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티아이츠마?? 반티아이 츠마르??
항상 관세음 보살의 32개의 팔 사진을 볼때마다 함 가봐야 할껀데...하다가 드디어 다녀왔다
반티아이 츠마는 참 자료를 찾기가 힘들었다
그래서 현지에서 만난 가이드의 이야기와 지금까지 내가 봤던 앙코르 유적을 내방식으로 해석해서 적어본다
반티아이 츠마는 자야바르만 7세가 만든 사원이다.
자신의 고향에 자야바르만 7세는 참족과의 전투에서 죽은 아들을 기리면서 사원을 만들었다
2500*2000미터의 거대한사원이다
현지어로 반티아이는 성, 사원 으로 해석이 된다 츠마는 고양이다. 그래서 이곳을 고양이의 성 으로 해석해 왔다
그러나 현지의 해설사는 이곳이 반티아이 츠마르 라고 주장한다
츠마르는 작은, 작다라는 뜻이라고 합니다 즉 작은성, 작은사원이라고 합니다
앙코르 톰에 비해 작은 사원이다
이곳은 자야바르만 7세의 고향으로 수도인 앙코르 톰보다는 작지만 큰 사원을 만들고 싶어하는 꿈으로 만든 사원이라 한다
반티아이 츠마는 시엠립에서 155km 떨어진 곳이다
포이펫 방향으로 시스폰이란곳에서 우측으로 약 50키로를 가면 나온다..
문제는 길이 이런길이다. 비포장에 소는 계속 다니고
시스폰까지 1시간반, 그런데 50키로를 약 3시간 걸렸다
아침 8시 출발해서 12시 40분에 도착했다
올때는 오스만쪽으로 해서 왔다 170키로 4시간이 좀 덜걸렸다 포장을 일부는 했고 길이 좋았다
9시간이 넘게 차를 탓지만 난 다시가고싶다
남쪽의 부조
우유의 바다젓기 부조다
반티아이 츠마도 곳곳에 보수공사를 하고 있었다
들어가는 입구에 남아있는 부조
우유의 바다젓기의 신상들이다
65미터의 해자
힌두교에서는 머나먼 바다 끝에는 신의 세계가 있다고 봤다
그래서 바다, 해자는 신의 세계와 인가세계의 경계점이기도 하다
1000년의 세월이 흐른 해자가 흙이 쌓이고 낙시터로 변해 있다
입구의 반티아이 츠마의 도면
그곳에도 이럿게 앙코르 톰의 바이욘과 같이 관세음보살탑이 있다
최근까지 있었으나 1993년까지 남아 있던 크메르 루즈군이 태국에 돈을 받고 조각을 넘겻다고 한다
크메르 루즈군은 부조만이 아니라 광산을 팔아서 군자금을 마련했다
36개의 탑이 있었다고 하지만 지금은15개가 남아 있다
드디어 만난 32개의 팔의 관세음보살
그의 손안에 부처가 앉아 있다
옆에 있는 부조
자야바르만7세가 라후의 탈을 쓴 참파족을 무찌르는 장면
그 밑에는 참파의 왕비가 자야바르만 7세의 아들을 잡아 먹는 부조
아마 그의 아들이 전쟁에서 죽은것을 이럿게 표현한듯 하다
민간의 결혼하는 장면.
위쪽둥근것이 방을 표현하였다
그들은 첫날밤에 둘이 앉아서 신에게 다산을 빌고 있는 장면이다
첫날밤을 보내는 신방에 선 수문장
드디어 만난 브라마가 음악을 듣는 장면
800년전에 만든 조각인데 지금도 저리 생생한지
비슈누,...머리만 누군가 잘라갔다
이 부조까지만 보고 왔으면 난 5시간이 걸려서 간 시간이 아까웠을것이다
그런데 밖으로 나와서는 내가 너무 너무 잘 왔다고 생각했다
자야바르만 7세는 많은 사원을 만들고 많은 병원을 만들었다
그가 만든여러개의 사원중에 특히 바이욘, 따프롬, 쁘레야 칸은 불교사원의 특징을 가지고 있지만 부처상을 보기가 아주 힘들다
지방 호족 출신으로 50이 넘은 나이에 왕위에 올라선 자야바르만 7세는 그의 정치적인 목적을 위해 기존의 국교인 힌두교를 버리고 대승불교를 국교로 받아 들인다.
