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상한 남자의 인도차이나 표류기 3. 그녀와의 하룻밤 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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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한 남자의 인도차이나 표류기 3. 그녀와의 하룻밤 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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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 괴뢰정권 출신으로 일인 독제채제를 굳건히 하고 있는 훈센의 개발정책 아래 대단위로 몰려든 해외자본들이 사방팔방으로 오뉴 월 미친년 널 뛰 듯 넘실거리고 그 중심에 프놈펜이 있다(이 중 한국자본이 유독 졸렬한 짓을 한다. 배운 게 도둑질이라고 땅투기에 여념이 없다. 이래저래 박정희와 훈센은 닮은 꼴이다). 높아져가는 빌딩이 커다란 그림자를 지니는 것처럼, 급속도로 몰려든 자본에 양극화는 피할 수 없는 셋트 상품, 그 양극화의 극단으로 치닿는 프놈펜의 밤과 낮은 천양지차의 틈이 벌어져 있다(고 한다).

소매치기는 기본, 강도는 필수, 옵션에 따라 야자수 칼로 가방을 둘러멘 어깨를 날려버리고 가방만 들고 튄다는 둥, 지나가다가 납치되어 옷가지와 지갑은 물론 장기가 몽땅 털려 시신수습조차 어렵다는 둥 하여간 프놈펜의 밤은 살벌한 무법지대로 묘사되곤 한다. 허나 소문이란 그 특성상 과장에 의해 생겨나는 것, 소문에 크게 게의치 않는 성격이다, 나. 

평소와 달리 혼자라면 게의치 않을 일이 둘이라 복잡해졌다. 더군다나 상대는 루이스. 어딜 가야 루이스를 안심시키고 흥청망청 즐거울 수 있을까, 라는 고민으로 계단을 밟았다. 그리고 몇 발자국 지나지 않아 고민은 끝을 맺었다. 호스텔의 1층 레스토랑은 성업중이었고 마감시간 또한 적잖이 남았었다. 이 호스텔을 예약한 일은 참으로 잘 한 일이다. 그럴싸한 수영장이 내겐 그저 관상용에 불과했다 하더라도.

적잖은 취기에도 불구하고 술은 술을 불렀다. 내가 술을 마시는 지 술이 나를 마시는 지... 이른바 몰아일체. 그 근저에 루이스가 있었음은...... 아, 일러 무삼하리오.

"여성의 아름다움은 곧 정의야.
그 아름다운 정의는 지구를 보다 나은 별로 만들지.
그래서 나는 지금 전 지구인을 대표해서 네게 감사하고 싶어.
고마워. 아름다운 아가씨 루이스."

남조선에서라면 구타와 구토를 유발할 작업멘트임에도 루이스는 즐거워 했다. 알고 있었다. 이미 몇 번 써먹었던 경험으로 미루어. 그러한 멘트들이 주를 이뤘다. 예를 들어,

"몇 살이야?"

"스무살."

"아름다운 나이야. 근데 니가 니 나이보다 훨씬 더 아름다워."

매번 가득히 웃었고 그 웃음이 사람 환장하게 했다. 내가 주로 말하고 루이스가 주로 들으며 함께 마셨다. 제 정신이 아닌 듯 즐거웠다가도 그녀의 상앗빛 목덜미를 마주하면 그 흥분과 설레임이 서늘해지곤 했다. 그리고 처음으로 말해 본 이야기가 있었다.

"방콕에서 씨엠립 그리고 여기 프놈펜까지 나는 늘 도미토리만 썻어.
그리고 넌 내가 왜 반드시 도미토리를 써야하는 지에 대한 가장 명확한 대답을 줬어."

거짓을 보탤 이유가 전혀 없는 진심이었다. 도미토리를 애용하는 여행자가 품을 수 있는 기대, 혼자 하는 여행의 외로움을 상쇄시켜 줄 좋은 친구 그리고 그 기대의 절정에는 빛갈이 다른 아름다운 여성이 존재한다. 자고로 낯 모르는 여자가 더욱 아름다운 법이다. 언제 어디서건.

희희낙낙, 하하호호를 연 잊는 사이, 방만한 취기는 늦어가는 시각에 따라 범람에 이르렀다. 그 밤의 종지부는 달콤하게 왔다.

"너 나 사랑해?"

"물론이지, 루이스. 어떻게 널 사랑하지 않을 수가 있겠어. 이렇게 아름다운데."

"미안해 진. 나 남자친구 있어."

