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엠립(앙코르와트 유적군) 유적 얘기 없는 여행기..랄까 후기.
1월 20일(금) ~ 1월 25일(수) 설 연휴를 끼고 4박 6일간 앙코르 와트를 보러 캄보디아 씨엠립에 다녀왔습니다.
항공권이 비싸거나 자리가 없을 것으로 예상되어 무려 두 달 전에 예매를 했는데 막상 여행이 임박하니 이스타항공 전세기가 추가되더군요.
성수기 연휴에 국외여행을 하는 것이 처음이라 일찍 예매해야한다고만 생각했는데,
앙코르 와트 정도 되는 여행지면 연휴에는 임박하면 알아서 전세기가 뜨는가 봅니다. 가격이 20% 정도 저렴하니 참고하세요.
1. 유적 공부
...우선 두 달 정도 전에 예매를 했기 때문에 시간도 있고 해서 여행 준비겸 회사 도서관 등에서 아래와 같은 자료를 빌려 읽었습니다.
ㅇ도올 김용옥의 <<앙코르와트/월남 가다>> (상, 하) : 막상 앙코르와트에 대해서는 "말로 다 할수 없다!" 한줄로 퉁치고 있지만 ㅋㅋ 앙코르 와트에 대해 흥미를 갖게 되기 충분한 책입니다. 추천.
ㅇ서규석, <<신화가 만든 문명 앙코르와트>> : 내용이 오래 되었습니다. 도올의 책에 나와 있듯이 진랍풍토기 및 주요 신화의 전문을 소개하고 있어서 자료 분량은 많습니다.
ㅇ정숙영, <<앙코르와트 내비게이션>> : 가장 최근에 나온 가이드북입니다(2011년 9월). 많이들 갖고 다니시더군요. 루트 짜기에 좋게 만들어져 있습니다. 아쉬운 점이 있다면 한국 가이드북들은 너무 무겁습니다. 좋은 종이에 컬러인쇄를 해야 팔리니 어쩔 수 없겠지요...
ㅇLonely Planet Cambodia. 씨엠립/앙코르와트 부분만 봤습니다. 별도색인으로 되어 있는 주요 유적의 지도부분이 쓸만합니다. 복사해놓고 막상 가져가지는 않아서 못 썼군요 ㅡㅡ;
ㅇ이지상, <<혼돈의 캄보디아, 불멸의 앙코르와트>> : 여행기이면서도 앙코르 와트의 수비학적 의미를 출처와 함께 제대로 소개한 수작입니다.
ㅇ이우상, <<앙코르 와트의 모든 것>> : 그럭저럭 수월하게 읽을 수 있었지만 해석의 깊이는 애매하더군요. 예컨대 크메르 전통으로 소개된 '진담'을 도올 김용옥은 모계사회에서 여자아이를 처녀성의 제약으로부터 해방시키기 위한 것으로 보지만 저자는 야만적인 풍습으로 보고 있습니다. 학자와 그렇지 않은 사람의 차이겠지요.
ㅇ유목민루트, <<앙코르 인 캄보디아>> (Season 2) : 군소 유적에 대해서도 다루고 있는 사전같은 책입니다. 도판은 여러 유적의 나가나 사자 상의 사진을 비교해서 볼 수 있도록 하는 등 성의가 있습니다. 이 책도 들고 다니면서 부조를 확인하며 읽었는데 하드커버라 굉장히 무거웠습니다. 2011년 7월 비교적 신간입니다.
ㅇ스테파노 베키아, <<크메르>> : 해설이 곁들여진 사진집입니다. 생각의나무 출판사가 원래 훌륭한 도판이 있는 큰 책들을 많이 냈는데 망하는 바람에...저렴하게 구해서 봤습니다.
ㅇ진형준, <<이야기 힌두신화>> : 기억은 안 나지만 위 책들 어딘가에서 힌두 신화 이해를 위해 추천하기에...
