팔찌 등을 1달러라는 파격적인(!) 가격으로 판매하기 때문에 어린 장사꾼들이 모인 길목엔 '원달러'라는 외침이 여기저기서 들린다.
사람 심리라는게 일방적으로 하는 구걸에는 고개를 외면할 수 있어도 오히려 아무리 허접할 지언정 저렴하게 무언가를 판매하는 아이들까지 외면하기 힘든 법. (어쨌든 정당한 돈벌이 아닌가) 더군다나 남루한 복장을 하고 음료수 한 캔 가격 밖에 안되는 1달러(1천원)이라는 가격으로 이 팔찌 한 개만 사달라고 성글성글한 눈으로 애원하는 아이들을 뿌리치기란 보통 내공으론 불가능하다. 그래서 수많은 여행자들은 이 어린 1달러 장사꾼들이 서있는 길을 한번 지날 때 마다 주머니에 담긴 1달러짜리는 모두 탈탈 털리며(?) 오기 마련이다. 팔에는 남녀 할것없이 팔찌를 주렁주렁 매달고.
이 팔찌 장사의 역사는 오래되었는데 심지어 10년 전. 인도에서 만난 - 캄보디아를 거쳐 인도로 여행왔던 - 한 오라버니 여행자는 나에게 캄보디아에서 산 팔찌들인데 들고다니기도 귀찮고 도대체 어디다 써야할지 모르겠다며 가방에서 팔찌 무더기를 꺼내더니 내게 몇 개를 주었었다. 놀라운건 10년 전에 내가 받았던 팔찌와 똑같은 팔찌를 아직도 캄보디아에서 팔고 있다는 것. (허허)
허기진 몸으로 땀을 콩죽같이 흘리며 식당들이 모여있는 외곽으로 걸어가는데 큰 길 주변으로 어린 1달러 장사꾼들이 서있는게 보였다. 점심 시간이 훌쩍 지나서일까 아니면 날씨가 궂어서일까. 풍문으로 듣던 바와는 달리 그닥 아이들이 많이 서있지는 않았다. 그나마 있던 아이들도 베테랑 장사꾼들 이었는지 딱 보고 돈 있는 사람들에게로 몰려갔다. (이 말인 즉 중년의 백인 여행자들에게 몰려갔다는 뜻)
'아....내가 없어보이긴 하는구나' 하는 착잡한 마음과 가슴 아픈 아이들을 상대하지 않아도 된다는 안도감에 얼른 아무 식당에나 자리를 잡고 앉았는데, 숫기가 없어서일까, 아니면 무엇때문에 경쟁에서 밀려난 걸까. 큰 길가에서 벗어난 주변에 쭈뼜거리며 서 있던 한 소녀가 내게로 오더니 팔찌를 내밀며 수줍게 말했다.
"팔찌 하나만 사주세요. 정말 싸요. 한 개에 1달러밖에 안해요."
앙코르 왓 내의 식당에서 먹은 볶음밥 (2.5달러)
- 보기보다, 생각보다 훨씬 맛있어 놀랬던 음식
솔직히 말해서 난감했다. 어린 아이들이 물건을 팔거나 구걸하는건 아무리 당해도 익숙해지지 않는다.
일단 숨이나 돌리고 나서 사달라고 부탁하면 빨리빨리 대응을 할텐데 지치고 허기져 죽겠는데 음식 주문도 하기 전에 와서 사달라고 애원을 하니 이거 참. 그래서 아이에게 약속했다.
"알았어 내가 팔찌 사줄게. 근데 주문이라도 좀 하고 사면 안될까? 언니가 지금 배가 너무 고파서..."
아이가 고개를 끄덕이더니 얼른 자기가 서 있던 '주변'으로 돌아간다. 볶음밥을 주문하고, 차가운 아이스티 한 캔도 들이킨 후 고개를 들어 아이를 보니 아이가 다시 내게 걸어왔다. 얼른 여러 종류의 팔찌를 보여주며 1개에 1달러 밖에 안한다고 강조하는 소녀. 손으로 깎은 조잡하지만 어쨌든 핸드메이드인 팔찌들. 한 개에 1달러라면 비싼 가격은 아니지만 그래도 거래의 기본은 흥정. 게다가 거래는 할 지언정 호구가 될 필요는 없는 법.
"에이~ 한 개에 1달러면 비싸지 않니?"
