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코르왓 자전거 여행기 2
씨엠립으로 가는 택시 안에서 이국적인 창밖 풍경을 구경하는 것도 한 10여분.
산 하나 없이 지평선까지 뻗어있는 들판과 날렵하게 생긴 소와 개들을 신기하게 구경하는 것도 곧
싫증이나 결국 또 잠에 골아 떨어졌습니다.
가는 길에 캄보디아인과 합승을 했습니다.
나야 혼자니 별로 상관없었지만 택시기사는 합승 전 상당히 내 눈치를 살폈습니다.
상관없다고 하자 택시기사는 기분이 놓인 모양이더군요. 괜히 에어콘을 더 시원하게 틀어줍니다.
씨엠립 시내에 들어서자 택시기사가 나를 깨우며 외쳤습니다.
“welcome to Siem Reap!"
드디어 왔구나 하는 작은 나의 탄성에 택시기사는 약간 흐뭇해했습니다.
가는 길에 그 유명한 평양냉면집이 창밖으로 스쳐 지나갑니다.
미리 예약해둔 thunborei 호텔에 당도했습니다.
저는 아직도 이 호텔의 정확한 발음을 모릅니다. 자전거를 렌트할 때 숙소를 물어보면 가게 주인에게
두세번 호텔 이름을 반복해야 했죠. 아마 가장 비슷한 발음은 떤보라이 정도인것 같아요.
가격은 하루 12달러로 비싼 축이지만 여러 연계된 편의 시설 가격이 합리적입니다.
뚝뚝은 기본 9달러 마사지는 5달러 압사라 댄스는 10달러 정도.
직원들도 약간 쑥쓰러워 하면서도 미소를 잃지 않습니다.
태사랑에서 어떤분의 추천글을 보고 머문 곳이었는데 울드마켓 바로 옆이라 접근성도 좋고
내부도 깔끔해서 머무는 내내 편안했어요. 추천하신분 복받으세요.
씨엠립에서의 첫째 날이었지만 유적을 둘러보는 것은 포기했습니다.
자전거 여행을 계획했기 때문에 낮 12시쯤 출발하는 데에는 준비도 덜 되었고
무엇보다 너무 피곤했습니다. 서울에서 인천을 거쳐 방콕에서 씨엠립까지 이동수단만 5개를 거쳤으니
몸이 힘들만도 했죠.
일단 적당히 짐을 풀고 필요한 물건도 사고 씨엠립 시내도 눈에 익힐겸 호텔을 나섰습니다.
올드마켓은 여기 먹자골목은 저기..프린트 해간 시내 지도로 거리를 익히며 조금더 걸어가자
인터넷으로 봤던 대박식당, 그리고 럭키몰.
일단 럭키마트에 가서 음료와 물 간식과 과일을 조금 샀습니다.
그리고 어디선가 들어봤던 ARA 담배 한보루. 가격은 사랑스러웠지만 맛은 뭐 그냥 저냥.
양주는 가장 싼걸로 한병 샀습니다. 여행 중 피곤할 때 다음날 개운해지기 위해 몇잔 먹고 자는 여행 습
관 때문입니다. 효과는 장담할 수 없습니다.
마트를 나서니 배가 너무 고팠습니다. 생각해 보니 전날 공항에서 먹은 빵이 마지막 끼니였죠.
뭔가 추천 식당을 알아오긴 했는데 거길 찾아가 뭔가 맛보기도 전에 씨엠립 한복판에 쓰러질것 같았습
니다. 가까스로 올드마켓 쪽으로 걸어오다 코너 가장 바깥쪽 식당의 메뉴를 구경했습니다.
배고파서 돌이라도 먹을 수 있을 지경이었지만 캄보디아 까지 와서 샌드위치나 햄버거 따위를 먹지
않기 위해 이름도 그럴 듯 한 크메르 볶음밥을 시켰습니다.
이름은 크메르 볶음밥이지만 타이 볶음밥이라거나 인디안 푸드라고 이름붙여도 몰랐을 겁니다.
사실 그게 큰 상관은 없었습니다.
죽을 만큼 맛있었으니까.
음식 사진같은건 보통 찍지 않는데 내가 오죽 맛있었으면 이랬구나...하고 나중에 생각한 한컷입니다.