힌두 신화에 대한 참고문헌만 웬만한 논문을 훨씬 능가하는 판타지소설, 유진의 <<춤추는 자들의 왕>> (1,2) 도 있습니다만... 쿨럭
위 책들을 읽고 나니 막상 드는 생각이, 이 유적군들에 대해서는 밝혀진 바가 거의 없다는 것이더군요. ㅡㅡ;
책이 쓰여진 시기가 서로 다르고 도서관에서 빌려 읽은 것도 많아 후일 개정되었을지는 모르지만,
작게는 유적의 개수에서부터 크게는 유적의 건립 목적까지... 서술이 서로 다른 부분이 많고, 어떤 것이 더 권위있는 서술인지 잘 감이 오지 않습니다.
하긴, 첨성대도 용도가 모호한 마당에 천 년 ~ 천 삼백년 전의 유적에 대해 정확한 것을 알기는 어렵겠지만,
역사적인 서술만 차이가 나는 것이 아닙니다. 예로 앙코르와트 제 1기단부(부조가 있는 제1회랑)의 연꽃무늬 천장만 보더라도
<<앙코르 인 캄보디아>> 에서는 인도 복원팀이 복원하며 자기네 연꽃무늬를 새겨 넣었다고 하고 있지만, <<앙코르와트 내비게이션>>에서는 프랑스 복원팀이 천장에서 물이 새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천장을 해 넣었다고 되어 있습니다. 누가 맞는 것일까요?
하지만 이런 크고 작은 차이보다도 단편적으로 정보를 쌓으면서 유적에 대해 공부한다는 것의 의미가 점점 모호해 지더군요.
1) 대략의 크메르 역사와 해당 유적이 언제, 누구에 의해서, 무슨 목적으로 세워졌는지를 안다. (이 유적은 xx년 자야바르만 7세에 의해서...)
2) 건축 양식의 특징이나 부조의 구성을 안다. (가운데 있는 것이 비슈누고 그 옆에 있는 것은 누구고 누구고...)
3) 부조의 바탕이 된 '라마야나', '우유바다 휘젓기' 등의 힌두 신화를 안다.
4) 힌두 신화의 깊은 의미(세계관) 과 당시 크메르인들의 세계관이 이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변용하였는지를 이해한다.
5) 나는 이 세계관과 그것의 반영인 유적의 어떤 부분에 특별히 감흥을 느끼고, 그것이 내게 갖는 의미를 안다.
위 정도의 독서로는 1)~3)이 고작이었던 것 같습니다. 힌두 신화에 대한 거라면 몰라도 크메르인의 세계관에 대해서는 읽어볼 만한 한국어 책은 없었습니다. 5)는 유명한 곳이니 한번쯤은 가봐야 하지 않겠나 하는 것이 여행의 동기가 되었던지라 어쩔 수 없는 부분이더군요. 평소에 가고 싶어 어쩔 줄 몰랐던 사람이라면 그것만으로도 5)는 갖고 있는 셈일텐데... 아무튼 출발이 가까워질수록 더 읽었다간 안 봐도 본 것 같을 거 같아서(기우였다는게 금방 드러났습니다만...) 더 이상은 읽지 않았습니다.