"비싼거 아니에요. 그럼 3개에 2달러에 드릴게요. 그건 어때요?"
마치 기다렸다는듯 매뉴얼대로 술술 읊어대는 아이가 슬프면서도 귀여워 나도 흥정을 길게 끌지 않았다.
"그래, 3개에 2달러에 가져갈게"
"선물은 안사세요? 친구들도 좋아할거에요"
그러더니 스카프를 파는 언니뻘 되는 소녀까지 데리고 와 나에게 물건을 사달라고 애원하기 시작했다. 애원. 캄보디아 아이들의 장사의 기술은 '애원'이다.
아이들은 여행자들에게 매달리다시피하며 물건을 하나만 사달라고 애원을 한다. 영화 슈렉의 장화신은 고양이처럼 애처러운 눈빛으로 사정사정하는 아이들을 보면 불쌍하고, 안쓰럽고, 나중엔 미안한 마음까지 들어 지갑을 열지 않을 수가 없다.
반면 같은 아시아권인데도 인도 아이들의 장사(내지는 구걸)의 기술은 캄보디아와 완전히 다르다. 인도 아이들의 구걸의 기술은 '악착'.
'박쉬쉬'를 외치며 여행자를 따라다니는 인도 아이들은 절실하다 못해 악착같이 여행자를 쫓아다니며 돈을 달라고 졸라대고 일단 한 명한테 주면 순식간에 벌떼같이 아이들이 몰려들기 때문에 여행자들은 그들의 악착같음에 오히려 학을 떼고 외면해버리는 경우가 많다. (돈 주지 말아요. 지갑 여는 순간 동네 애들 다 뛰어오니까)
따라서 냉정하게 표현해보면 장사 기술은 캄보디아 아이들이 더 좋은편이다. 아이들이 어른들의 심리를 이용할 줄 안다고나 할까.
여담이지만 앙코르 왓의 어린 1달러 장사꾼들이 파는 팔찌는 원래 3~4개에 1달러라고 한다. 혹자는 어린 장사꾼들은 장화신은 고양이같은 눈빛으로 물건을 팔지만 돌아서면 정말 장화신은 고양이같이 변하니 주의하라고 말하지만...그냥 알고도 속아주고 싶은 것이 여행자의 마음.
구걸하지 않는 것만으로도 고마운 마음이 들어 오히려 아이들에게 미안했다는걸 아이들은 과연 알까?
전형적인 힌두식 기둥들과 아름다운 압사라들
- 인도의 힌두식 사원에서 많이 볼 수 있는 양식으로 크메르인들이 힌두 양식을 그대로 따랐다면 아마 줄로 일일이 갈아서 만든 기둥일게다.
인도의 한 사원에선 몇 개의 기둥에는 다른 돌을 써서 악기처럼 연주할 수 있게 만들기도 했는데 앙코르 왓에선 어떤지 궁금하다.
압사라들의 아름다움엔 진심으로 감탄을 금치 못하겠다.
- 사진의 압사라는 앙코르 왓에 몇 안되는 치아를 드러내고 웃는 압사라 (이 아가씨 찾느라고 얼마나 헤맸는지. 후후후)
식사를 마친 후 다시 건물 내부로 들어왔다. 천천히 구경을 하는데 눈에 띄는건 아름다운 압사라들. 자그마한 키에 올록볼록 글래머러스한 몸매. 고양이같이 진한 눈매에 뚜렷한 이목구비가 현대의 캄보디아 여인들과도 흡사하다. 이 압사라들은 각 부조가 실제 모델이 있었다는 설이 있을 정도로 모두 표정이나 생김새가 조금씩 다른데 대부분이 알듯말듯 오묘한 미소를 띄고 있다. 하지만 몇 개의 압사라가 치아를 드러내고 웃고 있다고 하는데 바로 요 압사라들을 찾는게 요 앙코르 왓 보물찾기의 또 다른 재미.
책에서 말하는 위치를 찾아가며 헤매는데 아무리 충전해도 이미 방전된 체력은 완전히 돌아오지 않고 방향감각을 잃은 몸뚱이는 같은 자리만 빙빙 도는 기분이 든다. '이 아가씨야~ 도대체 어디 숨어 있는거야'하는 말이 나올때 쯤 나타난 치아를 드러내고 웃는 압사라.
