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남자의 수어스다이 캄보디아(9)
- 앙코르 유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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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30일 월요일. 투어 시작이 8시부터라서 조금 늦잠을 잘 수 있었다. 장원에서 아침을 먹는데 얼마나 행복하던지... 밥 + 된장국 + 계란후라이 + 김치 + 콩자반. 간만에 먹는 한식은 꿀맛이다.
오늘은 앙코르 유적을 도는 날이다. 어제 씨엠립 선착장에서 만난 잔타가 소개해 준 뚝뚝기사가 제시한 뚝뚝의 하루 대여비는 25불. 내가 알기로 장원에서는 뚝뚝 1대에 두 명 기준으로 12불이다. 그러면 우리는 2대가 필요해지는데, 친구들이 모두 반대한다. 돈이 문제가 아니라 이왕 같이 놀러왔으면 같이 다니자는 거다. 그렇게 넷이 1대에 타면 14불. 우리 기사에게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여기는 14불이라는데, 너 어떻게 할래?” 결국 녀석은 마지못해 자신도 14불에 하겠다고 했다.
앙코르 유적은 1일권을 끊었다. 가격은 20불. 보통 3일권을 끊어서 많이 구경들을 한다. 나도 10년 전에 왔을 때는 그렇게 했었다. 그런데 문제는 유적을 보면서 느끼는 감동이라는 것이 처음에는 아주 그럴싸하지만 벌써 이틀째만 되어도 여기가 저기 같고 헷갈린다. 아울러 쌓여있는 유적들에 대해서도 심드렁해져서 돌덩이로만 보인다. 따라서 이번에는 one-day ticket을 사서 하루종일 확실하게 느껴보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을 한 것이다.
제일 먼저 도착한 곳은 따 프롬(Ta Prohm). 저렇게 생긴 서문을 지나 안으로 걸어 들어가니 아침공기가 아주 상쾌하다. 자료에 나온 대로 이 시간에 오니 정글의 신선한 맛을 느낄 수 있어서 좋다.
이곳이 유명한 이유를 잘 보여주는 모습이다. 영화 <화양연화>와 <툼 레이더>에 나왔던 장면이다. 열대 무화과나무와 보리수나무의 뿌리가 어떻게 사원을 파괴하는지를 잘 보여준다. 과학에서 말하는 풍화도 이와 같은 현상이다. 서문으로 들어가서 사원을 관통한 다음 동문으로 나왔다.
두 번째로 이른 곳은 따 께오(Ta Keo). 10세기 후반에서 11세기 초반에 지어지다가 중단된 사원이다. 그 이유가 몽고의 침입 때문이라는 설도 있는데 확실하지는 않다.
사원의 입구는 이렇다. 이 사원이 완공되었다면 앙코르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원이 되었을지도 모른다는 말이 있다.
앙코르 와트 만큼은 아니지만 3층으로 오르는 계단이 가파르고 폭이 좁다. 특히 겁이 많은 나는 오르고 내리는 길에서 엉덩이로 바닥을 쓸고 다녔다.
3층에서 아래를 내려다 본 모습은 이렇다. 사원의 높이는 22m로 꽤 위풍당당한 모습이다.
이어 앙코프 톰(Angkor Thom)의 동문으로 입장. 예전에 왔을 때는 빡세이 참크롱(Baksei Chamkrong)을 지나 남문으로 입장했었다.
이 문은 <승리의 문>으로 불리기도 한다. 앙코르 왕조의 마지막 도읍지였던 앙코르 톰은 <커다란 도시>라는 뜻이다. 12세기 말에서 13세기 초에 건설되었는데, 당시 앙코르 톰의 인구는 100만명에 이르렀다고 한다. 같은 시기에 런던과 파리의 인구가 10만도 되지 않았다고 하니 앙코르 제국의 웅장함은 우리의 상상을 초월한다.
앙코르 톰 내부의 중심 건물이자 불교사원인 바욘(Bayon)이다. 앙코르 유적 내에서 앙코르 와트와 함께 가장 멋있는 건축물. 사람이 너무 많아서 매우 번잡하지만 뒤로 돌아가면 위의 사진과 같은 멋진 풍광을 담을 수 있다.