허기진 상태에서 씨엠립에서 먹은 첫 번째 음식은 매우 만족스러웠습니다.
밥을 거의 다 먹고 있자니 갑자기 비가 엄청 쏟아졌습니다. 날씨도 체크해 왔는데 사실 전혀 신경쓰고
있지 않았죠. 우산을 따로 챙겨온 것도 없고. 숙소로 가는 길도 문제지만 내일부터의 자전거 여행이 더
문제였습니다. 밖을 바라보고 있자니 모토나 자전거를 타고가는 캄보디아 사람들이 비닐 우비같은 것
을 입고 있었습니다. 비가 조금 잠잠해 지자 그들이 입은 우비를 파는 곳을 찾아 해멨습니다. 어떤 가게
를 들어가 샀는데 1달러를 주자 몇천 리엘을 거슬러 주었습니다. 이 몇백원 짜리 비닐 우비는 여행
내내 아주 유용히 썼습니다. 뭐 엄청난 폭우가 쏟아 질때는 비를 막아 준다기 보다는 뚝뚝을 타고 가는
여행자들에게 자전거를 타는 동안 너무 불쌍해 보이지 않는 정도의 용도로 사용되어 이래 저래
제법 유용했습니다.
몇 번의 쇼핑으로 거슬러 받은 생전 처음 보는 리엘. 지폐가 앙증맞고 이쁘게 생겼습니다.
환율이 얼마인지 호텔에 와서 역산해 보니 1달러당 4천리엘이 조금 넘는것 같았습니다. 나중에 보니
대충 4천 리엘을 1달러와 동일하게 치더군요.
올드마켓을 조금 둘러보았습니다. 밤의 이 거리는 방콕의 카오산과 매우 비슷합니다.
제 생각엔 카오산 쪽이 조금 더 난장판이면서도 활기찬 것 같습니다. 딱히 설명할 수 없지만 올드마켓
거리는 아직까지는 그래도 순수한 여행자의 거리 같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몇 차례 태국을 방문했었지
만 최근에 카오산에 갔을 때는 그곳은 점점 이태원화 되어가고 있다는 느낌을 받아 아쉬워 한 적이 있
었었죠......
올드마켓에서 파는 물건들도 태국의 짜뚜작 시장을 몇 번 가본 터라 규모도 작고 파는 물건도 비슷하여
그다지 신기할 건 없었지만 사실 올드 마켓에서만 파는 레어 아이템이 몇개 있었습니다.
날씨를 보니 가져온 티셔츠로는 일주일을 못 버틸것 같아 싸게 티셔츠 몇 개를 사볼까 해서 돌아다니
던 도중 앙코르 비어 티셔츠와 앙코르왓이 프린팅 된 티셔츠를 발견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그것.
태국에서 싱하와 타이거 티셔츠를 살 수 있어도 앙코르 비어 티셔츠를 살 수는 없다. 이것이 진정
훌륭한 레어 아이템...이라고 생각하며 흥정을 시작했습니다.
인터넷 어디선가 티셔츠를 1달러정도에 사라고 했었던것 같아 앙코르비어와 앙코르 왓이 그려진 티 두
장을 2달러에 팔라고 우겼습니다. 흥정 끝에 두장에 3달러 까지 내렸죠.
전 티셔츠의 적정가가 1달러라고 철석같이 믿고 있던 터라 2달러를 고집하다가 결국 안 깎아 주는 바
람에 그냥 숙소에 왔지만 와서 인터넷으로 확인해 보니 2달러 정도가 적당한 가격이었습니다.
알고나니 상당히 그 가게 주인에게 미안했습니다. 다음날 그냥 그 가게로 가서 4달러에 훌륭한 앙코르
비어 티셔츠와 앙코르 왓이 프린팅 된 티를 사왔습니다.
첫날은 몇시에 잠이 들었는지 기억도 나지 않습니다. 일출을 볼 욕심에 알람을 새벽 4시 50분에 맞추
어 놓고 저녁에 잠든 것 같습니다. 그래도 다음날 푹 잤는지 무리 없이 알람소리에 잠을 깼습니다.
오늘부터 본격적인 자전거 여행이다!! 출발하기도 전에 가슴이 엄청 두근거리더군요..