이 압사라는 어떤 사연을 가지고 있는걸까? 혹시 이 부조를 새긴 장인과 연인 관계라도 됐던걸까? 아니면 장인이 짝사랑하는 그녀를 위해 목숨걸고 그녀의 특징을 살려 이 부조를 했던건 아닐까? 아니면 왕의 총애를 받는 압사라였던 걸까? (인정한다 확실히 난 영화를 너무 많이 봤다 -_-;;)
드러나보이는 치아만큼이나 활달해보이고 강해보이는 이 압사라는 그녀의 개구진 표정만큼이나 생동감있는 얼굴로 내가 말을 거는 듯 했다.
"옛날엔 남과 다른게 싫었는데 지금은 행복해요. 남과 다른 특징이 나를 더 사랑받게 만들었어요"라고.
머리가 잘린 불상들
- 가난한 자손들은 조상들의 화려한 유산들을 제 손으로 잘라 외국인들에게 팔아넘겼다.
앙코르 왓에서도 무지한 인간들의 유적지 훼손의 손길을 피할 수는 없었나보다.
- 자세히 보면 돌 벽을 아예 정으로 파놓았다. 중국에도 유적지에 낙서하면 자식이 잘된다는 미신이라도 있는겐지...(허허)
드디어 중앙 성소
- 오른쪽 아래에 앉아있는 분들이 복장 검사를 한다. 복장 불량은 가차 없이 아웃!!
기억도 나지 않는 어느 복도. 관리도 깔끔하게 되있지 않고, 햇빛조차 잘 들지 않는 그 곳에 목이 잘린 불상들이 나란히 앉아있었다.
아...이제 기억이 난다.
가난에 허덕이던 캄보디아인들이 자신들의 조상이 남긴 찬란한 유산인 불상들을 제 스스로 목을 잘라 팔았다는 슬픈 이야기. 그래서였을까. 프놈펜에 있는 국립 박물관엔 유독 머리만 덩그러니 남아있는 불상들이 많았던것 같기도 하다. 어두운 복도에 줄을 지어 앉아있는 머리없는 불상들은 그 자체로 캄보디아의 과거이자 현재였다. 부인할 수 없고, 외면할 수도 없으며, 다시 복원조차 시키지 못하고 있는 어두운 과거.
그리고 다른 한 쪽엔 중국인들의 부끄러운 과거가 자리하고 있었다.
한 쪽 벽면에 크게 자리한 한자로 된 낙서들. 분필이나 펜으로 쓴 게 아니라 아예 정으로 파놓아 영구적인 훼손 시켜놓은 지울수도 외면할 수도 없는 부끄러운 상흔들. '도대체 어떤 정신 상태를 가져야 1천년이 넘은 유적지에 낙서를 한단 말인가!'하고 화가 나기도 하지만. 하긴...남 욕해서 뭣하랴. 불과 40년 전만해도 우리나라의 유적지나 관광지에 갔을때 낙서를 하는건 지금처럼 손가락질 받는 일이 아니었다. 무지하지만 자식 사랑만큼은 끔찍했던 예전 우리네 부모님들은 유적지나 관광지에 당신 자식들의 이름을 새겨넣으면 잘 된다는 미신을 믿고, 가는 곳마다 자식들의 이름을 그렇게 새기고 다녔더랬다. 뿐이랴. 인도에선 한 술 더 든다. 그 유명한 아잔타, 엘로라 석굴에 가면 아예 인도인 관리들과 왕들이(!) 새겨놓은 낙서들이 벽마다 그득그득하다. 아예 낙서가 벽화 자체를 뒤덮어 복원조차 못하고 있는 벽들도 수두룩할 지경. 이쯤되면 후손들의 무지 때문에 조상들의 화려한 유산들이 수난을 당하는 것 같아 보는 사람이 심지어 외국인인 내가 다 미안할 지경이다.
어쩌겠나. 인류는 하나라는 키치아래 아래 후손 된 입장으로 죄송합니다....인사하며 지나갈 수 밖에. 물론 인류애는 개뿔이라는 이중적인 못된 성질머리로 '저 썩을 놈들 (유적지에 낙서하는 인간들)은 언제나 정신차리려나'하는 투덜거림까지는 막지 못하겠지만 말이다.(쿨럭)
중앙성소를 지키는 네 개의 불상 중 가장 인기가 많았던 불상 앞에서.
- 이때까지만 해도 난 사람들이 뒤에 서 있는 저 거대한 불상을 찍기 위해 저렇게 몰려들었다고 생각했다.