"그건 별로 중요한 게 아냐. 중요한 건 이 밤 네게 사랑을 말하는 사내가 바로 나란 거지. 키스해 줘, 그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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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은 깊게 흘렀다. 하일라이트에 달한 피로와 클라이막스를 친 취기가 더 없이 차지게 버무려진 가운데 맹렬한 기세로 잠에 빠져 들었다. 쿠션감각에 인색한 매트리스는 안개 보다 포근하게 나를 끌어 당기고 여백 없이 나를 메웠다. 눈 한번 깜짝할 수도 손가락 하나 까딱할 수도 없는 그런 상태 속에서 의지와 무관하게 청력만이 살아 있었다(청력은 사람이 죽고도 얼마간 산다더라). 루이스의 것으로 추정되는 물소리가 그 어떤 자장가보다 달콤하게 와 닿았다. 대략 서너 번즘의 옴니버스로 구성되던 평소의 꿈이 말끔하게 사라진 밤은 달디 달았다. 아침이 서둘러 올 만 했다.

눈꺼플 위로 아지랑이 일렁이는 간지러움에 눈을 떳다. 제 멋데로 늘어졌던 뼈 마디가 빈틈 없이 헤쳐모인 듯 팽팽해진 몸으로 맞은 아침은 뭔가 개연성이 없어 보일 정도로 화창했다. 여직 단잠에 취한 루이스를 두고 나서는 길, 위험성이란 단 1%로도 감지되지 않는 순도 99%를 지닌 사람들의 미소 속에 커피와 담배가 좋은 앙상블로 한껏 가벼워진 기분을 달궜다.

그 기분이 눈물로 추락하는 데는 그리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뚤 슬랭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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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일팔 국립공원을 찾았을 때가 그랬다. 그 광기의 기록 앞에 몸이 먼저 전율했다. 그리고 뚤 슬랭은 그에 비해 하나도 못 하지 않았다. 가슴에서 시작한 화염이 눈자위를 붉게 멍들였다. 아, 어떻게 인간이 인간에게......

그럴 수는 없다. 허나 인간만이 인간에게 그럴 수 있음을 지난한 역사는 오랫동안 증명해 왔다. 킬링필드는 비극을 넘어 섰다. 비극이란 일정 부분 나름의 비장미를 지녔을 때 성립될 수 있는 단어다. 뚤 슬랭이 기록하는 과거는 비극이 아닌 참극이다. 그 참극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을 머리 숙이게 하고 싶었다. 나라는 전 존재가 한 없이 부끄러웠다. 아침으로 이어 온 취기는 슬픔을 불렀다.

돌아 나오는 길 새하얀 참파꽃 한 송이가 몸을 떨궜다. 지난 세월, 어그러진 욕망이 잉태한 참사를 모조리 목격하며 피고 지고 또 피어났을 그 하얀 얼굴과 침묵이 슬프고 또 아름다웠다.


돌아온 시각은 아홉 시. 마땅히 하고 싶은 일이 없으니 마땅히 해야 할 일도 없다. 그래서 술을 마셨다. 이상한 동양인 하나가 호스텔에 들었다는 소문이 두루두루 났는지 여기저기서 아는 체를 해댄다. 그 이상한 동양인 하나가 식전 댓바람부터 술을 마시는 이상한 광경을 연출하고 있으니, 처다보는 눈초리에 궁굼증이 가득하다. 그러거나 말거나 술을 마셨고, 그러거나 말거나 술은 달았다.

"나는 술을 마셨고 그래서 세상이 형편없이 보였고,
또 세상이 형편 없어 보였음으로 안심하고 네 다리 쭉 뻗고 잤다."

시인 오규원의 진술처럼 세상은 형편 없어 보일 때가 종종 있다. 실은 많타. 스스로의 비루함을 감추기 위한 위악이라 비웃어봐도 조로한 청춘이 요지부동의 오기를 부릴 때면 달리 방법이 없어 그저 술을 마신다. 술은 언제나 형편 있다. 그래서 늘 술을 사랑한다. 그리고 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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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 모닝 진~." 귀에 익은 낭랑한 음성엔 달달한 온기를 베어있다. 가슴 덜컹거리는 설레임이 동반된.

"굿 모닝 루이스~."

"아침부터 술이야?"

"술 마시는 데 정해진 시간이 있나. 먹고 싶으면 마시는 거지."

"아침에 어디 갔었어?"

"뚤 슬랭 갔다 왔어."

"아, 거기 슬픈데."

"그래서 좀 슬프네. 달리 하고 싶은 게 없어서 술 한 잔 하고 있어."

"5분만 기다려~."

뭘 하려는 지는 모르겠으나 5분만 기다리라던 루이스는 15분 후에야 내 앞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크지 않는 제 몸뚱아리에 비해 턱 없이 큰 배낭을 짊어지고 내려온 루이스는 떠나기 전까지 여기 있겠다고. 청연한 아침이 고스란히 얼굴에 베어있었다. 다시 봐도 예쁜 루이스.