그러고 그는 여러개의 불교사원을 만들었다.
자야바르만 7세는 37년간 통치를 하고 그 뒤를 이은 인드라 바르만2세가 즉위한다
그는 자야바르만7세가 지어 놓은 사원에 모든 불상을 없앤다
이는 힌두교와 불교의 갈등이 아니라 정치적인 이유로 봐야 한다
프놈펜 국립박물관에는 몇개의 불상을 본적이 있지만 앙코르의 유적에서는 부조는 본 기억이 없다
그때의 155키로는 너무먼 거리였을까???
그곳에는 부처상이 있었다
그리고 라후가 조각되어 있었다
지금 그곳도 복원을 하고 있다..
다른곳에서는 볼수 없었던 수백의 부처상이다
다양한 형태로 볼수 있었다
힌두와 차이점은 다리를 양반다리를 하고 있다는점과 손을 앞으로 합장이 아니라 무릅위에 대고 있는것을 알수 있다
처음만나는 라후
라후는 어둠의 신이다.
그는 일식과 월식을 관장하는 신이기도 하다
마족의 큰 거인인 라후는 일년에 하루 일어나서 음식을 먹는데 신들이 음식을 준비해 놓지 않았다 배가 고픈 그는 자신의 모든 몸을 뜯어 먹고 어둠의 신이 되었다는 전설이 있다
또는 우유의 바다젓기에서 암리타를 마실려다가 비슈누에게 목이 잘렸다는 전서도 있다
다른곳에서는 만나기 힘든 라후다
동측 회랑에서 만난 부조
자야바르만 7세와 그의 아들이라고 한다
참파족과의 전투 장면
그곳에서 만난 압살라
압살라의 배에 총상이 있다
크메르 루즈군의 총 연습을 했다고 한다
유적안에 곳곳에 소가 있다.
그들은 이럿게 평화롭게 있다
돌아오는 내내 비가 왔다
다시 가고 싶은 반티아이 츠마르.....
다시 보고 싶은 붓다
반티아이 츠마는 참 자료를 찾기가 힘들었다
그래서 현지에서 만난 가이드의 이야기와 지금까지 내가 봤던 앙코르 유적을 내방식으로 해석해서 적어본다
반티아이 츠마는 자야바르만 7세가 만든 사원이다.
자신의 고향에 자야바르만 7세는 참족과의 전투에서 죽은 아들을 기리면서 사원을 만들었다
2500*2000미터의 거대한사원이다
현지어로 반티아이는 성, 사원 으로 해석이 된다 츠마는 고양이다. 그래서 이곳을 고양이의 성 으로 해석해 왔다
그러나 현지의 해설사는 이곳이 반티아이 츠마르 라고 주장한다
츠마르는 작은, 작다라는 뜻이라고 합니다 즉 작은성, 작은사원이라고 합니다
앙코르 톰에 비해 작은 사원이다
이곳은 자야바르만 7세의 고향으로 수도인 앙코르 톰보다는 작지만 큰 사원을 만들고 싶어하는 꿈으로 만든 사원이라 한다
반티아이 츠마는 시엠립에서 155km 떨어진 곳이다
포이펫 방향으로 시스폰이란곳에서 우측으로 약 50키로를 가면 나온다..