중앙 성소에 올랐다. 현재 만들어진 나무 계단도 꽤 가파른 편인데 2007년도만 해도 새로 만들어진 나무 계단 대신 원래의 중앙 성소 계단을 이용해야해서 방문자들은 기다시피 계단을 올랐다하니 편해져서 고맙기도 하지만 오리지날을 경험해보지 못해 아쉽기도 하다. 근데 말이 편하다는거지. 이 계단도 각도가 장난이 아니다. 태국의 새벽사원(왓 아룬)이나 캄보디아의 앙코르 왓에 있는 계단을 이렇게 가파르게 만든건 그만큼 신에게 다가가기 힘들다는 뜻을 의미함과 동시에 신앞에 겸손함을 유도하는 것이라고 하는데.....어이구야. 부실한 인간은 신 근처에도 못가겠다 싶어 한숨이 절로 나왔다. 도대체가 옛날 사제들에게 신은 사지육신 멀쩡한 인간만을 위한 신인가 싶어 겸손함을 유도하는 계단 위에서 오히려 오만함을 느꼈으니....인정한다. 내가 좀 비뚤어진 인간이기는 해. (쿨럭)
성수기엔 방문자가 많아 중앙성소에 올라가는 사람을 한 번에 100명으로 잘랐다고 하는데 다행히 비수기인지라 중앙 성소 내부가 한산하다. 천천히 경치를 구경하는데 중앙에 있는 불상 앞에 사람들이 가득이다. 멀찌감치 보니 거대한 불상의 상반신이 보인다. 아....불상 때문이구나. 뒤에서 얼쩡거리면서 까치발을 들고 구경하려고 해도 사람들 때문에 앞이 보이지 않는 상황. 진짜 힘들구나 신에게 다가가는건. 한숨을 푹 쉬며 뒤에서 사람들이 빠져나가길 기다렸다. 드디어 빠져나간 단체 관광객들. 카메라를 들고 불상 앞으로 다가가니.....
아.......
거대한 부처님 앞에 자그마한 와불상이 있었다.
숨이 막힐 정도로 강렬한 충격을 주었던 와불상
중앙 성소 꼭대기, 성스러운 앙코르 왓에서도 가장 성스러운 그 곳에 가면 부처님이 평화로운 표정으로 누워계셨다.
신에게 다가가기 위해 애를 쓰는 인간은, 마음의 평화를 찾기 위한 여정을 계속하는 인간은. 부처님 근처에 다가가는 것조차 이렇게 힘든데 이미 마음의 평화를 얻은 자는 편히 제 자리에 누워 잠을 잔다.
마치 뭘 그리 힘들게 여기까지 올라왔냐는 듯이.
갑자기 눈물이 왈칵 고였다. 주황색 법복까지 덮고 평화로운 표정으로 주무시는 부처님을 보니 갑자기 내 지난 시간들이 스쳐지나갔다.
힘들었던 취업. 2년 5개월 동안의 비참했던 직장 생활. 퇴사를 결정하기까지의 그 기나긴 고민과 고뇌의 나날들. 그리고 이어진 여행을 준비하던 힘든 시간들. 멕시코로 인도로 그러다 결정한 태국과 캄보디아. 행복해지고 싶다는 생각 하나로 떠나온 여행인데도 불구하고 끝없는 의심으로 가득했던 방콕에서의 시간들.(내가 제대로 여행하고 있는걸까)
그리고 하루 종일 발바닥이 붓도록 걸어다니다 마지막에 올라온 이 곳에서 온 몸이 땀과 비로 젖고, 체력은 바닥을 치는 그 상태에서 부처님은 편안하게 누워 나에게 말을 걸었다.
"도대체 무얼 기대하고 여기까지 온거니?"
난 무얼 기대하고 여기까지 온 걸까. 속이 썩어 문드러지는 듯한 시간들을 견디고 견뎌 힘들게 모은 돈으로 이 곳에 왔다. 여행이 고행인냥 하나라도 더 봐야된다며 버둥거린 오늘 하루. 난 행복한가?
평화로운 부처님 앞에 내 자신이 부끄러워 고개를 돌렸다. 신선한 공기가 마시고 싶어 밖을 볼 수 있는 난간으로 향했다. 눈 앞에 앙코르 왓의 전경이 펼쳐졌다.
벅찬 가슴으로 아래를 내려다보니 아름다운 앙코르 왓이 눈 앞에 펼쳐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