2. 씨엠립 인상
저는 5년 전에 다녀온 방콕을 제외하면 한국보다 경제수준이 낙후된 국가를 처음 가 보는 셈입니다. 그래서 유적 말고도 캄보디아에 대한 흥미가 높아져 있었습니다. 하지만 씨엠립은 캄보디아를 알기에는 좀 착잡한 곳이었습니다. '유네스코 세계유산' 이 의미하듯이 이미 이 유적은 세계인들의 것이 되어 있더군요. 방콕만 해도 서울 못지 않은 시내를 보며 '대체 이 나라 사람들은 어디 사는 걸까?' 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4박 6일간의 겉핥기 경험으로 과감히 말하자면 씨엠립은 외국인들의 유적 관광을 위해 마련된 일종의 특구이더군요. 입장을 금하는 법이야 없겠지만 설정된 가격이 사실상 현지인들은 출입할 수 없는 구조가 되니... 톤레삽 호수와 반테이 스레이 지역을 가면서 씨엠립 시내 외곽을 볼 기회가 있었는데, 씨엠립 시내에서 일하는 캄보디아 사람들은 일과가 끝나면 이런 집들로 돌아가는 걸까요? 럭키 몰 지하로 들어가는 승용차들과 1층의 베스킨라빈스 가격 수준의 아이스크림 가게에 아이들이 바글바글한 것을 보고 잘 사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은 알았지만요. 아직도 씨엠립의 물가 개념은 잘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정가 개념이 없고 모든 것이 흥정인데다 현지인 식당으로 표시된 곳을 가보고 싶어 들어가도 English menu를 내오는 순간 쌀국수 한 그릇에 기본 2달러... 처음에는 한국에서도 김밥천국은 2달러에 한 끼를 먹을 수 있는데 이 곳이 비싸다고 생각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캄보디아가 아닌 일종의 외국인들 특구라는 것과, 현지인들은 출입조차 할 수 없는 상점과 식당들을 여럿 만들어 놓고는 막상 현지인들이 지불하는 가격을 원하는 것은 오히려 도둑 심보가 아닐까 하는 그런 생각이 들더군요. 음식은 뭘 먹어도 맛있었고(현지인들 먹는 것과 완전히 같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만...) 캄보디아 어를 할 줄 안다면 지금과는 판이하게 다른 경험을 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3. 가격
개별여행을 하는지라 이 사이트 게시판에서 죽림산방님이 올려주신 현지 물가표(작년 11-12월 기준)를 프린트해 갔습니다. 저희 흥정 실력이 딸린 건지 그 사이에 급속도로 변화한 건지(둘 다일것 같아요)... 호텔에 뚝뚝을 대절할 수 있겠냐 물어보면 매우 익숙한 대응으로 기준 요금표를 꺼내더군요. 호텔 측에 지불하면 알아서 뚝뚝을 불러 줍니다. short tour (앙코르와트 주변 인근) 하루 대절은 10불, long tour (약간 더나가면) 15불, 반떼이 쓰레이까지 가면 20불. 생각했던 것보다 네고의 여지가 없었습니다.
입국심사관이 1달러를 요구한다는 얘기를 하도 들어서 나름 긴장하고 갔는데 이제는 그런 일은 더이상 없는 것 같습니다. 무엇보다도 비자 발급하는 창구에 마치 분업하여 비자를 만들듯이 사람들이 일렬로 앉아 있더군요. 격리된 창구가 없는지라 요구하려고 해도 하지 못할 것 같았습니다. 이것도 최근에 일어난 변화겠지요. 호텔 측에서 무료 셔틀을 제공한다고 하여 우리의 도착 정보까지 보냈음에도 불구하고 공항을 나오니 그 한밤중에 단체여행객을 마중나온 사람들만 그득하고... 저희 픽업하러 아무도 안 왔더군요. 나중에 호텔에 컴플레인하기로 하고 일단은 택시를 잡아 타기로 했습니다. 호객도 많다고 들었는데 밤늦어서 그런지 거의 없어서 게이트 앞에 공식 택시/오토바이 대절 창구처럼 된 곳을 이용하니 여기도 요금이 정해져 있더군요. 기사에게 주는 게 아니라 데스크에 지불합니다. 시내까지 택시로 7불, 오토바이 3불... 이상하게 뚝뚝 요금 테이블은 못 봤는데 그 중간 어딘가에 위치해 있겠지요. 전체적인 인상은 외국인에게 비싼 요금을 받고 있는 것은 맞고, 이것이 호객하는 기사나 상점 직원 한두 사람의 일이 아니라 도시 전체가 합심하여 비싼 요금을 제도화하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나중에 호텔에 들어가서 호텔 안내 책자를 봤는데, "우리 모두 좀더 저렴한 가격을 좋아하는 것은 맞습니다. 그러나 당신이 오늘 흥정해서 절약한 약간의 푼돈이 한 가족 전체의 하루 식사일 수도 있습니다." 이렇게 쓰여 있더군요. 사실일수도 있지만, 흥정을 하지 않으면 도저히 지불할 의욕이 나지 않는 가격을 부르면서 호텔이, 그것도 손님에게 이런 말을 하는 것은 불쾌한 경고를 지나 구걸처럼 들리더군요. 다 외국인들이 잘못한 거겠지만 현지인들도 좀더 자존심을 회복해도 좋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사이트에서는 시내에서 한번 이동할때 뚝뚝 비용을 1달러 요구한다고 들었는데 다 처음에는 2달러를 부릅니다. 몇몇 기사들이 그렇게 부르기에 전 그사이에 (한두달) 요금이 올랐나 싶기도 하고 우리 호텔이 좀 다운타운과 떨어져 있어서(박물관 건너편 Angkoriana Hotel) 장거리인가 싶었지만 용기를 내어 깎아 보니 1불에 되더군요. ㅡㅡ;; 3달러를 부르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가격담합 있는 것 같아요.
