쁘레아 비헤르
어느 책을 보면...
절대적 권력을 소유한 왕들도 감히 넘어서지 못한 수도원. 당랙산맥 중간의 신비로운 곳에 위치하여 구름도 위로 감히 넘지 못하는 사원
그곳이 바로 쁘레아 비헤르 이다.....라고 적어 두었다
역시..역시 였다.
사원은 893년 야소바르만1세시절의 산상 사원으로 지어졋다
(프놈바켕, 프놈북 등)
그러다가 후세왕들에 의해 꾸준이 증 개축 되었다
기록에는 수리야 바르만 1세와 2세때도 증축하였다고 한다
1904년 프랑스와 태국은 협정을 통해 태국과 캄보디아의 국경을 당렉산맥으로 결정하였으며 당랙산맥의 대부분은 해발 300미터 정도이나 이 사원이 위치한곳은 해발 525미터로 높아 멀리 100키로 떨어진 프놈꿀렌까지 관찰되는 지형에 있다
국경협정이후 이 사원으로 인해 태국과 캄보디아는 국경 분재을 격고 있다.
1962년 국제사법제판소가 캄보디아의 손을 들어 주었으나 2011년에도 여러차례 폭격을 주고 받았던 곳이다
지금은 태국의 정권이 바뀌고 나서 전쟁의 기미는 없으나 양쪽다 군대를 배치해 놓은 곳이다.
이전에는 길이 험난하여 접근이 어려워 태국을 통해 사원으로 들어 갔으나 지금은 포장상태가 아주 좋아져 있다 시엠립에서 바로 가면 약 4-5시간이면 갈수 있는 곳이다.
이번 여정은 부산외대의 동남아학을 연구하는 연구진과 학생들 그리고 몇몇 지인들과 함께 하였다.
간단한 시간표는....
08:15 시엠립 출발
09:45 벙멜리아 도착. 관람
10:40 출발
11:30 꼬께 도착
14:00 출발
15:40 쁘레아 비헤르 방문자 신고장도착
16:20 사원 도착
다음날
07:40 출발
09:00 따목 사무실 도착
09:20 출발
09:40 폴폿 화장터 도착
09:50 출발
11:20 프놈꿀렌 매표소 도착
14:10 폭포 입구 출발
15:50 시엠립 도착
저 산 꼭대기에서 사원을 만날수 있다
프랑스가 물러난 후 태국은 이 사원을 점령 했었다
그러나 국세 사법 재판소의 판결로 태국이 물러났고 1963년 1월에 영토 수복식을 하였다
그때 당시 국왕인 노로돔 시학누빌도 절벽에 한시간을 매달려서 올라 갔다고 한다
방문자 신고서류를 작성하는 곳이다
이름,여권번호,국가 를 적는다
별도의 입장료는 없다
사륜구동만이 올라갈수 있다
그래서 다른 차량으로 온 사람들은 오토바이 뒤에 매다려 가야 한다. 1인당 5불
그리고 그 옆에는 군인과 경찰 등이 혼재해서 서 있다.
이곳에는 일반경찰과, 국경수비대, 사원경찰, 특수부대 등 많은 군인과 경찰이 배치되어 있다
멀리서 보이는 길...
저 s자 길을 올라가서 다시 험로를 넘어야 한다
사원입구 주차장의 판
크메르 사람들은 이 사원으로 긍지를 가진다
일행이 군인에게 카메라를 내미니 바로 포즈를 취해 준다. 익숙해져 있나?
일행이 갑자기 산으로 뛰어 간다.
뛰어가던 그가 자리 잡은곳.
유네스코 깃발.
이 사원은 2008년 7월8일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 되었다
건너편 태국땅
태국으로 접근하면 경사로가 완만하며 제일 밑에서터 사원을 모두 볼수 있다
캄보디아에서 1일 무료 비자를 발급해 준다
그러나 태국인은 이곳으로 들어 올수 없다
저 밑에 국경이 보인다.
거대한 크기의 나가.
내가본 나가중에 제일 크게 만들어져 있다
빠콩, 쁘라삿톰 이후의 나가로 추정 된다
나가의 후광은 없으니 초기 나가이며 땅바닥에 올라와 있다.
고푸라......1000년이 지났는데도..
약간 다른 형태의 칼라
3번째 참배로
어떤부분은 바닥의 돌을 깍아서..어떤부분은 돌을 놓아서 길을 만들었다
길 옆에는 석등이 있어 경건한 분위기를 더 한다
곳곳에서 만날수 있는 연못
산 정상이라 해자를 만들수 없어서 이럿게 조성하기도 했고 빗물을 보관하기도 했으리라
중간에 만난 사자
중기 유적으로 추정 된다
특이한것은 뒷다리를 벌리고 있다
이런건 여기서 처음 만나 본다
자리를 찾지 못하는 사자상
안면이 많은 부조를 만났다
그럿다
젓의 바다젓기 부조다
그런데 다른곳과는 다르다
왜?
일단 왓 등에서는 왼쪽에 뱀의 대가리가 있는데 여긴 오른쪽에 대가리가 있다
그리고 쿠루마를 타고 있는 저 여인네는 누구를 표현한 것일까?
가루다가 나온다...
그러고 만다라 산에 매달린 사람들은 누구란 말인가?
다른곳에는 없는 코끼리도 나온다
왓과는 분명한 차이가 있다
왓보다 먼져 조각을 한것인데....
아이고 머리야
사원을 짓는데 땅이 모자라니 이럿게 라테라이트를 쌋아 땅을 확보했다
사원 바로 옆에 참호가 있다
89-99까지 주둔했던 베트남군이 만든 참호라고 한다
사원에서 좀 떨어져 짓지...문디.
칼라 위의 시바.
그리고 여인들...
그 부조로 한참을 실강이 했다.
분명이 칼라인데 몸이 있다...
확인하니 몸통을 먹기 전의 칼라라고 한다
제일 정상부위에 한 연못
작다고만 생각 했는데...
이곳은 왕의 목욕탕이었다고 한다
부서진 이 자리에 본래 사자가 있었고 위의 연못을 통해 사자의 입에서 물이 나왔다고 한다
왕만이 그 물로 목욕을 할수 있었다 한다
저 계단을 통해서...
그러나 태국쪽에서 17세기 가져가 버렷다 한다
어느 대궐속에 숨겨져 있을지.
정상 회랑
야소바르만때 지은걸로 추정한다
아직도 부서지지 않고 있다
제일 정상부
정상에서 바라본 당렉산맥.
그리고 드넓은 평원들
국경수비대 마크와 사원경찰의 마크.
드바라 팔마와 나가의 문야
해질녁의 유네스코깃발
쁘레아 비헤르의 하루는 간다
돌아와서 다시 눈에 선한곳...
쁘레아 비헤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