바욘에서 특히 눈여겨 볼 부분은 이와 같이 돌로 쌓아 만든 얼굴상이다. 주인공은 이 사원을 건립한 자야바르만 7세. 이 시기의 앙코르 제국은 베트남의 참파국을 복속하고, 태국 북부지역을 다스렸으며, 라오스의 비엔티엔에서도 그의 비문이 발견될 정도로 융성했다고 한다.
이어서 보이는 웅장한 사원은 바푸온(Baphuon)이다. 조금 전에 본 바욘과 달리 이곳은 시바에게 바쳐진 힌두사원이다. 중앙 부분은 프랑스 복구팀에 의해 복원공사가 한창이라 들어갈 수 없다.
다른 방향에서 본 바푸온이다. 건물 뒤편으로 와서 올려다보면 서쪽 벽으로 길게 누운 부처의 상을 볼 수 있다.
이렇게 보이는 또 다른 사원은 피미언아카스(Phimeanakas). <하늘위의 왕궁>이라는 뜻으로 왕궁 내부에 있는 왕실을 위한 사원이다. 이 시기에 이곳을 방문한 원나라의 사신 주달관(周達觀)이 남긴 기록에도 나온다고 한다.
이곳을 오르는 계단도 매우 가파른데, 다행히 옆에 나무로 만든 보조계단이 있어서 편하게 오를 수 있다.
작열하는 열대의 태양아래서 여기까지 돌고 나니까 벌써 지치기 시작한다. 아침도 양이 적어서 배도 고프고... 지금 여기는 아까 처음에 들어온 앙코르 톰의 내부이고, 따라서 북문으로 나가면 프레아 칸(Preah Khan), 닉 핀(Neak Pean), 따 솜(Tasom) 등의 보아야 할 유적이 더 있는데, 이제는 만사가 다 귀찮다. 무엇보다 힘들어서 그런지 이제는 유적을 봐도 감동이 없다.
걸어 나오면서 본 코끼리 테라스(Terrace of the Elephants)이다. 저 위로 난 길을 따라 300m를 걸으면 문둥이 왕 테라스(Terrace of the Lepper King)로 이어진다.
테라스의 담벽을 따라 걸으면 볼 수 있는 부조.
유적도 좋지만 금강산도 식후경이라 했다. 멀리 나가기도 귀찮고 힘들어서 앙코르 톰 남문으로 빠져 나온 다음 좀 괘찮아 보이는 레스토랑에서 점심을 먹었다. 나의 메뉴는 또 록락 스테이크. 이곳에 와서 완전히 반해버린 맛이다.
오후의 일정은 앙코르 유적의 백미라 할 앙코르 와트(Angkor Wat)이다. 원래 계획은 점심시간을 이용하여 지뢰박물관(Mine Museum)에 가는 것이었는데, 10년 전에는 시내에 있던 이곳이 지금은 도심에서 40km나 떨어진 곳으로 이전했다고 한다. 왓 트마이(Wat Thmei)에 가서 해골바가지를 볼까도 생각했으나 어차피 프놈펜에 가면 킬링필드 유적에 갈 것이어서 중복되는 감이 있다.
250m에 이르는 긴 통로를 따라 곁에 해자를 보며 들어가도록 만들어진 입구. 멀리서 보아도 렌즈에 전부 담을 수 없을 만큼 웅장하다. 동시에 오전부터 수많은 사람들의 절반은 한국인으로 봐도 무방했는데, 이곳에 이르자 한국인의 물결은 최고조에 이른다. 이제 한국인 패키지는 떼를 지어 이동하는 상황. 좋아진 것은 더 이상 자료집을 볼 필요가 없어졌다는 점. 가만히 있어도 한국인 가이드들이 손님들을 몰고 와서 설명을 해 주고 간다. 설명도 똑같아서 한 곳에 가만히 있으면 저절로 외울 수 있게 된다.
12세기 초반에 수리야바르만 2세가 지어 비슈누 신에게 헌정한 사원. 앙코르 유적 가운데 가장 큰 사원이며, 또한 보존상태도 가장 좋아서 크메르 건축 예술의 극치를 보여주는 역사적인 예술품이다.