4. 뚝뚝 이용에 대해서
한밤중에 공항에 떨어지니 참 초행에 난감하더군요.. 뚝뚝을 한국에서부터 예약하고 갈까 싶기도 했지만 저희는 초행이라 영 감이 오지 않고 우리가 짜놓은 루트에도 자신이 없어서 (앙코르와트에 하루 종일을 할애하곤 했지요...) 현지에서 그냥 하기로 했습니다. 도착해서 택시를 타긴 탔는데 상상을 초월하게 깜깜한 도로가 바로 나옵니다. 그런데 택시기사가 묻지도 않았는데 갑자기 "당신들 호텔이 다운타운과 떨어져 있어서 이 길로 가는거다." 하니 덜컥 무섭더군요. 그냥 아무말 없이 갔다면 별 생각 안했을텐데... 한국에서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깜깜하고 가로등이 없습니다. 이 게시판에 자주 올라오는 뚝뚝 기사도 한 명의 직업인으로서 팁과 대절비용으로 수익을 창출하는 사람임에는 틀림없고 이 점에서는 현지에서 수배하는 기사들도 큰 차이가 없습니다만, 적어도 미리 예약을 하고 가면 덜 무서울 것 같습니다.
일단 높은 요금 부르는 것을 자연스럽게 생각하면 마음이 훨 편합니다. 저희는 호텔에서 소개해주는 뚝뚝 가격(반테이스레이 20불) 을 한번 낮춰보고자 호텔 밖으로 나가서 개별적으로 잡는 걸 시도했는데요, 한 인상 좋게 생긴 기사가 35불을 불렀습니다. 이건 안되겠다 싶어 도로 호텔로 오니 호텔이 20불에 뚝뚝 기사를 잡아주는데 아까 35불 부른 그 사람인겁니다 ㅡㅡ;;; Nice to meet you again ladies 그러는데 헐헐 웃음이 나더군요. 호텔에서 잡아주는 뚝뚝 기사가 별게 아니고 그냥 가까이 지나가는 뚝뚝을 현지인들끼리의 안면으로 잡아주는 것 같았습니다. 이 기사분 자기도 민망했는지 점심 먹으러 시내에 들어왔다 가자는 저희의 무리한 요구도 잘 들어주고, 유적지 주변에 (기사들이 커미션 받고 데려가는) 비싼 식당 가기 싫다고 하니 알아서 3-4불 수준의 곳으로 데려다 주더군요. 처음에 35불 부른 것을 제외하면 너무 잘 해 주었던지라 팁까지 1불 드렸습니다. 처음에 가격을 높게 부르는 것을 사기 심보라고 생각하기보다는 물가 감각이 둔한 외국인들과 돈을 벌고 싶은 현지인들 사이에 '적정가격'에 대한 선이 모호한 것은 당연하기 때문에, 처음에 많이 불러보는 것은 인지상정이 아니겠는가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제 가이드북이었나 이 게시판이었나 잘 생각은 나지 않는데, 유적 투어 중간에 식사할 때에 유적지 주변의 식당은 불결하고 기사가 데려가는 곳은 비싸니 시내에 들어왔다 가라는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저는 좀 생각이 다른데 돌아다니다가 힘들어 시내에 들어와서 몇시간 쉬다가 다시 나간다면야 괜찮지만 오직 식사만을 위해서 시내로 도로 들어오는 것은 체력적으로나 기사한테나 힘든 일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마지막날 저희는 앙코르톰 북부지역 (프놈 바켕을 거쳐 쁘레야 칸, 네악 뽀안) 을 거쳐 반테이 스레이로 가는 일정이었는데 네악 뽀안쯤 가니 밥만을 먹으러 시내로 들어온다는것은 너무 비효율적인 루트 같더군요. 체력적으로도 힘들고 이 길을 왕복할 필요가 있나 싶어서... 혹시 기사가 커미션 받는 비싼 레스토랑 (첫날에 저희가 ㅡㅡ;; 뚝뚝 기사의 루트 추천을 따라가다가 이런 곳에 가게 되었는데 아목이 7달러나 하더군요... ㅡㅡ^) 가기 싫으면 미리 말씀하셔서 루트 근처의 덜 비싼 곳으로 데려다 달라고 하시는 편이 시내 돌아오는 것보다 좋을 것 같습니다. 시내 들어와서 펍 스트리트 같은 데서 식사하셔도 3-4달러는 하는데, 음식 수준이 좀 떨어지긴 하지만 네악 뽀안 근처의 식당들도 볶음 국수에 3달러쯤 하거든요. 너무 수행미션 클리어 하듯이 가이드북의 설명을 그대로 따라할 필요는 없다는 생각입니다.