문제는 길이 이런길이다. 비포장에 소는 계속 다니고
시스폰까지 1시간반, 그런데 50키로를 약 3시간 걸렸다
아침 8시 출발해서 12시 40분에 도착했다
올때는 오스만쪽으로 해서 왔다 170키로 4시간이 좀 덜걸렸다 포장을 일부는 했고 길이 좋았다
9시간이 넘게 차를 탓지만 난 다시가고싶다
남쪽의 부조
우유의 바다젓기 부조다
반티아이 츠마도 곳곳에 보수공사를 하고 있었다
들어가는 입구에 남아있는 부조
우유의 바다젓기의 신상들이다
65미터의 해자
힌두교에서는 머나먼 바다 끝에는 신의 세계가 있다고 봤다
그래서 바다, 해자는 신의 세계와 인가세계의 경계점이기도 하다
1000년의 세월이 흐른 해자가 흙이 쌓이고 낙시터로 변해 있다
입구의 반티아이 츠마의 도면
그곳에도 이럿게 앙코르 톰의 바이욘과 같이 관세음보살탑이 있다
최근까지 있었으나 1993년까지 남아 있던 크메르 루즈군이 태국에 돈을 받고 조각을 넘겻다고 한다
크메르 루즈군은 부조만이 아니라 광산을 팔아서 군자금을 마련했다
36개의 탑이 있었다고 하지만 지금은15개가 남아 있다
드디어 만난 32개의 팔의 관세음보살
그의 손안에 부처가 앉아 있다
옆에 있는 부조
자야바르만7세가 라후의 탈을 쓴 참파족을 무찌르는 장면
그 밑에는 참파의 왕비가 자야바르만 7세의 아들을 잡아 먹는 부조
아마 그의 아들이 전쟁에서 죽은것을 이럿게 표현한듯 하다
민간의 결혼하는 장면.
위쪽둥근것이 방을 표현하였다
그들은 첫날밤에 둘이 앉아서 신에게 다산을 빌고 있는 장면이다
첫날밤을 보내는 신방에 선 수문장
드디어 만난 브라마가 음악을 듣는 장면
800년전에 만든 조각인데 지금도 저리 생생한지
비슈누,...머리만 누군가 잘라갔다
이 부조까지만 보고 왔으면 난 5시간이 걸려서 간 시간이 아까웠을것이다
그런데 밖으로 나와서는 내가 너무 너무 잘 왔다고 생각했다
자야바르만 7세는 많은 사원을 만들고 많은 병원을 만들었다
그가 만든여러개의 사원중에 특히 바이욘, 따프롬, 쁘레야 칸은 불교사원의 특징을 가지고 있지만 부처상을 보기가 아주 힘들다
지방 호족 출신으로 50이 넘은 나이에 왕위에 올라선 자야바르만 7세는 그의 정치적인 목적을 위해 기존의 국교인 힌두교를 버리고 대승불교를 국교로 받아 들인다.
그러고 그는 여러개의 불교사원을 만들었다.
자야바르만 7세는 37년간 통치를 하고 그 뒤를 이은 인드라 바르만2세가 즉위한다
그는 자야바르만7세가 지어 놓은 사원에 모든 불상을 없앤다
이는 힌두교와 불교의 갈등이 아니라 정치적인 이유로 봐야 한다
프놈펜 국립박물관에는 몇개의 불상을 본적이 있지만 앙코르의 유적에서는 부조는 본 기억이 없다
그때의 155키로는 너무먼 거리였을까???
그곳에는 부처상이 있었다
그리고 라후가 조각되어 있었다
지금 그곳도 복원을 하고 있다..
다른곳에서는 볼수 없었던 수백의 부처상이다
다양한 형태로 볼수 있었다
힌두와 차이점은 다리를 양반다리를 하고 있다는점과 손을 앞으로 합장이 아니라 무릅위에 대고 있는것을 알수 있다
처음만나는 라후
라후는 어둠의 신이다.
그는 일식과 월식을 관장하는 신이기도 하다
마족의 큰 거인인 라후는 일년에 하루 일어나서 음식을 먹는데 신들이 음식을 준비해 놓지 않았다 배가 고픈 그는 자신의 모든 몸을 뜯어 먹고 어둠의 신이 되었다는 전설이 있다
또는 우유의 바다젓기에서 암리타를 마실려다가 비슈누에게 목이 잘렸다는 전서도 있다
다른곳에서는 만나기 힘든 라후다
동측 회랑에서 만난 부조
자야바르만 7세와 그의 아들이라고 한다
참파족과의 전투 장면
그곳에서 만난 압살라
압살라의 배에 총상이 있다
크메르 루즈군의 총 연습을 했다고 한다
유적안에 곳곳에 소가 있다.
그들은 이럿게 평화롭게 있다
돌아오는 내내 비가 왔다
다시 가고 싶은 반티아이 츠마르.....
다시 보고 싶은 붓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