가이드의 동선이라는 것이 판에 박힌 듯 정해져 있어서 그 경로만 조금 벗어나면 사람들의 홍수 속에서도 이렇게 고즈넉한 장면을 담을 수 있다.
1층 회랑의 부조. 4개면에 양각되어 있으며, 각각 서로 다른 주제를 담고 있다. 사진 찍는 척하면서 가이드의 설명을 귀담아 듣는데 용어부터 익숙하지 않아서 그런지 금세 잊게 된다.
다시 앙코르 와트의 내부를 걷는다. 멀리 보이는 중앙탑. 중앙부에는 복원공사가 한창이다.
“형! 일루와 봐”
앞에서 기다리던 동생이 다가오는 나를 불러 세운다.
“저게 뭔지 알아?”
“모르겠는데...”
“저건 도서관이야. 그렇다고 해서 공부하는 곳은 아니고, 학자들이 연구를 하던 곳이야”
내가 사진찍는다고 뒤로 처진 사이에 어떻게 이렇게 똑똑해졌나 했더니 그동안 패키지 세 팀이 지나갔다고 한다.
그림엽서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곳이다. 동시에 앙코르 와트의 모습이 가장 아름답게 보이는 곳이다. 일단 정면에서 볼 때는 3개로 보이던 중앙탑을 5개로 한눈에 볼 수 있다. 게다가 오후 시간이 되면 호수에 비친 모습까지 모두 10개의 탑을 볼 수 있다. 물을 마시며 앉아서 쉬는데 두 팀의 패키지가 지나가면서 똑같은 설명을 해주고 간다.
2층 회랑의 부조. 가운데를 자세히 보면 사람의 머리에 징을 박는 모습이 조각되어 있다. 크메르 루즈는 사람들을 고문하면서 앙코르 와트에 새겨진 부조에서도 아이디어를 얻었다고 한다.
드디어 앙코르 와트의 중앙탑이다. 탑의 높이는 2층에서부터 40미터. 경사각은 70도이다. 이곳은 신을 위한 공간인지라 사람들이 쉽게 접근할 수 없도록 이렇게 만들었다고 한다. 안전을 위하여 지금은 출입을 금지하고 있으나, 10년 전에 왔을 때는 이곳을 기어오를 수 있었다. 그 시절만 해도 내가 아직 젊어서 그랬는지 여기를 네 발로 기어올랐었다.
지금은 이렇게 나무로 계단이 만들어져 있어서 난간을 잡고 오를 수 있다. 안전을 위해서는 당연한 조치이겠으나, 대신 앙코르 와트를 오르는 “맛”이 없어졌다. 하긴 10년 전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만큼 사람이 몰리는 지금, 그냥 오르게 한다면 하루에도 안전사고가 속출하리라.
사람들이 몰려 있는 곳을 조금만 벗어나면 아직도 이렇게 고요한 유적을 만날 수 있다.
오늘의 마지막 코스는 프놈 바켕(Phnom Bakeng)이다. 앙코르 와트에서 북쪽으로 1.3킬로미터 떨어진 이곳은 높이가 67미터에 불과한 언덕이지만 주변에 높은 산이 없어서 꼭대기에 오르면 풍광이 좋고 특히 일몰이 멋있기로 유명하다.
이곳이 입구. 예전에는 정면에 보이는 경사면을 따라 직접 오른 것 같은데, 이번에 가 보니 사진의 오른쪽으로 오솔길을 만들어 놓았다. 아마도 유적을 보호하기 위한 심산인 듯. 상황이 이렇다 보니 오르는데 걸리는 시간은 약간 더 길어졌다.
정상에 있는 링가의 모습은 이렇다. 이 사원은 시바에게 바쳐진 것이라고 한다.