5. 가이드 이용해야 하나?
유적 해설을 위해 현지 가이드를 쓸 것인지에 대해서는 마지막까지 고민을 했는데 결국 공부를 많이 했으니 괜찮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그냥 갔습니다. 한국인 가이드는 비용 부담이 있었고요, 현지인 가이드는 어차피 한국어를 하는 가이드가 많지 않다기에 영어로 들었어야 할텐데, 영어 현장 해설 vs 한국어 책 이라면 그냥 책을 읽는게 낫지 않을까 싶어서요. 이 부분은 내키는 대로 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위에도 썼지만 1)~5)까지의 유적 '이해' 단계 중에 4)와 5)는 어차피 가이드 설명으로 해소되는 부분이 아닙니다. 1)~3) 정도는 책을 많이 읽고 가면 알 수 있습니다. 가이드가 있어서 편한 점은 책으로 신물나게 본 내용이 도대체 이 유적의 어느 부분에 해당하는지를 정확하게 잘 찾아 준다는 점일까... 저희는 거의 보물찾기 하는 기분이었지만요. 때문에 놓치고 온 것도 아마 많겠지요. 대신에 유적마다 시간을 들이고 싶은 만큼 들여서 볼 수 있었고 사진도 서로 신나게 찍었습니다. 현지 가이드들 정말 언어 잘하던데 - 일본어 하는 가이드들 많이 보았는데 일본어 정말로 잘합니다. 거의 준네이티브 수준...) 제가 몇 가지 언어를 하는지라 본의아니게 여러 언어로 엿들었는데 해설의 수준이 어디에 무엇이 위치해 있는지를 더 빠르게 찾아주고 소소한 일화를 얘기해 준다는 점 외에는 가이드북의 수준을 크게 벗어나지 않더군요. 동선상 한 곳에서 여러 언어를 동시에 듣지는 않으니 가이드별 비교는 해 보지 못했지만 듣기로는 이들도 자신들의 전통을 따로 아는 방법이 있어서가 아니라 서구에서 연구하고 기술해 놓은 내용을 습득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고 하니 연구가 잘못되면 그것을 답습하게 되겠지요. 이렇게 써놓고 보니 가이드 이용을 비추하는 것 같은데 아닙니다. 가이드가 없으면 없는 대로 만족해서 그런 건데, 있었으면 있는 대로 아마 또 만족했을 것 같아요.