"노래 불러 줄께. 기분 풀어."

"날 위해?"

"응. 오로지 널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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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놈펜에서 단돈 20달러에 샀다는 짙푸른 색의 기타를 허벅지 위에 안치시키곤 가벼운 워밍업, 약간은 쑥쓰러운 듯한 그래서 더욱이 예쁜 촌철살인의 미소 한 방 날려주시곤 연주를 시작했다.

'뭐더라, 이 애잔한 멜로디? 아... 아... 그러니까 아하!' 그 정체를 알아차리는 짧은 사이 멜로디만치 애잔한 음색이 시작을 알렸다. "I don`t know you But I want you All the more for that". 영화와 음악의 가장 절묘한 조화를 보여준 Once의 메인 타이틀 Falling Slowly 였다.

역시나 명필은 붓을 탓하지 않고, 좋은 무사는 검을 가리지 않는 법, 노래하기에 썩 훌륭하지 못한 시간과 싸구려 기타에도 불구하고 음색과 연주 얄짤 없이 훌륭했다(이 상황에서 뭔들 싫겠냐만은). 노래는 뒤를 이었다.

Words fall through me
Always fool me
And I can`t react
And games that never amount
To more than they`re meant
Will play themselves out

이제는 점차 빨라지고 높아져가야 할 때, 슬며시 눈을 감았다. 호흡은 멀리 달렸다가 금새 돌아오곤 했다. 나는 그 정취가 말할 수 없이 아스라했다.

Take this sinking boat and point it home
We`ve still got time
Raise your hopeful voice you have a choice
You`ve made it now

Falling slowly, eyes that know me
And I can`t go back

엶은 웃음이 짙게 베었다. 수순을 잃은 시간이 때론 신비롭게 때론 눈물겹게 때론 향기롭게 그 어떠한 몸짓보다 아름답게 변주되며 순간인 양 영원인 양 그렇게 흘렀다. 말로는 다 이르지 못할 아, 이토록 황홀한 시간.

'이하 생략' 으로 마무리 되기까지 나는 감격에 겨웠고 나보다 앞서 아침을 먹던 인간들 몇몇이 박수를 쳤다. 나또한 빠르지 않게 그리고 늦지도 않고 가볍되 뜨겁게 그들의 뒤를 따랐다. 내 안에선 격정의 심사가 휘몰이장단으로 요동쳤다.

떠나오지 않았다면 절대로 만날 수 없는 순간. 나는... 그만 행복해져버렸다. 술은 더욱 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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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머리 사이즈란 얼마나 다양한 것이던가)
 
전에 없던 새로운 시간에 매료되고 나면 도리 없이 지나온 시간들이 오버랩 된다. 그 대부분은 우울한 반추, "나는 세상 모르고 살았노라" 또는 "
난 참 바보처럼 살았군요" 라는 송골매와 나도향 식의 회한에 도달하게 마련. 나는 뭘하고 살았길래 이 순간을 이제서야 만났는가(이렇게 늙어버린 지금에). 상념의 굴곡이 기억을 파고드는 연민이 베인 듯 아리다.

"아침 먹고 땡, 점심 먹고 땡, 창문을 열어보니 비가 오네요" 이런 날이면 미뤄둔 업무를 마져 미뤄두고 30촉 백열등이 그네를 타는 허름한 주막에 둘러 앉아 하나마나한 시시껄렁한 이야기로 쓸데없이 히히덕거리며 사발을 부딧치면 좋을 일. 허나 오늘의 출근부에 도장을 제낀다면 내일의 살생부에 제 이름을 올려야 할 지도 모르는 인정머리 없는 생활의 압박. 컨베이어 벨트 같은 지하철에 지친 몸 구겨넣고 회사와 집이라는 공허의 싸이클만 주야장천 반복하다 광화문 네거리 신호등 앞에 서서 어느세 한 템포 낮아진 어깨, 반 박자 느려진 걸음으로 문득 올려다 보는 하늘.

아, 인생.

뉘라서 그리 살고 싶겠는가만은 우리 대부분은 그렇게들 산다. 왜? 불안하니까.

욕망하지 않는 인간은 없다. 욕망하는 인간에게 있어 불안이란 야누스의 두 얼굴이며 동전의 양면, 불가분의 원 플러스 원이다. 좀체로 거부하기 어렵고 박차고 일어나기 버겁다, 무섭다. 우리의 불행에는 이유가 있다. 허나 또한 우리는 안다. 붙박이 일상이 생활의 안정을 보장해줄 지언정 불안의 뿌리를 잘라낼 수 없고 그 안정에는 지독한 권태가 뒤따른다는 것을. 이래저래 고달프다.