이곳에서 바라보는 풍경은 이렇다. 멀리 기구가 있는데, 관광상품 중에는 저것을 타고 하늘에서 앙코르 유적을 조망하는 것도 있다. 전에는 몰랐는데 이번에 보니 이곳에서의 전망은 바탐방의 프놈 삼빠우에서 보던 것보다는 훨씬 못하다. 아마도 고도가 낮아서인 듯... 그나저나 일몰을 봐야 하는데 보다시피 하늘에는 구름이 가득하다. 안 그래도 피곤하던 차에 구름이 많아 일몰을 보는 것이 힘들어지자 우리는 서둘러 하산을 결정했다.
숙소에서 휴식을 좀 취하고 저녁은 씨와타 거리(Sivatha Blvd)에 있는 압살라 댄스로 유명한 쿨렌(Kulen)2에서 했다. 저녁 뷔페를 포함해서 입장료는 10불. 춤은 지난 10년 전에도 두 번이나 봤는데 솔직히 시큰둥했고 그저 음식이나 배불리 먹어보자는 심산으로 갔다. 세계 각 나라 사람들이 모두 모이는 곳인 만큼 음식의 수도 많고 특별히 입에 맞지 않는 것도 없었다. 따라서 아주 맛있다고 할 수는 없겠지만 대체로 무난하다. 한국 사람들도 꽤 많았는데 단체관광객인가 하는 생각도 든다. 여기는 “김치”가 있어서 맛있는 줄 알고 많이 담아다가 먹었는데, 너무 단맛이 강해서 퇴짜였다. 길 건너편 가까이에는 럭키 슈퍼가 있는데, 여기서 “참이슬 프레쉬”는 불과 1.6불에 팔리고 있었다. 나는 그렇지 않았지만 소주를 좋아하는 다른 친구들은 좋아서 죽으려고 한다.
사족:
1) 세계 인류의 유적 앞에서 이런 말을 하는 것은 적절치 않지만, 유적보다도 관광객 중에 마음에 드는 여성분들이 어찌나 많던지... 처음에는 그냥 넋을 잃고 쳐다만 보았는데, 생각해 보니 그렇게 행동하는 것은 이상하겠더군요. 스토커 같기도 하고... 쳐다보는 것보다는 말을 시키는 것이 훨씬 낫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2) 바욘 앞에서 아주 스타일이 좋은 여성 2분 발견. 혹시 한국사람인가 생각했는데, 어쩐지 우리랑은 조금 다른 느낌이 들었습니다. 이후 바푸온 앞에 왔을 때 기회를 포착했습니다. 말을 시켜야죠. “What is this temple called?" 뻔히 알면서 대화를 시작합니다. 그 여성은 자기도 잘 모르겠는지 가이드북을 꺼내서 찾는데, 가이드북이 중국어판입니다. 그렇게 이야기를 나눠보니 이 여성은 대구대학교에서 어학연수를 받아 한국어도 할 줄 압니다. 이왕이면 이 분들하고 같이 다니고 싶어서 친구들을 모으려고 했는데 하필이면 다들 멀리 있어서...
3) 언젠가 뉴스에서 보니 한 해에 캄보디아에 들어오는 외국인 중 1위가 한국인이라고 합니다. 제가 10년 전에 아내랑 갔을 때만 해도 아직 인천에서 씨엠립으로 들어가는 직항편이 없던 시절이라 대부분 아란야프라텟 → 포이펫 국경으로 들어왔죠.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다릅니다. 인천뿐만 아니라 부산, 대구, 청주에서도 비행기가 떠서 하루 평균 직항수가 7대, 많은 날은 10대가 뜬다고 합니다. 비행기 한 대에 180명 타고, 탑승률을 80%로 잡으면 180*0.8*7=1008명. 그 외에 경유편과 국경 넘어서 육로로 오는 사람까지 치면 적어도 1,500명 이상입니다. 하루에 말이죠. 그런데 신기한 것은 이렇게 많은 한국인들을 씨엠립이 아닌 지역에서는 찾아보기가 쉽지 않다는 겁니다. 바탐방에서는 한 명도 보지 못했고, 프놈펜과 씨하눅빌에서 각각 2명을 보았습니다. 패션에도 가요에도 유행이 있듯 여행에도 유행이 있나 봅니다.
4) 앙코르 투데이 게스트하우스에서 바라본 씨엠립의 저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