6. 패키지 vs 개별여행
씨엠립에 가는 이유는 뭐니뭐니해도 앙코르 유적군을 보기 위한 것이기 때문에, 2박 3일에서 4박 5일 정도의 일정이라면 사실 가는 곳, 하는 일들은 패키지나 자유여행이나 대동소이한 것 같습니다. 루트를 아무리 별나게 짜 봐야 거기서 거기고(저희도 나름대로 연구해서 짜갔지만 현지에서 거의 다 수정했습니다...) 들르는 곳도 비슷하고요. 호텔(Angkoriana Boutique Hotel)은 hotels.com 에서 사진을 보고 예약했는데 예쁘고 깊은(뭔 수영장이 180cm나 합니까...ㅠㅠ) 수영장이 딸린 깨끗한 트윈베드가 1박에 3만 5천원 수준이었어요. 일종의 외국인 관광 특구인지라 영어를 전혀 못하지 않는다면 자유여행하는데 별 어려움은 없습니다. 유적지마다 패키지 팀을 많이 봤는데 그렇게 가는 것도 괜찮아 보이더군요. 6번 국도 주변으로 패키지 관광객을 위한 한국어 간판 상점가와 단체버스가 즐비해서 한국의 패키지 여행객 송출규모를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다니면서 의외로 한국인 개별여행자를 별로 못봤는데, 몇번 만난 개별여행자들은 대부분 장기 배낭여행자들이고 저희처럼 연휴를 이용해서 잠깐 직항으로 다녀오는 사람들은 별로 없더라고요. 장기여행 하는 사람들이 부럽기는 했는데, 어제 육로로 씨엠립에 도착해서 아직 아무 데도 안 갔다며 '앙코르 와트 거기 볼만 한가요?' 하던 어떤 이의 질문에 말문이 막히더군요. 저는 그걸 보러 여기 오는 거라고 생각했는데... 뭐, 여러 가지 여행관이 있겠지요. 하지만 여행이라는 것의 의미가 구매력 차이로 인해 얻어지는, 본국에서는 받을 수 없는 넉넉한 서비스를 받으며 유랑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면 그것이 두둑한 지갑을 가지고 서울 시내에서 쇼핑을 하는 것에 비해 무슨 대단한 의미가 또 있을지...
7. 아이들
가기 전에 이 사이트에서도 글을 읽고 이런 저런 후기를 들어서 원 달러를 외치는 어린아이들에 대해 고민을 많이 했는데, 결론은 1달러를 주는 것은 이 아이들을 구걸의 악순환에서 구하는 것과는 동떨어진 일이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래도 막상 마주했을 때 내면의 소리를 거창한 핑계를 대고 외면하는 것도 아니다 싶어 1달러짜리를 많이 준비해가긴 했는데 (환전을 1달러짜리 100장을 했습니다 ㅡㅡ;) 막상 마주하니 이 아이들이나 캄보디아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에 일종의 위선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나 그런 생각도 들었습니다.
아무리 닳고 닳아도 동심은 동심이겠지만 그냥 돈을 구걸하는 사람은 하나도 없었습니다. 모두 물건을 팔고 있었고 제게는 필요 없는 물건이라 사지 않았습니다. 어린이들은 익숙한 태도로 그냥 돈을 벌고 있더군요. 물론 이것이 그들이 위험하지 않은 삶을 살고 있다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하지만 그들을 적선하듯 대하고 싶은 마음은 들지 않더군요.
제가 본 캄보디아는 '바깥'으로의 개방으로 인해 쏟아져들어온 물건들과 미디어의 영향으로 인해 태어난 욕망이 없다면 보건, 의료, 교육의 측면에서는 어땠을지 모르나 풍요롭고 넉넉한 자급자족 경제를 이루고 있는 곳이더군요. 근대사의 상흔이 불행한 이들을 많이 만들었을 뿐, 다음 세상에 캄보디아 농촌에서 태어나 닭을 뒤쫓는 어린이가 된다고 해도 저는 큰 불만이 없겠더군요. 행복지수 세계 5위라는 것에 자연스럽게 납득이 갔습니다.
비닐봉지에 책을 싸서 어깨에 메고 흙길을 걸어 등교하는 꼬마를 보았는데 굳이 한다면 학교에 지원을 해주는 것이 더 좋을 것 같습니다.
이번 앙코르와트 여행은 친구와 두 명이서 했습니다. 이번 여행이 알차고 즐거웠던 것은 현지 사람들이 하지 않는데 유난을 떨 것 없다며 흙먼지와 매연에 목이 막히는 가운데에서도 제가 준비해간 마스크 쓰기를 극구 거절한 존경스럽고도 훌륭한 동행 덕분입니다. 이곳에서 정보 올려주신 여러분들께 감사드리며 좋은 사람들과 좋은 여행 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