비상구, 일단 내빼고 봐야 할 그 쌍방향의 환장할 시츄에이션에 있어 유사이래 최고의 마약은 종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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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신의 포스란, 바로 이런 것 아니겠는가)


종교의 가장 큰 미덕은 '나는 누구인가? 당최 무엇하려 사는가' 류의 존재 & 실존론적 허무로부터 든든한 보호막이 되줌은 물론 로또가 아닌 이상 좀체로 나아지기 어려운 개떡같은 현실을 위무하는 최고의 마약으로 작용해 왔다. 하여 그 미덕이 지배계급으로 하여금 "주여, 믿습니다" 를 외치게 하는 절대적인 원인이다.

"오빠에게 필요한 것은 삼겹살에 소주가 아니라 주님의 손길이야" 라고 단언하는 소망병원 미소천사 류간호사가 들으면 학을 떼고 경을 치고 내 싸데기를 칠 소리지만 "네가 나를 모르는데 난들 너를 알겠느냐" 라는 몹시 타타타스러운 방관으로 인생 깔금하게 막 사는 내게 있어 신과 신이 약속한 내세는 개미 콧구녕에 코딱지 만큼도 믿을 게 못 된다.

내게 권태보다 나쁜 건 없었다. 권태는 흔들려야 이겨낼 수 있는 법, 하여 기껍게 거머쥔 불안. 그 불안을 안정시키고 이곳이 아닌 다른 곳을 염원하는 나를 능히 길 위에 세우는 원동력이자 생애 가장 강렬한 애착 그리고 믿음이 있다면 그건 바로 이토록 은혜로운 순간이겠지. 능히 신의 대체자로 존립할. 그리고 성서의 부재를 말끔하게 채워줄 술. 바로 지금 이 순간, 이거면 제법 그림이 된다. 나의 방랑에는 종교가 있다.

어쨋거나 저쨋거나 그건 뭐 그렇타 치고,
미천한 나를 위한 그녀의 숭고한 노력에 화답이 없을 수 없다. 저주에 가까운 노래실력을 지닌 내가 주둥이로 할 수 있는 그나마 나은 짓이 시다. 여느 때보다 훨씬 느끼하게 입을 뗏다.

술은 입으로부터 오고
사랑은 눈으로부터 오나니
우리가 늙어서 죽기 전에
알아야 할 진리는 그 뿐
나는 입에다 잔을 들고
그대 바라보며 웃음 짓노라.

생의 백미는 만취에 있다고 노래한 바이런 만은 못 해도 그 절반은 가는 예이츠의 싯구절에서 마지막 '한 숨 짓노라' 를 '웃음 짓노라' 로 바꿔 읊었다(한 숨 짓노라, 는 영어로 뭐지?). 유사이래 최고의 파트너로서 명성을 쌓아온 '주색' 을 주제로 했으니 상황에 더 없이 걸맞기도 했으나 내게 있어 이 시의 가장 훌륭한 점은 번역이 쉽다는 것이었다.

싫어도 꾸역꾸역, 뜯어 말려도 반드시 가고야 마는 시간, 이제는 우리가 헤어져야 할 시간, 다음에 다시 만날려면 일단 이별이 있어야 겠다. 우리는 오래도록 끌어안았다(주로 내 쪽에서).

"알 러 뷰, 루이스". "알 러 뷰, 진".

멀어져가는 그녀의 걸음에 가슴이 벅찼다. 단지 슬퍼서만이 아닌 이유로.

그녀의 노래 Falling Slowly가 의미하는 것처럼 나는 그녀를 잡아야 했을까? 그랫을 지도. 허나 일찍 사라졌기에 오래 기억되는 자들이 있고 짧기에 더욱 아름다운 사랑도 있지 않턴가. 짧은 생 혼신의 힘을 다해 자신을 떨구는 벗꽃처럼. 그것으로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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녀를 떠나 보내고 자리를 작파한 후 나는 거리로 나섰다. 시장의 활기를 북돋우는 사람들의 웃음 속엔 여전히 청연한 아침이 있다. 건기의 화창함이 거리에 고스란했고 투정을 부리는 아이의 짜증에도 생동했다.

성 정체성이 불분명한 요란한 옷차림을 한 이방인이 오렌지를 서툴게 벗겨내다 귀찮은 듯 한 입에 삼켰다. 과즙이 밖으로 튀고 턱 밑으로 흘렀다. 그 모양새에 사람들은 잔뜩 웃었고 흐르는 과즙에 젖는 셔츠를 고려치 않고 나도 한껏 웃었다.

도리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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